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윤정 선임기자 yjhan@kyunghyang.com
▲ ‘우국’ ‘전설’ 수차례 대조
나도 내 기억 못 믿을 상황
쇠스랑으로 발등 찍고 싶어
▲ 내게 문학은 목숨같은 것
써서 항아리에 묻더라도
내 책상으로 돌아갈 것
22일 만난 작가 신경숙씨는 불면으로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벼락 속에 서 있는 것 같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실감이 안 난다”며 “나는 그냥 작가이지 완벽한 사람이 아니고, 겁도 두려움도 많은 편이다. 비판과 비난에 귀를 기울이면 소설을 못 쓸까봐 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경기도의 한 수도원에 머물고 있다.
- ‘전설’과 ‘우국’이 비슷하다는 지적은 이응준씨 이전에도 문학평론가 정문순씨가 지난 2000년 계간 ‘문예중앙’에서 이미 제기했습니다. 당시 그 문제를 알고 있었나요.
“나는 1985년 22살 때 ‘문예중앙’으로 등단한 사람이에요. 2000년에 그런 글이 실렸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그러나 읽지는 않았어요. 그때도 내가 읽지도 않은 작품(‘우국’)을 갖고 그럴(표절할) 리가 있나,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때 읽었으면 좋았을 텐데. 당시는 너무나 여러 가지 것으로 공격을 받고 있던 때라서 정말 어떤 글도 읽지 않았어요. 읽으면 너무 아프고 글을 못 쓸 것 같았으니까.”
- 평론은 그렇다 쳐도, 두 소설이 비슷하다는데 ‘우국’을 읽을 마음도 안 생겼나요.
“‘우국’이란 소설이 있다는 건 그때 알았어요. 1980년대 말에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는 읽었어요. 한 작가 선배가 늘 이야기하던 작품이라서. 그런데 ‘우국’은 아무리 기억을 뒤적여봐도 안 읽은 것 같은데, 지금은 내 기억을 믿지 못하겠어요. 어떤 작품을 반쯤 읽다 말고 이건 전에 읽었던 작품이구나, 하는 식이니까. 어떤 영화는 끝까지 다 본 후에야 이거 본 영화구나, 깨달을 때가 있어요.”
- ‘전설’은 어떻게 썼나요.
“지금 사직동은 아파트로 변했지만 21년 전에는 한옥들 사이로 적산가옥이 있었어요. 당시 내 친구가 그곳에 살고 있어서 자주 다녔는데, 한 초로의 아주머니가 낡은 집 나무 밑에 그냥 앉아 있거나 책을 읽는 걸 여러 번 봤어요. 아, 저이는 누구를 기다리는구나, 전쟁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고 있구나, 그런 상상을 하면서 쓰게 됐어요. 오래전부터 전쟁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현대적으로 읽히는 소설을 언젠가는 써봐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쓴 작품이에요. 여기(수도원) 와서 네 번쯤 읽은 것 같아요. 손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읽었어요. 어느 자식(소설)은 태어나면서부터 멀리 가서 제 역할을 다 하는데, ‘전설’은 태어나면서 나한테 비수를 들이대더니 21년이 지나 나를 찌르는구나, 이제 내 품으로 돌아오라고 해서 가슴에 묻어야 할 것 같아요.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질문으로 남겠죠.”
- 표절 의혹이 제기됐을 때 ‘우국’이란 작품을 모른다, 작가에게 상처가 되는 일이니 대응하지 않겠다고 한 발언이 독자들의 분노를 샀는데요.
“올 3월부터 제주도 산간지역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2010) 이후 오랫동안 작품을 못 썼고, 올해는 등단 30년 되는 해니까 꼭 새 책을 쓰고 싶어서 집을 떠나 있었어요. 핀란드에서 <엄마를 부탁해> 번역본이 나와 그곳을 방문했다 돌아와서 다시 제주도로 가려는데, 창비에서 연락이 왔어요. 오래전에 한 번 겪은 일이어서 15년 전과 같은 생각으로 모르는 일이라고 답했어요. 그런 소리를 들으면 어느 작가인들…. 내가 나에 대한 비판의 글을 많이 읽지 않았고 못 읽어요. (비판이) 아주 많아요. 어떻게 읽겠어요. 그걸 읽고 감당할 자신이 없고, 기분만 나빠지고, 어떤 글은 뼛속까지 속이 상하는데요.”
