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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 엔딩 스토리Never ending story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2. 1. 17. 21:53

 

네버 엔딩 스토리Never ending story

 

표성흠

 

이 날도 우리는 낚시를 갔다. 모두 정년퇴직을 한 위인들이라 모이면 등산 아니면 낚시질이다. 이제 남은 인생 이런 것밖에는 할 일이 없다는 이들에게, 그래도 건전한 모임이라고 마누라들이 도시락까지 싸서 챙겨준다.오랜 장마 뒤끝이라 자리를 조금 높여 잡아야 했다. 지정석처럼 늘 앉던 포인트라 올 때마다 남은 밑밥을 던져줘 고기를 양식하던 곳은 가뭇없이 물 속에 잠겨버려 버들여뀌가 빨간 꽃대를 치켜들고 있는 자리를 새로 개척해야 했다. 어릴 땐 소풍장소로 수건돌리기며 보물찾기 같은 것을 하고 놀던 육모정이 있었고, 그 밑으론 시퍼런 물이 감돌아 욕심 많은 어른들이 어디서 주었는지 수류탄을 터뜨려 고기를 잡던 용소가 있던 곳이다. 폭약 소리에 놀라 허옇게 배를 까뒤집고 올라오던 ‘물 반, 고기 반’인 그 명당자리임을 아는지라 비록 댐 수위가 높아졌다 해도 마땅한 다른 포인트를 찾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 이들이다. 그러자니 외바늘 채비로 바꿔 다는 수밖에 없어 대를 펴는 데에도 한참이나 걸렸다.그때 손전화가 왔다.“야, 너들 고기 낚았거든 이리 갖고 오이라.”시원하고 전망 좋은 곳이 있다는 준기다. 게다가 일꾼들 간식을 마련하는 김에 일부러 매운탕 끓일 준비도 해왔단다. “고기 못 잡았으면 그냥 와라. 안주는 여기 있으니까.”“너 지금 어디 있는데?”“너들 노는 속세가 환히 내려다보이는 천상이다.” 준기는 아직도 친구가 하는 조그만 건설회사 자재창고를 지켜주는 일을 맡고 있는데 오늘은 치유산 현장에 나와 있단다. 와보니 너무 좋은 곳이 있다는 것이다.“너 버찌 알제? 여기 버찌동산이 있는데 ….”임자 없이 버려져 있단다. 갈 때 여기 들려 버찌를 따가라 한다. 그리고 성현이 너는 필히 여기를 와야 건져 갈 게 있다며 일부러 전화를 바꾸게 해 이렇게 말한다. “네 소설의 팬이 여기 있어야.”이런 상황이면 꼭 내가 바쁘단 핑계를 대고 먼저 빠져버리니까 붙들어두고 싶어서 저러는 거겠지, 하고 전화를 끊으려 하는데 ‘후회하지 말고 오이라이. 네 『토우』의 주인공이 여기 있으니….’ 하는 것이었다. 토우라면 거창양민학살사건을 다룬 여섯 권짜리 내 장편소설이다. 이 친구가 그걸 읽었을 리 만무하고 설사 내가 쓴 소설책이라고 읽었다손 치더라도 거기 나오는 주인공 운운하고 나를 꼭 보자 할 리 없는데 무슨 일일까? 거기 누군가 있긴 있나보다, 생각하는데 영무가 ‘야, 오늘 낚시는 틀렸다. 준기한테나 가보자.’ 한다.“새물이 이리 차면 낚시 안 돼.”순주도 낚싯대를 펴다말고 거둬 넣는다, 기태는 아예 낚싯대를 펼 생각도 않고 이리저리 자리를 물색하고 다니던 중이었다. 만수위라 온통 풀밭이니 어디 새로운 포인트를 개척할 엄두가 안 나는 모양이다.“여기까지 와서 펴보지도 않고 거둬?”나는 불만이었지만 차를 얻어 타고 온 터라 따라서 철수를 하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게다가 준기의 말이 궁금증을 더하기도 한다. “걔들 오늘 돼지잡고 고사 지내지, 아마?”“무슨 공사가 그리 큰데?”“거기 골프장 만든다, 안 카드나?”“골프장 공사는 아이고 그 윗동네 있는 마을 진입로 확장한다 카는 거 같던데?”우리는 온통 ‘카더라’ 소식통만 갖고 준기가 일한다는 현장을 찾아 나선다. 요즘은 늘 이런 식이다. 물가로 가면 산이 궁금하고 산에 가면 또 물가가 궁금하다. 쳇바퀴 돌 듯 출퇴근에 매달려 살아오던 틀에서 갑자기 벗어난 친구들이라 어느 하나 새롭지 않은 게 없는 ‘개띠 동우회’들이다. 