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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각사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2. 7. 17. 00:06

은각사 隱刻寺

 

김솔

 

 

 

 


 

   마침내 그들은 모두 13살이 되었으므로 머지않아 흉악범이나 마약중독자가 되어 교도소 운동장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이고 햇볕을 나누어 받으면서 13살 이전의 삶을 반추할 것이다. 4월의 벚꽃처럼 타락한 자신들에게는 조금의 연민도 허락하지 않고, 어둠을 빛의 원단으로 여기는 대신 빛이 어둠의 상처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리고 죽은 자들의 관습과 언어에 따라 자신들이 저지른 죄악의 무게만큼 나이를 먹고 늙어 갈 것이다. 그러니 가장 오래 살아남은 자가 용서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지게 될 것이다. 섣부른 자살이 순수의 시절로 그들을 되돌릴 수는 없다. 허영과도 같은 아련한 추억 때문에 그들은 안락한 죽음 속에서 영원히 봉인되지도 못할 것이다. 이승을 떠나고 있는 그들에게 가족들이 뿌려 주는 임종의 물(末期の水)도 벚나무의 뿌리에 닿아 꽃을 날리고 씨앗을 떨어뜨렸을 터이므로. 그래서 그들은 악수조차 나누지 않은 채 기차에 올랐던 것이다. 그래도 매년 벚꽃이 필 때쯤이면 손바닥의 손금을 따라 12살의 그들이 잠시 교토(京都)로 돌아오는 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야마다 다로(山田太郞)는 아마노하시다테(天橋立) 사진이 인쇄되어 있는 엽서를 보여주었다. 육지와 섬 사이에 놓인 긴 모래톱은 소나무들로 빼곡히 덮여 있어서 송충이처럼 보였다. 그는 엽서를 바닥에 내려놓고 뒤돌아서 허리를 굽히더니 가랑이 사이로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사진 속의 바다가 하늘로 바뀌고 모래톱은 다리(橋)가 되었다. 그는 다리를 향해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곧 그는 자신이 어머니의 가랑이를 가로질러 간 음모 속에서 길을 잃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자신의 무덤이 어머니의 자궁 속에 근종처럼 자라날 걸 생각하니 다리에서 힘이 빠져 그는 바닥에 꼬꾸라지고 말았다. 풍장을 하고 있는 시체처럼 꼼짝하지 않고 누워서 소녀소년들의 얼굴을 차례로 올려다보며 별자리를 떠올렸다. 그보다 앞서,

 

   야마다 하나꼬(山田花子)의 붉은 손톱 끝에서 자라난 불씨는 잠시 동안 바람에 날려 허공을 헤매다가 문고판 『금각사(金閣寺)』 속으로 숨어들었다. 이윽고 정오의 결투를 알리는 매캐한 안개가 펄럭이고 신성한 황소들이 투우사보다 먼저 나타나 객석까지 뛰어들었다. 회중은 혼비백산하여 허리띠처럼 두르고 있던 연대감을 풀어헤친 채 제각각 시서늘한 그늘 속으로 몸을 피하였건만, 금각사 승려들과 방화범과 소설가는 끝내 접이식문 같은 책갈피를 빠져나오지 못하였고, 소란을 참다 못 한 하나꼬가 책 위로 번지는 붉은 상처를 발로 짓이겼을 땐 이미 다섯 번째 『금각사』는 복원할 수 없을 정도로 소실된 뒤였다. 하지만 일단 출간된 책은 교졸을 막론하고 또 다른 책의 존재 근거가 되며 무한 복제되기 때문에, 한 권의 책을 없애는 것보단 차라리 하나의 종족을 없애는 게 더 쉽다는 사실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던 그녀에겐 조금의 죄책감도 깃들지 않았다. 그녀의 “그래도 살아야지.”라는 말을 끝으로 우리는 그들이 되었고 그들은 더 이상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호즈가와(保津川)의 물길을 따라 아라시야마(嵐山)를 빠져나가는 벚꽃들을 내려다보면서 우리는 담배를 나누어 피우고, 오줌을 갈기고, 하나꼬의 치마 속을 차례대로 들여다보다가, 다섯 번째 문고판 『금각사』의 갈피를 가르고 게걸스레 문장을 핥았다. 야마다 시로(山田四郞)가 울면서, 이별한 뒤 홀로 청승맞게 늙어 가느니 차라리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처럼 한꺼번에 할복자살하자고 제안하였으나, 야마다 다로는 13살짜리에겐 죽음에 이를 수 있을 만큼 깊게 칼을 쑤셔 넣을 근육과 의지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우리는 차례대로 야마다 하나꼬와 프렌치키스를 하면서 그녀의 영혼에 닿을 수 있도록 자신의 혀를 최대한 깊게 밀어 넣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호린지(法輪寺)를 빠져나온 우리는 비틀스의 〈Here comes the Sun〉을 〈Here comes the Moon〉으로 바꾸어 흥얼거리면서 도게츠교(渡月橋)를 한 줄로 건넜다. 그리고 다리 끝에서 우리는 야마다 다로의 신호에 맞춰 일제히 뒤돌아보았는데, 그렇게 하면 13살 분량의 지혜가 모조리 사라진다는 전설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지혜는 인간의 한계를 규정짓는 전기 울타리와 같다. 쾌락을 경험할수록 고통도 함께 무거워질 뿐이다. 불고불락(不苦不樂)의 세계는 늙은 중들의 머릿속에 있지 않고 13살 이전의 소녀소년들 팔다리 속에만 있다. 눈동자가 쏟아질 정도로 힘을 주어 다리 반대쪽의 세상을 노려보았으나, 먼 곳부터 투명해지고 있는 허공은 고작 우리가 마지막 허물을 벗고 있는 물잠자리에 불과하다는 비애감만을 확인시켜 주었다. 새벽녘의 달처럼 크게 낙심한 우리는 다리 밑으로 내려가 각자의 목구멍에 집게손가락을 밀어 넣고 선악과처럼 삼킨 마메모치(豆餠)를 게워내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보살 중 13번째로 태어나 허공과도 같은 지혜를 관장하게 된 허공장보살(虛空藏菩薩)로부터 지혜를 전수받는 의식에 부모 없이 참석한 우리는, 인간의 위선을 고발하기 위해 신이 발명한 원숭이들처럼 몰려다니면서, 13살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부모의 손을 꼭 잡은 채 사탕이나 빨고 있는 아이들을 위협하고, 그들의 부모들에게서 동전을 구걸하고, 담배나 맥주를 사서 차례로 돌렸다. 원래의 계획은 허공장보살이 혼자 남겨지는 순간을 기다려 그것의 목을 잘라내는 것이었으나, 인산인해 속에서 계획을 변경하여, 야마다 사부로(山田三郞)가 그것을 향해 자신의 인분이 담긴 비닐봉투를 투척하였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자신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했던 외국 노부부에게 그는 격렬히 항의하였는데, 그들이 사과의 표시로 건넨 초콜릿을 하마터면 “Thanks very much.”라고 말하면서 받을 뻔하였다. 야마다 하나꼬가 그의 뺨을 갈겼다. “우린 일본원숭이가 아냐.” 하지만 그보다 앞서,