- ‘전설’ 이외에도 <기차는 7시에 떠나네>(장편), ‘작별인사’(단편) 등 1990년대 말의 작품과 심지어 최근작인 <엄마를 부탁해>나 <어디선가…>에 이르기까지 무차별적으로 표절 의혹이 이는 상황입니다.
“나는 16살에 시골집을 떠났기 때문에 엄마를 아는 것 같지만, 잘 모른다고 늘 생각해왔어요. 그것이 표절인가요. 내용이 비슷하다는 루이제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를 중학교 다닐 때 읽기는 한 것 같아요. 책을 읽고 소설을 쓰는 게 내 일이에요. 그런데 어떤 소설을 읽다보면, 어머 어쩌면 이렇게 나랑 생각이 똑같을까 싶은 대목이 나와요. 심지어 에피소드도 똑같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동서고금을 떠나 사람들의 생각은 비슷하구나, 반가운 기분마저 들어요. 나는 문학하고 나하고 따로따로 생각해본 적이 한번도 없어요. 글 쓰는 게 너무 자연스럽게 시작된 일이고, 어떤 목적도 없었어요. 쓰고 읽고 또 쓰고… 어렸을 때부터 노트에다 썼어요. 책 속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좋았어요. 문학은 뭔가 모자라고 결핍되고 못난 사람들 편이었어요. 약하고 두려운 마음,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 편이었던 게 좋았어요. 나 같은 사람들이 소설 속에서는 주인공이구나, 그런 생각. 아무도 쳐다봐주지 않고 고통스러운 사람들이 내 소설 속에 들어와 자기 빛깔을 갖고, 읽는 사람들한테 빛을 던지고, ‘나도 이런데’라고 말하는 상황, 그런 게 내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썼습니다.”
- ‘무거운 새의 발자국’ ‘풍금이 있던 자리’ 등 1990년대 초반에 쓴 단편 제목이 시 구절에서 따왔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시에서 제목을 따오는 일은 당시 문단에서 종종 있던 일입니다. 시인이 제 친구였던 경우도 있고. 서로 흐뭇하게 얘기하면서 양해했던 일이지요. 만약 그게 잘못된 일이었다면, 혹시 섭섭한 마음을 가졌다면 제가 잘못 살아온 것 같아요. 이름이 알려지게 되면서 늘 살얼음판 디디듯 조심스럽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못했나봐요.”
- 이번 사태에 대해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처음에는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나, 그렇게 생각했는데 모두 제 탓입니다. 습지가 없는데 왕골이 돋아나겠어요. 문장을 대조해 보면서 이응준씨가 느닷없이 왜 이랬을까, 의문을 안 갖기로 했어요. 대조해 보는 순간 나도 그걸 믿을 수가 없었어요. ‘전설’을 읽고 또 읽으면서 쇠스랑이 있으면 내 발등을 찍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 많은 독서, 특히 필사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외워진 문장을 자신의 문장으로 오인하는 전이의 가능성도 제기됐는데요.
“글쎄요. 어떤 소설을 한 권 쓰면, 그것은 온전히 그 사람만의 생각인가요? 내가 태어나서 엄마를 만나는 순간부터 엄마는 내 안에 들어와서 말과 행동에 영향을 주잖아요. 인간이 겪는 일들이 완전히 다르지는 않은데, 같은 이야기라도 내가 쓰면 어떻게 다르게 보일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내 글쓰기였어요. 그리고 나만의 문장을 쓰려고 늘 노력해왔어요. 쓰고 고치기를 반복해요. 오랜 세월이 지나 책 표지가 떨어지고 너덜너덜해도, 문장을 읽어보면 신경숙 소설이구나 싶은 글을 쓰려고 했어요.”
