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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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의 세설신어 185

[637] 해상조로(薤上朝露)

[정민의 世說新語] [637] 해상조로(薤上朝露)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1.08.26 03:00 ‘해로(薤露)’는 한위(漢魏) 시기의 만가(挽歌)다. 상여가 나갈 때 영구를 끌면서 사람들이 함께 부르던 노래다. 초한(楚漢)의 쟁패 중에 제나라 대부 전횡(田橫)은 따르는 무리 5백인과 함께 바다 섬으로 들어갔다. 한고조 유방이 그를 부르자 어쩔 수 없이 낙양으로 나오다가 30리를 앞에 두고 굴욕을 거부하고 자살했다. 섬에서 그를 기다리던 무리 5백인이 이 소식을 듣고 슬퍼하며 모두 따라서 죽었다. 사람들이 이들의 넋을 달래려고 부른 노래가 바로 ‘해로’다. 해(薤)는 백합과의 다년생 초본인 염교를 말한다. 노래는 이렇다. “염교 잎 위 아침 이슬, 어이 쉬 마르는가? 이슬이야 마른대도 내일..

[636] 심상자분 (心上自分)

[정민의 世說新語] [636] 심상자분 (心上自分)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1.08.19 03:00 추사의 ‘정게증초의사'를 검여 유희강이 쓴 '완당정게(阮堂靜偈)', 1965년, 64×43㎝. /성균관대 박물관 몸은 일이 없는데 마음이 자꾸 분답하다. 작은 일에도 생각이 들끓어 쉬 가라앉지 않는다. 벽에 써붙여 둔 주자의 ‘반일정좌(半日靜坐), 반일독서(半日讀書)’의 구절이 부끄럽다. 추사가 벗 초의 스님에게 써준 ‘정게(靜偈)’가 생각나 읽어본다. “네 마음 고요할 땐 저자라도 산과 같고, 네 마음 들렐 때는 산이어도 저자일세. 다만 마음 그 속에서, 저자와 산 나뉜다네. (중략) 너 말하길 성과 저자, 산속만은 못하다고. 산속에서 들렐 제면 또한 장차 어찌하나. 저자 안에 있더라도 산..

[635] 유희임천 (惟喜任天)

[정민의 世說新語] [635] 유희임천 (惟喜任天)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1.08.12 03:00 새벽 산책 길에서 신석정 시인의 ‘대바람 소리’를 여러 날 외웠다. “대바람 소리 들리더니/ 소소(蕭蕭)한 대바람 소리/ 창을 흔들더니/ 소설(小雪) 지낸 하늘을/ 눈 머금은 구름이 가고 오는지/ 미닫이에 가끔/ 그늘이 진다/ 국화 향기 흔들리는/ 좁은 서실(書室)을 무료히 거닐다/ 앉았다/ 누웠다/ 잠들다 깨어보면/ 그저 그런 날을/ 눈에 들어오는/ 병풍(屛風)의 낙지론(樂志論)을 읽어도 보고…/ 그렇다!/ 아무리 쪼들리고/ 웅숭그릴지언정/ -〈어찌 제왕(帝王)의 문(門)에 듦을 부러워하랴〉/ 대바람 타고/ 들려오는/ 머언 거문고 소리….” 종일 무료하게 서실을 서성이다, 앉아 책보다 지쳐..

[634] 당관삼사 (當官三事)

[정민의 世說新語] [634] 당관삼사 (當官三事)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1.08.05 03:00 조선 성종(成宗), 성종어필선면첩(成宗御筆扇面帖), 세로 26.3㎝, 가로 17.6㎝,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한국고전번역원의 소식지 ‘고전사계’의 표지를 보니,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9대 성종 임금께서 부채에 쓴 어필(御筆)이 실려 있다. 7도막의 짤막한 경구를 써 놓았는데, 둘째 구절에 눈길이 갔다. 내용은 이렇다. “벼슬에 임하는 방법은 다만 세 가지 일이 있다. 청렴함과 삼감, 그리고 부지런함이다(當官之法, 唯有三事, 曰淸, 曰愼, 曰勤).” 관리가 지녀야 할 세 가지 가치로 먼저 청렴함을 꼽았다. 벼슬아치는 깨끗해야지 딴 꿍꿍이를 지니면 어긋난다. 그다음은 신중함이다, 할 말과 안 ..

