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의 '이중생활'
입력 : 2016.03.26 03:00
도시락 배달·경비원·사우나 알바… 투잡·스리잡 뛰며 글 쓰는 작가들
소설가 박상(44)씨는 2006년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10년간 장편소설 '예테보리 쌍쌍바' 등 네 권을 냈다. 전업(專業)으로 글을 쓴 적은 거의 없다. 도시락·생수 배달, 야간 경비원, 세차원, 비행기에 화물 싣기 등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그는 "카드빚을 내서 돈이 떨어질 때까지 글을 쓰고 궁지에 몰리면 일을 해서 빚을 갚는 식으로 살았다"고 했다. "운전 배달을 하면 하루 12시간까지 일하면서 월 120만~130만원을 받는다. 야간 경비원 일을 할 땐 오후 6시에 출근해 다음 날 아침 9시 퇴근했는데 격일 근무하고 월 110만원 정도 벌었다."
박씨의 사례는 문단에서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5년 예술인 실태 조사'에 따르면 문학 분야 겸업 예술인 비율은 50%다. 문인(文人) 두 명 중 한 명이 '투잡족(族)'인 셈이다. 문학은 가장 가난한 예술이다. 1년간 예술 활동 수입 평균이 214만원으로 꼴찌, 전체 예술인 평균(1255만원)에 한참 못 미친다. 글쓰기만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하니 다른 일을 할 수밖에 없다.
"글 쓸 시간 있는 부업이 가장 인기"
2005년 등단한 박생강(39)씨는 '투잡'도 모자라 '스리잡'을 뛰고 있다. 본업은 소설가, 부업으로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TV 드라마 관련 칼럼을 연재한다. 그것만으로는 생계를 꾸리기 어려워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한다. 작년 2월부터 12월까지는 경기도의 한 피트니스클럽 사우나에서 운동복과 수건 정리하는 일을 했다. 박씨가 사우나 아르바이트를 택한 이유는 글 쓸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그는 "오후 2시에 출근해 밤 10시에 퇴근하면서 매달 150만원을 받았다. 하루 8시간 근무한 셈이지만 오전에는 글 쓰는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글 쓸 시간을 벌 수 있는 일자리'는 부업을 택하는 작가들의 최우선 고려사항이다. 소설가 전민식(51)씨는 "소설로 생활이 되려면 장편을 써야 한다. 1년에 절반은 소설만 써야 하는데 정규직으로 일하면 시간 확보가 힘들다"고 했다. 그는 2012년 1억원 고료 문학상에 당선되기 전까지 일용직 노동자와 대필 작가를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장르문학과 순문학을 넘나드는 소설가 조영주(37)씨는 14년 차 바리스타다. 조씨는 "오후 4시부터 밤 10시까지 파트타임으로 일한다. 경력이 꽤 됐지만 소설 쓰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일부러 파트타임을 고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설가 김혜나(34)씨는 2009년부터 요가 강사를 하고 있다. 매년 한두달은 강의를 쉬고 작품에만 몰입한다.
글쓰기 강의는 문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부업이다. 본업과 관련성이 높으면서 시간 대비 수입이 상대적으로 괜찮기 때문이다. 소설가 A(44)씨는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소설 쓰기 강의를 한다. 한 달에 8~10시간을 하면 40만~50만원을 벌 수 있다"고 했다.
1쇄도 안 팔리는 소설이 태반
작가들이 부업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책이 안 팔리기 때문이다. 중견 소설가 B(42)씨는 "소설을 내도 1쇄조차 소화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책이 잘 안 팔리니 출판사가 쉽게 계약을 하지 않는다. 신인들의 경우 책 한 권 못 내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한국 소설 판매 신장률은 2013년 -4.1%, 2014년 -18.6%, 2015년 -25.5%로 꾸준히 하락했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소설의 경우 특히 인기 외국 작가 몇 명에게 '쏠림 현상'이 심하다"고 말했다.
시 분야도 사정은 비슷하다. 시인이자 출판 편집자인 김민정(40)씨는 "8000원 정도 하는 시집 한 권이 팔리면 시인에게 인세 800원이 간다. 1만부 팔려도 800만원 들어온다. 시인이 시집 한 권 내는 데 빨라야 3년, 늦으면 5년 걸린다. 시로 밥 먹고 산다는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아르바이트에서 작품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지만 부업은 어디까지나 부업일 뿐. 문인들 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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