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week& 지면을 담당하는 후배가 제주에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김영갑 사진작가 추모 10주기 기획기사를 준비중이라 했습니다. 열일 제쳐 두고 가고 싶었지만 결국 못 갔습니다. 가지 못한 일, 마음 언저리에 얹혔습니다.
대신 사진을 찾아 봤습니다. 아련합니다. 어제 일도 제대로 기억을 못하고 삽니다만, 사실 10년이 지나도록 곱씹는 이름이 ‘김영갑’입니다. 사진쟁이로 살면서 난관에 부딪히거나 슬럼프에 빠질 때마다 그를 떠올립니다. ‘사진쟁이는 사진으로 얘기할 뿐’이라는 그의 일침, 이내 정신을 가다듬게 만듭니다.
한 술의 먹거리보다, 한 몸 뉘일 보금자리보다, 한 컷의 사진을 택했던 사람입니다. 사진으로만 보고 듣고 느꼈던 ‘사진바라기’, 사진이 곧 그의 삶이었습니다.
2002년 7월, 한창 갤러리를 만들고 있다고 했습니다. 루게릭으로 온몸이 굳어 가는데 자신의 이름을 건 갤러리를 낼 것이라 했습니다. 제정신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폐교가 된 삼달 초등학교로 오라 했습니다. 제주 관광 지도에 표시조차 없었습니다. 학교마저 폐교가 된 인적 드문 마을, 물어물어 찾아가며 하필이면 여길까 생각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운동장 빼곡하게 황토 묻은 돌들이 무덤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막 보수를 끝낸 교실 입구엔 곰팡이와 시멘트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한숨만 나왔습니다. 과연 예까지 누가 찾아올까 싶었습니다. 한 가닥의 희망조차 뵈지 않았습니다. 대뜸 미쳤냐는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볕에 그을려 새까만 그는 그래도 웃었습니다. 담배에 찌든 누런 이빨과 핏발 선 눈자위가 외려 하얗다고 느껴질 정도로 까만 그 남자, 사진이나 보고 이야기하라는 듯 실실 웃기만 했습니다.
혀를 차며 못이기는 척 이끌려 교실로 들어섰습니다. 정식 오픈 전이지만 사진은 이미 벽에 걸려 있었습니다. 어둑한 회색 벽, 침침한 조명을 받은 사진들을 본 순간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검게 탄 남자, 돌무더기, 곰팡이와 시멘트 냄새는 순간 사라지고 사진만 보였습니다. 그 남자가 왜 그토록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갤러리를 만들고자 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거기엔 그냥 사진이 아니라 ‘삽시간의 황홀’이 있었습니다.
먹장구름을 비집고 내려온 한줄기 햇살이, 바람에 뉘인 들꽃이, 폭풍우에 휘도는 억새가 이야기를 하는 듯합니다. 마치 사진이 스스로 살아서 '삽시간의 황홀'을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습니다.
더 이상 미쳤냐는 말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그 남자가 바라본 것은 굳어가는 몸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이름을 건 갤러리, ‘두모악’이라는 희망이었습니다.
2003년 ‘사람이 희망이다’는 주제로 취재를 할 때 입니다. 이 주제를 받자마자 떠오른 이름이 ‘김영갑’이었습니다. 제주로 갔습니다. 이른 새벽 곤히 잠든 그를 깨웠습니다. 새벽 바다를 보러 가자고 했습니다. 함께 가자며 눈을 떴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정신은 일어났지만 몸이 쉽사리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온몸을 주물렀습니다. 앙상한 뼈마디에 겨우 흔적만 남은 근육을 깨우는데 한 시간은 족히 걸렸습니다.
어렵사리 찾은 바다를 마주한 사진쟁이, 그 바다가 그리웠나 봅니다. 한 줄기 눈물이 시나브로 바다를 향합니다.
“애들처럼 울고 그래요. 우는 사진을 신문에 확 박아 버릴까요.”
“이 놈아 우는 게 아니고 바람이 눈에 들어 간겨”라며 씩 웃습니다.
웃음을 만들어 주는 근육마저 굳은 터라 맘껏 웃지도 못합니다만, 마비되어가는 근육 하나하나를 일깨워 만든 미소, 그 미소 안에서 사람의 희망을 봤습니다.
2005년 5월 29일, 김영갑 작가가 스러졌습니다. 제주의 바람처럼 살다가 그 바람처럼 떠나버렸습니다. 온몸이 굳어가는 고통 속에서도 그토록 갤러리에 집착한 이유를 이제는 압니다. 그의 삶이었던 사진들로 하여금 언제나처럼 제주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한국관광공사는 지난 4월에 ‘한국관광 100선’으로 ‘두모악’을 선정했습니다. 그의 사진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한국관광 100선’에 포함된 것입니다.
언젠가 제주 올레의 서명숙 이사장은 제주 토박이인 자신도 몰랐던 진짜 제주가 거기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구태여 길을 돌려 ‘두모악’을 올레 3코스에 포함시켰습니다. 진짜 제주를 올레꾼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겁니다.
그가 떠난 지 10년입니다. 삶과 맞바꾼 그의 사진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여태도 남았습니다.
