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3월 양구공립보통학교를 졸업 후 미술공부(독학).”
박수근(1914~65)이 만년에 손글씨로 쓴 이력서다. 독학의 화가 지망생에게는 고향의 마사토(磨沙土), 둥글둥글한 능선, 아낙네들이 모이는 빨래터 등 모든 곳이 선생이었다. 강원도 양구군 정림리 박수근 생가 터에 2002년 개관한 박수근미술관(명예관장 박인숙)은 박수근 예술의 고향이다. 이종호(1957~2014) 건축가가 “박수근의 그림처럼 대지에 미술관을 새겨나가겠다”며 10년 넘게 매만진 흔적이 화강암과 마사토의 마티에르(질감)로 남았다.
이 ‘국민화가’의 기념관에는, 개관 1년 뒤 컬렉터 조재진(1946~2007)씨가 내놓은 박수근의 60년대 유화 ‘빈 수레’를 시작으로 미술인들의 따뜻한 손길이 이어졌다. 갤러리현대 박명자 회장은 박수근의 유화 ‘굴비’(1962)를 비롯해 이중섭·김환기·도상봉·최영림 등 동시대 화가 37명의 55점을 기증했다. 유족들은 박수근이 어린 시절부터 모아온 명화 화보 스크랩, 신문·잡지 자료, 스케치 등 고이 간직해 온 자료를 공개했다. 독학의 화가 박수근의 예술적 토양을 엿볼 수 있다.
◆박수근의 시계, 박수근의 시간=이곳의 시계는 박수근에 맞춰져 있다. 지난해 탄생 100주년 기념전 ‘미석(美石) 박수근’에 이어 올해 50주기 추모 특별전 ‘뿌리깊은 나무, 박수근,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를 마련했다. 박수근의 유화 11점, 수채화 8점, 박수근과 함께한 우리 근현대 미술가들의 작품 100여 점을 비롯해 총 367점이 전시됐다.
생전에 박수근은 “예술은 고양이 눈빛처럼 쉽사리 변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깊게 한 세계를 깊이 파고드는 것이다”라고 썼다. 화가를 꿈꿨던 이 청년은 가정 형편으로 초등학교 과정인 양구공립보통학교 졸업 후 더 이상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되자 시골 마을에서 롤모델인 밀레뿐 아니라 피카소·브라크·레제의 원색 화보를 구해다 모사했다. 연화문 수막새, 수렵문 와전 등에 새겨진 우리 전통 무늬를 탁본으로 뜨기도 했다. “화강암에 새겨진 마애불 같은 느낌”(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이라는 그의 그림은 청년기에 연구했던 전통 무늬의 질감, 이 지역 화강암이 마모된 마사토에 뿌리박고 있다.
박수근미술관 엄선미 학예연구실장은 “선생의 소박한 아마추어리즘은 미련하리만치 끈질기고 지난했다. 미술이라는 깊고 넓은 세계에 대해 스스로 익히고 터득해야 했기에 정규 과정을 거친 이들보다 오히려 더 방대한 예술세계를 접하려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박수근은 18세에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면서 고학을 해서라도 일본에 유학갈 꿈을 꿨으나 어머니가 유방암으로 사망하면서 이 또한 좌절됐다.
미술평론가 이경성(1919∼2009)은 65년 ‘코리아저널’에 “그는 보는 이의 무장을 해제시키는 지혜가 있다. 그의 작품을 채우고 있는 어떠한 것도, 모조리 변하고 지겨움의 늪을 헤어나지 못해서 시대의 변화를 추구하는 세태에 휩쓸리지 않는다. 그는 시간의 한계를 넘어서 산 사람이었다”라고 썼다. 박수근은 자신이 태어나고 잠든 곳, 고향 양구에서 시간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양구=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박수근 50주기를 추모하는 두 전시
①‘뿌리깊은 나무, 박수근,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강원도 양구군 정림리 박수근미술관. 8월 30일까지. 월요일 휴관. 성인 3000원, 초·중·고생 2000원. 033-480-2655.
② 중앙일보 창간 50주년, 박수근 50주기 특별전 ‘국민화가 박수근’=28일까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이간수문전시장. 월요일 휴관. 성인 8000원, 초·중·고생 6000원. 02-2153-0046.
박수근(1914~65)이 만년에 손글씨로 쓴 이력서다. 독학의 화가 지망생에게는 고향의 마사토(磨沙土), 둥글둥글한 능선, 아낙네들이 모이는 빨래터 등 모든 곳이 선생이었다. 강원도 양구군 정림리 박수근 생가 터에 2002년 개관한 박수근미술관(명예관장 박인숙)은 박수근 예술의 고향이다. 이종호(1957~2014) 건축가가 “박수근의 그림처럼 대지에 미술관을 새겨나가겠다”며 10년 넘게 매만진 흔적이 화강암과 마사토의 마티에르(질감)로 남았다.