- 일부에서는 절필 권유도 있습니다.
“나한테는 첫 책부터 따라 읽어온 독자들이 있어요. 22살에 등단해 30대, 40대를 그들과 함께 보내고 50대가 됐어요. 비난을 자주 받아왔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그것도 내 몫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어요. 15년 전, 그런 구설과 비난에 처했을 때는 특히 더 그랬던 것 같아요. 한 편의 비판글이 나오면, 그걸 읽는 대신 내 책상으로 돌아가서 한 편의 소설을 더 썼어요. 나는 작가다, 작품으로 말하겠다, 대응하는 것보다 작품을 쓰는 것이 내 할 일이라고 생각했죠. 난 문학에 은혜를 입고 문학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비난을 받고 자꾸 자기검열을 하면서 앞으로 무슨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들지만 절필은 못할 것 같아요. 르 클레지오가 말했듯이 작가에게는 모국어가 조국이에요. 나는 모국어를 떠나서는 살 수 없어요. 내 땅이 문학이기 때문에 땅에 넘어지면 땅을 짚고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 독자들도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입장 표명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만든 것은 모두 내 탓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내 소설이 착하기만 하고 현실을 수용한다는 비판도 많이 받았어요.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아름답다는 것을 내 문장으로 증거하고 싶었고, 내가 느끼는 온기를 함께 나누는 사람이 내 독자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작가로서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습니까.
“지난 30년 동안 장편소설 7편, 중·단편 48편(200자 원고지 2만장 분량)을 썼어요. 부지런히 썼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많지도 않은 것 같아요. 같은 소설을 읽고 여러 사람이 모여 이야기할 때, 서로 다른 소설을 읽은 것처럼 이야기하는 작품을 쓰고 싶어요. 내려놓을 수 있는 건 다 내려놓겠어요. 밖에 나가지 않고 내 책상으로 돌아가겠어요. 발표하지 않고 항아리에 넣어두더라도.”
나도 내 기억 못 믿을 상황
쇠스랑으로 발등 찍고 싶어
▲ 내게 문학은 목숨같은 것
써서 항아리에 묻더라도
내 책상으로 돌아갈 것
22일 만난 작가 신경숙씨는 불면으로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벼락 속에 서 있는 것 같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실감이 안 난다”며 “나는 그냥 작가이지 완벽한 사람이 아니고, 겁도 두려움도 많은 편이다. 비판과 비난에 귀를 기울이면 소설을 못 쓸까봐 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경기도의 한 수도원에 머물고 있다.
표절 논란에 휩싸인 소설가 신경숙씨는 22일 경향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내려놓을 수 있는 건 다 내려놓겠다”고 밝혔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 ‘전설’과 ‘우국’이 비슷하다는 지적은 이응준씨 이전에도 문학평론가 정문순씨가 지난 2000년 계간 ‘문예중앙’에서 이미 제기했습니다. 당시 그 문제를 알고 있었나요.
“나는 1985년 22살 때 ‘문예중앙’으로 등단한 사람이에요. 2000년에 그런 글이 실렸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그러나 읽지는 않았어요. 그때도 내가 읽지도 않은 작품(‘우국’)을 갖고 그럴(표절할) 리가 있나,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때 읽었으면 좋았을 텐데. 당시는 너무나 여러 가지 것으로 공격을 받고 있던 때라서 정말 어떤 글도 읽지 않았어요. 읽으면 너무 아프고 글을 못 쓸 것 같았으니까.”
- 평론은 그렇다 쳐도, 두 소설이 비슷하다는데 ‘우국’을 읽을 마음도 안 생겼나요.
“‘우국’이란 소설이 있다는 건 그때 알았어요. 1980년대 말에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는 읽었어요. 한 작가 선배가 늘 이야기하던 작품이라서. 그런데 ‘우국’은 아무리 기억을 뒤적여봐도 안 읽은 것 같은데, 지금은 내 기억을 믿지 못하겠어요. 어떤 작품을 반쯤 읽다 말고 이건 전에 읽었던 작품이구나, 하는 식이니까. 어떤 영화는 끝까지 다 본 후에야 이거 본 영화구나, 깨달을 때가 있어요.”
