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함께해 온 복수극, 왜 지금 또 열광하나
K콘텐트로 진화한 복수드라마
문소영 중앙SUNDAY 문화전문기자
20여년 전 한류의 물꼬를 튼 드라마는 ‘가을동화’(2000), ‘겨울연가’(2002) 같은 러브스토리나 ‘대장금’(2003) 같은 역경 극복 스토리였다. 반면에 최근 전세계 시청 상위에 든 한국 드라마는 JTBC ‘재벌집 막내아들’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같은 복수극이다. ‘가을동화’에서 ‘준서 오빠’를 찾는 청순가련 여주인공이었던 배우 송혜교는 이제 “죽이고 싶었던 나의 연진이”를 찾아다니는 ‘더 글로리’ 속 복수의 화신으로 돌아왔다.
드라마 평론가 신주진은 2000년 이후부터 한국 드라마에서 복수극이 급증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의 박사논문(2018)에 따르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불안해진 고용과 빈부격차 때문에 ‘내가 억울하게 살고 있다’는 피해의식이 사회 전반에 퍼진 것이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무한경쟁으로 황폐해진 사회 현실을 반영하는 동시에, 그러한 사회현실을 향한 강력한 감정 분출과 해소의 대리 기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재벌집’ ‘더 글로리’ 세계적 인기
복수극, 로맨스 제치고 한류 주도
빈부격차에 대한 분노 대리해소
지구촌 양극화에 타문화도 공감
사적 복수 금지 시대의 역설인가
복수와 용서는 동전의 양면 같아
인생역전이란 판타지의 힘
에드윈 오스틴 애비의 그림 ‘햄릿의 한 장면’(1897). [사진 예일대 미술관]
‘재벌집’과 ‘더 글로리’는 계급갈등이 두드러진 복수극이다. ‘재벌집’에서 순양그룹의 직원인 주인공은 오너 가족의 뒤처리 담당을 하다 죽은 후 과거로 회귀해서 그룹 창업주의 막냇손자로 환생한다. 후계자 경쟁에서 승리하면서 오너 가족에게 복수극을 벌인다. 원작 웹소설은 주인공이 순양을 차지해 할아버지에 이어 회장이 되는것으로 끝난다. 이 해피엔딩은 회귀·환생이라는 불가능한 판타지를 전제로 한다. 역설적으로 ‘인생 역전은 다시 태어나야 가능’하다는 요즘 세대의 비관주의를 강화하기도 한다.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에 계급문제를 얹었다. 없는 집 자식인 주인공은 학폭 피해자인데도 학교와 공권력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집 자식은 가해자이면서도 처벌받지 않는 상황을 설정했다. 계층 상승이 어려워지고 계급이 고착화하는 한국 사회에 대한 우려와 불만이 반영됐다.
대중문화 평론가 정덕현은 영화 ‘기생충’ 등 최근 주목받는 K 콘텐트가 한국 사회의 엇나간 시스템을 건드렸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이것이 세계인에게도 보편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킨다고 평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도 복수극
3월 10일 시작하는 ‘더 글로리’ 파트2 예고영상. [사진 넷플릭스]
반면 또 다른 해석도 있다. 강력범죄 ‘솜방망이 처벌’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면서 사적 복수 콘텐트가 증가하고, 또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견해다. 예컨대 엘리자베스 1세가 통치하던 영국 르네상스 시대에 복수극(revenge tragedy)이 성행했는데, 학자들은 사적 복수에 대한 금지가 강화된 때문이라고 본다. 이러한 복수극의 특징은 유혈이 흥건하고 등장인물 대부분이 죽는다는 데 있다. 이런 측면에서 셰익스피어의 걸작 『햄릿』(1601)도 복수극으로 분류된다.
사적 보복 금지의 역사는 뿌리 깊다. 고대 로마 스토아학파 철학자 세네카는 분노가 ‘부당함에 복수하려는 욕구’인데 부당함은 복수가 아닌 이성적인 교화를 통해 해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분노와 복수는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무익한 것으로 여겼다. 이런 사상은 중세에 기독교 교리 “원수를 사랑하라”와 합쳐져 더욱 강화되었다.
하지만 복수심이 과연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것일까. 미국의 진화심리학자 마이클 맥컬러프는 복수심이 필요 때문에 생긴 인간 본성이라고 말한다. 그 논거는 이렇다. 첫째, 나를 해친 자들에게 복수함으로써 그들이 2차 가해를 못 하게 한다. 둘째, 잠재적 가해자들의 공격 의지를 떨어뜨린다. 셋째, 집단에 협력하지 않는 구성원들을 벌하고 공동선을 추구하도록 한다, 등이다. 나아가 복수와 용서는 한 팀이기에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솜방망이 처벌’에 대한 반발인가
셰익스피어 시대 영국인도 그랬을 것 같다. 주체할 수 없는 복수심을 유혈극을 통해 대리 해소하면서, 극중에서 복수하는 자도 복수의 대상도 함께 죽게 함으로써 사적 복수를 미화하지 않으려 하지 않았을까. 21세기 한국의 복수극 열풍과도 맥이 닿는 지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형 로펌 변호사의 분석이다. “최초의 성문법인 함무라비 법전은 동해보복법(同害報復法), 즉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명문화했는데, 이는 되레 사적 복수를 막음으로써 정의를 실현하려는 측면이 있었다. 반면 현대 형벌은 온정주의와 교화에 초점을 두기 때문에 법을 통한 동해보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보복 심리가 충족되지 않으니 복수극으로 대리만족하는 것이 아니겠나.”
