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정민의 세설신어 185

죽외일지 (竹外一枝)

[정민의 世說新語] [606] 죽외일지 (竹外一枝)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1.01.21 03:00 2016년 5월 12일, 후지쓰카 지카시(藤塚鄰·1879~1948) 선생의 외손녀 후미코(駒田文子) 여사가 선생의 친필 서명이 든 여러 저서와, 옹방강이 추사에게 보낸 서간첩 복제본을 보내왔다. 2012년 내가 하버드 옌칭 연구소에 1년간 머물 때, 그 대학 도서관이 소장하던 후지쓰카 소장 고서를 50종 넘게 찾아내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이란 책을 쓴 인연을 기념해 보내준 선물이었다. 중간에 후지쓰카 선생의 친필 한 점이 들어있었다. “대나무 밖 한 가지가 기울어 더욱 좋다(竹外一枝斜更好)”고 쓴 일곱 자다. 그 옆에 ‘소헌학인(素軒學人)’이란 호와 ‘망한려(望漢廬)’란 인장이..

집가벌가 (執柯伐柯)

[정민의 世說新語] [603] 집가벌가 (執柯伐柯)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0.12.31 03:00 1633년, 회시(會試)의 시무책(時務策)은 법제(法制)를 묻는 출제였다. 문제는 이랬다. 시대마다 그 시대의 법제가 있다. 법제가 타당하면 정치가 간결해서 백성이 편안했고, 법제가 요점을 잃으면 정사가 번잡해져서 백성이 원망한다. 한 나라의 치란은 법제에 좌우된다. 어찌해야 법제가 제자리를 얻고, 정사가 바르게 설 것인가? 윤선도(尹善道·1587~1671)는 글의 서두에서, 맹자가 “한갓 법으로는 저절로 행해질 수가 없다(徒法不能以自行)”고 한 말을 인용하고, “정치만 있고 그 마음은 없는 것을 ‘도법(徒法)’이라 한다(有其政而無其心, 是謂徒法)”고 한 주자의 풀이를 끌어왔다. 백성을 위한..

탄조모상 (呑棗模象)

[정민의 世說新語] [605] 탄조모상 (呑棗模象)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1.01.14 03:00 1801년 신유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의 심문 기록인 ‘사학징의(邪學懲義)’ 중 권철신(權哲身)의 처남 남필용(南必容)의 공초(供招)는 이랬다. “제가 여러 해 동안 사학(邪學)을 독실히 믿은 마음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나라에서 지극히 엄하게 금지하고 있는지라 감히 옛것을 고쳐 새로움을 도모하지 않을 수가 없겠습니다. 권철신은 제사를 갑작스레 폐하는 것이 어려울 경우 밥과 국만으로 대략 진설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 또한 그 말에 따라 조상에 대한 제사를 폐하지는 않겠습니다.” 국금(國禁)을 따르겠다면서도 신앙을 버리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제사를 드..

기득환실 (旣得患失)

[정민의 世說新語] [604] 기득환실 (旣得患失)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1.01.07 03:00 1658년, 72세의 윤선도(尹善道·1587~1671)가 효종에게 ‘국시소(國是疏)’를 올렸다. 글의 서두를 이렇게 열었다. “전하께서 바른 정치를 구하심이 날로 간절한데도 여태 요령을 얻지 못하고, 예지(叡智)를 하늘에서 받으셨으나 강건함이 부족하여, 상벌이 위에서 나오지 않고, 정사와 권세가 모두 아래에 있습니다. 대개 완악하고 둔한데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얻으려 안달하고 잃을까 근심하는 자는 성인께서 말씀하신 비루한 자들이고, 겉으로는 온통 선한 체하면서 속으로는 제 한 몸만 이롭게 하려는 자는 성인께서 말씀하신 가짜요, 말만 번지르르한 자들입니다. 지금 세상에서 행세하는 자는 대부분..

