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문화마을 소식들

[유종호 문학평론가, 에세이 '회상기-나의 1950년' 내]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6. 5. 5. 23:06

"우리 또래는 그해 여름, 억울하고 분했다"

입력 : 2016.05.05 11:15

[유종호 문학평론가, 에세이 '회상기-나의 1950년' 내]

"6·25 사변에 관해 영어로 된 문헌이나 소설은 참으로 다양한데, 정작 우리 쪽에서는 생생한 기록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생각하면서 안타까워했다. 전쟁 체험을 충실하게 기록해서 젊은 세대의 역사적 상상력 교육에 기여하는 게 우리 세대의 임무가 아닌가."

문학평론가 유종호(81·예술원 회원)씨가 에세이 '회상기(回想記)-나의 1950년'을 현대문학사에서 냈다. 고향인 충주에서 열여섯 살 때 겪은 6·25 발발부터 서울 수복까지 석 달 동안의 개인사를 되돌아보면서 한 편의 성장 소설 같은 에세이를 써냈다. 유씨가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을 표방하면서 이미 출간한 에세이집 '나의 해방 전후'와 '그 겨울 그리고 가을-나의 1951년'을 잇는 세 번째 책이다.
 

 

유종호씨는 “6·25를 겪은 우리 세대는 청년들에게 전쟁 경험을 전해줄 책임이 있어 회상기를 쓰게 됐다”고 말했다. /고운호 객원기자

 

16세 때 겪은 6·25 체험 기록
"청년들에 戰爭 알려줄 책임있어"

 

유씨는 "6월 26일에서야 전쟁이 터졌다는 것을 알았다"며 "우리 또래들은 '독일이 아니라 왜, 하필이면 여기서 3차대전을 일으키는가'라며 분하고 억울해했다"고 회상했다. 후퇴하던 국군이 처형한 좌익 인사들의 주검이나, 좌익 학생들에게 살해당한 교사라든지 육군사관학교 합격생이란 이유로 처형된 동네 양복점 주인의 아들 등 비명에 간 사람들이 등장한다. 동시에 소년 유종호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희극적 처세도 도드라진다. "인민군이 충주읍을 점령한 뒤 거리에 나온 남자들은 한결같이 허름한 옷차림에 검정 고무신을 여름 내내 신고 다녔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가진 게 없는 사람처럼 보여야 안전하다고 모두 생각했기 때문에 일어난 '하향 평준화'였다."

중학생 유종호의 부친은 충주중학교의 국어 교사였다. 부친을 찾아온 어느 좌파 교사가 한 터무니없는 말이 오래도록 소년 유종호의 기억에 남았다. 그 교사는 "미국 남북전쟁에서 북군이 이겼듯이 자고로 역사에서 남북이 싸워서 북이 진 적이 없다"며 북한의 승리를 장담했다. 하지만 소년 유종호는 "항상 북이 이긴다고 말할 수 있나? 러일전쟁에서는 북쪽의 러시아가 남쪽의 일본에 지지 않았는가"라며 의문을 품었다. 오늘날 유씨는 "그때 좌파 지식인들의 지적(知的) 수준이 소수를 제외하곤 대부분 그렇게 낮았다"며 혀를 찼다.
유씨와 동급생들은 전쟁통 속에서도 어김없이 쑥쑥 자랐다. 동급생 중 두 명이 인민군에 자원입대했다. 조숙한 빨갱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답답한 시골에서 일찍 벗어나고 싶은 사춘기 심리 때문이었다. 다른 친구는 미군이 공습할 때마다 주인이 없는 가게에 들어가서 물건을 훔치는 재미를 즐기다가 결국 파편에 맞아 죽었다.

유씨는 "그때는 괴물 같은 쌕쌕이(제트기)가 공습하는 게 가장 무서웠다"며 "미군 전투기가 집에서 가까운 다리를 폭격할 때 파편이 집안까지 날아들었지만 운 좋게 두꺼운 책에 맞아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소년 유종호는 영양 부족으로 결막염을 앓았지만 병원이 문을 닫아 치료를 받지 못했고, 실명(失明) 공포에 시달렸다. 소년의 입장에선 비명횡사 못지않게 실명의 두려움이 가혹한 고통이었다.

유씨의 인생관 형성에 전쟁이 미친 영향이 컸다. 나중에 영문학자로서 이화여대 영문과 교수와 연세대 특임교수를 지낸 유씨는 로마 시대를 다룬 영어책에서 '삶이란 병정 노릇 하는 것(Life is being a soldier)'이란 문장을 보곤 무릎을 쳤다고 한다. 유씨는 "세상살이를 수자리살이(변경을 지키는 병역)로 파악하고 받아들이라는 로마인의 스토이시즘을 요약한 말"이라며 "6·25를 겪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스토이시즘의 훈련으로 생각하면서 스스로 위로받는 것이 내 삶이 지향하는 소극적 세계 긍정의 방법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