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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고당길, 북촌 여행의 시작점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1. 4. 09:37

 

[서울이야기]

감고당길, 북촌 여행의 시작점

 

허성준 기자
강지혜 인턴기자
김민철 인턴기자
입력 2013.05.25 10:00
 
 
 
 

인사동에서 북촌으로 가는 길목, 사람들이 한산한 오전에는 옛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감고당길이 있다. 풍문여고 정문에서 정독도서관까지 이르는 길이다. 작년에 발표된 새로운 주소 체계에 따른 공식행정명은 율곡로 3길. 지하철 3호선 안국역 1번출구에서 나와 안국동 사거리에서 북쪽으로 가면 된다. 폭이 10m가 채 되지 않는 이 길은 최근 주말이면 수많은 북촌여행 인파가 몰려드는 ‘핫스팟’이 되었다.

 

감고당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숙종 임금이 인현왕후 민씨 친정을 위해 지어준 집 ‘감고당’이 이 길 중간에 있는 덕성여고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감고당길 주변 북촌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있는 지리적 특징 때문에 권세가와 부유층이 많이 살았다. 당시만 해도 30칸이 넘는 전통 한옥과 11척(약 3.3m) 높이의 기둥 등 널찍한 집들이 있는 곳이었다. 대문은 말과 가마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컸고, 담벼락엔 화려한 꽃 그림 등이 그려져 있던 부촌(富村)이었다.

 

현재 감고당길 주변 북촌의 집들은 조선시대와는 달리 처마가 서로 닿을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 있으며, 규모도 작다. 일제강점기 1930년대 경, 이곳에 살던 기득권층이 몰락하여 집들이 팔리면서 필지가 잘게 쪼개져 ‘집장사’들이 소규모 개량 한옥들을 지으면서 현재의 모습이 생긴 것이다.

 

정석(51) 가천대 도시계획학과 교수는 “정독도서관을 중심으로 북동쪽의 가회동 일부 지역에선 당시 건설업체인 건양사가 대규모 부지를 헐값에 사들여 30~40평 정도의 소형 주택을 다수 분양하기도 했다”며 “예전 감고당길 주변은 큰 집들이 일부 있고, 별당 같은 건물이 많았다”고 말했다.

                                                                        느티나무가 울창한 돌담길

감고당길은 예전부터 ‘교육로’라고도 불렸다. 1970년대 중반에는 덕성여중·고, 풍문여고, 경기고, 휘문고 등 10개 학교가 이 길 주변에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는 덕성여중·고와 풍문여고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등하교 시간이면 교복 입은 여학생들이 이 길을 가득 메운다.

학교가 모여 있다 보니 에피소드도 많았다. 감고당길 중간 지점엔 덕성여중과 덕성여고를 연결하는 육교가 있다. 76년까지 현재 정독도서관 자리에 있었던 경기고 남학생들은 육교 아래를 지나다 교모를 종종 덕성여고생에게 뺏겼다. 기세등등한 경기고 학생을 놀려주고자 육교 위에서 꼬챙이로 교모를 낚아챈 것이다.

 

덕성여중 교장 백영현(58)씨는 “당시 덕성학교 학생들이 발랄하기로 유명했다”며 “두 학교를 연결하는 육교의 풍경도 특이한 데다가, 학생들이 재미있는 장난을 쳐 지금까지도 전해지는 재미난 이야기가 많다”고 말했다.

덕성여고 정문에 있는 감고당터 표지석. 감고당은 현재 경기도 여주군 명성황후 생가 옆에 있다.

 

감고당길은 서쪽으로 소격동, 송현동과 동쪽으로 안국동 사이에 있는 길로, 북쪽 끝에 화동이 있다. 소격동은 도교(道敎)의 삼청전(三淸殿)에 제사를 지내는 업무를 관장하는 소격서(昭格署)가 있던 데서 유래했다. 소격동에는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한창 공사중이고, 미술관과 소규모 갤러리들이 밀집해 있어 문화 예술의 중심지로 주목 받고 있다.

 

송현동에 속해 있는 감고당길 서쪽 주변은 풍문여고 맞은 편으로 현재는 담장이 둘러져 있는 공터다. 조선시대 말까지 왕실에서 보호하던 소나무 숲이 있었다. 그래서 경복궁 동십자각에서 인사동 사거리로 넘어오는 고개를 송현(松峴) 또는 솔고개, 솔재라 불렀다.

 

 

감고당길 북쪽 끝, 즉 정독도서관 서쪽 주변의 화동은 조선시대 이곳에 있던 화개동(花開洞)에서 유래되었다. 목재 발코니가 인상적인 적산 가옥(해방 후 일본인들이 물러간 뒤 남겨 놓고 간 집이나 건물을 지칭)이 남아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안국동은 조선의 행정구역명인 안국방(安國坊)에서 유래했다. 안국방은 한성부 북부에 있던 방(坊) 중의 하나였다. 권문세가들이 대대손손 살아온 양반 동네로 감고당과 안동별궁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안동별궁은 1907년 순종(純宗)과 계비 윤씨와의 혼례식이 열렸던 곳이기도 하다.

감고당길 북쪽 끝 북촌로 5길과 만나는 지점에는 정독도서관이 있다. 근대 건축 등록문화재 제2호로 옛 경기고등학교 건물을 사용하고 있다.

                                                                                       정독도서관 입구

최근에는 많은 국내외 여행객이 몰리고, 특히 젊은 연인들이 많이 오면서 까페, 떡볶이집, 옷가게, 분식집 등이 많이 생겼다. 떡볶이, 튀김, 호떡을 사먹기 위해 길게 줄서 있는 모습 또한 이 길의 휴일 오후 한 풍경이 되었다. 옛스러움과 조용한 분위기가 사그러지는 것에 대한 토박이들의 우려도 있지만 감고당길이 ‘뜨는 길’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