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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作 53년 김종해 前시인협회장, 시집 '모두 허공이야' 펴내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6. 3. 28. 23:01

아우 잃은 슬픔, 담담히 속삭인 詩學

 

입력 : 2016.03.28 03:00

詩作 53년 김종해 前시인협회장, 시집 '모두 허공이야' 펴내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낸 김종해(75) 시인이 열한 번째 시집 '모두 허공이야'(북레시피)를 냈다. 올해로 시작(詩作) 53년을 맞은 시인의 원숙한 언어로 삶과 죽음의 순환을 허공에서 포착한 시집이다. 시인은 새 시집을 내며 "잠깐 사이 변하고 사라지는 것, 저 허공에 귀를 갖다대고 그 울림을 듣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김종해 시인은“허공은 보이지 않는 선(禪)”이라며 새 시집‘모두 허공이야’를 냈다 

 

김종해 시인은“허공은 보이지 않는 선(禪)”이라며 새 시집‘모두 허공이야’를 냈다. /전기병 기자

 

'이제 비로소 보이는구나/ 봄날 하루 허공 속의 문자'라며 시작한 시 '모두 허공이야'는 '하르르 하르르 떨어지는 벚꽃을 보면/ 이생의 슬픈 일마저 내 가슴에서 떠나는구나'라고 이어진다. 슬픈 추억마저 떨쳐낸 시인은 '귀가 먹먹하도록/ 눈송이처럼 떨어져 내리는 벚꽃을 보면/ 세상만사 줄을 놓고/ 나도 꽃잎 따라 낙하하고 싶구나'라고 한다.

그 '낙하'는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기에 역설적으로 '초월'을 향한 염원이 된다. 시인은 '바람을 타고/ 허공 중에 흩날리는/ 꽃잎 한 장 한 장마다/ 무슨 절규, 무슨 묵언 같기도 한/ 서로서로 뭐라고 소리치는 마지막 안부'를 듣는다. 허공의 울림을 듣는 것이다. 반세기 넘게 시를 써온 시인은 어느덧 '봄날 허공 중에 떠있는/ 내 귀에도 들리는구나'라며 지상과 영원 사이에 떠 있는 존재가 된다. 시집 해설을 쓴 평론가 이숭원은 "김종해의 시집 '모두 허공이야'는 기억의 자취가 갖는 무색의 바탕과 사건의 매듭에 응결된 애락(哀樂)의 형상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비행한다"고 풀이했다.

김종해 시인은 2년 전 타계한 친동생 김종철 시인을 향한 그리움으로 이번 시집의 일부를 꾸몄다. 아우도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냈다. 김종해 시인은 시 '호스피스 병동'에서 아우의 병실을 보며 '지상의 대합실은 슬픔으로 붐빈다'고 했다. '아무도 모르는 그곳/ 별보다 더 멀리/ 영원보다 더 오랜 곳/ 수많은 사람들의 행렬이/ 가도 또 가도 채워지지 않는 그곳'으로 아우는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형은 그런 아우를 보며 '며칠 후면 이곳에/ 또 다른 사람이 와서/ 하늘로 떠날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아우와의 이별을 '수많은 사람들의 행렬'로 인식하면서 슬픔을 견디려는 것이다.

시인은 건강을 지키기 위해 일주일에 네 번 피트니스센터에 간다. 그는 러닝머신에서 달리다 과거의 힘든 세월을 떠올리기도 한다. 시인은 '어제의 험로(險路)가 오늘은 각을 지우며 나타난다'고 했다 . 슬프고 분했던 과거도 기쁨과 즐거움에 섞여 나타나는 것이다. 시인은 러닝머신을 달리지만 '내가 날마다 밟았던 길이/ 오늘은 아래로 떨어지는 내리막길'이라며 '이별 연습하듯 나는 그 길을/ 천천히, 천천히 걸어내려가고 있다'고 했다. 고희(古稀)를 넘긴 시인의 언어는 숨찬 달리기 중에서도 내리막길을 걷듯이 나지막이 속삭이는 허공의 시학(詩學)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