잘난 놈들은 일찌감치 대처로 나가 출세를 했고 어쩌다 어정쩡 고향 지킴이가 된 이들은 대개 학교에 몸담고 일하던 교직 출신들이라 ‘퇴직교장’을 ‘퇴역장교’라고 서로 공대해 부르지만 저들에 비하면 나는 아직 현역이다. 평생 어디 얽매여 살지 않은 작가였고 지금도 글을 쓰고 보면 아직 현역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런데 이 친구들은 술 마실 일만 생기면 내게 대리운전을 시킨다.  “어이, 현역! 네가 운전 좀 해라. 우리 퇴역장교들은 목 좀 축여야겠다.” “야, 그새를 못 참아 또 마셔? 고기 구경도 못한 주제들에.”“졸병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한다.”나는 하는 수없이 ‘달리는 룸살롱’의 키를 받는다.졸병은 운전대를 잡고 고참들은 뒷자리에 앉아 술을 마신다. 누가 봐도 웃을 노틀들이다. 그리고 누가 들어도 유치하기 짝이 없을 대사들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누구 하나 이런 모임이 싫지 않다. 인생에 대역은 없다.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이게 현실이다. 인생은 육십부터라지 않는가. 그래, 즐겁게 살자. 살아 숨쉬는 것만으로도, 이런 불알친구들과 어울려 낚시를 나올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감사하며 살자. “성현이 저렇게 고분고분해진 건 참 신통하단 말이야.”“그게 궁금하거든 너도 저승 문턱 한번 넘어갔다 와 봐라. 인생이 확 달라질 거니까.”“갔다 와도 안 달라지는 놈은 안 달라지더라, 뭐.”“찬종이 봐라, 그것도 혹 때고 나온 놈이 준기 거기 들어가 일한 지 벌써 몇 년인데 보너스 한 푼 안 준다더라.”“그야 애초에 그렇게 정하고 들어갔으면 그렇지 뭐. 준기로 봐서는 이 나이 되도록 안 밀어내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그러면 찬종이 지는? 나이 찼다고 일선에서 물러났나?”“회장하고 창고지기하고 같나?” “샷 마우스! 남의 험담하기 없기….”우리는 은연 중에 친구들 험담하기 없기를 정한 바 있다.“없기…. 좋아. 없기.”순주가 ‘이놈의 주둥아리’ 하며 제 입을 제 손으로 치며, 그런 의미에서 노래 한 곡조 뽑겠다 한다. 영무가 노래도 돈 내고하란다. 요즘은 할머니들이 서로 손자 자랑들을 하는 통에 그것도 벌금내고 하는 추세란다.순주는 벌금 내고라도 노래를 해야겠단다. 이때 준기한테서 또 전화가 온다.“그 삼거리 지나면 기도원 간판이 있어야….”거기서 우회전 해 꺾어들라는 이야기다. 한참을 올라오면 돼지 축사가 있고 그 앞마당을 지나 올라오면 저수지가 하나 있는데 그 둑길 아래에서 다시 좌회전으로 끝까지 올라와 언덕을 넘으면 기도원이란다. 공사 현장은 그 위에 있지만 일단 거기까지 오란다. 거기 기다리고 있단다. 길은 구절양장이다.  차가 곤두 설 지경으로 경사가 진 곳도 있고 산사태가 나 길이 패인 곳도 있다. 그러나 길 가로 피어있는 보랏빛 싸리꽃이며 백설 같은 으아리 꽃이 아름답다. “이런 곳에 사람이 살아?”“그러니 길을 닦지.”“강원도 면허증이 아니면 안 되겠다. 네가 해라.”나는 차가 비켜갈 수 있도록 좀 넓게 닦인 커브 길의 공터에 차를 세웠다. 차에 부착된 고도계가 해발 6백 미터를 넘어서고 있다. “야, 술 먹은 사람한테 음주운전 시켜?”그래도 나보다는 네가 낫지. 이런 외길에서 내려오는 차라도 만나면 어떻게 해? 나는 운전이 서툴다는 핑계로 운전대를 넘긴다. 차마 주변에 산재해 핀 야생화를 보기 위해서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데 고개를 하나 넘어서니 산길은 끝났고 완전히 평원이다. 함지박처럼 옴팍 들앉아 바깥에서는 보이지 않던 곳인데 드넓은 밭이 펼쳐져 아직도 수확하지 않아 감자꽃이 핀 곳도 있다. 그 끄트머리쯤에 기도원 건물이 하나 들어섰는데 풀 속에 내려앉았다.  “이런 별천지가 있었네?”우리는 모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비록 삿갓배미지만 계단식 논에는 철철 물이 흘러넘치고 사래 긴 밭에는 고랭지 배추가 한창이다. 한평생 여기 살아도 관내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은 모르고 지냈다. 농토는 넓은데 집은 몇 채밖에 없는 것으로 보아 부농들이다. 집 앞에 느티나무도 있고 그 옆에 정자도 하나 있다. 도로를 넓혀 주차장을 만드느라 새로 조성한 듯한 환상교차로에 불상이 하나 있어 내 눈길을 끌었다.“야, 그래도 잘 찾아오네?”준기는 거기서 기다리고 있었다.“우리가 못가는 데 있더냐? 그런데 뭐 맛있는 거 해놓고 불렀어?”“맛있는 거는 뭐 맛있는 거? 이것 좀 보라고 오라했지.”준기는 그리 높지 않는 돈대를 쌓아 차를 돌리게 만든 교차로 위에 올려 앉힌 불상을 가리킨다. 두상이 떨어져나가고 없는 등신불이다. 가부좌를 틀고 앉은 모양새가 투박하고 서툴다. 그런데도 정감이 가는 석불이다.“이것 좀 보라구.”  “이게 뭐?”친구들은 시답잖은 눈치다.“이거 땅 속에서 파낸 거 같다?”“역시 작가 선생님이라니까.”기도원 공사를 하는 도중에 나온 거라 한다. 공사를 하던 중 이 석불이 나왔는데 기도원에 무슨 불상이냐며 길 가에 내다버렸다. 그런데 어디서 어떻게 소문을 듣고 찾아 왔는지 소나기가 억수로 퍼붓는 날 밤 도둑이 와 이걸 차에 싣고 산을 내려갔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산사태가 나 트럭이 쳐박히는 바람에 들통이 났다. 그것까지는 또 좋았는데 이 도적님들이 동네 사람들에게 돈을 주어 입막음을 하고는 경운기로 차를 끌어내달라고 했다.그런데 더 웃기는 일은 돈을 다 받아먹고 그 돈으로 정자까지 세운 동네사람들이 또 무슨 마음이 내켰는지 1년이 지나서야 이 도적님들을 사직당국에 고발했다. 결국 덜미를 잡힌 도적들은 문화재 밀반출 혐의로 입건되고 동네 사람들은 동네 사람들대로 문화재를 팔아먹은 죄로 경찰서로 붙잡혀 가 곤욕을 치른, 일대 해프닝이 벌어진 곳이란다.   “하마터면 어느 별장에나 가 파묻힐 뻔한 걸 찬종이가 찾아와 여기 세웠지.”그 복구경비를 찬종이가 다 부담했으니 좋은 일 하지 않았느냔 준기다. 오전에는 경찰서장에다가 문화원장까지 다녀갔단다. 광에서 인심난다고 돈도 있고 볼 일이긴 하다. “그래서 오늘 돼지 잡고 고사 지냈구나?”“불사에 무슨 고사?”보면 볼수록 투박하고 거친 솜씨가 느껴지는 미륵불이다. 있는 그 자리의 돌을 쪼아 좌대도 없이 만든 만큼 땅 속에 묻혀있었을 아랫도리는 자연석 그대로에 가까웠지만 허벅지에서 무릎으로 내려오는 선은 펑퍼짐하고 가슴께가 볼록한 것이 한껏 입체감을 살렸다. 비록 두상은 떨어져 나갔지만 목 부분에 삼도의 한 줄기가 아직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두상이 있었다면 퍽 섬세하게 다듬었을 성 싶다는 추측을 하게 만든다. 그런데 항마촉지인 부분, 그러니까 가부좌를 튼 단전 부분을 향해 올려졌던 왼손 손가락이 죄다 깨져나갔다. 아무래도 총탄을 맞은 흔적 같다.  “이게 언제 때 불상이야?”  “이 항마촉지인은 통일신라 때부터 유행했다고 하고, 고려 시대 때 치유산 일대에 절이 백 개도 넘게 있었다는 기록이 있어요. 그러니 그 무렵 작품이겠지.”“야, 공부들 그만하고 술이나 있으면 좀 내놔라 보자.”공부에 ‘공’자만 들어도 머리가 아프단 순주는 더 이상 공부는 싫단다. 야, 선생 출신이 그러니 요새 애들이 그 모양이지. 요새 애들이 어때서, 얼마나 똑똑한데, 선생은 저리가라 한단다. 친구들은 느티나무 정자로 올라간다. 거기 돼지머리가 고스란히 있고 술병들이 늘려있다. 막걸리통을 베개 삼아 수건으로 둘둘 말아놓은 것이며 침낭까지 널브러져있는 것으로 보아 아예 여기서 먹고 자는 것 같다.“모기도 없이 시원하고 좋아야.”“신선노름이 따로 없네.”오늘은 여기서 신선이나 하잖다.