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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진 마음으로 사진 읽기

[10] 밥상 위에 수저 꽃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2. 12. 13. 23:04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10] 밥상 위에 수저 꽃

입력 2022.01.2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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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갑철, ‘충돌과 반동’ 연작 중, 안동, 1996

 

이제 곧 설이다. 확진자 수를 매일 뉴스로 접해 온 지가 만 2년을 넘어서고 있다. 이번 설에도 고향 방문과 모임을 자제하라는 당부가 메아리처럼 울린다. 몇 번의 충격적인 고비가 있었고 어찌어찌 우리는 살아남았다. 두렵고 가슴 아픈 시간을 쓸어안고 코로나는 생활의 일부가 되어 간다. 산 자들의 시간은 변함없이 흐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생각만으로 온갖 희생과 인내를 받아들이기란 여전히 힘겹다. 모두에게 위로가 필요한 때이다.

 

이갑철의 사진에선 혼이 보인다. 본디 정신이나 혼은 눈에 보이지 않는데, 그는 애초에 혼을 향해 셔터를 눌러서 그것을 보이게 만들었다. ‘충돌과 반동(1990~2002)’ 연작은 다큐멘터리 사진가 이갑철의 정체성을 선명하게 구축하고, 한국 현대사진 분야에서 주관적 다큐멘터리가 어떻게 뿌리내렸는지를 보여주는 교과서다. 작가는 한국적인 사고와 정서의 특징을 ‘삶과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서 찾았다. 오랜 시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찍은 장면들은 장례식, 제사, 다비식, 굿과 같은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 이벤트들이 아니었다. 그가 좇은 것은 사건이나 상황이 아니라 ‘부딪혀서 분출하는 에너지’의 면모와 양상이다.

 

밥상 위에 수저가 가득하다. 거리 두기에 익숙해진 나의 눈에 밥상을 둘러싼 수저들이 유난히 다닥다닥 줄을 이어 꽃처럼 피었다. 아직 음식이 올려지지 않은 상 위로 말간 빛이 드리웠다. 종갓집 제삿날이니 북적북적 분주하게 많은 사람이 모여들고, 밤이 내리면 선조 어르신들의 혼도 들르셨을 게다. 산 자가 죽은 자를 위한 상을 올리고 다시 죽은 자가 내린 밥상을 받는 날, 이 사진은 전통 제례의 한 축을 그렇게 시각화하였다.

이갑철의 사진은 사라져가는 것들을 기록했고, 기억하게 만들었다. 마치 과학자가 연구 개발 과제를 수행하듯이 그는 사진으로 시대의 정신을 발견하고 탐구하고 집대성하였다. 1990년대에 대한 기억이 사람마다 다르듯이,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오늘에 대해 우리는 서로 다른 것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아무리 힘겨워도 오늘을 잘 살아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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