 

   우리가 원숭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데 단 한 올의 머리카락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에티오피아의 마른 계곡에서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인류학자들은 원숭이로부터 태어난 최초의 부모를 여전히 찾고 있다. 하지만 태어나기도 전에 고아였던 우리는 결코 부모를 찾지 않을 것이다. 야마다 하나꼬는 13살에 초경을 시작할 것이고 누구든 콘돔 없이 그녀를 강간한다면 기꺼이 어머니가 되어 제 아비에게 복수할 테러리스트를 길러낼 것이다. 야마다 지로(山田二郞)는 자신과 성교한 모든 여자들에게서 인간 대신 원숭이가 태어날까 봐 몹시 두렵다. 자신의 아이들을 동물원이나 서커스단에 팔아서 큰돈을 벌 수도 있겠지만, 괴기한 소식을 접한 에티오피아의 인류학자들이 일본으로 찾아와 산 채로 그를 해부하려 할 것이고, 그의 몸속에서 발견된 인류의 추악한 역사를 은폐하기 위해 그는 에티오피아의 사막 한가운데 영원히 격리될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야마다 하루꼬의 팬티나 혀를 늘 경계하고 있으며 13살이 되면 스스로 거세를 할 작정이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악귀를 막고 수명을 늘려 준다는 마메모치를 하나씩 나누어 주면서 야마다 다로는 죽음을 앞둔 패장답게 말했다. 13살이 되면 우리에겐 더 이상 혁명이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그때부터 가장 어리석은 선택만을 하게 될 것이고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끊임없이 거짓말을 발명해야 할 것이며, 혼자 포기하는 대신 함께 멸망하는 길을 택하게 될 것이라고, 그래도 삶에서 하나씩 잃는 것들은 죽음으로부터 한꺼번에 얻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허공장보살의 목을 자르고 호린지를 불태우지 못하면 훗날 세상 사람들에게 진 빚을 갚느라 세상을 더욱 타락시키게 될 것이라고. 마메모치를 삼킨 우리는 도게츠교 앞에서 마지막 가족사진을 찍었다. 불타고 있는 호린지를 뒤로 한 채 도게츠교 끝에서 13살 이후의 삶에 전혀 필요하지 않은 지혜를 폐기한 뒤에도 여전히 가족만큼은 기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아라시야마행 전차는 이층집들 사이를 스치듯이 통과했다. 그러면 철길을 마주하고 있는 집들이 번갈아 심호흡을 하고 - 주기적으로 지나가는 전차는 우리 몸속의 폐를 부풀리는 횡격막과 같다. - 그 안에서 흰개미처럼 살고 있는 사람들도 하루 분량의 생명을 얻는다. 철길은 생의 안팎을 규정하는 행정구역선이다. 밥 냄새는 어둠보다도 엷다. 담배연기로 허기를 채우고 덜 마른 속옷으로 무장한 채 가족들은 제각각 길을 떠난다. 그들에겐 충동 대신 습관만 발견된다. 희망은 죽은 자들의 몸속에서 자라는 암세포일 뿐이다. 그때 경적이 울리고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저 먼 이층 건물에서 손을 흔들며, 13살이 된 뒤도 생의 조건들은 전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소리치는 누군가가 깨어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누구도 우리를 잉태해서는 안 되었다. 잉태했더라도 자궁 밖의 빛에 닿기 전에 낙태시켜야 했다. 낳았더라도 13살이 되기 전에 갖은 방법으로 죽였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지금 우리가 우스꽝스러운 유카타(浴衣)를 입고, 멀미와 악취를 참아 가면서, 아무도 깨뜨릴 수 없이 단단한 망각의 자비를 찾아, 전차를 타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교토역 앞에서도 우리는 폴라로이드 사진을 남겼다. 야마다 시로가 필름을 너무 빨리 흔드는 바람에, 검은 진흙 바닥 속에 시체처럼 감추어져 있던 우리의 몸뚱이는 갑작스런 수압 변화를 견뎌내지 못하고 일그러지거나 뒤섞인 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설상가상으로 교토역마저 빙하처럼 녹아내리고 있어서 일주일쯤 지나면 사진 속 배경을 알아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성마른 야마다 지로가 야마다 시로의 멱살을 쥐어 잡고 허공의 높이를 가늠하고 있는 동안 야마다 다로는 그 사진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미소를 지었다. “추억이 가족을 서로 닮아 가게 만들지.” 그의 말뜻을 가장 먼저 알아들은 야마다 하루꼬가 사진을 건네받았고 야마다 사부로는 우리가 와이키키 해변으로 피서 나온 백인들 같다고 거들었다. 그제야 야마다 지로는 자신의 행동을 돌이킬 수 없는 과거로 치부하였고, 야마다 시로는 아폴로 13호의 우주인처럼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야마다 지로와 야마다 시로, 야마다 하루꼬와 야마다 사부로로 두 팀을 만들어 우리는 교토역 주변을 한 시간가량 떠돌며 돈을 마련하였다. 야마다 다로는 대장의 위엄을 해치는 모든 임무에서 제외되었다. 야마다 하루꼬가 속옷을 벗어던지고 허벅지가 드러나도록 유카타 끝자락을 들어 올려 행인들의 발걸음을 세우는 동안 야마다 사부로는 호루라기를 손에 쥐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반면 야마다 지로와 야마다 시로는 중산층 아이들을 뒤란으로 끌고 가 갖은 욕설과 과장된 발길질로 위협하였으나 겨우 동전 몇 개를 얻어내었을 뿐이다. 한 시간 뒤 우리는 회전초밥 집에 들어가 마지막 만찬을 즐겼다. 야마다 하루꼬를 사랑하는 야마다 사부로는 겨우 두 개의 모래접시를 비운 다음 자신의 몫을 그녀에게 양보하였다. 피사의 탑처럼 위태롭게 쌓인 접시들을 배경으로 우리는 또 한 장의 사진을 남겼는데, 다행히 야마다 시로가 초밥 접시에 한눈을 팔고 있었기 때문에 성공적으로 인화할 수 있었다. 종업원에게 팁까지 쥐어주고 의기양양하게 식당을 나온 우리는 정작 매표소 앞에서 단 한 푼의 동전을 찾기 위해 서로의 몸을 샅샅이 뒤져야 했고 하는 수 없이 아마노하시다테 대신 아라시야마로 향하는 전차 티켓을 사야 했다. 야마다 지로는 손목시계를 팔아 담배와 라이터를 마련하였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우리는 교토역 앞에서 야마다 다로를 기다리며 야마다 하루꼬의 문고판 『금각사』를 번갈아 읽었다. 하지만 불안감 때문에 문장 사이를 쉽게 건너가지 못했다. 글을 배우지 못한 야마다 시로에겐 고통스런 시간이었다. 하지만 언덕에 앉아 자신이 불태운 『금각사』를 내려다보면서 “살아야지.”라고 중얼거리는 주인공의 독백을 이해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작가의 탐미주의는 극우주의자들이 쉽게 빠져드는 자폐증상과 다르지 않다. 책 밖에서 실제로 금각사를 불태운 청년과 인터뷰한 정신과의사는 사회적 반감이나 미에 대한 증오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는 유명해지고 싶었거나 생을 비관했던 것도 아니라, 그저 간절히 죽고 싶었고, 스스로를 죽일 용기가 없어 제 주변 세상을 함께 파괴하려고 했던 것이리라. 반면 우리는 각자의 목적대로 살기 위해 기꺼이 방화를 시도하였다. 그리고 실패한 혁명 때문에 목숨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약속한 시간까지 야마다 다로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유카타를 입은 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하룻밤의 일탈을 용서받고 13살의 평범한 소녀소년으로 살아가면 그만이다. 나중에 흉악범이나 마약중독자가 되어 마주치더라도 운명을 탓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멀리서 환하게 웃으며 흰 비닐봉투를 들고 다가오는 야마다 다로를 가장 먼저 발견한 야마다 시로는 자신의 운명이 적혀 있다는 별의 존재를 뱃사람처럼 믿게 되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교토에서 가장 맛있는 마메모치를 만드는 떡집 앞은 제 아이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려는 부모들로 아침부터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야마다 다로는 그들과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고개를 숙인 채 제일 앞줄까지 헤엄쳐 가서 여자에게 말했다. “제가 오늘 13살이 되었는데 축하해 줄 어머니가 없어요. 오늘만 제 어머니가 되어 주시겠어요? 아니면 마메모치 5개만 사주신다면 내일쯤 감옥에 들어가 얌전히 있을게요.” 그녀가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 사이 야마다 다로는 그녀의 손에 들린 흰 비닐봉투를 낚아채어 그곳을 빠져나왔다. 앞사람과의 간격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것 말고는 별로 할 일이 없었던 부모들 중 단 한 명도 줄을 벗어나 어린 장 발장(Jean Valjean)을 뒤쫓지 않은 까닭도 제 아이들의 무병장수를 바랐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보다 앞서,