이 ‘국민화가’의 기념관에는, 개관 1년 뒤 컬렉터 조재진(1946~2007)씨가 내놓은 박수근의 60년대 유화 ‘빈 수레’를 시작으로 미술인들의 따뜻한 손길이 이어졌다. 갤러리현대 박명자 회장은 박수근의 유화 ‘굴비’(1962)를 비롯해 이중섭·김환기·도상봉·최영림 등 동시대 화가 37명의 55점을 기증했다. 유족들은 박수근이 어린 시절부터 모아온 명화 화보 스크랩, 신문·잡지 자료, 스케치 등 고이 간직해 온 자료를 공개했다. 독학의 화가 박수근의 예술적 토양을 엿볼 수 있다.
박수근 동상이 내려다보고 있는 강원도 양구군 정림리 박수근미술관. [중앙포토]
양구군(군수 전창범)은 박수근미술관 개관에 이어 2004년 부속 현대미술관과 창작스튜디오, 2014년 박수근 파빌리온을 건립하며 미술관 일대를 ‘박수근 마을’로 조성했다. 경기도 포천 동신교회 묘지에 썼던 그의 무덤도 2004년 미술관 뒷동산으로 이장했다. 박수근이 태어나 스물한 살까지 살았고, 이제는 잠들어 있는 이곳은 복원된 가짜 생가, 혹은 죽은 기념관과 다르다. 창작 스튜디오에서는 김세중·김형곤씨 등 젊은 미술가들이 ‘제2의 박수근’을 꿈꾸며 그림을 그리고, 지난해부터 전국에서 초·중·고생이 사생대회에 참여하는 살아 숨쉬는 곳이다.
◆박수근의 시계, 박수근의 시간=이곳의 시계는 박수근에 맞춰져 있다. 지난해 탄생 100주년 기념전 ‘미석(美石) 박수근’에 이어 올해 50주기 추모 특별전 ‘뿌리깊은 나무, 박수근,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를 마련했다. 박수근의 유화 11점, 수채화 8점, 박수근과 함께한 우리 근현대 미술가들의 작품 100여 점을 비롯해 총 367점이 전시됐다.
생전에 박수근은 “예술은 고양이 눈빛처럼 쉽사리 변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깊게 한 세계를 깊이 파고드는 것이다”라고 썼다. 화가를 꿈꿨던 이 청년은 가정 형편으로 초등학교 과정인 양구공립보통학교 졸업 후 더 이상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되자 시골 마을에서 롤모델인 밀레뿐 아니라 피카소·브라크·레제의 원색 화보를 구해다 모사했다. 연화문 수막새, 수렵문 와전 등에 새겨진 우리 전통 무늬를 탁본으로 뜨기도 했다. “화강암에 새겨진 마애불 같은 느낌”(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이라는 그의 그림은 청년기에 연구했던 전통 무늬의 질감, 이 지역 화강암이 마모된 마사토에 뿌리박고 있다.
박수근미술관 엄선미 학예연구실장은 “선생의 소박한 아마추어리즘은 미련하리만치 끈질기고 지난했다. 미술이라는 깊고 넓은 세계에 대해 스스로 익히고 터득해야 했기에 정규 과정을 거친 이들보다 오히려 더 방대한 예술세계를 접하려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박수근은 18세에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면서 고학을 해서라도 일본에 유학갈 꿈을 꿨으나 어머니가 유방암으로 사망하면서 이 또한 좌절됐다.
미술평론가 이경성(1919∼2009)은 65년 ‘코리아저널’에 “그는 보는 이의 무장을 해제시키는 지혜가 있다. 그의 작품을 채우고 있는 어떠한 것도, 모조리 변하고 지겨움의 늪을 헤어나지 못해서 시대의 변화를 추구하는 세태에 휩쓸리지 않는다. 그는 시간의 한계를 넘어서 산 사람이었다”라고 썼다. 박수근은 자신이 태어나고 잠든 곳, 고향 양구에서 시간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양구=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박수근 50주기를 추모하는 두 전시
①‘뿌리깊은 나무, 박수근,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강원도 양구군 정림리 박수근미술관. 8월 30일까지. 월요일 휴관. 성인 3000원, 초·중·고생 2000원. 033-480-2655.
② 중앙일보 창간 50주년, 박수근 50주기 특별전 ‘국민화가 박수근’=28일까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이간수문전시장. 월요일 휴관. 성인 8000원, 초·중·고생 6000원. 02-2153-00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