갑자기 매미 우는 소리가 귀를 찢는다. 준기가 나를 끈다.   “저 위에 한번 올라가 볼래?”준기는 저 위에 가면 진짜 볼 게 있다고 한다. “이 동네는 여기가 끝이야. 기도원 들어서며 그나마 길을 닦아서 차가 들어오고 이렇지, 그 이전에는 유배 온 사람들처럼 숨어 산 것 같아.”삿갓배미 다랑이논과 감자밭을 지나 고개를 하나 더 너머 가니 굴삭기 소리가 나고 산을 까뭉개 길을 내는 작업현장이 나타난다. 저 너머에 또 한 채의 집이 있다한다.  “그 집 한 사람보고 길을 닦아?”“어차피 내는 길이니까 그 집 앞으로 지나가게 하는 거지.”골프장이 완공되면 사람들이 몰려 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 치유산 일대에 올레 길을 만들어 관광수입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지자체의 꿈이란다.  문제의 그 집은 공사현장에서도 고개를 하나 더 넘어선 곳에 있었다. 이런 산비알에 어떻게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싶은 터에 초옥이 하나 있다. 집은 기어서 드나들 정도였지만 명색이 안과 밖을 구분 짓는 사립문 위로 다래넝쿨을 아치형으로 올려 운치를 살렸다. 다래를 양쪽에 심어 그 덩굴을 자연적으로 구부러지게 붙들어 매 문간을 만들었는데 그 문을 통해 보이는 안과 밖은 별유천지다. 뭐랄까, 문 밖이 자연세상이라면 문 안은 인간이 보금자리를 튼 인간세상이다. 삶의 보금자리는 닳고 때 묻은 흔적이 있어 자연과 구분이 된다. 마당은 깨끗이 비질이 돼 있고 섬돌엔 신발이 하나 단정하게 놓여져 있다.“여기 이런 집이 있다니?” “나도 첨엔 놀랐지.” 집주인은 출타중이다. 한번 나가면 며칠이고 안 들어와 마음 놓고 구경해도 된단다. 주인도 없는 이런 집에 뭐 볼 것이 있을 것인가? “그런데 봐라, 여기 서 봐.”그 사람이 늘 서서 바라보는 곳이 한 군데 있다는 준기의 말을 따라 그 자리에 서 본다. 나뭇가지 사이로 거창사건추모공원의 위령탑이 손가락만 하게 보인다. “그 사람 여기 서서 위령탑을 보고 있더라니까.”그걸 바라볼 때는 약간 정신이 나간 듯 보이더란다. 그래, 왜 저기만 내려다보고 있어요? 무슨 사연이 있어요? 하고 물었더니 그저 히죽이 웃더라는 것이다.“그래서 널 불러와 이야기 좀 시켜보려고 했지.”“그런데 어디 갔어?”“그야 모르지. 바람처럼 떠도는 사람이라니까.”포클레인 기사 말로는 ‘사람인지 짐승인지 알 수없는’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기사는 이미 열흘 넘게 여기서 먹고 자며 일을 해서 골짜기 사정을 대충 안다했다. 그 사람은 미친 듯이 울부짖을 때도 있고 가부좌 틀고 앉아 염불할 때도 있고 두 손 모아 기도를 하는가 하면 타잔처럼 산비알을 쏘다닐 때도 있단다. 가끔씩 식료품을 사 짊어지고 올라오는데 차로 그걸 실어다주면서 물었더니 ‘이 골짜기와 악연이 있다’고 하더래. 그걸 풀고 죽으려고 들어온 곳이라나? “그러니 네가 그 사람을 안 만나곤 안 되지.”“몇 살이나 되는 사람인데?”칠십은 훨씬 넘어 보였다 한다. 나는 섬광처럼 떠오르는 한 인물을 상상한다. 이 골짜기와 악연을 쌓을 사람은 그때 그 당시 그 군인들밖에는 없을 일이다. 양민학살에 가담한 어떤 양심적인 청년…. 그때의 양심적인 청년이라면 인생의 말년에 참회의 시간을 가질 법도 하다. 그런데 과연 그런 자책을 느낄 사람이 있었을까?  “언제 여기 들어왔대?”“그야 모르지. 동네 사람들 이야기로는 여기 살던 할아버지 죽자 이 사람이 눌러앉았다던데?”“할아버지?”“할아버지는 혼자 살았고, 그 사람이 장례 치르는 일도 도와줬다든가?”나는 두 사람의 관계설정을 상상해본다. 첫째, 이 사람이 할아버지의 식솔들을 죽였다. 그게 마음에 걸려 할아버지 살아 생전에 속죄를 하려했다. 그러다가 할아버지 죽자 아예 삶의 터전을 옮겨 더 깊은 참회의 시간을 가지는 중이다. 