 

   야마다 시로를 제외한 우리는 혁명의 완전한 실패를 인정한 다음 급히 은각사(銀閣寺)에서 빠져나왔다. 벚꽃에서 시작되는 안개 때문이라도 불씨가 쉽게 자라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간과한 게 큰 실수였다. 이른 아침부터 정류소 앞에 늘어서 있는 택시들 속에는 훗날 결정적인 증언으로 우리를 불리하게 만들 목격자들이 숨어 있었으므로 우리는 유카타 무리를 이루지 않고 한 명씩 외국 관광객들 속에 섞여 걸었다. 나비 같은 벚꽃들이 어깨에 내려앉을 때마다 우리는 그것을 경찰들의 묵직한 손바닥으로 간주하고 뿌리치기 위해 사력을 다해 달렸다. 일본 전공투(全共闘)의 성지인 교토대학 안의 아지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야마다 시로는 젖은 바지 때문에 쭈그리고 앉아 장을 끊어내듯 울먹였다. 완전히 불타지 않고 현관 바닥에 떨어져 있던 문고판 『금각사』에서 경찰들은 우리의 지문을 찾아낼 것이다. 하지만 책의 운명은 창녀의 그것과 같아서 한 명의 주인만을 지목할 순 없지 않을까. 야마다 하루꼬는 그를 여자 화장실로 데리고 가 유카타를 벗기고 젖은 화장지로 그의 아랫도리에 묻어 있는 여죄를 모조리 닦아 주었다. 교토대학을 한 명씩 빠져나와 우리는 서로 다른 시내버스에 올라 교토역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은각사 부근의 언덕에 누워 야마다 다로가 큰 불이 날 때마다 나타난다는 천문을 읽고 있을 무렵, 시내버스를 타고 야마다 사부로가 가장 먼저 은각사 입구에 도착하였고, 그 다음에 도착한 야마다 하루꼬는 주머니에서 문고판 『금각사』를 보여주면서 난처한 표정을 지었으며, 언덕을 달려서 올라온 야마다 지로는 거친 숨을 쉬느라 헤코오비(兵兒帶)가 풀어져 팬티가 드러나 보이는 줄도 몰랐다. 야마다 지로와 야마다 시로가 각각 불태운 『금각사』들 중 어떤 것이 성공했는지 확인하려면 시간이 한참 흘러야 했다. 우리가 서 있는 자리는 어느 누구의 금각사』에서 시작될 하나비(花火)라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높았으므로 성패를 두고 서로 다툴 필요는 없었다. 다만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번져 가고 있는 아침 때문에 불꽃의 신명이 줄어들까 봐 야마다 다로는 걱정될 따름이었다. 우리는 모두 미어캣처럼 몸을 곧추세우고 우리의 운명을 이끌 빛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아침이 밝았다. 그보다 앞서 경찰차가 방송중계차보다 먼저 도착하였다. 그보다 앞서 소방차가 도착하였고 우동가게 주인 남자는 소화기를 든 이웃들보다 늦게 나타났다. 구경꾼들은 철학의 길(哲學の道)을 따라 산책을 하던 중이었고 기분 좋게 허기를 느끼고 있어서 귀가를 서둘렀다. 현관 바닥에 떨어진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된 불길은 실내의 가구들을 포섭하지 못한 채 슬리퍼 두어 개를 겨우 태운 뒤 기세를 잃고 수그러들었다. 최초로 화재를 신고한 이는 우동가게와 마주하고 있는 신사의 늙은 문지기였다. 그는 오미쿠지(おみくじ)처럼 신사 입구에 쌓이는 벚꽃 무덤을 빗자루로 옮기다가 냇내를 맡았는데 시력이 너무 약해 방화범의 얼굴을 알아보지는 못했다고 진술하였다. 반쯤 유령이 되어 있는 노인의 증언을 이웃들은 절반만 믿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야마다 시로는 네 번째 문고판 『금각사』의 갈피를 창녀의 가랑이처럼 벌리고 매독으로 부풀어 오른 뱃사람의 성기 같은 성냥개비의 불씨를 찔러 넣은 다음, 몇 차례의 요분질이 둘을 융합시킬 때까지 침착하게 기다렸다. 이윽고 절정에 이르러 연기는 사라지고 순수한 불꽃만이 남게 되자 그는 우동가게의 환기구 틈 사이로 그것을 던져 넣었다. 현관문 바닥에 곧추선 『금각사』는 실내의 어둠을 서서히 밝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승려 복장의 무리들이 창녀의 가랑이와 뱃사람의 성기 사이에서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면서 『금각사』는 쓰러졌고, 불꽃은 연기 때문에 불순해졌을 뿐만 아니라 얼음보다도 더 차가운 적막에 휩싸여 점점 쪼그라들었다. 야마다 시로는 바닥에 엎드린 채 문틈 사이로 연신 바람을 불어 넣었으나 문고판인 탓에 불꽃은 더 이상 웃자라지 않았고, 현관 유리창을 깨고 안으로 들어가 나무 의자 위에 앉아서 기꺼이 등신불로 타오르겠노라고 다짐하는 순간, 새된 목소리에 뒤통수를 세차게 얻어맞고 바닥에 꼬꾸라지고 말았다. 돌아다보니 신사의 늙은 문지기가, 마치 야마다 시로가 꿈꾸고 있는 악몽의 출구를 알려주려는 것처럼, 빗자루로 한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혁명가 대신 방화범으로 채포되는 게 두려워진 야마다 시로는 오줌에 바지가 젖는 줄도 모른 채 노인의 빗자루가 가리킨 방향과는 반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야마다 사부로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두부를 실은 화물차가 키요미즈데라(凊水寺) 주변의 골목에서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콩의 구수한 냄새는 범죄를 모의하고 있는 뇌까지 물컹거리게 만드는 것 같았다. 매일 아침 그 냄새 주위에 둘러앉아 살을 불려 가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죄책감과 조바심이 섞였다. 태초 이전의 시간이 조금 흐른 뒤 그의 세 번째 문고판 『금각사』가 별똥별처럼 불꽃 꼬리를 흘리며 허공을 갈라 오차야(お茶屋) 마당에 떨어졌다. 새벽 무렵에 겨우 잠든 게이코상(芸妓さん)과 마이코상(舞妓さん)의 노루잠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는 일부러 문 옆에 놓아 둔 쓰레기봉투를 겨냥하였다. 그리고는 허기진 길고양이 같은 불꽃이 쓰레기봉투 안을 깨끗이 비운 뒤 트림과도 같은 연기를 피어 올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은각사행 시내버스에 올랐다. 헤이안진구(平安神宮) 앞을 지나치면서 그는 야마다 형제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료안지(龍安寺) 앞의 기념품 가게 안으로 던져진 두 번째 『금각사』의 불꽃이 자신을 뒤쫓아 오는 것 같아 야마다 지로는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머리뼈를 두드리는 심장소리와 피부를 찢고 새어나오는 날숨 때문에 그는 자신이 왜 그곳을 교토의 아궁이로 지목했는지 기억해 낼 수 없었다. 그곳의 문 앞에 붙어 있는 부적이 그의 눈에 거슬렸던 것만큼은 분명했다. 그것은 마치 악마가 자신의 은신처를 표시해 둔 표지 같아 그의 선한 영혼이 부지불식간에 반응하였을 수도 있다. 차갑게 식은 잿더미 위에서 필경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게 될 주인을 걱정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불운에는 윤리가 없는 법. 그나마 보험사가 최소한의 윤리를 회복시켜 줄 것이라고 생각하니, 달리는 속도를 줄여도 될 것 같았다. 굽이치던 혈관 속의 피들은 가모가와(鴨川)의 아우라지에 이르러 느려졌다. 어쩌면 수천 년 된 목조 건물들이 아직까지 불씨에 면역력을 지닐 수 있었던 까닭이 가모가와의 물소리 때문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또한 많은 사람들은 우울한 삶을 견뎌내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강이 가로지르고 있는 도시의 인구자살률이 다른 도시의 그것보다 월등히 높다고 들었다. 겨우 다리 위에 일 분 정도 서 있을 뿐이었는데 벌써 윤리를 회복하게 되다니. 하지만 그보다 앞서,

