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끝으로 찍어냈다… 추억도 그리움도 사랑도
입력 : 2015.12.03 03:00 | 수정 : 2015.12.03 06:36
- 현대화랑 '김환기의 선·면·점'展
국내 작품 중 경매 최고가 기록… '한국적 추상화' 김환기 열풍
전면점화 등 대표작 22점 전시
뉴욕서 죽기 직전 작품도 나와 "點으로 고국 향한 그리움 압축"
![김환기](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512/03/2015120300132_0.jpg)
'내가 그리는 선(線), 하늘 끝에 더 갔을까. 내가 찍은 점(點),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 눈을 감으면 환히 보이는 무지개보다 더 환해지는 우리 강산(江山).' (1970년 1월 27일 일기 중)
뉴욕 작업실에서 붓을 들면서도 수화(樹話) 김환기(1913~1974·작은 사진)의 머릿속엔 고국이 가득했다. 그의 점(點)은 윤동주의 별이었다. 점 하나에 추억과, 점 하나에 사랑과, 점 하나에 쓸쓸함과, 점 하나에 동경(憧憬)을 담아 그리고 또 그렸다. 네모로 둘러씌운 청회색 점들이 마침내 우주 같은 화면을 가득 채웠을 때 캔버스 뒷면에 대고 썼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6-IV-70 #166)'. 좀체 제목 붙이지 않던 이가 때로 편지로 고독을 나누던 선배 시인 김광섭(1905∼1977)의 시('저녁에') 한 구절을 제목으로 삼았다.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모든 영화(榮華)를 내려다 놓고 예술을 위해 뉴욕으로 간 지 7년 만인 1970년 국내에 처음 공개한 이 그림으로 그해 한 신문사가 주최한 '한국미술대상전' 대상을 차지했다. 이후 그림은 그 신문사 로비에 무방비로 걸려 있다가 이를 보다 못한 사위 윤형근 화백이 떼내 가져갔고 개인 소장가에게 넘어갔다.
이 그림이 오래간만에 관객을 다시 만나러 나왔다. 4일부터 내년 1월 10일까지 서울 사간동 현대화랑에서 열리는 '김환기의 선(線)·면(面)·점(點)'전에서다. 최근 김환기의 점화 '19-Ⅶ-71 #209'(1971년작)가 국내 작품 경매 최고가(47억2100만원)를 기록한 뒤라 더 관심이 간다. 이번에 나오는 작품은 1963년부터 사망한 1974년까지 만년(晩年)에 그린 전면점화(全面點畵), 메아리 시리즈 등 대표작 22점이다. 최고 경매가 기록 작품도 이때 만들어졌다.
뉴욕 작업실에서 붓을 들면서도 수화(樹話) 김환기(1913~1974·작은 사진)의 머릿속엔 고국이 가득했다. 그의 점(點)은 윤동주의 별이었다. 점 하나에 추억과, 점 하나에 사랑과, 점 하나에 쓸쓸함과, 점 하나에 동경(憧憬)을 담아 그리고 또 그렸다. 네모로 둘러씌운 청회색 점들이 마침내 우주 같은 화면을 가득 채웠을 때 캔버스 뒷면에 대고 썼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6-IV-70 #166)'. 좀체 제목 붙이지 않던 이가 때로 편지로 고독을 나누던 선배 시인 김광섭(1905∼1977)의 시('저녁에') 한 구절을 제목으로 삼았다.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모든 영화(榮華)를 내려다 놓고 예술을 위해 뉴욕으로 간 지 7년 만인 1970년 국내에 처음 공개한 이 그림으로 그해 한 신문사가 주최한 '한국미술대상전' 대상을 차지했다. 이후 그림은 그 신문사 로비에 무방비로 걸려 있다가 이를 보다 못한 사위 윤형근 화백이 떼내 가져갔고 개인 소장가에게 넘어갔다.
이 그림이 오래간만에 관객을 다시 만나러 나왔다. 4일부터 내년 1월 10일까지 서울 사간동 현대화랑에서 열리는 '김환기의 선(線)·면(面)·점(點)'전에서다. 최근 김환기의 점화 '19-Ⅶ-71 #209'(1971년작)가 국내 작품 경매 최고가(47억2100만원)를 기록한 뒤라 더 관심이 간다. 이번에 나오는 작품은 1963년부터 사망한 1974년까지 만년(晩年)에 그린 전면점화(全面點畵), 메아리 시리즈 등 대표작 22점이다. 최고 경매가 기록 작품도 이때 만들어졌다.
![청회색 점을 화면 가득 찍고 네모로 둘러씌운 김환기의 대표적 전면점화(全面點畵)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6-IV-70 #166)' (1970년작). 일련번호는 1970년 4월 16일에 만든 작품이란 표시.](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512/03/2015120300132_1.jpg)
수화는 한국적 서정주의를 바탕으로 한 우리 추상미술의 선구자다. 1913년 전남 신안 안좌도 부농의 아들로 태어나 니혼(日本)대에서 미술을 배웠다. 귀국 후 실물을 그대로 그리는 사실주의 화풍을 거부하고 조형적인 재해석을 추구하는 '신(新)사실파'에 동참했다. 1950년대 일찍이 파리에서 세계 미술을 경험했고, 1963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초청받은 직후 예술 세계를 넓히겠다는 일념으로 뉴욕에 갔다. 홍익대 미대학장,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등 미술가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영예를 훌훌 내던졌다.
해외에서 활동하며 고국을 향한 구심력은 더 강해졌다. "예술이란 강력한 민족의 노래다. 우리나라를 떠나 봄으로써 더 많은 우리나라를 알고 표현했다"고 나직이 말했다. 파리에선 달, 학, 매화, 백자 같은 전통 소재를 그렸지만, 뉴욕에선 형태를 완벽히 해체했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김환기의 선, 면, 점은 화면 속에서 춤추는 조형의 유희가 아니라 산, 강, 달, 마을, 매화, 학, 백자 달항아리 등의 조형적 압축"이라 하고, 김영나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낯선 곳에서 접한 새로운 문화를 '우리 것'의 뿌리 위에 접목한 선구자"라 한다. 감정을 배제한 서양의 미니멀아트와는 전혀 달리 감정을 농축한 것이 김환기의 예술이란 얘기다.
전시장에 걸린 수화의 그림은 소우주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림 속 점은 영겁의 세월 속, 작은 티끌에 지나지 않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교통사고로 척추 수술을 받고 병원 침대에서 낙상해 뇌진탕으로 이국 땅에서 허망하게 죽기 직전 남긴 잿빛 묵점(墨點) 점화는 보는 것만으로도 숙연하다. 사진으로는 원화(原畵)의 참맛을 느낄 수 없다지만, 김환기의 경우 더 그렇다. 육안으로 봐야 손끝으로 피 토하듯 찍어낸 수화의 그리움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02)2287-3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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