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문화마을 소식들

극작가 신봉승 타계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6. 4. 24. 14:02
 
 역사의 행간까지 담아낸 국민 史劇작가

입력 : 2016.04.20 03:00

[TV드라마 '조선왕조 오백년' 쓴 신봉승]

9년에 걸쳐 번역 안 된 실록 완독… '별당아씨' 등 숱한 히트작 쏟아내
역사의식 없는 요즘 사극 질타도

"사극 작가는 역사의 행간을 읽는 역사의식, 국가적 맥락에 대한 깊은 고민, 권력에 대한 이해를 갖춰야 한다. 그럴 자신이 없는 작가라면 그냥 멜로물을 써라."(2010년 5월 본지 인터뷰에서)

'한국 역사극의 개척자'가 역사 속으로 떠났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인 극작가 신봉승(83)씨가 19일 오전 경기도 성남 자택에서 폐암으로 별세했다.

극작가 신봉승 

 

/주완중 기자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난 고인은 강릉사범학교를 나와 6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했고, 경희대 국문학과(학·석사)를 졸업했다. 1960년 '현대문학'에서 시와 문학평론을 추천받아 등단했고, 이후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해 '갯마을' '저 하늘에도 슬픔이' '산불' 등 100여편을 썼다. TV 시대의 개막과 함께 방송 드라마에도 진출해 '사모곡' '연화' '임금님의 첫사랑' '별당아씨' '풍운' '찬란한 여명' 등 방송 사극의 대표 작가로 활동했다.

1983년 '추동궁 마마'부터 1990년 '대원군'까지 8년 동안 11개 시즌이 방송된 MBC 드라마 '조선왕조 오백년' 시리즈가 그의 대표작이다. 제3편인 '설중매'에선 그동안 간신으로 알려졌던 한명회를 책략가로 재조명해 화제를 낳았고, 이 역을 맡은 배우 정진이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조선왕조실록이 완역되지도 않았던 시절 술을 싸들고 김용진씨 등 한학자를 찾아다니며 모르는 부분을 물었고, 9년에 걸쳐 실록 전편을 완독한 끝에 이 시리즈를 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최근의 사극에 대해 "역사의식 없이 재미만 추구하고, 좌파 사관 때문에 정사(正史)를 희화하고 부정적으로 뒤집어보려 해 폐해가 심각하다"고 번번이 질타했다. "픽션이라는 권한은 작가에게 주어진 자유방임이 아니며, 실제로 있었던 사건과 인물을 다룰 때는 당연히 사실(史實)이라는 제한이 주어지는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고려 말을 다룬 사극이라면 정몽주가 당연히 56세에 선죽교에서 조영규에게 살해당하는 것으로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소설 '한명회' '왕을 만든 여자', 수필 '조선사 나들이', 시집 '초당동 소나무떼', 연구서 '한국역사소설연구' '조선 지식인의 리더십' 등 100여권의 저서를 냈다.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장, 추계예대 문화예술경영대학원 석좌교수, 한국역사문학연구소 대표를 지냈다. 보관문화훈장(1998), 대한민국예술원상(1997), 대한민국문화예술상(1988) 등을 받았다. 유족은 부인 남옥각씨와 아들 종우씨, 딸 소영·소정씨 등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21일 오전 7시, (02)3410-6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