 

   야마다 하루꼬는 기온시조(祇園四條)역 주위에서 외국인들에게 잘 알려진 식당 몇 군데를 발견하였으나 야마다 다로와 약속한 시간에 맞춰 첫 번째 『금각사』를 불태우지 못했다. 그녀는 첫 번째 『금각사』를 건네받을 때부터 아무도 자신의 성공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확신했고, 태양처럼 거대한 불덩이를 교토 허공에 띄워 형제들의 편견을 조롱하겠노라고 여러 차례 다짐하였으나, 막상 어두운 거리에서 버펄로 무리 같은 건물들을 홀로 마주치고 있자니, 마치 안데르센 동화의 성냥팔이 소녀처럼 외롭고 춥고 허기지고 무서워져서, 성냥개비의 유황 냄새가 만들어내는 환각에 빠져, 그녀의 성적 매력을 알아챈 일본인 취객들이 접근해 왔는데도 미처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였으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말 한 마디 통하지 않는 외국 청년의 인류애 덕분에, 팬티를 빼앗기는 재앙을 간신히 피할 수 있었다. 그러자 그녀는 자신이 결코 혁명가가 될 수 없는 운명을 지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야마다 다로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이미 새벽은 거의 끝나 가고 있었다. 새벽 중에서 가장 불꽃이 순수해진다는 시간도 지나버렸다. 마지막 불침번을 깨우지 않은 자가 야마다 지로라는 사실이 곧 밝혀졌다. 여전히 잠의 진흙 밭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야마다 지로는 눈을 감은 채 울먹이면서 변명했다. 하긴 12살의 소녀소년들이 저항하기에 봄밤은 너무 고요하고 푹신했다. 게다가 잠들기 전에 나누어 마신 맥주가 그들의 경계심을 간단히 무장 해제시켰다. 하지만 야마다 다로의 정확한 발길질은 야마다 지로의 울음은 물론이고 우리의 취기와 몽환까지 한꺼번에 박살내었다. 그리고는 각자의 위치와 귀환시간을 상기시켰다. 팔레스타인의 자살폭탄 순교자들처럼 각각 문고판 『금각사』를 몸에 숨기고 떠나는 우리를 야마다 다로는 일일이 포옹까지 하였다. 우리 중에 오직 그에게만 혁명가의 운명이 부여된 게 분명했다. 야마다 시로가 느껍게 우는 바람에 또다시 출발이 지체되었으나 야마다 하루꼬의 모성애 덕분에 혁명 전사들의 위엄을 곧 회복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교토대학 잔디밭을 고양이처럼 맨발로 가로질러 갔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맥주를 마시면서 야마다 다로는 중국 우화를 이어 갔다. 소녀소년들의 열정과 헌신으로 중앙 권력을 회복한 마오쩌뚱은 금전적 보상이나 윤리적 사면 없이 홍위병을 해산시켰다. 하지만 이미 흉악범이 된 소녀소년들에겐 돌아갈 가족이나 고향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인도로 떠나는 기차를 타기 위해 서부의 도시 청두(成都)로 모여들었다. 처음에 주민들은 구걸을 하고 한뎃잠을 자는 어린 혁명가들이 훗날 역사가들에 의해 월계관을 되찾게 되리라고 굳게 믿고 뜨거운 호의를 베풀었으나, 메뚜기 떼처럼 불어나는 무법자들의 횡포에 위협을 느끼자 하나둘씩 도시를 떠나기 시작했다. 급기야 시장마저 야반도주를 했다는 소식을 접한 소녀소년들은 도시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13살의 시장을 새로 선출하고 어른들의 사정(大人の事情) 때문에 파괴된 자신들의 미래를 복원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의 역사적 방문을 준비하던 마오쩌뚱은 자신의 변태적 소아성애증(小兒性愛症)을 감추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여 도시를 포위하고 15살 이하의 소년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하였다. 공황상태에 빠져든 소녀소년들은 자신이 몇 살이고 자신의 손에 무엇이 들려 있는지도 모른 채 탱크와 전투기에서 쏟아지는 죽음에 맞서 외마디 절규로 산화하였다. 그리하여 폐허는 다시 어른들만의 아름다운 현실이 되었고 중국과 미국 사이에 평화조약이 체결되었다. “그럼 우리도 모두 죽는 거야?” 야마다 시로의 질문에 “우린 모두 촉법소년(觸法少年)들이라는 걸 잊지 마.” 야마다 사부로는 의뭉스럽게 대답하였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아홉 시가 넘어 우동가게 앞에 내걸린 등불이 꺼졌다. 여종업원이 테이블과 의자를 정리하는 동안 주인 남자는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와 입구 한쪽에 쌓았다. 그리고는 철학의 길 위에 거룻배처럼 떠 있는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벚꽃이 반딧불이처럼 흩날릴 때마다 그의 주름이 함께 출렁거렸다. 주기적으로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 거룻배는 그의 회상이 미치는 원 안에서 맴돌 뿐이었고 수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는 우리를 아지랑이와 구별하지 못했다. 혹시 그게 아니라면 소녀소년들의 호기심을 성장통 정도로 간주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봄의 한가운데에서조차 생의 볼륨감을 느끼지 못하는 까닭이 그의 숨겨진 죄악 때문이리라고 굳게 믿었다. 우리가 나서서 그를 벌로써 정화해 주지 않는다면 그는 극적인 죽음을 위해 더욱 잔혹한 범죄를 계획하게 될 것이다. 그가 불로써 얻은 것들만 우리는 불로써 빼앗을 작정이다. 그에게서 빼앗은 것을 돌려받게 될 자는 없다. 국가가 만든 감옥이나 병원에 갇히어 그가 참회 대신 분노로 여생을 탕진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저 그가 고루한 역사책 같은 교토를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길 바랄 뿐이다. 실내 정리를 끝낸 여종업원이 옷을 갈아입고 작별 인사를 건네자 주인 남자는 가게로 되돌아가 문을 걸어 잠그고 실내등을 껐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우동가게 주인 남자를 징벌하자고 가장 먼저 제안한 자가 야마다 사부로였으므로, 당연히 그가, 혁명에 성공한다면 자신의 목숨을, 실패한다면 자신의 미래를 내놓아야 했다. 형형한 눈빛의 형제들 앞에서 당위성을 설명하면서 야마다 사부로는 초조함과 외로움을 동시에 느꼈다. 함정에 빠져들었다는 억울한 생각도 들었다. 형제들 중 유일하게 가톨릭 신자인 자신만이 감내해야 하는 고난일 수도 있었다. 13살 이후로 교토에 방화가 일어날 때마다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어 경찰서에서 자신의 알리바이를 증명하느라 엉망이 되어 갈 삶을 그가 상상하고 있을 때 야마다 시로가 나섰다. 교토의 다섯 곳을 동시에 태우면 어떨까? 그 아이디어는 그가 10살 때 자신의 부모와 함께 금각사 뒤의 오키다야마(大北山)에서 불타오르는 큰 대자(大字)를 보았던 추억으로부터 나왔다. 무카에비(迎え火)를 보고 자손을 찾아왔다가 오쿠리비(送り火)에 맞춰 저승으로 돌아가는 조상들을 진혼하기 위해 교토의 다섯 개의 산에서 동시에 불꽃들을 피어 올리는 때는 8월이지만, 야마다 형제들은 그것들을 4월에 미리 개화시키기 위해 교토 시내 다섯 곳에 봉화대를 세우기로 결정하였고, 야마다 사부로가 아닌 야마다 시로에게 우동가게가 맡겨졌던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우동가게의 주인 남자는 계산대 앞에 앉아 만화를 보면서 맥주병을 비워 갔다. 그는 마치 자신의 모습을 찾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미간에 힘을 주고 아주 느리게 페이지를 넘기면서 문장을 중얼거렸는데, 머리에 흰 수건이라도 두르고 있었더라면 영락없이 코란을 읽고 있는 무슬림으로 보였을 것이다. 유예된 처벌과 권태로운 긴장감이 수배전단지 속의 스무 살 청년을 어떻게 파괴해 왔는지 그의 쓸쓸한 저녁 풍경으로부터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 노인들이 모두 닮아 있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 ─ 비록 그가 항공기를 납치하거나 외국 대사관을 점령할 만큼 유명한 테러리스트는 아니더라도, 헤이안진구를 불태우고 수십 년째 잠적한 방화범들 중 한 명일 가능성은 매우 높았다. “저 책은 『내일의 조(あしたのジョ)』가 틀림없어.” 