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읽기]
[3] 아버지의 주름진 손
손은 얼굴만큼 많은 걸 보여준다. 손에는 성별이나 연령은 물론이고 직업이나 취향, 성격까지도 읽을 수 있는 단서가 있다. 물론 다 맞출 수 있는 건 아니니 짐작일 뿐이지만, 손에는 그 사람의 시간이 쌓인다. 그래서 어떤 손은 얼굴보다 더 깊은 표정을 드러낸다.
내 손은 아버지를 닮았다. 어릴 적 아버지는 자주 나와 손뼉 놀이를 하셨는데 그러다 한 번씩 얼마나 자랐나 보자 시며 손바닥을 나란히 대어보곤 하셨다. 그때마다 나는 손끝에 힘을 줘서 조금이라도 더 커진 것처럼 보이고 싶어했고, 손마디와 손톱 모양이 나와 똑같이 생긴 아버지의 손이 부럽고 신기했다. 지나고 보니 그때 나는 아버지 딸이라서 참 좋았다.
가까운 사람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생에 대해 다른 조망을 갖게 한다. 구본창 작가는 임종을 앞 둔 아버지의 곁을 지키며 이 사진을 찍었다. 빛을 받으며 아래로 드리운 손은 가지런히 점잖다. 움직임은 멈추었고 그의 시간도 곧 멈출 것이다. 마른 손등 위로 주름진 시간만이 머무른다. 이제 온전한 어른이 되어 아버지의 마지막을 보살피는 아들은 그의 손에서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질서를 마주했을 것이다. 강한 모습만 보여야 했던 아버지의 생이 소멸되는 시간에 대한 깊은 애도가 프레임에 담겼다. 그렇게 작가는 아버지를 보내 드렸고 남은 사진은 아버지와 나의 시간을 기억하게 한다.
구본창이 1995년에 발표한 ‘숨Breath’ 연작은 특유의 감수성으로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연민을 담았다. 가지 않는 시계, 포르말린에 잠긴 새, 말라 뒤엉킨 나뭇가지, 그리고 작가 아버지의 마지막 호흡이 찍힌 사진들은 반복될 수 없는 시간의 한순간을 고정시켜서 프레임 안에 영원히 살아있게 만들었다.
사진으로 시간을 되돌릴 순 없어도 누군가의 시간을 기릴 순 있다. 지나간 것들은 슬프고도 아름답다. 언젠가 이 모든 시간이 그럴 것이고, 지금의 이 가을이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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