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시창작 도움자료

한 달만에 4쇄까지… 감성詩로 2030 마음 훔친 젊은 시인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5. 2. 20. 14:23

한 달만에 4쇄까지… 감성詩로 2030 마음 훔친 젊은 시인들

신인 시인 데뷔 시집 돌풍

입력 2023.12.07. 03:00업데이트 2023.12.07. 18:16
 
 
 

시인의 첫 시집이 잔잔한 문학계에 돌을 던지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2020년 등단한 임유영(37)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오믈렛’(문학동네)은 지난 10월 말 출간 당일 초판 1500부가 모두 팔렸다. 곧바로 중쇄에 들어가 1달여 만에 4쇄(4500부)를 찍었다. 신인의 데뷔작으론 이례적 성공이었다. 팬덤이 있어 초판을 5000부 이상 찍는 일부 시인도 있지만, 시집은 초판 발행 부수인 1500~2000부를 소진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최근 신인의 데뷔작이 단기간에 잇따라 쇄를 거듭하면서, 일부 문학 출판사에선 “신인 시인의 시집이 더 잘 나간다”는 말이 나온다.

(왼쪽부터)임유영, 이린아, 고선경, 유수연

 

문학동네 시인선이 돌풍의 중심에 있다. 지난 10월 시인선 200호 출간을 맞은 뒤로 본격적으로 신인 발굴에 나섰다. 201호부터 올해 마지막 출간을 앞둔 206호 시집에서 다섯 개를 신인의 데뷔작으로 삼았다. 그중 201호(한여진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 202호(고선경 ‘샤워젤과 소다수’), 203호(임유영 ‘오믈렛’) 모두 출간 후 1달 안에 중쇄를 찍었다. 문학동네 편집국 강윤정 부장은 “다채로운 데뷔작을 잇따라 내면, 독자가 그중에서 자신에게 맞는 시인이 누구일지 한 번 더 새롭게 봐줄 거라 생각했다”며 “젊고 새로운 감각의 시를 접하니 좋다는 반응이 많다”고 했다.

 

최근 주목받는 신인들의 키워드는 젊은 세대와의 ‘동시대성’에 있다. 고선경(26) 시인은 첫 시집에서 미래가 불투명한 청년 세대의 일상을 그린다. 그럼에도 ‘아르바이트를 잘리고 가게를 나서기 전/ 얼음물 좀 마셔도 되겠습니까 물었다’(시 ‘알프스산맥에 중국집 차리기’ 중에서)고 눙치며 유머의 힘을 잃지 않는다. 시의 엄숙함을 추구하기보다는 독자에게 한발 다가가려는 ‘친절함’도 엿볼 수 있다. 임유영 시인은 첫 시집에 방과후 문예반 소녀, 밤에 나간 산책 등 있을 법한 장면부터 죽음에 대한 것까지 다채로운 시편을 담았다. 임 시인은 “최대한 그간의 제 경험을 배제하고 보편적인 경험을 이용하면서도, 감정과 가치에 솔직하고 진솔하게 쓰고자 했다”고 했다.

 

박상수 문학평론가는 “시집의 주된 독자층이 20~30대 여성으로 좁아지면서, 이들이 자신 세대의 이야기와 감수성을 담아낸 젊은 시인들을 선호하며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시의 한 문장만으로도 문학적 감성과 취향을 건드릴 수 있기에 젊은 세대의 콘텐츠 소비 특성과도 잘 부합한다”라고 했다.

 

신인 시인을 띄우려는 출판사들의 마케팅도 다변화되고 있다. 올 초 출간돼 두 달여 만에 3쇄(3500부)를 찍은 유수연(29) 시인의 데뷔작 ‘기분은 노크하지 않는다’의 표지에는 하얀 눈송이가 가득 그려져 있다. 창비가 2020년부터 정형화된 기존 시인선의 디자인과 다르게, 데뷔작 초판 1쇄에 한해 특별 제작해 씌우는 커버이다. 반복되는 일상을 바라보며 ‘슬픔을 가두는 건 사람의 일이었고/ 사람을 겹겹이 쌓는 건 사랑의 일이었다’고 말하는, 차갑고 동시에 따뜻한 시집의 분위기가 담겨 있다. 젊은 시인들은 시작(詩作) 외의 활동을 자제했던 과거와 달리, 시집 출간 이후 홍보에 있어서도 더욱 적극적이다. 최백규(31) 시인은 작년 데뷔작 ‘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창비)가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김훈 소설 ‘하얼빈’과 함께 알라딘 투표에서 ‘2022 한국문학의 얼굴들’로 선정됐다. 트위터 등 온라인 공간에서 시인의 인지도가 큰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풀이된다.

신인 시인과 출판계의 최근 움직임이 시집을 일종의 ‘상품’으로 소비하도록 이끄는 게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변화하는 감각에 맞추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올해 데뷔작 ‘내 사랑을 시작한다’(문학과지성사)를 내놓은 이린아(35) 시인은 뮤지컬 배우 겸 재즈 보컬리스트로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 경험을 시 ‘여름 공연’에서 이렇게 푼다. ‘우리는 불가능을 담보로 공연을 계획했다.// 무대는 벌판이어도 좋고 지평선이어도, 간이 정류장 또는 당근밭이어도 좋았다. (중략) 빈 의자가 있는 데면 어디라도 좋았다.’ 신인들에게 마련될 ‘빈 의자’는 곧 독자에게 주어질 또 하나의 상상력일 테다.

 
이영관 기자  
조선일보 이영관입니다.
 