5월 30일부터 12월 31일까지 10주기 추모 '오름'사진전이 ‘두모악’에서 열립니다. 6월 27일부터 9월 22일까지 서울 ‘아라아트센터’에서도 추모 사진전이 열립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대신 사진을 찾아 봤습니다. 아련합니다. 어제 일도 제대로 기억을 못하고 삽니다만, 사실 10년이 지나도록 곱씹는 이름이 ‘김영갑’입니다. 사진쟁이로 살면서 난관에 부딪히거나 슬럼프에 빠질 때마다 그를 떠올립니다. ‘사진쟁이는 사진으로 얘기할 뿐’이라는 그의 일침, 이내 정신을 가다듬게 만듭니다.
한 술의 먹거리보다, 한 몸 뉘일 보금자리보다, 한 컷의 사진을 택했던 사람입니다. 사진으로만 보고 듣고 느꼈던 ‘사진바라기’, 사진이 곧 그의 삶이었습니다.
2002년 7월, 한창 갤러리를 만들고 있다고 했습니다. 루게릭으로 온몸이 굳어 가는데 자신의 이름을 건 갤러리를 낼 것이라 했습니다. 제정신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폐교가 된 삼달 초등학교로 오라 했습니다. 제주 관광 지도에 표시조차 없었습니다. 학교마저 폐교가 된 인적 드문 마을, 물어물어 찾아가며 하필이면 여길까 생각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운동장 빼곡하게 황토 묻은 돌들이 무덤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막 보수를 끝낸 교실 입구엔 곰팡이와 시멘트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한숨만 나왔습니다. 과연 예까지 누가 찾아올까 싶었습니다. 한 가닥의 희망조차 뵈지 않았습니다. 대뜸 미쳤냐는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볕에 그을려 새까만 그는 그래도 웃었습니다. 담배에 찌든 누런 이빨과 핏발 선 눈자위가 외려 하얗다고 느껴질 정도로 까만 그 남자, 사진이나 보고 이야기하라는 듯 실실 웃기만 했습니다.
혀를 차며 못이기는 척 이끌려 교실로 들어섰습니다. 정식 오픈 전이지만 사진은 이미 벽에 걸려 있었습니다. 어둑한 회색 벽, 침침한 조명을 받은 사진들을 본 순간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검게 탄 남자, 돌무더기, 곰팡이와 시멘트 냄새는 순간 사라지고 사진만 보였습니다. 그 남자가 왜 그토록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갤러리를 만들고자 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거기엔 그냥 사진이 아니라 ‘삽시간의 황홀’이 있었습니다.
먹장구름을 비집고 내려온 한줄기 햇살이, 바람에 뉘인 들꽃이, 폭풍우에 휘도는 억새가 이야기를 하는 듯합니다. 마치 사진이 스스로 살아서 '삽시간의 황홀'을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습니다.
더 이상 미쳤냐는 말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그 남자가 바라본 것은 굳어가는 몸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이름을 건 갤러리, ‘두모악’이라는 희망이었습니다.
2003년 ‘사람이 희망이다’는 주제로 취재를 할 때 입니다. 이 주제를 받자마자 떠오른 이름이 ‘김영갑’이었습니다. 제주로 갔습니다. 이른 새벽 곤히 잠든 그를 깨웠습니다. 새벽 바다를 보러 가자고 했습니다. 함께 가자며 눈을 떴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정신은 일어났지만 몸이 쉽사리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온몸을 주물렀습니다. 앙상한 뼈마디에 겨우 흔적만 남은 근육을 깨우는데 한 시간은 족히 걸렸습니다.
어렵사리 찾은 바다를 마주한 사진쟁이, 그 바다가 그리웠나 봅니다. 한 줄기 눈물이 시나브로 바다를 향합니다.
“애들처럼 울고 그래요. 우는 사진을 신문에 확 박아 버릴까요.”
“이 놈아 우는 게 아니고 바람이 눈에 들어 간겨”라며 씩 웃습니다.
웃음을 만들어 주는 근육마저 굳은 터라 맘껏 웃지도 못합니다만, 마비되어가는 근육 하나하나를 일깨워 만든 미소, 그 미소 안에서 사람의 희망을 봤습니다.
2005년 5월 29일, 김영갑 작가가 스러졌습니다. 제주의 바람처럼 살다가 그 바람처럼 떠나버렸습니다. 온몸이 굳어가는 고통 속에서도 그토록 갤러리에 집착한 이유를 이제는 압니다. 그의 삶이었던 사진들로 하여금 언제나처럼 제주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한국관광공사는 지난 4월에 ‘한국관광 100선’으로 ‘두모악’을 선정했습니다. 그의 사진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한국관광 100선’에 포함된 것입니다.
언젠가 제주 올레의 서명숙 이사장은 제주 토박이인 자신도 몰랐던 진짜 제주가 거기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구태여 길을 돌려 ‘두모악’을 올레 3코스에 포함시켰습니다. 진짜 제주를 올레꾼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겁니다.
그가 떠난 지 10년입니다. 삶과 맞바꾼 그의 사진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여태도 남았습니다.
5월 30일부터 12월 31일까지 10주기 추모 '오름'사진전이 ‘두모악’에서 열립니다. 6월 27일부터 9월 22일까지 서울 ‘아라아트센터’에서도 추모 사진전이 열립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