둘째, 이 사람이 학살 현장에서 저지른 죄책감을 씻기 위해 유일한 생존자인 할아버지를 찾아왔다가 우연히 장사를 치르는 일을 도맡게 되고 이왕 집이 있으니까 눌러앉아버렸다. 셋째, 당시 빨치산이었던 할아버지의 뒤를 쫓았던 군인으로 할아버지에게 못할 짓을 저지른 죄값을 청산하려고 찾아왔다가 그게 인연이 되어 함께 살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나 그 어느 것 하나도 당위성이란 게 없어 관계성립이 안 된다.나는 방문을 열어보았다.방안은 의외로 깨끗하게 치워져 정리정돈이 잘돼 있는 상태로 사과상자를 엎어놓은 뒤 송판을 걸쳐 만든 앉은뱅이책상 위에는 책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신발을 벗고 방 안으로 들어가 책상에 쌓인 책들을 보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쌓여있는 책들은 한결같이 거창양민학살사건과 관련된 서적들이다. 그중에 내 책 여섯 권짜리 현암사판 『토우』도 있다. 더 놀랄 일은 여섯 권짜리 이전에 나온 초간본 서문당판 두 권짜리 『토우』도 있다. 벌써 삼십 년 가까이 된 책들이라 두 권 모두 절판 상태인데 어찌 이런 책들이 여기 놓여있을 것인가? 그것도 두 권짜리 『토우』는 필자인 내게도 없고, 위령공원 역사관에 기증했던 책까지도 분실되고 없어져 희귀본이 된 책이다. 나는 혹시나 싶어 책 앞장을 들춰본다. 분명 그 역사관에 희사했던 작가 사인이 적힌 책이다.  그렇다면 이 책 속의 어느 한 인물임에 틀림없을 일이다.사건의 주역은 당연히 학살의 지휘를 맡았던 한동석 대대장이다. 그는 몇 차례 인터뷰 요청에도 불구하고 거절 아니면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았고 그 나머지는 별 특기할만한 인물이 없다. 그러나, 그러나…. 만약 여기 나타나 이런 해프닝을 벌일 사람이 있다면 한 사람 심증이 가는 인물이 있기는 하다. 주민들을 몰고 학살의 현장으로 올라갈 때 ‘뒤가 마렵다는 마을 사람’을 논두렁 밑으로 내려보내며 ‘볼일을 보고 다시는 올라오지 말라’고 당부했던 어린 병사가 있었다. 만약에 그가 살았다면, 그런 심성의 소유자라면 일생동안 시달리던 양심의 가책을 털어버리기 위해 이런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아니면─당시 7백여 명의 양민을 무차별 학살한 군인들은 마을청년들을 시켜 구덩이를 파게 해 시체를 던져넣고 휘발유를 뿌려 불태웠다. 그때 시체를 불태울 나무를 해오다가 넘어져 총탄세례를 피해─ 유일한 목격자가 된……. “그때 그 청년이 여기 살다 죽은 할아버지라면?”이런 산 속에 숨어지낼 만하다. 그렇더라도 지금 이 사람과의 관계설정에는 무리가 따른다. 무엇 때문에 이 사람이 그 할아버지 뒤를 돌봐주었을 것인가? 아무런 개연성이 없다. 이럴 때는 내 상상력이 한없이 부족하다. 뭔가 잡힐 듯한데 잡히지 않는다.나는 조용히 방을 나온다.다시 그 자리에 서 아득히 보이는 위령탑을 바라본다. 저게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나는 거기 추모공원에 부치는 시를 써 비를 세우고 거기 부조에 들어갈 밑그림을 그려주면서도 이런 것들이 다 부질없는 짓이 아닌가 했었다. 그런데 여기 서서 그때 그 일들을 뉘우치는 한 영혼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이건 순전히 내 소설가적인 상상에 불과한 일이지만─ 그것도 그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형식도 필요한 것이다. 형식 속에 내용이 깃든다. 인간의 몸 속에 정신이 살아있는 것과 마찬가지다.“뭐 떠오르는 게 있냐?”준기의 물음이다. 소설이 떠오르느냔 이야기일 것이다.“나, 네 소설 다 읽었어야. 소름이 오싹 돋더라. 정말 이 골짜기에서 그런 사건이 일어났나 싶으니까, 요즘 여기 오르내리는 동안 생각 많이 했어야. 위령공원에 세워진 네 비문도 가 보았고….”