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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京城의 김소월, 2016년 스무살 여성에게...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6. 2. 6. 21:06

1925년 京城의 김소월, 2016년 스무살 여성에게...

 1925년 京城의 김소월, 2016년 스무살 여성에게 詩集 보내다

입력 : 2016.02.06 03:00 | 수정 : 2016.02.06 09:48

복고 드라마 처럼… 수십년전 초판본 디자인의 시집 인기

'詩의 시대 ' 다시 오나
드라마 등 복고 열풍에 SNS 통한 입소문…
1955년 윤동주 초판 등 옛 시집 그대로 재현

'시(詩)의 시대'가 돌아오는 것일까. 지난달 28일 교보문고가 발표한 1월 넷째 주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에 따르면 '소와다리' 출판사에서 내놓은 윤동주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간과 함께 종합 7위에 올랐다. 1955년 발행된 윤동주 서거 10주기 기념본 시집을 복제한 것이다.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김소월의 '진달래꽃' 1925년 초판본 복제본도 종합 62위를 차지했다.

이뿐 아니다. 종합 200위 안에 든 책들을 살펴보면 박준 시인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가 124위, 'SNS 시인'으로 잘 알려진 하상욱의 '시 읽는 밤'이 128위, '광수생각'의 만화가 박광수씨가 엮은 시선집 '문득 사람이 그리운 날엔 시를 읽는다'가 199위에 있다. 김현정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담당은 "올 1월 시 분야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36.3% 신장했다"면서 " '시를 읽지 않는 시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간 시가 팔리지 않았던 것을 감안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라고 말했다.

 

윤동주·김소월 옛 시집에 '응답'

복고(復古) 열풍과 SNS의 결합은 '시의 귀환'을 지탱하는 한 축이다. 윤동주·김소월 시집의 예가 대표적이다. '응답하라 1988'의 인기로 대변되는 옛 시절에 대한 향수와 호기심이 예스러운 수십 년 전 시집 디자인에 화답했다. 표지와 서체만 옛것과 똑같이 하고 헌 책 특유의 바스러질 것 같은 느낌, 쌉싸름한 종이 냄새는 배제한 새 책에 20~30대 여성들이 열광한다. 이 시집을 낸 소와다리 출판사 김동근(39) 대표는 "1월 15일부터 시집이 시중에서 판매되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5만부가량 팔렸다. 시집 구매자의 절반 이상이 20대, 그중 여성이 70% 정도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출간해 지금까지 3만5000부가량 팔렸다는 '진달래꽃'은 인터넷 서점에서 '경성부(京城付) 연건동 121번지 김정식'이라고 적힌 누런 소포 봉투에 담겨 판매된다. '김정식'은 소월의 본명. 초판본이 출간됐던 1925년 경성에서 시인으로부터 직접 소포를 받은 것 같은 상황을 연출한 것이다. 인스타그램에서 '경성에서 온 소포'라는 주제어를 검색하면 '인증 샷'과 시 구절을 곁들인 600여개의 게시물이 "드디어 받았다!"며 환호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에 짤막한 글귀를 보태 남에게 자신을 드러내려는 SNS의 속성과 잘 맞는 아이템인 셈. 윤동주와 소월 시집을 모두 구입했다는 김아현(34·회사원)씨는 "지적인 느낌을 주는 윤동주·김소월 시집을 그것도 초판본으로 읽는다는 사실이 나를 '뭔가 특별한 여자'로 보이게 하는 것 같아 '구매 인증 샷'을 찍어 SNS에 올릴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출판사의 백석 시집 '사슴' 초판본 복제본도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예약 판매를 시작한 첫날인 지난 3일 하루 만에 2500부 넘게 팔렸다. 1980년대 시집 복고 바람도 일고 있다. 1988년 대학생들이 끄적인 시를 모아 출간됐던 '슬픈 우리 젊은 날'도 최근 복각판으로 나왔다. 곽현정 인터넷 교보문고 시 분야 MD(상품기획자)는 "시집 분야 복고 열풍이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위로가 필요해 읽는다"

'시 바람'이 불 조짐은 지난해부터 있었다. 미디어의 힘이 한몫했다. 케이블 채널 OtvN의 책 소개 프로그램 '비밀 독서단'이 대표적이다. 심보선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는 2008년 4월 출간돼 지난해 11월까지 1만부가량 팔렸다. 그런데 11월 초 '비밀 독서단'에 소개되면서 한 달에 8000부 이상을 찍었다. 11월 둘째 주엔 인터넷 서점 예스24 종합 베스트 9위에 올랐다. 지금까지 판매량은 4만부가 넘는다. 박준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도 이 프로그램 덕을 봤다. 2012년 12월 출간돼 지난해 9월 말 방송 전까지 1만5000부가량 팔렸는데 방송 이후 지금까지 5만4000부 판매됐다. 김성광 예스24 문학 MD는 "방송을 통한 도서 노출은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방송에서 이례적으로 시를 다루었다는 부분은 주목할 만하다"고 말했다.

시는 문학 중에서도 보수적인 분야다. 짧은 문장의 함축적 의미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접했거나 교과서에서 보았던 시 위주로 읽힌다. 에세이·소설 시장은 20~30대 여성 독자들이 주도하지만 지갑을 열어 시집을 사는 사람들은 젊은 시절부터 좋아하는 시인의 시를 꾸준히 읽어 온 중·장년층이다. 한 시집 출판사 관계자는 "황동규, 마종기, 정현종, 김광규, 최승자, 이성복 등을 계속해서 읽어온 독자들이 그 시집들이 연 5000~1만부 팔리도록 하는 데 일조한다"고 했다.

이러한 '진입 장벽'의 틈새를 뚫고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 선집(選集)이다. 박광수씨가 동서양 시 100편을 골라 일러스트를 곁들인 '문득 사람이 그리운 날엔 시를 읽는다'는 2014년 12월 출간 이래 지금까지 7만5000부 팔렸다. 정호승 시선집 '수선화에게', 이해인 시선집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 등도 반응이 좋았다. 김현정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담당은 "시를 처음 읽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아는 시가 많은 '입문서'를 찾기 때문에 선집이 인기다. 음반으로 치자면 '컴필레이션 앨범'인 셈"이라고 했다. '공대생의 가슴을 울린 시 강의'라는 부제가 붙은 정재찬 한양대 교수의 시 해설서 '시를 잊은 그대에게'가 지난해 12월 예스24 종합 베스트 14위 까지 올라간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복고 열풍이건 TV와 SNS의 영향이건 이 시대가 시를 필요로 한다는 것만은 명백하다. 출판평론가 한미화씨는 이렇게 말한다. "시가 소리 내어 읽는 장르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음 둘 곳 없고 그 무엇으로도 위로받을 수 없을 때 좋은 시 한 편을 소리 내어 읽으면 온몸의 감각이 되살아나면서 청량한 위안감이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