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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作 40년… 천연색으로 드러낸 老年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6. 1. 18. 21:24

詩作 40년… 천연색으로 드러낸 老年

입력 : 2016.01.18 03:00

열한 번째 시집 펴낸 김광규
4년간 쓴 시, 한 권으로 엮어

김광규 시인
김광규(75·사진) 시인이 열한 번째 시집 '오른손이 아픈 날'(문학과 지성사)을 냈다. 지난 4년 동안 쓴 시를 한자리에 모았다. 1975년 등단한 시인은 새해 새 시집을 내며 "지난 40년간 시 쓰기를 게을리하지 않은 마음과는 달리 노쇠한 기운을 감출 수 없다"며 "흰 눈에 뒤덮인 노년의 일상을 이렇게 천연색으로 드러내다니 부끄럽지 않은가"라고 밝혔다.

김광규는 쉬운 언어로 평범한 일상에서 심오한 삶의 의미를 건져낸 시인으로 꼽혀왔다. 지금껏 그의 시는 소시민의 단조로운 일상을 구술하듯 묘사하며, 인생에 대한 짧은 우화를 제시하거나 해학이 담긴 풍속화를 보여주거나 시대의 불의를 에둘러 풍자하곤 했다. 새 시집에서도 그는 생의 황혼기에 접어들면서 겪은 사소한 일상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 그가 내놓은 '실버 문학'의 특징은 육체의 나이에 흔들리지 않는 시인의 자의식을 유지하면서 소박한 유머와 절제된 슬픔으로 노년의 나날을 그려낸다는 것이다.

그는 시 '쓰지 못한 유서'를 통해 시인은 유서를 쓰지 못한 채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큰 수술을 받기 전에 유서를 쓰다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 찢기를 거듭해 유서를 탈고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집마당에 날아든 새가 빵 부스러기를 향해 다가가는 것을 관찰하더니 '주위를 살피는 시간은 꽤 길고/ 먹이를 삼키는 순간은 아주 짧다'라고 썼다. 그러곤 '시 쓰기와 비슷하지 않은가'라고 해학적 시론(詩論)을 설파하기도 했다.

시인은 친구들을 먼 곳으로 떠나보낸 슬픔 앞에서도 감정을 절제했다. 시인의 부끄러움도 속속들이 알던 친구가 세상을 뜨자 '이제는 그가 알고 있던 몫까지/ 나 혼자 간직하게 되었다/ 내 몫의 부끄러움만 오히려 그만큼 늘어난 셈'이라며 '부끄러움이 속으로 쌓여/ 나이테를 늘리며'라고 고개를 숙였다.

김광규 시인은 시 '녹색 두리기둥'에서 버려진 전신주를 타고 오른 담쟁이덩굴을 보며 자화상을 그렸다. 그는 담쟁이덩굴이 전신주 꼭대기에서 더 이상 하늘로 오르지 못하자 '되돌아 내려오네'라고 했다. 회색 시멘트 전신주가 지금껏 주로 도시에서 산 시인의 일상이라면, 그 위를 타고 오른 녹색의 담쟁이덩굴은 시인의 이상(理想)이라고 볼 수 있 다. 회색과 녹색의 대비로 전신주와 담쟁이덩굴은 문명과 자연, 죽음과 삶의 갈등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시인은 현실에 주저앉아 절망과 회한에 빠지진 않았다. 오히려 '아래로 되돌아 내려오며/ 삶터 잘못 잡은 담쟁이덩굴이/ 아름다운 두리기둥을 만들어놓았네'라고 노래했다. 시인이 척박한 현실을 견디며 시작(詩作) 40년간 간직해온 꿈의 생명력을 예찬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