- ‘전설’은 어떻게 썼나요.
“지금 사직동은 아파트로 변했지만 21년 전에는 한옥들 사이로 적산가옥이 있었어요. 당시 내 친구가 그곳에 살고 있어서 자주 다녔는데, 한 초로의 아주머니가 낡은 집 나무 밑에 그냥 앉아 있거나 책을 읽는 걸 여러 번 봤어요. 아, 저이는 누구를 기다리는구나, 전쟁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고 있구나, 그런 상상을 하면서 쓰게 됐어요. 오래전부터 전쟁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현대적으로 읽히는 소설을 언젠가는 써봐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쓴 작품이에요. 여기(수도원) 와서 네 번쯤 읽은 것 같아요. 손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읽었어요. 어느 자식(소설)은 태어나면서부터 멀리 가서 제 역할을 다 하는데, ‘전설’은 태어나면서 나한테 비수를 들이대더니 21년이 지나 나를 찌르는구나, 이제 내 품으로 돌아오라고 해서 가슴에 묻어야 할 것 같아요.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질문으로 남겠죠.”
- 표절 의혹이 제기됐을 때 ‘우국’이란 작품을 모른다, 작가에게 상처가 되는 일이니 대응하지 않겠다고 한 발언이 독자들의 분노를 샀는데요.
“올 3월부터 제주도 산간지역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2010) 이후 오랫동안 작품을 못 썼고, 올해는 등단 30년 되는 해니까 꼭 새 책을 쓰고 싶어서 집을 떠나 있었어요. 핀란드에서 <엄마를 부탁해> 번역본이 나와 그곳을 방문했다 돌아와서 다시 제주도로 가려는데, 창비에서 연락이 왔어요. 오래전에 한 번 겪은 일이어서 15년 전과 같은 생각으로 모르는 일이라고 답했어요. 그런 소리를 들으면 어느 작가인들…. 내가 나에 대한 비판의 글을 많이 읽지 않았고 못 읽어요. (비판이) 아주 많아요. 어떻게 읽겠어요. 그걸 읽고 감당할 자신이 없고, 기분만 나빠지고, 어떤 글은 뼛속까지 속이 상하는데요.”
- ‘전설’ 이외에도 <기차는 7시에 떠나네>(장편), ‘작별인사’(단편) 등 1990년대 말의 작품과 심지어 최근작인 <엄마를 부탁해>나 <어디선가…>에 이르기까지 무차별적으로 표절 의혹이 이는 상황입니다.
“나는 16살에 시골집을 떠났기 때문에 엄마를 아는 것 같지만, 잘 모른다고 늘 생각해왔어요. 그것이 표절인가요. 내용이 비슷하다는 루이제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를 중학교 다닐 때 읽기는 한 것 같아요. 책을 읽고 소설을 쓰는 게 내 일이에요. 그런데 어떤 소설을 읽다보면, 어머 어쩌면 이렇게 나랑 생각이 똑같을까 싶은 대목이 나와요. 심지어 에피소드도 똑같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동서고금을 떠나 사람들의 생각은 비슷하구나, 반가운 기분마저 들어요. 나는 문학하고 나하고 따로따로 생각해본 적이 한번도 없어요. 글 쓰는 게 너무 자연스럽게 시작된 일이고, 어떤 목적도 없었어요. 쓰고 읽고 또 쓰고… 어렸을 때부터 노트에다 썼어요. 책 속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좋았어요. 문학은 뭔가 모자라고 결핍되고 못난 사람들 편이었어요. 약하고 두려운 마음,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 편이었던 게 좋았어요. 나 같은 사람들이 소설 속에서는 주인공이구나, 그런 생각. 아무도 쳐다봐주지 않고 고통스러운 사람들이 내 소설 속에 들어와 자기 빛깔을 갖고, 읽는 사람들한테 빛을 던지고, ‘나도 이런데’라고 말하는 상황, 그런 게 내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썼습니다.”
