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정민의 세설신어 196

[517] 흉종극말 (凶終隙末)

[정민의 世說新語] [517] 흉종극말 (凶終隙末)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9.05.01 03:15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초한(楚漢)이 경쟁할 당시 장이(張耳)와 진여(陳餘)는 대량(大梁)의 명사(名士)로 명망이 높았다. 처음에 두 사람은 부자(父子)처럼 다정하게 지냈다. 여러 역경을 함께 겪으면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나중에 권력을 다투게 되자 경쟁 관계로 돌아섰다. 끝내는 장이가 지수(泜水)가에서 진여의 목을 베기에 이르렀다. 흉종(凶終), 그 시작은 참 좋았는데 마지막은 흉하게 끝이 났다. 전한(前漢) 시절 소육(蕭育)과 주박(朱博)은 절친한 벗이었다. 처음에 주박은 두릉정장(杜陵亭長)이란 낮은 벼슬에 있었다. 소육이 그를 적극 추천해서 차츰 승진해 구경(九卿) 지..

[516] 모란공작 (牡丹孔雀)

[정민의 世說新語] [516] 모란공작 (牡丹孔雀)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9.04.24 03:14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유득공(柳得恭·1748~1807)의 ‘이십일도회고시(二十一都懷古詩)’에서 고려의 개성을 읊은 9수 중 제5수는 이렇다. “고려 때 재상이 살았던 집 가리키니, 황폐하다 비바람에 흙담마저 기울었네. 모란과 공작은 모두 다 스러지고, 노랑나비 쌍쌍이 장다리꽃 위를 난다.(指點前朝宰相家, 廢園風雨土墻斜. 牡丹孔雀凋零盡, 黃蝶雙雙飛菜花.)” 예전 고려 때 재상이 살던 집은 흙담마저 기울어 금세 무너져 내릴 판이다. 옛날 권력에 취해 거리낄 것 없던 시절에는 모란이 활짝 핀 정원에 공작새가 놀았을 것이다. 지금은 누군가 빈터에 일군 채마밭에 노랑나비만 난다. 고려 신종(神宗..

[515] 울진 성류굴에서 나온 신라 글자 (窟神受法)

[정민의 世說新語] [515] 울진 성류굴에서 나온 신라 글자 (窟神受法)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9.04.17 03:14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지난 11일 경북 울진 성류굴(聖留窟)에서 신라 때 각석(刻石) 명문 30여개를 발견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그중 ‘정원 14년(798) 무인년 8월 25일에 승려 범렴이 다녀가다(貞元十四年, 戊寅八月卄五日, 梵廉行)’라는 명문은 1222년 전인 신라 원성왕 14년 때 것이다. 그 외 화랑 임랑(林郞)과 공랑(共郞)의 이름, 병부사(兵府史)라는 관직명, 장천(長天) 등의 지명도 나왔다 한다. 성류굴 기록은 이미 고려 때 이곡(李穀)이 쓴 '동유기(東遊記·1349)'에 나온다. 이에 따르면 성류굴 앞엔 성류사가 있었고, 굴은 어둡고 깊어 절의 승..

[514] 말이 참 무섭다 (可畏者言)

[정민의 世說新語] [514] 말이 참 무섭다 (可畏者言)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9.04.10 03:14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1779년 5월 나는 새를 떨어뜨린다던 홍국영(洪國榮)의 누이 원빈(元嬪)이 갑작스레 세상을 떴다. 송덕상(宋德相)이 상소를 올렸는데, 서두에 ‘원빈께서 훙서(薨逝)하시니 종묘사직이 의탁할 곳을 잃었다’고 썼다. 당시 정쟁에 밀려 숨죽이며 지내던 채제공이 낮잠을 자다가 집사가 가져다준 그 글을 보았다. 채제공이 서두를 읽다 말고 놀라 말했다. "해괴하다. 원빈이 죽었는데 어째서 종묘사직이 의탁할 곳을 잃는단 말인가? 400년 종묘사직이 과연 일개 후궁에게 힘입어 의탁했더란 말인가? 게다가 후궁이 죽었는데 어째서 서거(逝去)라 하지 않고 훙서(薨逝)라 하는가?..

[513] 앙급지어 (殃及池魚)

[정민의 世說新語] [513] 앙급지어 (殃及池魚)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9.04.03 03:15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초나라가 원숭이를 잃자 화가 숲 나무에 이르렀고, 성 북쪽에 불이 나니 재앙이 연못 물고기에 미쳤다.(楚國亡猿, 禍延林木. 城北失火, 殃及池魚.)”는 말이 있다. 명나라 고염무(顧炎武)가 쓴 ‘일지록(日知錄)’에 보인다. 고사가 있다. 초나라 임금이 애지중지 아끼던 원숭이가 있었다. 어느 날 요 녀석이 묶인 줄을 풀고 달아났다. 임금은 원숭이를 잡아 오라며 펄펄 뛰었다. 숲으로 달아난 원숭이는 나무 위를 뛰며 도망 다녀 잡을 방법이 없었다. 임금의 노여움은 더 커졌다. 하는 수 없어 이들은 원숭이가 달아나지 못하도록 온 숲을 에워싼 뒤 나무를 베기 시작했다. 결국..

