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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왜 全作圖錄 만드나" "僞作 논란 없앨 방안"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6. 1. 31. 11:35

"정부가 왜 全作圖錄 만드나" "僞作 논란 없앨 방안"

입력 : 2016.01.27 03:00 | 수정 : 2016.01.27 09:00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문체부의 미술가 전작도록 사업

작가 全作 연대 등 총망라… 첫 대상으로 이중섭·박수근
"진위 불분명한 작품 수록되면 또 다른 위작 논란 될 수도"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주 한국 대표 작가의 전작도록(全作圖錄)을 만들기로 하고 이중섭과 박수근을 첫 대상 작가로 선정했다. 전작도록은 특정 작가의 모든 작품에 대한 연대, 크기, 상태, 이력, 소장처 변동, 비평, 전시 기록 등을 기록한 자료. 한 작가의 예술 세계를 총망라하는 아카이브인 동시에 작품의 진위를 가늠할 수 있는 자료로 가치가 크다. 미술계에선 전작도록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정부가 나서서 세금을 써가며 해야 할 사업이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주먹구구식 '미술의 국정교과서'

전작도록 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가 2014년 9월 미술 시장 중장기 발전 방안의 하나로 추진한 사업이다. 미술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위작 문제가 빈번해지자 감정 기반 구축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였다. 해외에 우리 작가를 알리는 자료로 사용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최근 이우환 위작 논란이 가열되자 정부에선 전작도록 사업에 더 박차를 가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전작도록 사업 대상 작가로 선정된 이중섭의 대표작 ‘소’(1953년경). 서울미술관 소장.  

 

정부가 추진하는 전작도록 사업 대상 작가로 선정된 이중섭의 대표작 ‘소’(1953년경). 서울미술관 소장.

 

문체부 산하 기관인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관해 지난해 6월 미술계 전문가 5인으로 구성된 전작도록 사업 추진위원회가 꾸려졌다. 이 위원회에서 이중섭과 박수근을 첫 전작도록 대상 작가로 정했다.

이중섭의 경우 이중섭미술관과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가 공동으로 연구자 4명과 연구 보조원 2명이 참여한다. 박수근은 박수근미술관과 한국미술품감정협회가 공동으로 연구자 4명과 연구 보조원 2명이 참여한다. 한 작가당 연구 기간은 3년이며 작가당 3억원의 예산을 정부가 지원한다.

전작도록 사업에 국가가 나서 전액을 지원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지난 22~24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전작도록 관련 콘퍼런스 참석차 방한한 수잔 쿡 미국 카탈로그 레조네 학회 학술이사는 "미국에선 작가의 개인 재단이나 유족이 전작도록을 만든다. 정부에서 지원해 만든 사례는 없는 걸로 알고 있다. 특정 작가를 선정했을 때 반발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고 했다.

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협회 회장은 "국민의 세금을 투입해 '미술의 국정교과서'를 만드는 것과 같은 사업인데 소수의 전문가가 작가와 연구 기관을 선정하는 방식은 문제가 있다"고 했다. 이 회장은 "일회성 사업이 아니라면 범 미술계 차원에서 좀 더 많은 전문가를 참여시켜 수혜 작가를 선정해야 한다"고 했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미술계 스스로 전문적 감정과 체계적 연구를 못 하니 정부가 나선 격인데, 프로젝트에 관여한 전문가 중 일부는 문제를 초래한 당사자들"이라며 "우리 미술계의 악순환을 보여준다"고 했다.

또 다른 진위 논란 불씨 될 수 있어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1954년 작).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1954년 작).

 

 

"전작도록이 진위 감별의 기준이 아니라, 자칫 위작을 진작(眞作)으로 세탁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미술평론가 정준모씨는 "전작도록만 만들면 위작이 근절될 것처럼 말하는 건 어폐가 있다"며 "도록에 실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위작으로 판단할 수도 있고, 진위가 명쾌히 결론나지 않은 작품이 들어가 논란을 다시 부추길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전작도록이 있는 장욱진의 경우에도 도록에 실리지 않은 작품이 발견됐을 때 혼란이 있었다"고 했다. 한 감정 전문가는 "천경자 '미인도'처럼 아직도 진위 논란에 시달리는 작품이 있다"며 "이중섭이나 박수근 작품 중에도 그런 시비에 휩싸일 수 있는 작품이 꽤 있는데 정부가 왜 논란 당사자가 되려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전작도록의 저작권과 출판권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갖게 된다. 3년간 연구 기간이 끝나면 콘텐츠에 대한 책임 소관이 센터에 있다는 것이다. 한 연구자는 "우리는 3년간 계약을 맺는 것이기 때문에 계약 기간이 끝난 뒤 있을 오류 수정 등에 대해선 알 수 없다"고 했다. 드레스덴국립미술관의 게르하르트 리히터 아카이브 책임자인 디트마 엘거씨는 "2003부터 8년의 시간을 들여 2011년에 리히터의 첫 전작도록을 냈다. 이후 2년마다 추가로 도록을 낸다"며 "어떤 자료는 기다려야만 나오는 게 있다. 그래서 '시간'이 중요하다"고 했다. 충분한 시간과 체계적 검증이 필요하단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