후쿠오카에 도착해야 할 항공기를 납치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심장에다 착륙시킨 적군파(赤軍派)들이 스스로를 ‘내일의 조’라고 선언하게 만들 만큼 깊은 영감을 주었던 그 만화책이야말로, 우동가게 주인 남자의 과거와 적군파의 죄악을 연결시킬 결정적인 증거라고, 출입구 옆 테이블에 앉아 우리를 감시하고 있던 스무 살 남짓의 여종업원이 엿듣지 못하도록 조용히, 그러나 흥분을 억누르지 못한 채 야마다 다로가 속삭였다. ─ 그러나 정작 그녀는 야마다 시로가 맥주 세 병을 훔쳐 품속에 숨기는 것을 알아차리지는 못했다. ─ “‘내일의 조’가 고아였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우린 13살 전에 부모에게 빼앗긴 게 너무 많아.” 야마다 하루꼬의 표정에서 무전취식의 불길한 낌새를 감지한 여종업원이 다가오자 야마다 다로는 급히 주머니에서 동전 한 움큼을 꺼내어 부적처럼 흔들어 보였고, 흠칫 놀란 하이에나는 애써 딴청을 피우면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우리는 철학의 길 위를 어슬렁거리면서 교토의 모든 범죄가 벚꽃 때문에 일어난다는 범죄학자들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벚꽃의 개화로 촉발된 상실감은 결코 자기 파괴의 열정만으로는 극복되지 않는다. 교토의 벚꽃이 사흘을 넘기지 못한다는 소문은, 벚꽃이 사람들 마음속에 남기는 화인(花印) 또는 화인(火印)의 유효기간까지 고려하지 않은 편견에 불과하다. 그 길 위를 걸었던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나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郞), 미시마 유키오, 시오미 다카야(鹽見孝也)의 영혼 속에 주기적으로 역사적 채무감을 주입하던 이론가들도 벚꽃이었을 것이다. “니시다 기타로 교수가 누구지?” “철학의 길을 만든 교수.” “토목학과 교수였나 보군.” “그러면 시오미 다카야는 또 누구야?” “주차장 관리인.” “쳇, 그런 사람까지 이곳에 있는지는 몰랐어.” 야마다 지로는 침을 내뱉었다. “이 길을 오래 걷다 보면 나중엔 뛰게 되어 있지. 왜냐면 모든 사상에는 단점이 있기 마련이고 사람들은 그것을 폭력으로 채워 넣으려고 하니까. 적군파들처럼 말이야.” 이미 철학자가 된 듯 야마다 다로가 중얼거렸다. 걷기조차 불편한 유카타 차림이 아니었다면 우리 역시 순수한 허기만이 몸속에 남을 때까지 달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철학의 길을 따라 은각사로 관광객들을 이끌던 가이드로부터 우리는 이와 같이 들었다. “70년대 전공투 세력들의 방화와 테러 속에서도 이 지역의 건물들이 무사할 수 있었던 까닭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들의 하숙집과 단골 술집들이 이곳에 밀집되어 있었기 때문이지요.” 거위들 같은 그들이 사라지자 비로소 벤치를 차지하게 된 신사의 문지기 노인은 우리 형제들 역시 관광객의 일행으로 여기고는 빗자루로 우동가게를 가리켰다. “저 가게 주인도 그 당시 교토대학을 다녔으니까 특별히 말해 줄 게 있을 거야.” 마침내 우리는 13살이 되기 전에, 즉 천국과 지옥 사이의 연옥에 갇혀 무엇을 하거나 될 수도 없게 되기 전에, 미래의 정의를 위해 헌신할 수 있게 되었도다. 같은 뜻을 세우고 같은 적을 만난 이상 우리 야마다 형제들은 오랫동안 헤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마루야마(円山) 공원은 거대한 벚꽃 노천탕으로 변해 있었다. 산란기의 공작새들처럼 화려하게 치장한 채 봄의 시원(始原)을 향해 모여든 상춘객들은 자신들과 몸을 부비고 있는 자들이 누구인지 전혀 괘념치 않으면서 음란한 상념에 빠져들어 있었다. 그들의 몸속에서 심장 같은 석양이 빠져나간 지는 이미 오래다. 그리고 우리 역시 그들 속에서 유전자 가족이나 불알친구를 만나게 되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 야마다 형제들의 가족사진에 무례하게 끼어들어 가계도를 교란하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심지어 야마다 형제들 사이에서 사카모토 료마의 동상은 세기의 영웅보다는 비천한 부랑아의 모습으로 서 있을 따름이었다. 한 장의 사진에는 한 인간의 모든 이미지가 담기지 않는데다가, 삼십 년이라는 세월이 한 인간에게 수십만 편의 새로운 이미지들을 추가로 삽입하였기 때문에, 흑백의 지명수배전단에서 걸어 나온 범죄자들을 총천연색 군중 속에서 발견해 낸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고작 기대할 수 있는 것이라곤, 마루야마 공원의 수천 그루 벚나무들에서 벚꽃이 터지는 순서와 관련된 우연뿐. 그나마도 심란하게 흩날리는 꽃비 때문에 시계(視界)는 사과푸딩 속처럼 흐렸다. 그래서 우리는 료마의 무덤이 안치되어 있는 로젠 고코쿠신사(護國神寺)로 자리를 옮겼고 야마다 형제들만이 등장하는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을 겨우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일본인이라면 누구든지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으므로, 설령 적군파가 국가를 전복하려고 하였더라도 그들이 일본인인 이상 최소한의 존엄을 보호받아야 마땅하다. 물론 반대 세력 역시 부당하게 배척되어서는 안 된다. 비실체적인 국가는 관용과 협력 위에서만 존립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야마다 형제는 흑백논리나 변증법에 의지하여 어느 한쪽을 승리자로 만들려는 게 아니다. 단지 우리의 목적은 엉성한 궤변으로 사람들을 속인 자들을 단죄하여 세상을 떠받들고 있는 두 개의 기둥을 지켜내는 데 있다. 항상 역사의 바퀴를 진흙 구덩이로 밀어 넣는 건 위선과 비겁이었고 그것은 흑사병보다도 인류에 더 치명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짜 혁명가들을 추적하여 참회의 증언을 받아내려 한다. 만약 나중에라도 신념을 바꿀 자들이 있다면 시작부터 참여하지 말라고 야마다 다로는 형제들에게 경고하였다. 그리고 우리의 선한 분노를 확인하자 그는 수배전단을 바닥에 펼쳐 놓고 한 명씩 관상을 풀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12살의 야마다 지로는 자신의 운명이 실업야구팀 2군선수와 파친코 지배인 사이를 오가다가 기진맥진해져서 끝내 자살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이 범죄자와 창녀에게서 태어난다고 믿는 12살의 야마다 사부로는 훗날 소설가의 상상력으로 용인 받을 수 있을 만큼의 폭력과 음란을 모두 경험해 보겠다고 선언했다. 세상의 모든 남자들은 13살에 초경을 시작한 자신을 발가벗기고 가랑이 사이에다 불임의 욕망들을 쏟아내려고 시도할 것이므로, 12살의 야마다 하루꼬는 수녀원 대신 성인비디오 제작사를 찾아가 포르노배우로 거듭나겠다고 말하면서 치마를 들쳤다. 12살의 야마다 시로는 부모의 연금으로 성인이 되어 택시를 운전할 수 있을 때까지, 열 달 전에 동반자살한 부모의 시체가 발견되지 않기를 희망하며 안절부절 못했다. 12살의 야마다 다로는 자신의 아버지가 공무원이기 때문에 자세한 신상을 밝힐 수 없지만 나이에 비해 너무 많은 책들을 읽은 탓에 이미 인생의 절반을 살아 본 것 같다며 우쭐거렸다. 12란 숫자는 시계 한 바퀴를 의미했으니 그들은 12살에 삶을 끝낼 수도, 아니면 시작할 수도 있다고, 그가 어른들의 현학을 자랑하였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우리는 야스이콘피라구(安井金昆羅宮)에 들러 구멍 뚫린 바위 앞에서 줄을 섰다. 그곳에 부적을 붙이고, 앞으로 통과하면 좋은 인연이 생기겠지만 방향을 바꾸어 통과하면 악연을 끊을 수 있다는 전설에 따라, 우리는 각각 두 번씩 방향을 바꾸어 구멍을 통과한 뒤 야마다 가족이 되었다. 행정서류의 견본에 흔히 적혀 있는 야마다 가문의 이름보다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과 더 잘 어울리는 것은 없었다. ─ 모든 범죄자들은 행정서류를 가진다. 즉, 행정서류가 없으면 그들의 범죄를 증명할 수도 없다. ─ 다섯 명의 소녀소년들 중 그 이름을 가장 먼저 생각해 낸 자가 으뜸인 야마다 다로가 되었고, 가장 키가 큰 자는 야마다 지로, 가장 비열한 자는 야마다 사부로, 가장 어리게 보이는 자를 야마다 시로로 삼았고, 유일한 소녀인 야마다 하루꼬의 서열은 야마다 사부로와 야마다 시로 사이에 배정되었다. 