[512] 수상포덕 (守常抱德)

[정민의 世說新語] [512] 수상포덕 (守常抱德)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9.03.28 03:15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명나라 진무인(陳懋仁)의 ‘수자전(壽者傳)’을 읽었다. 역대 제왕과 국로(國老), 그리고 일반 백성 중 장수자의 전기를 모은 책이다. 두공(竇公)은 위나라 문후(文侯) 때의 악사였다. 나이가 280세였다. 문후가 두공을 불러 물었다. "무엇을 먹었길래 이렇게 오래 살았는가?" 그가 대답했다. "신은 나이 열세 살에 눈이 멀었습니다. 부모님께서 이를 슬피 여겨 제게 금(琴)을 타도록 하셨지요. 날마다 연습하여 익히는 것을 일상으로 삼았습니다. 신은 따로 먹은 것이 없어 달리 말씀드릴 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의 장수 비결은 장님이 된 뒤 마음을 온전히 쏟아 평생 악기..

[511] 구구소한 (九九消寒)

[정민의 世說新語] [511] 구구소한 (九九消寒)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9.03.21 03:15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강위(姜瑋·1820~1884)가 벗들과 저녁 모임을 가졌다. 밖에는 눈보라가 몰아치고 탁자 위 벼루는 꽁꽁 얼었다. 12명의 벗들이 차례로 도착하여 흰옷 위에 쌓인 눈을 털며 앉았다. 강위는 이날 함께 지은 시를 묶어 ‘구구소한첩(九九消寒帖)’이라 하였다. 강위가 지은 긴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뜬 인생 어디에다 몸을 부칠까? 세계란 허공 중의 한 떨기 꽃과 같네. 흘러가는 세월을 뉘 능히 잡나. 해와 달 두 탄환이 쟁반 위를 굴러간다.(浮生安所寄, 世界一華空中現. 流年誰能駐, 日月雙丸盤上轉.)" 환화(幻花)와 같은 세계 속에서 뜬 인생이 살아간다. 그나마 잠깐 ..

[510] 약이불로 (略而不露)

[정민의 世說新語] [510] 약이불로 (略而不露)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9.03.14 03:15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이덕무가 집안 조카 이광석(李光錫)의 글을 받았다. 제 글솜씨를 뽐내려고 한껏 기교를 부려 예닐곱 번을 되풀이해 읽어도 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덕무가 이광석에게 답장을 썼다. 간추리면 이렇다. "옛날 수양제(隋煬帝)가 큰 누각을 짓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게 꾸며 놓고, 그 건물의 이름을 미루(迷樓)라고 했다더군. 자네 글이 꼭 그 짝일세. 참 멋있기는 하네만 뜻을 알 수가 없네. 얘기 하나 더 해 줄까? 어떤 이가 왕희지의 필법을 배워 초서를 아주 잘 썼다네. 양식이 떨어져 아침을 굶은 채 친구에게 쌀을 구걸하는 편지를 보냈다지. 그런데 그 ..

[509] 적이능산 (積而能散)

[정민의 世說新語] [509] 적이능산 (積而能散)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9.03.07 03:15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예기(禮記) ‘곡례(曲禮)’ 편의 서두를 함께 읽는다. "공경하지 않음이 없고 생각에 잠긴 것처럼 단정하며 말이 차분하면 백성이 편안하다(毋不敬 儼若思 安定辭 安民哉)." 상대를 존중하고 행동거지가 가볍지 않으며 말씨가 편안하고 안정되니 지도자에 대해 백성의 신뢰가 쌓인다는 말이다. "오만함을 자라게 해서는 안 되고 욕심을 마음껏 부려서는 안 된다. 뜻은 한껏 채우려 들지 말고 즐거움은 끝까지 가서는 안 된다(敖不可長 欲不可從. 志不可滿 樂不可極)." 뭐든 절제해야 아름답다. "어진 사람은 가까워도 공경하고 두려워해도 상대를 아낀다. 아끼더라도 나쁜 점을 알고 미워..

[508] 비서십원 (悲誓十願)

[정민의 世說新語] [508] 비서십원 (悲誓十願)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9.02.28 03:15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이번에 소개하는 글은 ‘초연거사육법도(超然居士六法圖)’ 중 ‘비서십원(悲誓十願)’이다. 꼭 그렇게 되었으면 하고 다짐한 열 가지 바람이다. 첫째, 모든 사람이 편하고 즐거웠으면 좋겠다(願一切人安樂). 나만 좋고 나만 잘 살면 무슨 재미인가? 다 같이 기쁘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둘째, 모든 사람이 고통에서 벗어났으면 한다(願一切人離苦). 자잘한 근심과 큰 괴로움에서 벗어나 웃으며 함께 한세상을 건너갔으면 싶다. 셋째, 행하기 어려운 것을 능히 행할 수 있기를 원한다(願難行能行). 진실을 위해 낸 용기가 짓밟히지 않는 세상을 꿈꾼다. 넷째, 버리기 어려운 것을 능히 버..

