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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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진 마음으로 사진 읽기 53

[38] 정체를 알 수 없는 움직임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38] 정체를 알 수 없는 움직임 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입력 2022.10.14. 03:00 오연진, Over All #18, 2022. 움직임을 감지하는 능력은 생존에 매우 중요하다. 눈으로 수집하는 정보 중에서 형태나 색과 같이 평면적인 단서와는 달리, 움직임은 거리감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망막에서 상의 크기가 커지지 않는 경우라면 대상은 나를 향해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크게 주목할 필요가 없다. 거리를 좁히지 않는 움직임은 나의 안위와 무관하기 때문이다. 다가오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움직임은 관찰자를 위협하지 않으므로 순수한 유희성이 보장된다. 동물원에서 맹수를 구경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그런데 움직임이 대상과 나의 거리를 좁히는 방..

[37] 노동 찬가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37] 노동 찬가 신수진 한국외대 초빙교수 입력 2022.10.07. 03:00업데이트 2022.10.07. 17:53 이형록, 거리의 구두상, 서울 남대문시장, 1956. /서울시 문화본부 박물관과 제공 1970년대에 건강하고 상식적인 중산층 주부였던 나의 어머니는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는 직업이 최고”라고 하셨다. 규칙적인 노동과 예측 가능한 경제적 보상이 삶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가치관은 이제 유효성을 잃어가는 듯 하다. 자본주의 고도화와 기술 발전이 노동의 양상을 급격히 바꾸었다. 이에 발을 맞춰서 경제적 자유를 확보하면 언제라도 은퇴하고 싶은 ‘파이어(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족’, 즉 일하지 않는 삶..

[36] 기술과 예술 사이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36] 기술과 예술 사이 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입력 2022.09.30. 03:00 SHIN X DALL.E, 인간과 AI의 합작으로 생성된 사진. 인공지능을 활용한 기술이 이미지를 생성하는 분야에서도 화제를 만들고 있다. ‘그림을 그린다’거나 ‘사진을 찍는다’는 표현은 한 장의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설명하는 데에 충분치 않게 되었다. 그리거나 찍는 행위는 작자의 숙련도나 결과물의 완성도와 무관하게, 없는 것을 만들어낸다는 측면에서 창작의 영역에 있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만든 이미지를 전통적인 의미의 창작과 동일하게 취급하기에 아직은 심리적인 저항이 있다. 이 저항감이 얼마나 빨리 사라질지는 이 기술을 사용하는 인간의 마음에 달려 있다. 모든 기..

[35] 전 부치기 좋아하는 사람?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35] 전 부치기 좋아하는 사람? 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입력 2022.09.09. 03:00 이선민 '이순자의 집 2-제사풍경' 추석을 앞두고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가 차례상 표준안을 발표했다. 기본 차림에 대한 제안을 새로이 한 것인데, 핵심은 ‘간소화’였다. “너무 많은 음식을 차리지 않아도 된다” “기름에 튀기거나 지진 음식은 차례상에 꼭 올리지 않아도 된다” 등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니 무언가를 강제하는 말은 하나도 없다. 특히 ‘큰 예법은 간략해야 한다(大禮必簡)’는 선조들의 가르침을 인용해서 유교적 수칙이 부담스러웠던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말은 귀에 쏙 들어왔다. 이 내용을 전하는 기사의 타이틀은 ‘추석 차례상에 전 안 부쳐도 됩니다…’로 뽑혔다..

[34] 당신의 두 눈에 불꽃이 일 때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34] 당신의 두 눈에 불꽃이 일 때 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입력 2022.09.02. 03:00 박경일, Brianna, 2018 내가 좋아하는 얼굴이 있다. 일을 열심히 하느라 심각한 얼굴 말고, 무언가에 몰두해 있는데 신나는 얼굴, 눈빛에서 호기심이 쏟아지고 볼 안쪽에서 빛이 올라오는 것 같은 얼굴이 나는 좋다. 처음 자신이 원하는 일을 시작한 사람들은 자주 이런 얼굴이 된다. 열렬히 원하던 기회를 얻었기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보다 도전에 대한 기대가 더 클 때, 몰입에의 반가움이 환희로 넘쳐나는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순간순간 들키기 마련이다. 문제는 초심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도전은 초심자의 행운으로 시작해서 가혹한 시험으로 끝을 맺는다고 했..