엄벌주의와 교화주의의 대립은 쉽게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또 현재로선 경제 양극화 해결도 요원해 보인다. K복수극의 인기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복수극 원조 『몽테크리스토 백작』 완역본을 권하는 이유
영화 ‘몽테크리스토 백작’(2002). 동명의 소설이 원작이다. [유튜브 캡처]
“고전이란 모두가 진작 읽어 뒀으면 하면서도 읽고 싶진 않은 책.” 미국 문호 마크 트웨인의 말이다. 모두가 알지만 읽지는 않은 책이라는 고전의 역설이다. 알렉상드르 뒤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1844-46) 완역본을 읽은 사람도 많지 않다. 엄청난 분량(민음사 판의 경우 총 5권) 때문이다. 그런데도 꼭 한 번 완역본으로 읽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오늘날 수많은 복수극의 원형이 담겨 있다.
이 소설은 ‘화려하게 변신한 모습으로 돌아와서 시원하게 복수하는 이야기’의 원조다. 피범벅을 자제하고 냉혹하고 정교한 계획으로 원수들의 가장 소중한 것, 즉 부·권력·명예 혹은 가족 간 유대를 무너뜨린다.
막장 드라마의 고전인 ‘아내의 유혹’(2008)의 경우에도 죽은 줄 알았던 주인공(배우 장서희)이 용케 살아나 온갖 지식·교양을 습득하고 화려한 신분의 다른 사람으로 기장해서 원수들에게 접근하는데, 『몽테크리스토 백작』과 닮은꼴이다. 뒤마의 소설에서 에드몽 당테스는 변신 과정에 20여 년(감옥에 갇힌 14년 포함)이 걸린 반면 장서희 캐릭터는 불과 몇 개월밖에 걸리지 않았고, 눈 밑에 점만 찍고 나타나 다른 사람인 척해서 화제가 됐지만 말이다.
‘재벌집 막내아들’ 드라마와 동명의 원작 웹소설에서도 주인공이 죽음에서 부활해서 원수들과 동등한 높은 신분으로 변신하는 점과 습득했던 지식을 바탕으로 치밀한 계획을 세워 순양그룹을 빼앗으려 한다는 점에서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후계자라 할 수 있다. 두드러진 차이점은 정말 문자 그대로 부활한다는, 과거로 회귀해서 환생한다는 판타지 설정을 통해 신분 상승 변신과 지식 습득이 너무 쉽게 이뤄진다는 것이다.
드라마 ‘더 글로리’는 약간 다르다. 주인공이 복수에 필요한 교사 신분과 금전·지식 등의 자산을 획득한 후에, 다른 사람으로 가장하지 않고 옛 가해자들에게 접근한다는 점에서 『몽테크리스토 백작』과 차이가 난다. 하지만 원수들과 주변인을 뒷조사하며 약점을 잡고 상호 불신을 이용하는 등 치밀한 그물을 쳐서 그들을 압박해 나가는 점이 닮았다. 특히 바둑을 묘사하는 구절인 동시에 주인공의 복수 스타일을 암시하는 구절, 즉 “끝에서부터 가운데로 서서히 조여 들어와야 해요, 침묵 속에서 맹렬하게” “상대가 정성껏 지은 집을 빼앗는 게임이라니 아름답더라” 등은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게임 같은 복수의 미학과 통한다.
이 고전소설은 나폴레옹 몰락, 부르봉 왕정복고, 7월 혁명, 루이 필리프 입헌 왕정으로 이어지는 19세기 프랑스 역사의 격변을 당테스라는 한 개인의 복수극과 절묘하게 연결해서 현대 팩션 소설의 원형을 보여준다. 당대 파리 상류층의 생활을 비롯해 유럽 각국의 다채로운 문화와 오리엔탈리즘 취향을 보는 재미도 선사한다. 주인공이 햄릿처럼 지나치게 사색하지 않고 복수를 시원시원하게 진행해서 통속적인 재미가 있으면서도, 복수의 파편이 무고한 이에게 튀는 경우와 그에 대한 주인공의 고뇌도 설득력 있어 막장으로 치닫지 않는다. 한마디로 ‘모범적인 대중소설’이란 표현이 어울린다.
『몽테크리스토 백작』은 영화화에 적합할 것 같은데도 방대한 분량 때문인지 아직 원작을 제대로 살렸다고 인정받는 작품이 거의 없다. 완역본을 읽어봐야 할 또 하나의 이유다.
문소영 중앙SUNDAY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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