그리고 헌책방에 들러 문고판 『금각사』 네 권을 사서 ─ 야마다 다로의 『금각사』를 제외하고 ─ 한 권씩 나누어 가졌다. 그것은 마치 중국의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들이 들고 다녔던 붉은 수첩을 연상시켰다. 그러고 나자 우리는 서로 헤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무슨 일이든 서둘러 저질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나는 사카모토 료마의 원대한 꿈을 추종했던 것은 아니고, 그저 13살 이전의 촉법소년으로서 최대한의 일탈을 즐기기 위해 유카타 복장의 소녀소년들과 함께 아마노하시다테행 마지막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출발시간까지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호린지 대신 그곳으로 가서 신비로운 룬문자 같은 문신을 몸 안쪽에 새겨 넣은 다음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작정이었다. - 13살짜리 삶에 꼭 필요한 지혜라곤 오직 영원한 죽음에 이르는 가장 확실한 방법과 관련된 것뿐이었다. - 우리를 풍선처럼 부풀리고 있던 우울을 터뜨리려는 듯 소녀가 꼬챙이 같은 집게손가락을 뻗어 벽에 붙은 수배전단을 가리켰다. 일본 적군파 7명은 붉은색 배경, 요도호(淀號) 납치범 7명은 녹색 배경의 감옥에 갇혀 있었는데, 후자들이 훨씬 평화로워 보였다. 그리고 7이라는 숫자가 그들의 행운을 보장해 주는 듯했다. 하지만 실패한 혁명가는 1급 범죄자일 따름이다. 이미 검거되어 수배전단에서 지워진 자들도 있겠지만, 이웃의 무관심 속에서 안락한 노인으로 살고 있는 이들도 섞여 있을 게 분명했다. 가장 몸집이 크지만 우둔해 보이는 소년이 몇 명의 남자들과 어제 교토 시내에서 마주친 것 같다고 증언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교토역을 빠져 나와 교토 시내로 은밀하게 숨어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어른들은 소녀소년들의 미래를 강탈하여 현재의 안락을 누린다. 그리고 과거에 숨어서 징벌을 피한다. 일본헌법은 12살의 소녀소년들에게 합법적인 직업을 허락하지 않는 반면 60살 이상의 노인들에겐 연금과 사회복지사들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므로 천애고아이거나 가족 이데올로기를 거부한 소녀소년들은 생존을 위해 조로증(早老症)에 감염되거나 법의 경계 밖으로 밀항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행히 13살이 안 된 어린 범죄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가혹한 실형 대신 말랑말랑한 교화형(敎化刑)이 선고되고 있지만, 메두사의 방패 같은 어른들의 편견이 어린 범죄자들의 갱생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는데다가, 갈수록 흉포해지는 소년범죄 때문에 촉법소년의 연령을 낮추자는 여론까지 들끓고 있어서,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은 아사 직전까지 내몰리고 말았다. 하지만 서커스단이 야생동물들의 발명품이 아니듯, 모든 범죄는 어른들의 사정에서 비롯되었으며, 심지어 촉법소년들로 구성된 갱단의 우두머리를 맡고 있는 어른들도 많다고 들었다. 그래서 나는 경계심을 풀지 않은 채 소녀소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였고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여 가장 먼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경찰의 위치를 파악해 두었다. 하지만 문고판 『금각사』를 번갈아 소리 내어 읽으면서 점점 정화되어 가는 그들의 표정을 보자 불신의 벽이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13살 이후의 삶에 필요한 건 부모가 아니라 친구와 나이 어린 똘마니들이다. 어른들에게 미래를 강탈당하지 않기 위해선 서둘러 어른이 되는 수밖에 없었다. 우선 동정(童貞)부터 버려야 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뒷골목의 소녀소년들은 마치 훌치기낚시를 하듯 집게손가락들을 허공에서 까딱이며 멀리서 나를 불렀다. 산란색을 띤 수컷 연어에게 강 하류로의 후퇴는 곧 퇴화와 멸종을 의미했다. 다행히 그들의 유카타 차림이 나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그 어두운 골목은 내가 탯줄을 따라 본성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는 착각을 만들어 주었다. 소년 대장이 건넨 담배를 받아들고 힘껏 연기를 빨아들이자 몸속에 숨어 있던 모든 생채기들이 일제히 입들을 열더니 뜨거운 숨을 뱉어내었다. 연이은 맥주 한 모금에 다시 입들은 닫혔으나 일시적인 무호흡 증상 때문에 나는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나의 우스꽝스러운 반응으로부터 그들은 내가 13살이 될 만큼 성숙했음을 확인하고 경계심을 풀었다. 소년 대장은 마지막 통과의례인 듯 문고판 책 한 권을 보이며 그걸 읽어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누드사진집이나 포르노 잡지를 기대했던 나는 『금각사』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없었지만 읽은 지 너무 오래되어서 줄거리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고 둘러대었다. 그러나 그의 음흉한 미소는 이미 나의 거짓을 꿰뚫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곧 비장한 표정으로 그 책을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는데 결코 12살 소년의 낭독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부드러움과 자신감이 목소리에 배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세상의 모든 유혹을 무턱대고 수용할 만큼 결코 어리석지 않다. 그래서 나는 그들과 거리를 팽팽하게 유지하면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맞닥뜨린 도마뱀처럼, 언제든 스스로 제 몸을 자르고 나갈 기회만을 엿보았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어머니가 걸인에게 영성체 같은 동전을 나누어 주고 있는 동안 나는 슬그머니 그녀의 손을 놓았다. 그러자 마치 닻이 끊긴 고깃배처럼 행인들의 조류에 휩쓸려 길 아래로 떠내려갔다. 물론 나는 무엇이든 붙잡고 익명의 폭력을 견뎌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멀어져 가는 어머니를 향해 소리를 치거나 헤엄쳐 나아가지는 않았다. 어머니의 손을 잡은 채 13살이 된다는 건 평생을 걸쳐 결코 지울 수 없을 만큼 수치스러운 일이 분명했다. 그리고 세상은 결코 무균실이 아니므로 제 스스로 몸속에 바이러스를 투여하여 환한 고통 속에서 항체를 얻어내지 못한다면 병든 몸과 마음이 나의 존재를 끊임없이 왜곡하고 부정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집 밖에서 홀로 봄밤의 몽마(夢魔)와 싸울 작정이며, 내일 아침이 밝는 대로 호린지를 찾아가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선언하려고 한다. 그런 다음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미래의 계획에 대해 말하리라. 극한의 슬픔과 기쁨 사이를 오가며 몸속에 전기를 충전하는 전기뱀장어처럼 치열하게 살다가 훗날 정부(情婦)와 함께 저수지로 뛰어드는 소설가가 되겠노라고, 소년을 단련시키는 건 지혜가 아니라 일탈과 후회이므로 도쿄 가부키초(歌舞伎町)의 뒷골목에 임시거처가 마련되는 대로 곧 짐을 챙기러 잠깐 돌아가겠노라고, 결코 울먹이지 않고 말할 것이다. 제 사지가 잘려 나간 듯 고통스럽게 나를 찾아 지난밤의 모든 솔기를 뒤졌을 어머니는 혼자서 13살이 된 나를 훗날 대견스럽게 여길 것이다. 어차피 사내들의 원대한 꿈을 품기에 여자들의 가슴은 너무 작지 않은가. 하지만 그보다 앞서,

