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신수진 마음으로 사진 읽기 53

[8] 가벼운 예술, 무거운 삶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8] 가벼운 예술, 무거운 삶 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입력 2022.01.07 03:00 황규태, contact, 2005년 인생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거다. 만약 삶의 시계가 멈추는 때를 미리 알고 있다면 결말부터 보게 된 공포 영화처럼 뭔가 바람 빠진 느낌이 들 것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삶을 역동적으로 만드는 중요한 동력이므로, 불안이 완전히 사라진다면 하루하루는 각성 없이 느슨하고 지루해질 것이다. 나에게 내일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기 때문에 오늘의 나는 깨어 있어야 하고 또 깨어 있을 수 있다. 황규태(84)는 디지털 미디어를 작품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소셜네트워킹서비스에서도 활발하게 존재를 드러내는 작가이다. 작가로서 자신..

[7] 세상을 고귀하게 바라보는 시선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7] 세상을 고귀하게 바라보는 시선 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입력 2021.12.31 03:00 조덕현, 유크로니아 2111-2, 2021. 지금 여기의 소중함을 아는 것이 행복의 기본이라고 한다. 한 해를 무사히 보냈으니 배운 대로 스스로를 다독이며 자족(自足)을 다짐한다. 그럼에도 한편으론 슬그머니 미래에 대한 기대가 올라온다. 솔직히 새해가 올해보다 나아졌으면 좋겠다. 친구도 편하게 만나고 싶고 마스크도 벗고 싶다. 신년 운세를 믿거나 말거나,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오늘보다 내일이 나아질 거라는 위로다. 아무리 정신 승리를 하고 싶어도 현실은 고단을 면하기 어려우니 이상향(理想鄕)이 달리 생겨난 것이 아니다. 조덕현의 작품 속 시간은 가정법의 역사를 ..

[6] 황금빛 달콤함에 안녕을 고함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6] 황금빛 달콤함에 안녕을 고함 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입력 2021.12.24 03:00 구성연, sugar11, 2015 한 해를 마무리하는 때다. 길거리 크리스마스 캐럴은 언제부턴가 사라졌고 팬데믹의 두 번째 연말은 뉴노멀을 만들고 있다. 살아가는 게 달콤하기만 하다면 지금보다 더 신이 날까? 한 번도 그래 본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너무 달면 물리기 마련이다. 이제 우리는 익숙한 듯 낯선 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보듬어 안고 과거를 잘 떠나보내야 한다. 구성연의 ‘설탕’(2014~2017) 연작은 말 그대로 설탕으로 만든 오브제들을 촬영한 것이다. 작가가 직접 설탕을 녹여서 화려한 그릇 형태로 물건들을 만들고 하나하나 쌓아 가면서 세트를 제작..

[5] 나만 없어, 고양이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5] 나만 없어, 고양이 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입력 2021.12.10 03:00 권오상, 요다, C-print, mixed media, 2016 만물의 영장이라고는 하지만 인간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한 건 아주 최근이다. 유발 하라리의 말처럼 현생 인류는 굶어 죽기보다 비만으로 죽는 게 더 두려운 경험을 처음 하는 중이다. 먹을 걱정을 면했다고 걱정이 사라졌을 리 없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을 단계별로 정리해온 심리학자들은 섭생과 같은 기본 욕구 다음엔 친밀감이라는 숙제가 온다고 했다.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주요 과제가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친밀감에 기초한 관계, 즉 가족이나 연인, 친구는 생존에 가장 기본적인 심리적 안전망이다. 요즘처럼 이불 밖이..

[4] 초록이 좋아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읽기] [4] 초록이 좋아 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입력 2021.12.03 03:00 윤정미, 성연이와 그녀의 초록색 물건들, 2008 살다 보면 법보다 가깝고도 강력한 규제력을 갖는 규칙들을 쉽게 마주하게 된다. 하필 딱 내 앞에 앉은 상사의 ‘부먹’ 탕수육 취향처럼 일시적으로 동조 가능한 것은 그래도 참을 만하다. 여자니까 화장해야 한다거나, 남자니까 운동을 잘해야 한다는 식의 편견에 가득 찬 잣대는 절대 강요하거나 강요받고 싶지 않다. 상식이나 관습을 따르는 것이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의 예의라면, 강요된 규칙은 사회가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이다. 우리는 감수성과 취향이 한 사람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성별⋅연령⋅인종 등 타고난 요인은 누군가를 설..

[3] 아버지의 주름진 손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읽기] [3] 아버지의 주름진 손 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입력 2021.11.26 03:00 구본창, 숨 05, gelatin silver print, 1995. 손은 얼굴만큼 많은 걸 보여준다. 손에는 성별이나 연령은 물론이고 직업이나 취향, 성격까지도 읽을 수 있는 단서가 있다. 물론 다 맞출 수 있는 건 아니니 짐작일 뿐이지만, 손에는 그 사람의 시간이 쌓인다. 그래서 어떤 손은 얼굴보다 더 깊은 표정을 드러낸다. 내 손은 아버지를 닮았다. 어릴 적 아버지는 자주 나와 손뼉 놀이를 하셨는데 그러다 한 번씩 얼마나 자랐나 보자 시며 손바닥을 나란히 대어보곤 하셨다. 그때마다 나는 손끝에 힘을 줘서 조금이라도 더 커진 것처럼 보이고 싶어했고, 손마디와 손톱 모양이..

[2] 디지털로 이어붙인 풍경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읽기] [2] 디지털로 이어붙인 풍경 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입력 2021.11.19 03:00 원성원, 일곱 살, 오줌싸개의 빨래 어린 시절부터 반복해서 꾸는 꿈이 있었다. 길몽도 흉몽도 아니고 그저 끝나지 않는 비슷한 꿈을 한동안 자주 되풀이해서 꾸었다. 만약 꿈의 기능을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심리적 과업에 대한 극복의 시도’라고 한다면, 그 꿈은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끌어안고 지내온 시간의 흔적이었을 것이다. 오래된 문제를 극복하려면 대가가 필요하다. 원성원 작가는 고행에 가까운 연단의 시간을 작품에 기울여 스스로를 끌어안는다. 사진 형태로 완성된 이 작품은 엄밀히 말하자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그림이다. 사진 수천 장을 퍼즐 조각처럼 맞춰서 하나의 작품을 ..

[1] 69층 현장의 고달픔도 잊은 평화로운 휴식

[신수진의 사진 읽기] [1] 69층 현장의 고달픔도 잊은 평화로운 휴식 신수진 사진심리학자 입력 2013.05.02 23:39 | 수정 2013.07.04 17:35 미국 뉴욕의 록펠러 센터 건설 현장을 찍은 이 사진은 무려 80년 전 근로자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대공황 시기에 미국 내에서 실행된 유일한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였던 이곳에서 수많은 근로자가 일자리를 얻었다. 놀라운 것은 69층 높이 공사장에서 휴식을 취하는 그들의 모습이 기이하리만치 자연스럽고 여유롭다는 점이다. 아찔한 마천루는 그들 삶의 터전이 되었다. 땅을 일구는 농부나 바다에 뛰어드는 해녀처럼 그들은 하늘을 올랐을 것이다. 사진에 담긴 그곳에서의 점심 식사는 일상적이고 평화롭다. 하지만 이러한 휴식은 잠시일 뿐이다. 이와 같은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