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전쟁이다. 실시간으로 뉴스가 전해진다. 민간인 사상자 수가 늘어난다. 불안은 금세 전 세계로 전파된다. CNN이 걸프전을 생중계한 지 30년이 지났고, 이제는 SNS가 전쟁을 퍼 나른다. 남녀노소 누구나 볼 수 있는 뉴스의 눈높이에 맞추어 끔찍한 장면은 검열의 대상이 되었다. 멀리서 바라보는 야간 공습은 영화나 게임에서 본 것보다 덜 폭력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현실이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잔혹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불안이 차곡차곡 마음에 쌓인다.
오형근 작가는 불안을 찍는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균열의 기운을 가시화하는 것은 지난 30년간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과제이다. 아줌마, 여고생, 군인 등 연령이나 성별, 사회적 지위 등에 따라 확연하게 구분되는 집단에 속한 인물에서부터,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지만 그래서 더 불안정해 보이는 인물에 이르기까지, 오형근은 초상 사진을 통해서 우리 사회가 쓸어 안고 있는 불안의 지도를 만들어 왔다.
‘중간인(2010~2013)’ 연작은 아직 전쟁 중인 이 나라에 사는 군인들의 모습을 실제 군부대 내에서 촬영한 것이다. 사진 속에 등장하는 군인은 평범해서 낯설다. 홍보물이나 히어로 영화에 익숙한 눈으로 보면 더욱 그렇다. 이제 막 초록이 올라오기 시작한 가지에 아직 피어 있는 꽃, 그 아래 선 병사의 유난히 하얀 피부와 파란 하늘, 수색대 담장을 배경으로 군견 ‘북두’가 나란히 포즈를 취했다. 야외에서 촬영했지만 사진에 등장하는 모든 요소들은 잘 마련된 세트를 이용한 것처럼 정돈되어 있다. 그렇게 우리의 전쟁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진공 상태로 사진 속에 박제되었다.
이 땅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전쟁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걸 안다. 마치 미열이 계속되는 것처럼, 끝나지 않는 전쟁은 오늘도 우리 모두의 얼굴에 불안을 새기고 있다. 수전 손태그는 끔찍한 전쟁 사진이 보는 사람에게 ‘타인의 고통’에 대한 연민을 느끼게 함으로써 심리적 면죄부를 준다고 했다. 넘쳐나는 전쟁 사진 속에 구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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