[633] 수처작주 (隨處作主)

[정민의 世說新語] [633] 수처작주 (隨處作主)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1.07.29 03:00 1991년 무렵 서옹스님(왼쪽)과 그의 글씨 '수처작주(隨處作主). /조선일보 DB 열흘 전 폭염 속에 초의차(草衣茶)의 자취를 더듬어 남도 답사를 다녀왔다. 초의 스님이 머리를 깎은 나주 운흥사는 작열하는 태양 아래 인적 하나 없는 적막 속이었다. 다시 초의차의 전통으로 떡차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은 불회사(佛會寺)로 갔다. 오랜만에 들른 불회사에서 정연(淨然) 큰스님의 소식을 물으니, 덕룡산 꼭대기 일봉암(日封菴)에서 혼자 지내신다는 말씀이었다. 물어물어 찾아가 10년 만에 인사를 나누고 스님이 끓여주시는 불회사 떡차를 마셨다. 벽에 걸린 서옹(西翁) 스님의 글씨 때문에 어느덧 화제가 옮..

[632] 경경위사 (經經緯史)

[정민의 世說新語]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1.07.22 03:00 추사 김정희의 편액 글씨, 경경위사(經經緯史). 간송미술관 소장. 추사 김정희의 글씨 중에 ‘경경위사(經經緯史)’가 있다. 경(經)은 날줄, 위(緯)는 씨줄이니, 날줄을 세로로 걸고 씨줄이 가로로 오가며 한 필의 베를 짠다. 그러니까 경경위사란 말은 경경(經經), 즉 경전(經傳)을 날줄로 걸고, 위사(緯史) 곧 역사책을 씨줄로 매긴다는 뜻이다. 경도와 위도를 알아야 한 지점을 정확히 표시할 수가 있듯, 경전 공부로 중심축을 걸고 나서 여기에 역사 공부를 얹어야 바른 판단을 세워 중심을 잡을 수 있다. 이 말은 예전에 독서의 차례를 말할 때 늘 하던 말이다. 임헌회(任憲晦, 1811~1876)는 “배우는 사람은 마땅히 경전을..

망서지방 (忘暑之方)

[정민의 世說新語] [631] 망서지방 (忘暑之方)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1.07.15 05:18 올해는 장마와 폭염이 함께 올 모양이다. 코로나19까지 폭발적 증가세다. 그 와중에 무책임한 행동이 불쾌지수를 높인다. 다산은 ‘불역쾌재행(不亦快哉行)’ 20수 연작에서 인생사 답답하고 짜증 나는 장면을 한 방에 날려줄 통쾌한 광경을 나열했다. 그중 무더위에 관한 것만 두 편이다. “한 달 넘게 찌는 장마 퀴퀴한 내 쌓여 있고, 사지에 힘 쪽 빠져서 아침저녁 보낸다네. 새 가을 푸른 하늘 맑고도 드넓은데, 툭 트인 끝 어디에도 구름 한 점 없구나.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跨月蒸淋積穢氛, 四肢無力度朝曛. 新秋碧落澄寥廓, 端軒都無一點雲. 不亦快哉).” 습기 먹은 벽지에 곰팡이가 올라오고, 온몸은..

