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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물가에 서 있는 옛 ‘훈장님’이 심어 키운 함양 목현리 구송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1. 8. 14:37

[나무편지]

물가에 서 있는 옛 ‘훈장님’이 심어 키운 함양 목현리 구송

  ★ 1,213번째 《나무편지》 ★

  2024년 새해 첫 주, 잘 보내셨지요. 오늘 《나무편지》에서는 먼저 지난 《나무편지》에서 잘못 적은 내용부터 고치고 시작하겠습니다. 새해 첫 편지인 지난 주 《나무편지》는 별다른 내용 없이 ‘새해 인사’만으로 짧게 채웠습니다. 일단 초고를 만들고, 사진을 넣어 html 코딩을 마친 뒤에 평소처럼 한번 더 살펴보니, 고쳐야 할 문장과 오탈자가 눈에 띄었습니다. 다시 살펴보면서 잘 고치기는 했습니다. 그래놓고는 홈페이지 솔숲닷컴에는 고친 파일을 올렸는데, 아뿔싸! 《나무편지》를 발송하는 메일링시스템에는 고치기 전 파일을 업로드하고 말았습니다.

  문장이 엉망이었던 건 둘째 치고, 《나무편지》를 오래 이어왔다는 ‘잘난 체’를 하면서, 그 처음을 25년 전인 2020년 5월 8일이라고 적은 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언제나 《나무편지》를 꼼꼼히 봐 주시는 여러 분께서 알려주시기까지 했습니다. 2020년이 아니라 2000년의 잘못이었습니다. 그래야 25년이 되겠지요. “《나무편지》에 담는 모든 글들에 대해서도 세심히 살피겠다”는 말씀을 덧붙이며 마무리한 글이었건만, 처음부터 “세심히” 살피지 못했습니다. 하긴 돌아보면 그 동안 《나무편지》에서 저지른 실수와 오류가 어디 그뿐이겠습니까만, 그럼에도 늘 아껴 살펴봐 주시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인사 드립니다.

  오늘 《나무편지》에서는 지난 편지에서 줄기 부분만 보여드렸던 〈함양 목현리 구송〉의 사연을 들려드리겠습니다. 〈함양 목현리 구송〉은 줄기가 뿌리 부분에서부터 여럿으로 갈라져 자라는 반송입니다. 줄기가 아홉 개로 갈라지며 솟아올랐다 해서 ‘구송(九松)’이라고 한 겁니다. 기록에는 아홉 개의 가지 가운데 두 개의 가지가 부러져 일곱 개의 가지가 남았다고 기록돼 있는데, 최근에 그 중 큰 가지 하나의 윗 부분이 더 부러졌습니다. 여전히 일곱 개의 가지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하나의 존재감이 떨어졌다는 겁니다. 여러 가지가 반듯하게 부챗살처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솟아오르며 이룬 나무의 생김새는 더없이 수려합니다. 개울가 풍경과 절묘하게 어울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나무높이는 15미터 쯤 자라올랐고, 나뭇가지가 펼쳐나간 폭은 사방으로 15미터 정도 됩니다. 여느 소나무에 비하면 그리 큰 나무라 할 수 없어도 반송 중에서는 큰 편에 속합니다. 삼백 살 정도 살아온 것으로 짐작되는 〈함양 목현리 구송〉은 처음부터 이 자리에서 자란 나무는 아닙니다. 나무 앞에서 뵈었던 마을 어른은 바로 자신의 증조부이며 마을 서당의 훈장을 지내신 정대영 어른께서 백육십 여 년 전에 이 나무를 가져다 이 자리에 옮겨 심은 것이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그때부터 이미 나무를 ‘구송’이라 불렀고, 나무가 서 있는 자리를 구송대, 혹은 구송정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때에는 나무 곁에 정자도 한 채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나무 곁으로 이어진 물가에 정자를 한채 놓기는 했지만, 그건 최근에 새로 지어놓은 것이고, 예전의 정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입니다. 훈장님인 정대영 어른이 돌아가신 뒤에는 그의 제자들이 한해 한번씩 바로 그 구송정에 모여 어른의 가르침을 기억하기 위해 제를 올렸다고 합니다. 제를 준비하는 분들은 계를 구성하여 ‘구송계’, ‘구송정계’라고 불러왔습니다. 구송계는 한때 백 명 가까이 되는 많은 분들이 참여했었고, 그들이 모두 모여 나무 앞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처음 계를 구성한 계원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후손들이 여전히 계를 이어간다고도 합니다.

  구송계의 계원들이 정한 날이 되면 계원들은 나무 앞에 모여 제를 지냈습니다. 그런데 이 제사는 여느 마을의 당산제 동제와는 사뭇 달랐다고 합니다. 계원들은 먼저 정대영 훈장님의 뜻을 기리는 글(일종의 제문이라 할 수도 있겠지요)을 낭독하며 제사가 시작됩니다. 그리고는 그날의 시제(詩題)를 정하고 제가끔 나무 앞에서 시문을 짓고 발표하는 순서로 이어갔다고 합니다. 일종의 ‘백일장’ 같은 경우라 봐도 되겠지요. 이 행사는 최근까지도 이어지고는 있지만, 참가 인원이 줄어들면서 안타깝게도 차츰 시들해지는 상황이라는 게 마을 어른들의 이야기입니다.

  옛 마을 옛 사람들의 풍치가 느껴지는 풍경입니다. 물가에 심어진 〈함양 목현리 구송〉은 그렇게 사라져가는 우리 옛 풍경의 중심에 여전히 아름다운 생김새로 남아있습니다. 백일장과 같은 풍습과 행사는 사라졌어도 나무는 오래 이 자리에 남아 우리 옛 사람들의 이야기를 오래오래 전해주기를 기원할 따름입니다.

  지난 주 내내 비교적 따뜻하더니, 오늘 아침 바람은 매우 쌀쌀합니다. 감기 독감의 기세도 여전한 모양입니다. 겨울이 겨울답지 않아 더 고달픈 이 즈음, 건강하게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2024년 1월 8일 바람 찬 아침에 1,213번째 《나무편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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