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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문학의 고향, 범어천 보름달에 위로받은 어머니의 詩心"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6. 4. 27. 21:17

"내 문학의 고향, 범어천 보름달에 위로받은 어머니의 詩心"

입력 : 2016.04.25 03:00

[정호승 시인, 대구 범어천서 詩碑 제막식·문학기행 펼치다]

수성구, 범어천 생태복원 마치며 그곳서 자란 정호승 기려
시비에 시 '수선화에게' 새겨

"대구는 내 시의 어머니다. 나는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지만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을 대구 범어천(泛魚川)에서 보냈다. 나는 범어천에서 자연을 배웠고, 인간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정호승(66) 시인이 지난 23~24일 대구에서 독자들과 함께 시비(詩碑) 제막식을 갖고 문학 기행을 펼쳤다. 그는 23일 이야기 경영연구소(대표 이훈)가 주최한 '이야기 탐방 열차'에 참가한 독자 40여 명과 함께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갔다. 그날 오후 3시 대구 수성구 범어천 광장에서 정호승 시비(詩碑) 제막식이 열렸다. 대구 수성구가 2009년부터 225억원을 들여 시작한 범어천 생태 복원 사업이 올해 마무리된 것을 기념하면서 범어천에서 자란 정호승 시인을 기리기로 한 것. 정호승 시인은 "내가 어릴 때 맑고 깊었던 범어천은 내 시의 고향이다"라며 "심하게 오염돼 버려진 범어천이 서울의 청계천처럼 되살아난 것을 보니 내 생명이 다시 태어난 느낌"이라고 말했다.

대구 범어천 광장에 시비(詩碑)를 세운 정호승 시인은 “이 시비는 제 것이 아니라 독자들의 마음이 세운 비석”이라고 말했다. 

 

대구 범어천 광장에 시비(詩碑)를 세운 정호승 시인은 “이 시비는 제 것이 아니라 독자들의 마음이 세운 비석”이라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시비에는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며 시작하는 시 '수선화에게'가 새겨졌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정 시인은 "이 시는 인간의 본질적 외로움을 노래한 것"이라며 "나는 잘 쓴 시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수많은 독자가 좋아한 덕분에 내 대표작이 됐다"고 말했다.

정호승 시인은 시비 제막식에서 올해 94세인 어머니(이태상)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범어천에 살 때 집안 형편이 어려웠다. 어머니는 남몰래 가계부로 쓰던 공책 귀퉁이에 몽당연필로 시를 쓰면서 그 고통을 견디셨다. 어머니는 범어천 돌다리를 건너서 교회에 갔다가 집에 돌아올 때 본 조각달이나 보름달을 가슴에 품으셨다. 나는 고등학생 때 우연히 부엌에서 어머니의 시작(詩作) 노트를 읽곤 깜짝 놀랐다. 나중에 어머니는 '사는 게 슬펐지만 그 달을 보고 시를 쓰면서 견딜 수 있었다'고 말씀하셨다."

어머니의 공책은 세월의 풍파 속에 사라졌지만 정 시인은 몇 해 전 어머니가 구술한 시 세 편을 받아 적은 적이 있다. '가네 가네 한 여인이/ 풍랑 속을 가네/ 비바람 세파 속을 헤치며 가네/ 기우뚱기우뚱 풍랑은 쳐도/ 그 여인 어머니 될 때/ 바람 잦으리'. 정 시인은 "어머니의 시와 마찬가지로 내 시도 삶의 고통을 견디기 위해 쓰인 것"이라고 말했다.

시비 제막식은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당선자(대구 수성갑)와 이진훈 대구 수성구청장을 비롯해 16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1970년대 학생운동 세대인 김부겸 당선자는 "우리 세대는 정호승 시인을 좋아한다"라며 "외로울 때는 서정시를 찾게 되고, 술 한 잔 걸치면 정호승의 시 '슬픔이 기쁨에게'를 읊조리곤 했다"고 말했다. 이진훈 수성구청장은 "정호승 시비를 세움으로써 대구 수성못에 있는 이상화 시인의 시비, 범어천 건너편의 가수 김광석의 거리를 잇는 문학 벨트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정호승 시인은 24일 독자들과 함께 대구 중구의 김광석 거리도 찾았다. 그는 "내가 쓴 시 중 60여편이 노래로 만들어졌다"라며 "특히 내 시 '부 치지 않은 편지'가 김광석의 마지막 노래가 됐다"고 말했다.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 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 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 보지 말고 그대 잘가라'('부치지 않은 편지' 뒷부분). 시인은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이 났을 때 쓴 작품이지만, 꼭 그런 배경 지식으로 이 시를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