[507] 자경팔막 (自警八莫)

[정민의 世說新語] [507] 자경팔막 (自警八莫)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9.02.21 03:15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앞 글에 이어 선유문(善誘文)의 초연거사육법도(超然居士六法圖) 중 자경팔막(自警八莫)을 소개하겠다. 스스로 경계로 삼아야 할 여덟 가지 해서는 안 될 일의 목록이다. 첫째, 심념막망상(心念莫妄想)이다. 마음의 생각은 망상을 하지 말라. 염(念)은 콕 박혀 안 떠나는 생각이고 상(想)은 퍼뜩 떠오른 생각이다. 망상은 망령된 생각, 즉 헛생각이나 개꿈이다. 사람은 쓸데없는 상념에 빠져서는 안 된다. 상념은 마음에 찌꺼기와 얼룩을 남긴다. 사려(思慮)를 깊게 해서 마음을 반짝반짝 빛나게 닦자. 둘째, 광음막한과(光陰莫閑過)이다. 세월은 일없이 보내지 말라. 아까운 세월을..

[505] 염취박향 (廉取薄享)

[정민의 世說新語] [505] 염취박향 (廉取薄享)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9.02.07 03:15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광성부원군(光城府院君) 김만기(金萬基, 1633~1687)의 집안은 부귀가 대단하고 자손이 많았다. 입춘첩(立春帖)에 ‘만사여의(萬事如意)’란 글이 나붙었다. 김진규(金鎭圭, 1658~1716)가 이를 보고 말했다. “이 입춘첩을 쓴 것이 누구냐? 사람이 세상에 나서 한두 가지도 마음먹은 대로 하기가 어려운데, 모든 일을 마음먹은 대로 이루게 해달라니, 조물주가 꺼릴 일이 아니겠는가? 우리 집안이 장차 쇠망하겠구나!” 얼마 후 수난을 당하고 유배를 가서 그 말대로 되었다. 호안국(胡安國)이 말했다. "집안에서 가장 해서는 안 될 것이 일마다 뜻대로 되는 것이다. 일..

[504] 처세십당 (處世十當)

[정민의 世說新語] [504] 처세십당 (處世十當)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9.01.31 03:15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초연거사육법도(超然居士六法圖)’에 ‘처세십당(處世十當)’, 즉 처세에 있어 마땅히 갖춰야 할 열 가지 태도를 제시했다. 첫째는 습기당제(習氣當除)다. 습기는 오래도록 되풀이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젖어든 좋지 않은 버릇이다. 무의식중에 되풀이하는 좋지 않은 버릇은 끊어 제거해야 한다. 둘째는 심행당식(心行當息)이다. 마음과 행실은 차분히 내려놓아야 한다. 바쁘게 열심히 살더라도 가라앉혀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는 제악당단(諸惡當斷)이다. 나쁜 생각, 악한 행동, 못된 습벽은 단호하게 결단해서 딱 끊어야 한다. 넷째는 중선당행(衆善當行)이다. 좋은..

[503] 약교지도 (約交之道)

[정민의 世說新語] [503] 약교지도 (約交之道)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9.01.24 03:15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유비의 처소에 손님이 왔다. 거침없는 담론이 시원시원해서 유비가 넋을 놓고 들었다. 제갈량이 불쑥 들어서자, 손님은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일어섰다. 유비가 제갈량에게 객에 대한 칭찬을 잔뜩 늘어놓았다. 제갈량이 대답했다. “제가 손님을 잠깐 살펴보니, 낯빛이 흔들리고 마음에 두려워하는 기색이 있습니다. 시선을 내리깔고 곁눈질도 자주 하더군요. 삿된 마음을 안으로 감추고는 있지만 간사한 형상이 이미 밖으로 새어 나옵니다. 틀림없이 조조가 보낸 자객일 것입니다.” 정신이 번쩍 든 유비가 급히 사람을 보내 그를 잡아오게 했다. 그는 벌써 담장을 뛰어넘어 달아난 뒤였다. ..

[502] 선담후농 (先淡後濃)

[정민의 世說新語] [502] 선담후농 (先淡後濃)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9.01.17 03:15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명나라 당지계(唐志契)가 ‘회사미언(繪事微言)’의 ‘적묵(積墨)’ 조에서 먹 쓰는 법을 이렇게 설명했다. "화가는 먹물을 포갤 줄 알아야 한다. 먹물을 진하게도 묽게도 쓴다. 어떤 경우는 처음엔 묽게 쓰고 뒤로 가면서 진하게 한다(先淡後濃). 어떤 때는 먼저 진하게 쓰고 나서 나중에 묽게 쓴다. 비단이나 종이 또는 부채에 그림을 그릴 때 먹색은 옅은 것에서 진한 것으로 들어가야 한다[由淺入濃]. 두세 차례 붓을 써서 먹물을 쌓아 나무와 바위를 그려야 좋은 그림이 된다. 단번에 완성한 것은 마르고 팍팍하고 얕고 엷다. 송나라와 원나라 사람의 화법은 모두 먹물을 쌓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