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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진 마음으로 사진 읽기

[15] 서로 맞서면서 기대는 우리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1. 17. 11:32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15] 서로 맞서면서 기대는 우리

입력 2022.03.11 03:00
 
 
 
 
 
 
                                                                       천경우, Versus #3, 2007, 66×90㎝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다.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집합적 인류의 능력치를 한참 밑돈다. 여럿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혼자서는 꿈도 못 꿀 경우가 다반사다. 인간의 가장 큰 경쟁력은 협력을 통한 지성에서 나온다. 협력은 사회적으로 구축된 체계 안에서 생명을 지킬 뿐 아니라 개개인의 심리적 안녕,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는 자아 실현에 이르기까지도 필수적인 덕목이다.

 

천경우 작가는 독일 브레멘에서 거주하던 시절에 두 사람이 끌어안은 모습의 ‘버서스(Versus)’ 연작을 만들었다. 지역에서 자원한 스무 살 전후 젊은이들은 작품 속에서 사람 인(人) 자 형상으로 서로 기대었다. 관계와 교감에 관한 새로운 경험을 실험하고자 한 작가의 요청은 간단했다. 마주 앉아 편히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는 자세를 찾고 자신의 나이를 분(分)으로 환산한 시간만큼 견딜 것. 눈을 뜨거나 말을 할 수 있지만 크게 자세를 바꾸지 말고 자신의 감각에 집중할 것. 그 시간을 온전히 사진에 담은 이 작품은 작가와 참가자가 협력해서 만든 낯선 경험의 기록이다.

 

촬영은 컬러 네거티브 필름을 이용해서 20분 정도의 긴 노출로 이루어졌다. 다소 비현실적인 색감과 흐리게 번져나간 윤곽선은 사진의 기술적 특성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카메라는 두 사람을 정면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고정되었고, 중립적이고 단순한 배경 앞에서 사진 한 장이 완성되는 동안 작가는 아무런 개입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얼굴을 맞대고 어깨를 감싸 안음으로써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천둥 같은 심장박동을 듣고 끈적한 체취를 맡았을 것이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길다면 한없이 긴 시간 그들은 안정적으로 견딜 수 있는 자세를 유지하고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타인과 몸을 맞대는 행위의 지속성과 강제성은 참가자들에게 고통과 희열을 동반한 통찰과 성취를 안겨주었다.

 

우리는 살아있기에 대립하고, 함께 있기에 의지한다. 선거가 끝났다. 캠프를 차리고 진영을 다투며 전쟁처럼 싸우던 일을 뒤로할 시간이다. 이제 공존을 위한 경험과 지혜를 함께 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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