인약발병 (因藥發病)

[정민의 世說新語] [602] 인약발병 (因藥發病)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0.12.24 03:00 1625년 9월 12일, 인조가 구언(求言)의 하교를 내렸다. 광해의 난정을 바로잡아 나라의 새 기틀을 세우겠다던 다짐은 3년 만에 왕의 좁은 도량과 우유부단한 언행으로 허물어지고 있었다. 왕은 점차 바른말을 듣지 않고 제 고집만 부리고, 희로를 안색에 바로 드러냈다. 보다 못한 김상헌의 구언 건의가 있었다. 임금은 부덕한 몸으로 하늘의 노여움을 만나 백성의 걱정하는 소리가 시끄럽고, 원망하는 한숨이 끊이지 않아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큰 신의를 버리고 작은 일만 살피는 사이에 하는 일마다 마땅함에 어긋나니, 그 죄가 내게 있다며, 신하들에게 바른말을 구하였다. 계곡(谿谷) 장유(張維·1587..

관간어중 (寬簡御衆)

[정민의 世說新語] [601] 관간어중 (寬簡御衆)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0.12.17 03:00 1743년 2월 30일, 영조가 보름 남짓 남은 사도세자의 관례에 내릴 훈시(訓示)의 글을 발표했다. 임금은 직접 쓴 네 개의 첩(帖)을 꺼냈다. 첫 번째 첩은 표지에 ‘훈유(訓諭)’란 두 글자를 썼는데, 안을 열자 ‘홍의입지(弘毅立志)·관간어중(寬簡御衆)·공심일시(公心一視)·임현사능(任賢使能)’이란 16자가 적혀 있었다. 넓고 굳세게 뜻을 세워, 관대함과 간소함으로 무리를 이끌며, 공변된 마음으로 한결같이 살피고, 어질고 능력 있는 이에게 일을 맡기라는 뜻이었다. 16자 아래에는 또 “충성스러움과 질박함, 문아(文雅)함이 비록 아름다워도, 충성스러움과 질박함은 투박하고 거친 데로 흐르기 쉽..

문유십기 (文有十忌)

[정민의 世說新語] [489] 문유십기 (文有十忌)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8.10.18 03:14 명나라 원황(袁黃·1533~1606)이 글쓰기에서 꺼리는 열 가지를 꼽아 ‘문유십기(文有十忌)’를 썼다. ‘독서보(讀書譜)’에 나온다. 첫째는 두건기(頭巾氣)다. 속유(俗儒)나 늙은 서생이 진부한 이야기를 배설하듯 내뱉은 글이다. 둘째는 학당기(學堂氣)다. 엉터리 선생의 글을 학생이 흉내 낸 격의 글이다. 뜻이 용렬하고 견문은 조잡하다. 셋째는 훈고기(訓誥氣)다. 남의 글을 끌어다가 제 말인 양 쓰거나, 버릇처럼 따지고 들어 가르치려고만 들면 못쓴다. 넷째는 파자기(婆子氣)다. 글은 핵심을 곧장 찔러, 툭 터져 시원스러워야지, 했던 말 자꾸 하고 안 해도 될 얘기를 섞으면 노파심 많은 할머니..

상유만경 (桑楡晩景)

[정민의 世說新語] [597] 상유만경 (桑楡晩景)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입력 2020.11.19 03:00 최경창(崔慶昌·1539~1583)의 ‘채련곡(採蓮曲)’은 이렇다. “물가 언덕 아득하고 수양버들 늘어서니, 조각배 저 멀리서 채릉가를 부르네. 붉은 옷 다 진 뒤에 가을바람 일어나면, 날 저문 빈 강 위에 저녁 물결 일겠지(水岸悠悠楊柳多, 小船遙唱採菱歌. 紅衣落盡西風起, 日暮空江生夕波).” 어여쁜 아가씨들이 연밥 따며 부르던 고운 노래는 꿈결의 이야기였나? 붉은 연꽃 다 진 방죽 위로 가을바람이 한차례 훑고 지나가자, 저문 빈 강에는 쓸쓸히 저녁 물결만 남았다. ‘청창연담(晴窓軟談)’에 나온다. 허균(許筠·1569~1618)은 ‘힐난하는 이에게 대답함(對詰者)’에서 오활한 처세를 나무라는..