 

    9살 봄날에 어머니와 나는 은각사에 있었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몸이 아파 올 때마다 어머니는 절이나 신사에 들러 청명한 적요 속에 몸을 담그고 세상의 더께를 벗겨내곤 하였다. 가끔씩 그녀는 마치 자신의 원죄라도 되는 것인 양 나를 대동하였는데, 그곳 역시 학교만큼이나 규율들로 가득 차 있어서 따분하기 이를 데 없었다. 방화의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는 금각사에서는 아무런 위안도 얻지 못한 그녀에게 은각사(銀閣寺)는 태곳적 시간이 숨어 있는 은각사(隱刻寺)였다. 그래서 그녀는 관음전의 마루에 앉아서 모래정원 위로 흘러가는 윤슬들을 하염없이 들여다보곤 하였다. 그러면 그녀의 영혼을 옭죄고 있던 태엽이 서서히 풀리고 그녀의 안팎을 채우고 있던 통증들이 서로 섞이며 아련해졌다. 평온해지다 못해 낯설어진 어머니의 표정을 들여다볼 때마다, 나는 그녀가 나를 낳기 이전의 시간으로 돌아가 평생 나를 낳지 않고 늙어 갈 것만 같아 불안해졌다. 그래서 갑자기 간질병이라도 발작하여 그녀의 고요를 파괴하고 어제보다 더욱 단단하게 태엽을 조이게 되길 바랐다. 나중엔 중들과 관광객들을 모두 살해하고 은각사의 역사마저 불로 지워버리고 싶은 충동에 전율하기도 하였다. 물론 어느 기억은 관음전 마루 위로 떨어진 벚꽃을 깔고 앉았다가 빠져든 춘몽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어른들의 사정을 이해하려면 신주(心中)라는 단어부터 익혀야 한다. 일본어 사전에 의하면 그것은 네 가지 의미로 동시에 해석될 수 있다. 1. 남에게 의리를 앞세우는 일. 2. 사랑하는 남녀가 진심을 보여주는 일. 3. 사랑하는 남녀가 함께 자살하는 것. 4. 일반적으로 2명 이상이 함께 자살하는 것. 그러니까 어른들의 마음 한가운데는 늘 죽음이 자리 잡고 있으며 그것에 이르기 위해서 사랑은 필수적이다. 그리고 요즈음 일본인의 비극은 무리신주(無里心中)라는 단어로 설명가능하다. 경제 침체에 따른 군국주의자들의 득세는 자신의 자살을 미화하기 위해 무고한 자들에게까지 억지로 자살하게 조장하는 전통을 부활시켰도다. 그리하여 치매에 걸린 부모를 살해하고 목을 맨 아들이나, 우울증 때문에 갓난아이를 품고 아파트에서 투신한 아내나, 자신의 아이들이 잠들어 있는 고아원에 불 지르고 자신도 함께 분신한 아버지와, 불륜 관계의 남자와 함께 독극물을 나누어 삼킨 어머니와 함께, 우리가 한때 생의 기쁨을 열렬히 찬양하였다는 사실을 잊어 가고 있다. 그래서 나처럼 너무 어려서 죽음에 저항할 수 없는 자들은 어른들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 그들의 접근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죽음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어서 두렵다. 한밤중에 귀가하던 아버지가 유서 한 장 없이 자동차 헤드라이트 속으로 뛰어들었을 때 나는 겨우 6살이었고, 7살 이전의 아이들은 신의 자식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신의 적대자라는 뜻은 아니고,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부모의 사유물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어느 누구도 자신의 탄생과 죽음을 기억할 수는 없다. 단지 누군가의 탄생과 죽음을 통해 자신의 탄생과 죽음을 미루어 짐작할 따름이다. 그러니 홀로 고립되는 순간 탄생과 죽음은 한 인간의 삶에서 결코 일어나지 않는 사건이 되는 것이다. 문득 선생님에게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어린아이들은 내일에 대한 개념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깊은 밤과 잠이 자신을 가족들로부터 영원히 격리시킬까 봐 두려워 목이 꺾이는데도 잠들지 않기 위해 완강히 버틴단다. 그러므로 매일 밤 아이들과의 전쟁을 끝내고 싶은 부모라면 그들에게 시간과 강물의 연관성을 설명해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의 앞을 이미 지나친 건 결코 되돌아올 수 없지만, 아직 지나치지 않은 건 반드시 자신의 앞을 지나쳐 갈 것이고, 무한한 순환 운동을 하고 있는 한 결코 그것들 사이의 차이를 감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조차 무한의 길이를 짐작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저 신이 있다는 믿음으로써 신을 만들어 갈 따름이다. 그러다가 갑작스레 동생을 낳거나 배우자의 죽음을 맞이하면서 부모들은 이전에 태어난 아이들을 모두 어른으로 간주하는 것이고, 유년기의 상실감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어른들은 유치한 자기애를 발현하기 위해 범죄를 공모하는 것이다. 다행히 깊은 밤과 잠 속에 숨어 지내던 부모 덕분에 어려서부터 홀로 고립되어 있던 나는 12살이 될 때까지 아무런 상실감도 감지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백주의 호텔 안에서 작은어머니와 함께 벌거벗은 채 어머니에게 발각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아무런 감정의 변화도 감지할 수 없었다. 그래 봤자 동생이 태어나거나, 누군가 죽는 게 고작일 테니까. 하지만 그보다 앞서,