[33] 밤길을 더듬어 올라보니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33] 밤길을 더듬어 올라보니 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입력 2022.08.26. 03:00업데이트 2022.08.26. 07:04 박찬원, MC Mt.3, 2021. 사람에겐 밤눈과 낮눈이 있다. 안구로 빛이 들어오면 망막의 시세포가 발화하는데, 빛의 양이 충분한 주간과 상대적으로 어두운 야간에 주로 쓰이는 세포가 구분된다. 야간시(nocturnal vision)의 특징은 빛이 많지 않아도 대상을 파악할 수 있도록 최적화되어 있다는 거다. 어둠이 내리면 작은 명암 차이를 잘 구분해 내고 움직임이나 거리감처럼 꼭 필요한 기능도 최대한 잃지 않도록 밤눈이 작동한다. 낮눈에 비해 세밀하게 보거나 색을 구분하는 능력은 떨어져도 밤눈이 있어서 달빛 아래에서도 걸음..

[32] 빈 방에 하늘 들이기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32] 빈 방에 하늘 들이기 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입력 2022.08.19. 03:00 조현택, 55번 방, 광주시 광산구 덕림동 699-7, 2015 텅 빈 방에 혼자 있는 상상을 해본다. 지금 나를 둘러싸고 있는 가구도 사람도 사라지고 없는 어둡고 조용한 방이라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도통 떠오르지 않는다. 기능과 관계를 상실한 공간은 지속되기 어렵다. ‘비어 있는 곳’은 사라질 운명이거나 다른 기능이 부여되길 기다리는 갈림길에 놓인 상태다. 이 사진은 광주광역시와 함평군 경계 지역에 들어선 미래산업공단 자리에서 찍혔다. 공단이 들어서기 전까지 수백 년 동안 농민들이 살아온 땅에 찾아온 변화는 순식간에 몰아쳤다. 오래된 집들이 있었던 마을 전체가 비..

[31] 차이를 빚어내는 시선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31] 차이를 빚어내는 시선 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입력 2022.08.05. 03:00 노순택, 얄읏한 공 #BGD0301 대학 신입생 시절 심리학개론 첫 수업 시간에, 원로 교수님께서 몇 가지 질문을 하셨다. 내용은 전부 과학적으로 상관관계가 입증되지 않았으나 통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정형화된 생각에 관한 것이었다. 혈액형별 성격이나 성별에 따른 성향처럼 유형화하거나 일반화했을 때 오류를 범하기 쉬운 사례를 들어 ‘개인차(個人差)’가 인간에 대한 이해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강조하셨는데, 희한할 만큼 오래도록 선명한 기억으로 남았다.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남다르다. 창작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서라도 작가는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대상을 바라보..

[30] 모호한 아름다움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30] 모호한 아름다움 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입력 2022.07.29. 03:00 한성필 'Ground Cloud 052'(2015) 아름다움의 기준은 학습된다. 이는 인간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대상이나 이유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다. 청소년기엔 귀여운 이성에게 끌렸는데 장년기엔 다른 매력이 더 중요해질 수 있는 것처럼 경험치가 기준을 변화시킨다. 흥미로운 점은 이 경험치가 인류의 역사를 통해 축적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개인이 어떤 대상에 대해서 아름다운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데는 타고난 요소도 작용을 하게 된다. 아름다움에 대한 생래적 기준은 대체로 인간의 생존에 유리한 경우에 적용된다. 특정 인물이나 환경이 생존 가능성을 높인다고 판단하..

[29] ‘고래처럼 그렇게’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29] ‘고래처럼 그렇게’ 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입력 2022.07.22. 03:00 장남원, 혹등고래의 구애, 2015 대항해의 시대에 인류는 이동을 통해 지리적 발견을 이어가며 세계를 넓혔다. 근대 이후에도 탐험은 밀림이나 극지방에 대한 경험과 정보를 늘려주었고, 오늘날의 인류는 심해와 우주를 향한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지식의 세계가 커지면 객관적인 판단의 근거를 지니게 된다는 면에서 인류의 미래에 도움이 된다. 미지(未知)의 세계, 아직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탐구는 인식의 영역을 확장시켜서 인류를 더 큰 세상에서 살아가게 만든다. 우리는 여전히 알고자 하는 것을 완전히 알지 못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이는 도전을 이어가는 동력이기도 하지만 인간..