 

문단의 아이돌? 이번엔 깊이도 더했어요

본지 등단 'MZ 시인' 고선경, 데뷔 시집 3만부 팔리며 인기
두 번째 시집 '심장보다…' 출간 "죽음·상실같은 묵직한 소재 택해"

입력 2025.02.20. 00:51업데이트 2025.02.20. 10:34
 
 
 
고선경 시인은 “시의 유희성과 오락성이 강한 힘을 갖는다고 믿는다”고 했다. “제가 가장 힘들 때 일으켜 세웠던 건 장난과 농담인 것 같아요. 넘어져도 마치 그것마저 나의 계획인 것처럼. 물론 티가 나겠지만요!” /박성원 기자

 

“전날 술 먹고 남의 집에서 자다 온 후줄근한 설정이에요.” 14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시인 고선경(28)은 체크무늬 셔츠에 판다 스티커를 붙인 헤드폰을 목에 걸고 나타났다. “저는 왜 남의 집에서 시가 잘 써질까요? 제 집에선 절대 못 쓰거든요.” 얘길 듣다 보니 설정이 아니었다.

요즘 ‘문단의 아이돌’이다. 202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이듬해 10월 첫 시집 ‘샤워젤과 소다수’를 펴냈다. 지금까지 16쇄(3만부)를 찍었다. 규모가 작은 시집 시장에선 짧은 기간에 달성한 이례적인 판매 부수다. 문학동네·난다·창비 등 그와 계약한 출판사들이 줄을 서서 순번을 기다리고 있다. 그 덕에 ‘전업 시인’으로 활동 중이다. 등단 3년 차 시인이 시인선의 문을 여는 이변도 벌어졌다. 출판사 열림원은 새 시인선을 시작하며 첫 주자로 고선경을 택했다. 그 결과물이 지난달 나온 두 번째 시집 ‘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알’.

그에겐 ‘MZ 시인’이라는 수식이 붙는다. ‘투룸 신축 빌라 보증금 이천에 월세 구십’(‘샤워젤과 소다수’), ‘한달 월세 칠만엔/ 쉐어하우스’(‘키치죠지에 사는 죠지’)처럼 청년 세대의 구체적 삶을 녹인다. ‘아르바이트를 잘리고 가게를 나서기 전/ 얼음물 좀 마셔도 되겠습니까 물었다 (중략) 그런데 왜 어떤 가게들은 집이라고 불리는 걸까? 술집 꽃집 찻집/ 가엾은 사장님 중국집에 갇혔네’(‘알프스 산맥에 중국집 차리기’). 기형도의 ‘빈집’을 패러디해 사장님을 가게에 가두는 발칙함도 지녔다.

고선경 시인이 신간 시집 '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왼쪽)과 16쇄를 넘긴 첫 시집 '샤워수와 소다젤'을 들어보였다. /박성원 기자

등단 때부터 남다른 ‘시적 패기’(심사위원 이문재·정끝별 시인의 평)가 돋보였다. 가장 화제가 된 시는 첫 시집에 실린 ‘스트릿 문학 파이터’. ‘세계 최초 시 서바이벌 오디션이 시작됐습니다./ 지금 바로 투표해주세요’ 상상은 뻗어 나간다. ‘“자 이번엔 금지어 미션입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드린 단어는 시에 사용할 수 없습니다. 세계, 미래, 사랑, 기계, 영원, 천사. 바다, 숲, 여름, 겨울, 비, 눈, 유령, 죽음!”// 습작생들은 탄식했다 심하게 좌절한 습작생의 경우 상담 치료를 신청하기도 했다…”

 

두 번째 시집에선 밈(meme)과 패러디를 덜어냈다. 그는 “‘밈이나 패러디 없이 시를 못 쓰나?’ 하는 말에 욱한 것도 있다”며 “첫 시집의 청량함, 귀여운 오브제를 동원한 키치함보다 좀 더 깊이감 있는 시집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죽음이나 상실처럼 묵직한 소재를 일부러 택했다. “그런데 아마 그렇게 깊지는 않을 거예요. 왜냐하면 저는 너무 젊고, 경험이나 공부가 부족한 걸 수도 있고….”

14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고선경 시인. /박성원 기자

 

‘죽어서도 유망주가 되고 싶다’(‘홀로그래피’)는 시인은 “삶에 대한 기대와 애착”이 크다. 더 잘하고픈 욕심도 많다. 최근엔 시 수업을 신청했다. 과제로 ‘내 남자친구는 재벌 3세’라는 시를 썼다. “동료 시인에게 보여줬는데 ‘선경씨의 패턴이 이제 너무 잘 읽힌다’는 거예요. 저도 절실히 느끼던 문제거든요.” 시인은 “잘하는 것을 계속하는 것”과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탄력 있는 스프링처럼 튀어오를 수 있는 힘이 있으면 좋겠어요.”

이번 시집엔 ‘스트릿 문학 파이터’의 후속이라 할 만한 시도 실렸다. 홈쇼핑에 시를 팔러 나온 시인들이 등장한다. ‘방송을 본 선생님들 “시집은 잘 팔리는 게 다가 아니야” 쓴소리에 고개를 떨군다 해도 (중략) “떨군 고개를 원래 스트레칭하려 했던 것처럼 한바퀴 돌리는 것까지가 제 시집의 장기입니다” 선생님들께 말씀 올리는 순간 다시 시작되는’(‘도전! 판매왕’). 고선경은 귀여운 능청스러움을 동력 삼아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