[630] 일각장단 (一脚長短)

[정민의 世說新語] [630] 일각장단 (一脚長短)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1.07.08 03:00 말에도 품격이 있다. 표현에 따라 같은 말도 달리 들린다. 한 젊은이가 어떤 사람이 다리 하나가 짧다고 말하자, 홍석주(洪奭周)가 나무랐다. “어째서 다리 하나가 더 길다고 말하지 않느냐? 길다고 말하면 짧은 것이 절로 드러나니 실은 같은 말이다. 말을 할 때 긴 것을 들고 짧은 것은 말하지 않으니 이것이 이른바 입의 덕[口德]이다. 남을 살피거나 일을 논의할 때는 진실로 길고 짧음을 잘 구분해야 한다.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할 때 자기의 장점을 자랑하고 남의 단점을 드러낸다면 군자의 충후한 도리가 아니다.” ‘학강산필(鶴岡散筆)’에 나온다. 박지원이 ‘사소전(士小典)’에서 말했다. “귀가 먹..

사유오장(仕有五瘴)

[정민의 世說新語] [629] 사유오장(仕有五瘴)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1.07.01 03:00 북송 때 매지(梅摯·994~1059)가 소주(韶州) 자사로 있으면서 ‘장설(瘴說)’을 지었다. ‘장(瘴)’은 남방의 풍토병을 일컫는 말이다. 글에서 그는 지방관의 다섯 가지 풍토병(仕有五瘴)에 대해 말했다. 첫째는 조부(租賦) 즉 세금 거두기의 병통이다. 다급하게 재촉하고 사납게 거둬들여, 아랫사람에게서 착취하여 윗사람에게 가져다 바친다(急催暴斂.剝下奉上). 윗사람은 밑에서 바치는 양의 많고 적음에 따라 능력 평가 기준으로 삼는다. 백성의 삶이 피폐해지는 것이 잠깐이다. 둘째는 형옥(刑獄)의 병통, 법 집행이 공정치 않아 생기는 문제다. 무슨 말인지 모를 법조문을 멋대로 들이대 선악을 제대로 ..

사청사우 (乍晴乍雨)

[정민의 世說新語] [627] 사청사우 (乍晴乍雨)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1.06.17 03:00 조선 초 문인, 학자 김시습(金時習·1435~1493)의 초상. 수양대군의 단종 왕위 찬탈에 반발해 벼슬길에 오르지 않고 은둔하다 승려가 되었다. 보물 제1497호. /문화재청 세상일이 참 뜻 같지 않다. 그때마다 일희일비(一喜一悲)하기는 피곤하고, 무심한 체 넘기자니 가슴에 남는 것이 있다.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이 ‘잠깐 갰다 금세 비 오고(乍晴乍雨)’에서 노래한다. “잠깐 갰다 비가 오고 비 오다간 다시 개니, 하늘 도리 이러한데 세상의 인정이랴. 칭찬하다 어느새 도로 나를 비방하고, 이름을 피한다며 외려 명예 구한다네. 꽃이 피고 지는 것이 봄과 무슨 상관이며, 구름 가고..

불삼숙상 (不三宿桑)

[정민의 世說新語] [626] 불삼숙상 (不三宿桑)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1.06.10 03:00 이상호 시인의 새 시집 ‘국수로 수국 꽃 피우기’를 읽다가 ‘감나무의 물관을 자르시다’에서 마음이 멈췄다. “가을에 감을 따내신 우리 아버지 / 감나무에 더는 물이 오르지 않게/ 밑동에 뱅 둘러 물관을 자르셨다.// 더는 감나무에 오르지 못하겠다고/ 목줄을 끊기로 작정하셨던가 보다.// 내 나이보다 더 오랜 세월 동안/ 우리 집을 지키던 감나무에 생긴/ 톱날 자국에 잘려 나는 아득해졌다.// 아들이 내려와 살지 않으리라 내다보신/ 아버지를 읽고 감나무처럼 숨이 턱 막혔다.” 90을 바라보는 아버지가 어느 날 문득 감나무에 더는 오르지 못하겠다고 감나무 밑동에 돌려가며 톱질을 했다. 나무가 더..