[28] 성곽이 있는 도시에서 살아남기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28] 성곽이 있는 도시에서 살아남기 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입력 2022.07.08. 03:00 오한솔, 창신동의 저녁, 2017, 휴가철이 다가온다. 휴가에 관한 연구들이 공통되게 보고하는 바에 따르면, 휴가가 주는 행복감은 휴가 중이나 휴가 후보다 휴가를 가기 전에 가장 크다고 한다. 휴가를 상상하면서 계획을 세우고 손꼽아 기다리는 시간을 떠올리면 언제라도 즐겁지만, 휴가지에서 몸과 마음을 쾌적하게 유지하고 일상으로 복귀해서도 충전의 효과를 느낄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아무래도 확신이 줄어든다. 일상생활 중에 휴가와 같은 시간을 짧고 반복적으로 계획할 수 있다면 어떨까. 취미보다는 조금 더 진지하게, 일년에 한두번 가는 휴가보다는 조금 더 가볍게, 나..

[27] 낮은 곳에서 듣는 소리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27] 낮은 곳에서 듣는 소리 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입력 2022.07.01. 03:00 김용호, 피안, 2011 습도가 높은 날이 이어지고 있다. 비가 퍼붓듯이 쏟아지면 소리에 집중하기 좋다. 공기 중에 수분이 많아서 소리의 전달 속도가 빨라지기도 하고 굴절이 늘어 소리가 더 풍성해지기 때문이다. 오늘같이 비가 오는 날이면 어떤 소리에 집중할지 떠올리면서 설레기도 한다. 피아노 연주곡을 들을까, 무반주 보컬을 들을까, 그러다 실내의 공기가 내는 소리에 집중해 보기로 한다. 눈은 감는다. 눈꺼풀을 내리면 소리는 더 커진다. 김용호의 ‘피안(彼岸)’ 연작은 수면에서 바라보는 연잎과 하늘을 보여준다. 작가는 연밭에 누워 있다. 연은 물에서 자라는 식물이니 ..

[26] 나의 소중한 정원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26] 나의 소중한 정원 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입력 2022.06.24. 03:00 강홍구, 그집-상추, 2010 현대사회에서 문화의 경계는 모호하다. 문명화가 진행되어 구성원의 사회적 행동이 문화적으로 규범화될수록 문화와 비문화의 영역을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여기서 ‘문화적인 것’이라 함은 후천적으로 학습된 행위나 반복적으로 지속되는 공통 생활양식을 말한다. 밥을 먹는 행동을 예로 들어 보자. 배가 고프면 음식을 섭취하는 본능은 문화의 영역이 아니지만, 사회적 행동으로서의 식사는 규칙이나 예절을 필수적으로 동반하기 때문에, 본능이 문화의 옷을 입게 되는 것이다. 강홍구 작가의 ‘그 집(2010)’ 연작은 도시 재개발 과정에서 사라진 집들에 대한 사적..

[25] 길을 묻다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25] 길을 묻다 신수진 한국외대 초빙교수 입력 2022.06.10. 03:00 주황, Departure #4407 Indonesia, 2016 나의 스무 살 소원은 마흔 살 되는 거였다. 그냥 가만 있어도 시간은 가고 나이를 먹을 텐데, 그런 허무한 소원이 대체 뭐냐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도 나의 소원은 예순 살 되는 거다. ‘나이 먹는 것’에 대한 기대는 현재에 붙들린 나의 불완전함에 대한 반성이고 지금보다 조금 더 성숙하고 완성된 나에 대한 바람이다. 미래를 온전히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어차피 알 수 없으니 궁금하지도 않으면 좋으련만, 살다 보면 절실하게 내일이 궁금해지는 순간도 있다. 과학과 이성, 자유와 경쟁이 존중받는 시대에 신자유주의 세계에 살면서, ..

[24] 밥짓기의 숭고함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24] 밥짓기의 숭고함 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입력 2022.06.03 03:00 방명주, 부뚜막꽃, 2005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의미를 찾기란 쉽지 않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씻고 밥을 먹고 일터로 나가고 집으로 돌아와서 밥 먹고 씻고 잠자리에 드는 일에서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할 수 있을까. 반복을 통해 자동화된 행동은 주의를 크게 기울이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는 대신 신선하게 자극하는 힘을 잃게 된다. 많은 심리학자들이 일상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이 웰빙(심리적 안녕)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지적하는데, 결국 공짜로 되는 건 없다는 얘기다. 밥을 잘 지으려면 처음엔 훈련이 필요하다. 연습량이 일정 정도 쌓이면 밥맛에 영향을 미치는 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