준기는 방안에 있는 책갈피 속에 그 비문이 끼워져 있더란 이야길 한다. “저 사람도 그 비문을 베껴와 읽었던 모양이야.”“그 비문이 어디 있는데?”  “못 봤어? 네 책갈피 속에 있던데.”준기도 이 인물이 하도 궁금해 방안의 물건들을 뒤져보았다 한다. 항상 방문을 열어놓고 다니는 사람이라 그냥 궁금증이 발동하더라는 준기의 말이다.나는 준기와 함께 다시 방안으로 들어가 책갈피에 고이 꽂아둔 위령탑비에 새겨진 비문을 꺼내본다.거창사건 위령비 건립에 부쳐기억하라.여기 이곳은, 전쟁이 할퀴고 지나간 자리. 지난 반세기 동안 돌볼 이 없이 던져졌던거창사건의 현장이다.1950년,동족상잔의 6.25전쟁이 일어나고 한반도는 피바다가되었다. 그 중에서도 지리산일대에 공비잔당들의 출몰이심했던 이곳 신원 골짜기.드디어 공비소탕작전이 펼쳐지고 작전명령이 떨어졌다. 작명은 <견벽청야>, 전 지역을 초토화 하라는 것이었다.아! 어쩌랴. 이 어리석은 명령해석 때문에 7백여 명의양민들이 학살당했으니, 이책임을 어디다 물으랴?주민들은 어디다 하소연 할데도 없이 타다만 시신을 거두어 긴뼈는 남자 작은 뼈는 아녀자로 구분하여 합동묘소를만들었다.그러나 이 무슨 비극인가? 군사정권은 이 무덤조차 허락하지 않았으니, 이렇듯 눈 귀 입 아조아조 봉한 채 반세기……잊지 마라.여기 이곳을, 상처뿐인 아픔을 치유하고 땅에 묻혔던 거창사건의 명예를 회복하는 현장이다.새 2천년.사건이 일어난 반세기만에 우리는 신원을 달래고 다시는이런 일이 없기를 바라는 비를 세운다. 누가 있어 여기 옷깃을 여미지 않는 자 있으며 누가있어 이 억울한 혼령들 앞에숙연치 않으랴?산 자여, 보아라.여기 이렇게 누워있는 이들도 살고 싶었던 사람들이다. 잘못된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두 번 죽었던 희생자들. 천지신명이시여 이들을 받으소서. 하늘이시여  용서와 화해를 내리소서. 길손들은 여기 이곳을 그냥 지나지 마라. 무언가 생각들을 좀 해 보시라.일부러 띄어쓰기를 하지 않아 엇박자로 놓은 시다. 그렇게 뜨덤뜨덤 읽어라 쓴 의도적인 시다. 이 시의 비문은 처음 이렇게 썼다가 다시 고쳐 세운 사정이 있다. 다른 이의 시로 대체 됐다가 애초 현상공모 당선작이라는 권리를 주장해─현대식 띄어쓰기 맞춤법에 맞는 줄글로 바꾸어─ 다시 세운 비문이다. 그런데 어찌 그 비문의 초고가 여기 있단 말인가?  정말 알 수 없는 사람이다. 나는 시를 제 자리에 꽂아놓고 다시 방을 나온다. 틀림없이 여기 사는 사람은 거창사건과 깊숙한 관련이 있다. “틀림없이 뭐 있는 사람이제?”“그런 것 같아.”그렇지만 장본인이 있어야 소상한 내막을 알 일이다. 이 골짜기에 초막을 지어 살던 노인은 누구며 거기 들어와 함께 기거하던 이 사람은 또 누구인가? 두 사람에 대한 관계를 아무리 형상화해보려 하지만 추측은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더 이상 확실한 건 없다. 피해자 아니면 가해자 둘 중의 하나다. 아니다, 그런 이분법으로만 따질 게 아니다. 둘 다 가해자일 수도 있고 둘 다 피해자 일 수도 있다. 그런데 사건 터진지 육십 년이나 지난 이 시점에 무엇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거지? 천안함 사건 때문에? 아직도 끝나지 않은 휴전상태의 정전과 지구촌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위기감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우리 세대는 왜 이렇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하루도 편할 날 없잖아?’ 누가 한강의 기적을 이룬 이 세대를 낀 세대라 했던가? 아무리 ‘낀 세대’고 ‘쉰 세대’라 하지만 이제 정말이지 이런 일로 남은 생을 골머리 썩히긴 싫다.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게 사람이다. 