 

   봄의 종말을 알리는 징후들이 사방에서 드러났고, 유카타의 벚꽃 무늬 위에서 잠들었다가 깨어난 나는 고통스런 두통과 함께, 나의 일생은 모두 거짓이며, 어쩌면 자살을 앞두고 있는 어느 유명 작가 ─ 이를테면 미시마 유키오 ─ 가 자신의 일생을 반추하다가, 자신의 대표작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음을 수치스럽게 여기면서, 급히 써내려가기 시작한 소설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지금 신칸센에 나를 태우고 호린지로 함께 자살하러 떠나는 여자가, 한때 교토역 주위를 어슬렁거리다가 적군파들의 혁명선언문에 감동받아 기꺼이 가랑이를 벌린 창녀였다고 한들, 내 일생과는 전혀 상관없었다. 그리고 그보다 앞서는 사건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문장웹진 7월호》

 

 

 

   【창작 노트】

 

   오늘(6월7일) 아침(8시17분) 지하철(6호선)을 타고 이태원역을 찾아가다가, 스마트폰(갤럭시3)으로 포털사이트(네이버)의 뉴스를 검색하다가 “무시 받는 세상에 불을 지른 소년”이란 제목의 기사(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3349)를 읽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새삼 내 글의 유효성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작가와 독자가 존재하는 한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결코 마무리되는 법이 없는 게 아닐까? 3년 전 여름휴가로 나는 교토에 다녀왔다. 쓰나미가 일본을 덮치기 훨씬 전이었고 그때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는 교토 여행을 추천했다. 그때의 경험으로 이 글을 썼다. 하지만 너무 어둡다는 평가를 아내로부터 듣고, 나는 이 글을 내 외장하드드라이브 속에 처박아 두었다. 《문장웹진》의 청탁을 받고 다시 이 글을 퇴고했을 때도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오늘 새삼 인터넷 기사를 확인하고,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는 이미 현실이라는 경구를 반추하며, 한편으로 씁쓸하고 한편으로는 후련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10여 년 전에 이미 한국계 포르노배우의 불법 잠입기(“줄리엣 세인트 표류기”)에 대해 썼다가 외장하드디스크에 몰래 보관하고 있는데, 지난 5월초 “日성인배우 아오이소라, 한국서 몰래……”라는 연애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5051558071&code=960801)를 읽은 뒤 이마를 쳤다.

   나같이 기괴한 꿈을 꾸는 자들의 이야기가 기사화되는 현실이 너무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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