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7] 세상을 고귀하게 바라보는 시선
지금 여기의 소중함을 아는 것이 행복의 기본이라고 한다. 한 해를 무사히 보냈으니 배운 대로 스스로를 다독이며 자족(自足)을 다짐한다. 그럼에도 한편으론 슬그머니 미래에 대한 기대가 올라온다. 솔직히 새해가 올해보다 나아졌으면 좋겠다. 친구도 편하게 만나고 싶고 마스크도 벗고 싶다. 신년 운세를 믿거나 말거나,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오늘보다 내일이 나아질 거라는 위로다. 아무리 정신 승리를 하고 싶어도 현실은 고단을 면하기 어려우니 이상향(理想鄕)이 달리 생겨난 것이 아니다.
조덕현의 작품 속 시간은 가정법의 역사를 보여준다. 작가가 작품 제목으로 선택한 ‘유크로니아(Uchronia)’는 어디에도 없는 장소인 유토피아(Utopia)를 공간이 아닌 시간에 적용한 것이다. 어느 시간에도 없는 이상시(理想時)의 개념은 소설이나 영화, 게임 등에서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다. ‘만약에 조선 왕조가 지금까지 이어졌다면’ ‘6·25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과 같은 특정 시기에 대한 허구적 접근은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돌아보게 한다.
사진을 들여다보자. 숲으로 둘러싸인 반듯한 건물, 양쪽에 당당하게 높이 솟은 철탑, 너른 앞마당 중앙에 근사하게 관리된 정원수, 여기까지는 마치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형태는 완벽하게 좌우 대칭이고, 색은 반전되었다. 굳이 말하자면 작품의 왼쪽 절반이 원본에 가깝다. 일부러 지우지 않고 남겨둔 단서처럼 철탑에 부착된 교회 간판은 이 작품이 온전히 사실적인 사진에서 시작되었음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전국 구석구석을 걸어 다니며 작가는 평범하고 볼품없는 장면들 속에서 빛나는 아름다움을 찾아냈다. 감수성이 풍부하고 영민한 시골 소년을 당당한 예술가로 성장시킨 상상력은 사실 위에 구축된 허구를 통해 초라하게 뭉그러진 일상을 고귀하고 광대하게 바라보도록 제안한다. 이런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만 있다면 힘겨운 올 한 해도 감사히 마무리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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