행불리영 (行不履影)

[정민의 世說新語] [625] 행불리영 (行不履影)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1.06.03 03:00 대학 시절 한 동기생의 말투나 기억은 자꾸 희미해지는데, 그가 방정하게 큰절을 올리던 모습은 새록새록 잊히지 않는다. 어쩌면 절을 저렇게 반듯하게 잘할까? 고향이 대전인 그 친구의 절로 인해 대전 사람들은 예의가 반듯하다는 인상이 내게 심어졌을 정도다. 그 뒤 어디서건 큰절을 올릴 때마다 그가 절 올리던 모습을 의식했던 것 같다. 최원오 신부가 번역한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334~397)의 ‘성직자의 의무'를 읽다가 다음 대목에서 이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동작과 몸짓과 걸음걸이에서도 염치를 차려야 합니다. 정신 상태는 몸의 자세에서 식별됩니다. 몸동작은 영혼의 소리입니다.” ..

빈환주인 (頻喚主人)

[정민의 世說新語] [624] 빈환주인 (頻喚主人)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1.05.27 03:00 이종수 교수가 번역해 출간한 월봉(月峯) 책헌(策憲·1623~?) 스님의 ‘월봉집(月峯集)’을 읽는데, 주인공(主人公)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주인공은 원래 불가에서 자신의 마음을 일컫는 말이다. 내가 내 몸의 주인공이 못 되면, 육체의 욕망에 끌려다니는 허깨비 인생이 되고 만다. 사람은 마음 간수를 잘해야 한다. ‘응 판사에게 보임(示膺判事)’은 이렇다. “스님께서 불법에 투철하지 못하다면, 정좌하여 자주자주 주인공을 부르시오. 면목이 분명하여 해와 달과 같아져야, 육문(六門)이 늘 드러나 몸 떠나지 않으리니(尊師若未透玄津, 靜坐頻頻喚主人. 面目分明如日月, 六門常現不離身).” 시의 뜻은 이..

녹동백이 (綠瞳白耳)

[정민의 世說新語] [623] 녹동백이 (綠瞳白耳)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1.05.20 03:00 청나라 화가 나빙이 그린 박제가 초상화. 원본은 추사 김정희의‘세한도’를 소장했던 일본 후지즈카 교수가 가지고 있다가 일제 말기 도쿄 공습 때 소실됐고, 사진만 남았다. 박제가(朴齊家·1750~1805)의 눈동자는 초록빛을 띠었던 모양이다. ‘소전(小傳)’에서 그는 자신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 사람됨은 물소 이마에 칼 눈썹, 초록 눈동자에 흰 귀를 지녔다. 고고한 사람만 가려서 더욱 친하였고, 부귀한 자를 보면 더욱 멀리하였다. 그래서 세상과 합치됨이 적었고 늘 가난하였다.(其爲人也, 犀額刀眉, 綠瞳而白耳. 擇孤高而愈親, 望繁華而愈疎. 故寡合而常貧.)” 넓은 이마에 날카로운 눈썹은 시원스럽..

다창파수 (茶槍破愁)

[정민의 世說新語] [622] 다창파수 (茶槍破愁)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1.05.13 03:00 | 수정 2021.05.13 03:00 지난 주말 ‘한국의 다서’ 작업을 나와 함께 한 유동훈 선생이 연구실에 와서, 갓 나온 하동 첫 우전차(雨前茶)를 우려내 준다. 해차 향에 입안이 온통 환하다. 이 맛은 표현이 참 어렵다. 비릿한 듯 상큼한 생기가 식도를 따라 도미노 넘어가듯 퍼진다. 돌돌 말린 첫 잎은 생김새가 뾰족한 창과 같다 해서 다창(茶槍)이다. 여기에 두 번째 잎이 사르르 풀려 깃발처럼 내걸리면 그것이 일창일기(一槍一旗)다. 그 잎을 채취해 우전차를 만든다. 우전은 이렇게 창 끝에 깃발 하나 또는 둘을 달고 달려온다. 찬 겨울의 눈보라를 견디고, 자옥한 새벽 안개에 잠겨 차곡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