- ‘무거운 새의 발자국’ ‘풍금이 있던 자리’ 등 1990년대 초반에 쓴 단편 제목이 시 구절에서 따왔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시에서 제목을 따오는 일은 당시 문단에서 종종 있던 일입니다. 시인이 제 친구였던 경우도 있고. 서로 흐뭇하게 얘기하면서 양해했던 일이지요. 만약 그게 잘못된 일이었다면, 혹시 섭섭한 마음을 가졌다면 제가 잘못 살아온 것 같아요. 이름이 알려지게 되면서 늘 살얼음판 디디듯 조심스럽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못했나봐요.”
- 이번 사태에 대해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처음에는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나, 그렇게 생각했는데 모두 제 탓입니다. 습지가 없는데 왕골이 돋아나겠어요. 문장을 대조해 보면서 이응준씨가 느닷없이 왜 이랬을까, 의문을 안 갖기로 했어요. 대조해 보는 순간 나도 그걸 믿을 수가 없었어요. ‘전설’을 읽고 또 읽으면서 쇠스랑이 있으면 내 발등을 찍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 많은 독서, 특히 필사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외워진 문장을 자신의 문장으로 오인하는 전이의 가능성도 제기됐는데요.
“글쎄요. 어떤 소설을 한 권 쓰면, 그것은 온전히 그 사람만의 생각인가요? 내가 태어나서 엄마를 만나는 순간부터 엄마는 내 안에 들어와서 말과 행동에 영향을 주잖아요. 인간이 겪는 일들이 완전히 다르지는 않은데, 같은 이야기라도 내가 쓰면 어떻게 다르게 보일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내 글쓰기였어요. 그리고 나만의 문장을 쓰려고 늘 노력해왔어요. 쓰고 고치기를 반복해요. 오랜 세월이 지나 책 표지가 떨어지고 너덜너덜해도, 문장을 읽어보면 신경숙 소설이구나 싶은 글을 쓰려고 했어요.”
- 일부에서는 절필 권유도 있습니다.
“나한테는 첫 책부터 따라 읽어온 독자들이 있어요. 22살에 등단해 30대, 40대를 그들과 함께 보내고 50대가 됐어요. 비난을 자주 받아왔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그것도 내 몫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어요. 15년 전, 그런 구설과 비난에 처했을 때는 특히 더 그랬던 것 같아요. 한 편의 비판글이 나오면, 그걸 읽는 대신 내 책상으로 돌아가서 한 편의 소설을 더 썼어요. 나는 작가다, 작품으로 말하겠다, 대응하는 것보다 작품을 쓰는 것이 내 할 일이라고 생각했죠. 난 문학에 은혜를 입고 문학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비난을 받고 자꾸 자기검열을 하면서 앞으로 무슨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들지만 절필은 못할 것 같아요. 르 클레지오가 말했듯이 작가에게는 모국어가 조국이에요. 나는 모국어를 떠나서는 살 수 없어요. 내 땅이 문학이기 때문에 땅에 넘어지면 땅을 짚고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 독자들도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입장 표명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만든 것은 모두 내 탓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내 소설이 착하기만 하고 현실을 수용한다는 비판도 많이 받았어요.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아름답다는 것을 내 문장으로 증거하고 싶었고, 내가 느끼는 온기를 함께 나누는 사람이 내 독자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30년 동안 장편소설 7편, 중·단편 48편(200자 원고지 2만장 분량)을 썼어요. 부지런히 썼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많지도 않은 것 같아요. 같은 소설을 읽고 여러 사람이 모여 이야기할 때, 서로 다른 소설을 읽은 것처럼 이야기하는 작품을 쓰고 싶어요. 내려놓을 수 있는 건 다 내려놓겠어요. 밖에 나가지 않고 내 책상으로 돌아가겠어요. 발표하지 않고 항아리에 넣어두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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