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생진 시인은 현역으로 활동하는 최고령(1929년 생)시인이다. 50 여권에 이르는 시집, 시선집, 사화집은 끊임없이 삶의 진실에 다가서려는 열정의 결실이다. 허세를 멀리하고 탐욕에 물들지 않은 꼿꼿함은 오늘날 우리 시단이 안고 있는 병폐에 경종을 울리만 하다.
가까운 동네에 살면서도 자주 뵙지 못하는 처지인데 도봉문화원 편지문학관에서 편지의 밤에 이생진 시인과 젊은 마윤지 시인을 초청하여 2025 편지낭독 콘서트를 개최했다.

행사 티켓
그 중 ‘후배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소개한다. 이 글은 후배시인을 북돋아 주는 이야기는 없다. 오히려 이 글에는 깊이 새겨야 할 질문 하나가 들어가 있다. 그 질문은 젊었을 때 죽음을 긍정과 기쁨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수신 修身의 자세를 가져야함을 일깨우고 있다.

나에게 시란 무엇인가!
친애하는 나호열 시인님께
안녕하십니까?
며칠전 나의 아흔 일곱번째 생일날이어서 자식들과 함께 강릉 경포대에 가서 바닷바람을 쐬고 왔습니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똘스또이의 《인생 이란 무엇인가》(채수동,고산 옮김)를 읽고 있습니다. 그는 82세에 이 세상을 떠났지만 늘 내곁에 모시고 있는 스승이어서 든든합니다.
그 분의 마지막 편지를 나교수님께 보내며 편지를 대신할까 합니다.
말년의 똘스또이는 그리스도교의 도덕을 실천하기 위해서 술과 담배를 끊고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그는 야스나야 뽈라냐의 쾌적한 생활도 거부하였고 지금껏 물질적으로 풍부하게 살아온데 대해 깊이 반성했다. 하지만 이러한 엄격한 생활 태도는 아내 소삐야에게는 차츰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되었다.
똘스또이는 무슨 일이건 아끼는 수제자 쩨르뜨코프와 의논하였는데 말을 나누다가도 소삐야가 방에 들어오면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듯이 입을 다물었다.
1908년 병상에 있던 똘스또이는 자기의 죽음이 머지않은 것을 깨닫고 비서에게 일기를 받아쓰게 했다. 자신이 죽고나면 모든 저작권을 사회에 내놓고 싶다고 했다.
만약 이대로 실행된다면 1881년 이잔에 출간된 작품의 저작권도 소삐야가 내놓지 않으면 안되는 실정이었다고 한다.
남편의 일기를 본 소삐야는 똘스또이에게 항의하였고 두 사람은 내내 냉랭하게 지냈다.
이듬해 똘스또이는 1881년 이전의 간행되지 않은 저작과 그 이후의 모든 작품저작권을 포기하여 누구라도 출판할수 있도록 했다. 1910년 10월 가출을 결행할 때 아내에게 편지를 남겼다.
"나의 가출이 가족 모두를 슬프게 하겠지만 부디 이해해주오. 내게는 달리 방법이 없구려. 집에 있기가 너무도 힘이 든다오.
지금껏 호의호식하면서 살았지만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오....."
그후 1910년 11월 7일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사람이 되었다.
나호열 시인님!
나는 허망한 생각에 이 책을 손에 든채 생각도 말도 이어나가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죽음에 가까워진 나는 어떤가 하는 생각에 한동안 멍해졌습니다.
건필을 바랍니다
2025년 3월 26일 이생진
시집『그리운 바다 성산포』(1978)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윤설희의 시 낭송의 역할이 컸다고 본다. 자연에 대한 사랑과 인간의 고독을 낭만적 음률로 읊은 81편의 시는 암울한 시대를 건너가는 나눗배였고, 망망대해의 밤을 밝히는 등대였다. 기억이 가물하지만 1998년쯤 학교의 시문학회에 처음 초청하여 말씀을 들었고, 그 이후에도 그런 모임을 가졌다. 최근에는 몇몇 시인과 뜻을 모아 이생진 문학상을 제정하고자 하였으나 완곡한 거절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생전에는 물론 그 이후에도 그런 일은 원치 않는다는 말씀이셨다. 그는 고독한 시인이다!