아직도 남은 역사적 과제가 이 세대의 책임이라면 이 나라를 이만큼이라도 일으켜 세운 데 대한 무슨 상응하는 보상이나 권리도 있어야 할 게 아닌가? 항상 책임 뿐, 내세울 보상이나 권리란 없단 말인가. 외치고 싶다. 아마 여기 이 친구도 그래서 외쳤을지도 모르겠다.바람이 분다.     나는 바람에서 등을 돌려 분위기 쇄신을 한다. “그런데 너 버찌농원 있다고 오라 해놓고선?”“아, 버찌 농원? 그건 저 너머 있어.”또 하나의 고개를 넘어서자 일부러 심은 듯한 나무가 자연목들과는 확연히 다른 색깔을 띄고 있는 곳이 있다. 농원이라기보다는 불과 몇 그루의 벚나무를 원형으로 둥글게 심었다.  “여기에 이런 나무는 왜 심었을까?”꽃을 보기 위해 심은 나무는 아닌 듯 하고 유실수로 이런 나무를 심기엔 실효가 없는 나무다. 도대체가 이런 곳에 벚나무를 심은 까닭이 궁금하다. 그런데 그 원통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로 보이는 곳에 둥근 돌을 양쪽으로 두개 나란히 놓아 버찌동산 문으로 삼은 것이, 아까 본 다래넝쿨 문을 만든 솜씨를 느끼게 한다. 원형의 버찌동산 한가운데에는 넙적한 돌이 하나 놓여있는데 그저 있는 돌은 아니고 누군가 일부러 옮겨다 놓은 돌이다. “동네 사람들 말로는 여기 노인을 묻었대.”그리고 벌통을 갖다 놓았었다고 한다. 아무리 봐도 봉분은 없다.“그러면 수목장을?”평장을 하고 그 위에 넙적한 돌을 얹어 표시를 하고 주변에 버찌나무를 심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겠다. 이제야 수수께끼가 풀린다. 준기는 이제 제가 아는 것은 다 말한 듯 내려가자 한다.  “그 봐. 너 여기 오길 잘했지. 소설 한 편 건졌지?”“그런 것 같아.”나는 벌써 소설 한편을 구상하고 있다. ─버찌동산.나는 수첩에 이렇게 휘갈겨 쓰고는 버찌를 하나 딴다. “이건 버찌가 아니잖아?” 심겨져 있는 나무는 버찌가 아니라 세로티나였다. 세로티나는 흑 벚꽃 혹은 블랙체리, 럼주체리로 불리는 장밋과의 벚나무 속으로 우리 집에도 많이 심었다. 버찌가 하나만 달리는 열매라면 세로티나는 포도송이처럼 여러 개가 한꺼번에 주렁주렁 열린다. 과일즙이나 술로도 담아 먹는다. 꽃도 좋고 관상수로도 좋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세로티나로 무덤을 장식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무엇 때문에 이걸 여기까지 갖다 심었을 것인가? 이 일대 산은 온통 밤나무가 심겨져 있는 밤나무 단지라 양봉을 위해서라면 그것만으로도 밀원은 충분했을 텐데 무엇 때문에 이 이국종 나무를 굳이 여기까지 갖다 심었을 것인가. 나는 식목일 행사로 나눠주는 묘목을 갖다 심었다. 이 사람도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무덤 주변을 장식 했을까? 그러고 보니 마을 여기저기에 그런 나무가 보인다.“저 퇴역장교님들은 앉으면 고스톱이네?”친구들은 고스톱을 치고 있다.그런데 일찌감치 두 손 튼 순주가 오줌 누고 오는 길에 이상한 것을 하나 주었다며 이게 무언지 보라 한다“야, 이거 한번 봐라.”순주는 굴삭기가 밀고 간 자리에서 파냈다며 주먹만한 쇳조각 같은 것을 들고 있다. 녹이 슬어 벌그스름하게 물들어 있었지만 그 모양새로 봐선 영락없는 수류탄이다. “야, 그거 수류탄 아냐?”  준기가 순주를 움직이지 마라 이른다. 그러나 순주는 그걸 두 손으로 공개받기를 하며 줄래줄래 걸어온다. “이게 뭐야? 그냥 돌은 아닌 것 같잖아?”나는 순간 눈앞이 아찔해지는 섬광을 느꼈다. 전쟁 직후, 학교는 불 타 없어졌고 틈만 나면 학생들은 불발탄 수거작업에 동원되었다. 그때 어디선지 수류탄을 하나 주은 영탁이 형은 아이들을 몰고 용소까지 가 어른들의 흉내를 내려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갔다. 