착슬독서(著膝讀書)

[정민의 세설신어] [236] 착슬독서(著膝讀書) 입력 2013.11.13 05:27 퇴계 선생이 산사일등(山寺一燈)을 아꼈다면 이상정(李象靖·1711~1781)은 착슬독서(著膝讀書)를 강조했다. '저(著)'는 '착'으로 읽으면 딱 붙인다는 뜻이다. 착슬독서란 무릎을 방바닥에 딱 붙이고 엉덩이를 묵직하게 가라앉혀 읽는 독서를 말한다.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모름지기 시간을 아껴 무릎을 딱 붙이고 글을 읽도록 해라. 의문이 나거든 선배에게 물어 완전히 이해하고 입에 붙도록 해서 가슴 속에 흐르게끔 해야 힘 얻을 곳이 있게 된다. 절대로 대충대충 지나치면서 책 읽었다는 이름만 얻으려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또 다른 편지에서도 "모름지기 마음을 누르고 뜻을 안정시켜 착슬독서 해야만 조금이라도 힘을 얻게 ..

지이불언(知而不言)

[265] 지이불언(知而不言) 입력 2014.06.04 05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고려 때 유원적(兪元勣)이 권신 김인준(金仁俊)을 제거하려다 모의가 탄로 나서 잡혔다. 김인준이 그의 형 유천우(兪千遇)를 불러 "공의 아우가 나를 죽이려 했소. 이 사실을 알았는가?" "알았소." "알면서도 말하지 않았으니(知而不言) 그대도 한패구려." "그가 그 말을 하기에 꾸짖고 매질을 해서 쫓아 보냈소. 실패할 줄 알았지만 내가 고변한다면 이 때문에 연로하신 어머님 마음이 상하실 테고, 사람들은 제 동생을 고발해서 제 죽음을 면했다고 손가락질을 할 것이 아니오. 그래서 알릴 수 없었소." 김인준이 말했다. "만약 공이 몰랐다고 했다면 더욱 의심을 샀을 터이나, 이제 사실대로 말하니 문책하지 않겠소. 지난번 내 ..

함사사영(含沙射影)

[정민 세설신어] [588] 함사사영(含沙射影) 조선일보 입력 2020.09.10 03:00 권필(權韠·1569~1612)은 시 ‘천하창창(天何蒼蒼) 취중주필(醉中走筆)’에서 세상에 정의와 공도(公道)란 것이 있기는 하냐면서, 온갖 위험이 도사린 세상 길을 탄식했다. 그중 한 대목. “하물며 서울 큰길엔 위험이 많아, 앞에는 태항산이 막고 서있고, 뒤에는 무협의 물 흐르고 있네. 도깨비는 숲에서 휘파람 불고 뱀은 굴에서 기어 나오며, 곰은 서쪽에서 소리 지르고 범은 동쪽에 웅크려있네. 물여우는 사람의 그림자를 기다리고, 땅강아지는 사람 말을 받아 적는다. 그물은 두 어깨를 낚아채 가고, 주살은 두 다리를 달아맨다네(況復長安大道多險巇, 前有太行山, 後有巫峽水. 魍魎嘯林蛇出竇, 熊羆西咆虎東踞. 水鏡俟人影, ..