아래 글은 광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어느 시인이 바라본 이생진 시인이다. 『박공널의 시옷이 되어』(2022,우리글)에 발문을 쓴 바도 있는데, 기꺼이 이 글에 수록을 허락하여 함께 싣는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1978)
살아있는 섬, 이생진 선생님
평생을 바다와 섬으로 떠돌며 인간의 고독과 섬의 고독을 잇는 시를 써오신 이생진 시인, 우리나라 섬의 잔잔하고도 아름다운 정경과, 파도와 곤충들과, 꽃과 새를 구석구석 알고 있는 유일한 시인이시지요.
물속에서 구르는 돌의 소리만 듣고도 어느 바다인지 아시는 살아있는 섬이고 바다이신 선생님을 경배합니다.
섬처럼 맑고 고독하게 늙고 싶어서 죽을 때까지 섬으로 떠나서 죽은 뒤에도 섬으로 남고 싶다는 섬 시인을 처음 뵈던 때가 2003년 3월 21일 이었습니다.
광주에서 하는 시낭송 모임에 모셔서 운좋게도 시인의 시낭송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 감동과 깊이에 울었습니다.
저는 그 이후로 꽤 오래하던 시낭송 공부를 그만 두었고 마음에서 나오는 진실한 소리보다 더 좋은 울림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요. 그 후, 좋아하는 시를 읽고 싶은 깊이로, 느낌으로 읽는 것에 몰두하게 되었답니다.
섬처럼 맑고 고요한 분이셨습니다.
시낭송 공부를 해보려고 시집『그리운 바다 성산포』(1978)를 샀고, 우도에 가고 싶어 시집『그리운 섬 우도에 가면』(2000)을 사서 우도에 대한 그리움을 키웠지요. 우도에 대한 그리움이 키워지자 시집『외로운 사람이 등대를 찾는다』(1999)를 읽으며 등대까지 얹어 불을 반짝였고 그러다 시인을 통째로 사모하고, 모든 바다와 섬을 덩달아 사랑하면서 하늘에 있는 섬을 사들였던 마음들이 참 오래오래 제 안에 틀어 박혔습니다.
문학이 주는 힘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되었던 여러 해가 이어져 지금까지 왔습니다.
이렇듯 책이 주는 간접 경험들이 저를 살찌우고 풍요롭게 한다는 것을 이생진 선생님의 시를 읽으면서 많이 느꼈지요.
다시 꺼내어 펼쳐들면 뭐 그리 할 말이 많았던지 그분의 글들 밑에는 그때의 제 감정들이 하나도 숨김없이 적혀있고, 밑줄, 별표, 동그라미들로 남아서 시간이 흘러서도 그 마음을 그때, 그대로, 지금도 느끼게 해 줍니다.
꽤 많은 권수의 시집 마다에 李生珍이라는 한문 사인은 그대로 한 편의 멋진 시이며 아름드리 나무 같답니다. 저는 제가 선생님 시집을 거의 가지고 있음을 자랑스러워 한답니다.
저에게 당신의 좋은 시를 전부 주셨고, 제 자신이 가진 목소리의 귀함을 알게 해주신 셈이지요.
다 표현 못할 제 뿌리 깊은 존경처럼 마음을 흔드는 수두룩한 시들이 선생님이 살아온 발자국이라고 믿습니다.
걷다보면 발을 멈추어 눈 맞추어 인사하고, 안부를 전하며 돌아볼 것이 너무나 많은데 우리는 눈에 잘 보이지 않은 작은 것들을 쓰윽 쉽게 스치고 맙니다. 그러니 갈수록 마음이 차가워지고 속이 쓸모없는 것들로만 채워지는 것일테지요. 그런 저를 깊이 우려하고 단단히 살피게 하시는 이생진 선생님은 말씀하십니다.
시인은 늘 걸어다녀야 한다.
타고 돌아다니면 시심이 불안해진다.
이런 당신은 우리 모두의 시이며 바다며 아버지시고 스승이십니다.
(진흠모, 광주 '시와 바람' 모꼬지 곽성숙)

곽성숙 시인
1964년 광주 출생 전남대 중문과 졸업
시인, 시수필가, 창작수필가, 동화구연가
(사)색동회 광주전남지부이사, 색동극단 인형극 연출
'시와 바람' 모꼬지 대표
제1회 무등산 공모시 대상 수상
제3회 5.18전국글쓰기대회 금상
2014년 시 전문지 '애지' 등단
2021년 산문의 시 ‘창작수필’ 등단
2023년 산문의 시 ‘詩’ 등단
●시집
『날마다 결혼하는 여자』(2016, 지혜)
『박공널의 시옷이 되어』(/2022,우리글)
●시수필집
『차꽃, 바람나다』,『차꽃, 바람에 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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