핀을 뽑고도 고기 떼를 찾느라 한참을 머뭇거렸던 탓으로 그때 다친 애들이 한둘이 아니라, 순주도 잘 알 텐데…….“순주야.”“그러지 마.”나도 준기도 순주를 말렸다. 술을 한 잔 했는지 얼굴이 불콰하게 된 순주는 더욱 호기롭게 손에 든 것을 흔들며 이젠 숫제 ‘나도 군대 갔다 온 사람이야. 수류탄 감자도 모를 줄 알고?’ 하며 쥔 손을 높이 치켜들어 던지는 시늉까지 해 보인다. “김순주, 장난치지 마.”준기가 달려가 순주의 손목을 잡았다. 순주는 술이 취했는지 약간 흥분된 상태라 히죽히죽 웃으며 ‘나도 군대 갔다 온 사람이야, 수류탄쯤은 던질 줄 알아.’ 하면서 객기를 부리고 있다. 순주는 한창 교사들이 모자랄 때 임시교사가 된 덕분에 교대출신들이 이수하는 단기 군사교육을 받고 군복무를 때웠다. 그게 늘 마음에 걸리는 모양으로 군대이야기만 나오면 남 먼저 ‘나도 군대 갔다 온 사람’임을 내세운다.“너들 순주 돈 얼마나 따서 순주 이놈아 수류탄 들고 설치게 만드냐?”정자 위의 퇴역들이 그제야 손을 멈추고 자리를 틀고 일어난다. 그 손에는 아직도 화투장이 들려 있다.“수류탄? 수류탄이 어디 있어?”“이게 수류탄 아니고 뭐냐?”준기가 순주에게서 빼앗은 수류탄을 들어 보인다. 마치 화석처럼 굳어버린 타원형의 쇳덩이다. 그러나 아무리 녹슬고 부식된 상태라 해도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것이 무기다. “그것 좀 멀리 치워라. 왜 그런 걸 갖고 장난이냐?”월남전에서 분대장까지 한 영무는 저리 가서 파묻든지 어디 먼 곳으로 집어던져버리라 한다. “이거 신고해야 안 돼?”“그런 거 가지고 괜히 신고하고 어쩌고 하면 일신상이 괴롭다.”“잠깐만!”나는 잠깐 그 물건을 보자 하였지만, 준기에게서 수류탄을 빼앗은 영무는 어느새 그걸 골짜기 아래로 힘껏 내던진다. 그리고 군대에서 배운 동작 그대로 엎드려 자세를 취한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그게 터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야, 그거 어디서 찾았어?”그런 게 또 있으면 공사를 중단시켜야한다는 준기는 순주를 잡아끈다. 그보다 더 큰 포탄이 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전쟁 난지 육십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이 골짜기에는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이 남아 있다는 이야기인가? 그러나 나는 어쩐지 그 물건이 수류탄이 아니라 어느 노스님의 법장 끄트머리에나 달았을 청동방울이 아니었을까하는 의구심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아는 만큼만 보인다 했든가. 그걸 다시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어느 곳으로 떨어졌는지 가늠할 길이 없다.─never ending story.  나는 결코 끝나지 않는 이야기라는 메모를 수첩에 남긴다. 언젠가는 오늘의 이 버찌동산 이야기를 쓸 것이다.

 

 

  표성흠 / 1946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났으며 1970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1979년 월간 『세대』에 소설이 당선되었다. 시집 『농부의집』, 『은하계 통신』, 『네가 곧 나다』가 있고, 창작집 『선창잡이』, 『매월당과 마리아에 관한 추측』, 『열목어를 찾아서』, 장편 『토우』, 『월강』, 『오다 쥬리아』, 『친구의 초상』, 『놀다가 온 바보고기』 등 외 107권이 있다. 현재 <풀과나무의집>에서 창작생활을 하며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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