분토취부 (糞土臭腐)

[정민의 世說新語] [589] 분토취부 (糞土臭腐)2020.09.17A33면 [정민의 世說新語] [589] 분토취부 (糞土臭腐) www.chosun.com ‘세설신어’에 나온다.강항(姜沆‧1567~1618)이 벗 권제(權霽)의 청몽당(淸夢堂)에 놀러 갔다가, 기문(記文) 부탁을 받았다. 청몽(淸夢)의 뜻을 묻자 권제가 말했다. “벼슬은 썩은 냄새로 꿈에 관을 본 자는 벼슬을 얻고, 재물은 썩은 흙이라 꿈에 똥을 본 자는 재물을 얻는다고 했네. 나는 썩은 냄새나 썩은 흙을 꿈꾸지 않네. 속담에 낮에 한 바가 밤에 꿈에 나온다고 하지. 마음으로 생각한 것이 꿈에 보인 것이라네. 조선일보 지면보기 cdb.chosun.com 오피니언 | 정민 교수 |

노인삼반 (老人三反)

노인삼반 (老人三反) 조선일보입력 2014.03.26 05:30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이기(李墍·1522~1600)가 '간옹우묵(艮翁疣墨)'에서 말했다. "세속에서 하는 말이 있다. 노인이 젊은이와 반대인 것이 대개 세 가지다. 밤에 잠을 안 자며 낮잠을 좋아하고, 가까운 것은 못 보면서 먼 것은 보며, 손주는 몹시 아끼나 자식과는 소원한 것, 이것이 노인의 세 가지 상반된 점이다(世俗有言, 老人與年少之人相反者, 大概有三. 夜不肯寐而喜晝眠, 不能近視, 而能遠視. 篤愛兒孫, 而疎其親子, 此老人之三反也)." 명나라 때 왕납간(王納諫)도 '회심언(會心言)'에서 이렇게 말한다. "아이 적엔 똑똑해도 늙으면 잘 잊고, 아이 때는 다 즐거우나 늙으면 모든 것이 슬프다. 이 또한 한 몸 가운데 조화가 옮겨 흘러..

노인삼반 (老人三反)

노인삼반 (老人三反) 조선일보입력 2014.03.26 05:30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이기(李墍·1522~1600)가 '간옹우묵(艮翁疣墨)'에서 말했다. "세속에서 하는 말이 있다. 노인이 젊은이와 반대인 것이 대개 세 가지다. 밤에 잠을 안 자며 낮잠을 좋아하고, 가까운 것은 못 보면서 먼 것은 보며, 손주는 몹시 아끼나 자식과는 소원한 것, 이것이 노인의 세 가지 상반된 점이다(世俗有言, 老人與年少之人相反者, 大概有三. 夜不肯寐而喜晝眠, 不能近視, 而能遠視. 篤愛兒孫, 而疎其親子, 此老人之三反也)." 명나라 때 왕납간(王納諫)도 '회심언(會心言)'에서 이렇게 말한다. "아이 적엔 똑똑해도 늙으면 잘 잊고, 아이 때는 다 즐거우나 늙으면 모든 것이 슬프다. 이 또한 한 몸 가운데 조화가 옮겨 흘러..

지이불언(知而不言)

[정민의 세설신어] [265] 지이불언(知而不言) 조선일보입력 2014.06.04 05:37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고려 때 유원적(兪元勣)이 권신 김인준(金仁俊)을 제거하려다 모의가 탄로 나서 잡혔다. 김인준이 그의 형 유천우(兪千遇)를 불러 "공의 아우가 나를 죽이려 했소. 이 사실을 알았는가?" "알았소." "알면서도 말하지 않았으니(知而不言) 그대도 한패구려." "그가 그 말을 하기에 꾸짖고 매질을 해서 쫓아 보냈소. 실패할 줄 알았지만 내가 고변한다면 이 때문에 연로하신 어머님 마음이 상하실 테고, 사람들은 제 동생을 고발해서 제 죽음을 면했다고 손가락질을 할 것이 아니오. 그래서 알릴 수 없었소." 김인준이 말했다. "만약 공이 몰랐다고 했다면 더욱 의심을 샀을 터이나, 이제 사실대로 말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