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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회 이중섭미술賞 배병우]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6. 3. 16. 22:50

"난 사진과 미술을 떠도는 방랑자… 숲이 작업실이지"

입력 : 2016.03.15 03:00

[제28회 이중섭미술賞 배병우]

40년 외길… 사진가 최초 수상
밑둥치만 찍는 '소나무 사진가'… 한 폭의 수묵화처럼 韓國美 표현

"나는 사진과 미술, 집과 숲, 선생과 작가 사이를 떠도는 방랑자요. 이런 떠돌이 인생한테 상은 무슨 상. 허허."

파주 헤이리 작업실로 향하는 자유로 위에서 '소나무 사진가' 배병우(66)가 머쓱해 했다. 7년 동안 35만㎞를 누빈 덩치 큰 '애마(愛馬)' 운전대를 감싼 손이 두툼했다. 40년 넘게 이 투박한 손가락으로 새끼손톱보다 작은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찍고 또 찍었다. 그 땀이 모여 올 이중섭미술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1988년 상이 제정된 이후 사진가가 수상하기는 처음이다.

먹으로 그린 한 폭 수묵화 같은 배병우의 소나무 사진 작품 ‘SNM1A-201HC(2011년 작)’. 서로 기댄 소나무들이 살아 있는 인간 군상을 닮았다.  

 

먹으로 그린 한 폭 수묵화 같은 배병우의 소나무 사진 작품 ‘SNM1A-201HC(2011년 작)’. 서로 기댄 소나무들이 살아 있는 인간 군상을 닮았다. /배병우 제공

 

이름 석 자는 낯설어도 밑둥치만 찍은 배병우표 소나무 사진은 문외한이라도 봤음 직할 정도로 많이 알려져 있다. 수묵화 같은 사진으로 한국미를 표현해낸 그에겐 "국내에서 취미나 기록 차원에 머물러 있던 사진이 현대 예술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견인차 구실을 한 작가"(사진심리학자 신수진), "자연을 과장하거나 축소하지 않고 등신대(等身大)로 우리 앞에 보여주는 작가"(일본 평론가 지바 시게오)라는 평이 따른다.

작업실 입구에 들어섰다. 소나무 사진으로 둘러싸인 1층 가운데에 파란 탁구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사진 아래 신발장엔 운동화 24켤레가 빼곡하다. 고등학교 때 유도 선수까지 해 체력 하나는 자신 있단다.

그는 철저한 '현장주의자'다. 배병우의 진짜 작업실은 숲이요, 바다다. 그에게 붓인 카메라를 짊어지고 새벽녘 솔향 농익는 순간 마주하려 풍찬노숙(風餐露宿)마다치 않는다. 줌도, 디지털카메라도 쓰지 않는다. 대신 온몸 근육을 움직여 '수동 줌'을 한다. 몸의 정직성과 성실성을 신뢰한다. 생선장수였던 아버지의 삶이 보여준 가르침이다.

작업실에 탁구대를 놓고 체력을 키운다는 배병우 작가 사진 

 

작업실에 탁구대를 놓고 체력을 키운다는 배병우. /이태경 기자

 

여수 출신으로 바다를 앞마당 삼아 자랐다. 쪽빛 물감 푼 남해 바다 노 저으며 미감을 익혔다. 배병우는 "소나무가 아버지라면 바다는 어머니"라고 한다. 카메라를 만난 건 대학 1학년 때였다. 사진 전공하던 고향 선배가 사진을 권했다. 1970년 봄 카메라 둘러메고 처음 간 곳이 경남 통영. 이중섭이 한때 머물며 황금기를 누렸던 곳이다. 1979년부터는 제주의 풍광을 담기 시작했다. 제주 또한 이중섭의 숨결이 스친 땅이다.

출세작이요, 분신 같은 소나무 사진은 30대 초반 시작됐다.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커져 간송미술관 전시를 빠짐없이 갔어요. 거기서 겸재 정선 그림을 봤는데 겸재 그림 100점 중 99점에 소나무가 있었습니다. 우리 조상은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태어나고 소나무로 만든 관에 묻혀 땅으로 돌아갑니다. 소나무가 바로 한국인이었지요."

1983~1984년 2년 동안 설악산부터 한라산까지 전국의 소나무를 찾아 나섰다. 그중에서도 지금은 화재로 소실된 낙산사 소나무에 매료돼 소나무를 평생의 피사체로 삼기로 결심했다. "처음 소나무를 찍는다 했을 때 그 흔한 걸 왜 찍느냐, 미쳤다 했지요. 스승이었던 이대원 선생과 친분 있던 유덕형(서울예대) 총장 두 사람 빼고요."

1993년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소나무전'으로 '소나무 작가'라는 별칭을 얻게 됐지만, 미술가로서 배병우의 진가를 알아본 건 일본이었다. 1995년 일본 미토미술관, 1996년 도쿄 국립근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미술전에 초대됐다. "국내에선 미술계에서 사진을 거들떠보지 않을 때 일본에선 미술의 영역으로 내 작품을 봤다"고 했다.

한국의 감성으로 찍어낸 배병우의 사진은 사진 본고장 유럽에서도 인기다. 2005년 가수 엘턴 존이 '포토런던'에서 그의 사진을 1만5000파운드에 사갔고, 폴 매카트니가 배병우 사진을 사려고 들렀다가 팬들이 몰려와 피신한 사건도 있었다. 배병우는 "사진을 일컫는 '포토그래피'란 단어는 '빛으로 그리는 그림'이라는 뜻"이라며 "'빛 그림'으로 문화적 다리가 되는 게 나의 꿈이자 예술가로서의 책무"라고 했다.

[배병우(裵炳雨) 약력]

▲1950년 전남 여수 출생

▲1974년 홍익대 미대 응용미술학과 졸업

▲1978년 홍익대 미대 대학원 졸업

▲1981~2011년 서울예술대학 사진과 교수

▲1993년 예술의전당, 2009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개인전, 2015년 프랑스 샹보르 성(城)·생테티엔 현대미술관 개인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