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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란 도시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2. 7. 11. 20:00

무정란 도시

 

박화영

 

 

 

 


 

   크고 작은 수상쩍은 소문들로 도시에는 언제나 계엄령이 내려져 있는 것 같았다. 혹은 발작을 일으키는 섬망증 환자와도 같았다. 낮에는 사람들이 불안한 눈빛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밤이 되면 인적이 끊겼다. 봄이 찾아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누군가 건물 옥상에서 행인들을 향해 돌을 던졌다. 돌에 맞아 두 사람이 죽고, 여러 명이 부상당했다. 유서를 품에 지니거나 보험에 가입한 자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중 몇몇은 오랫동안 하늘을 올려다본 탓에 목의 통증을 호소했다. 또 몇몇은 눈부신 햇빛 때문에 살짝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또 몇몇은 그대로 상공으로 빨려 올라가 하늘 너머로 사라졌다. 사람들은 순식간에 벌어지는 이 일을 ‘승천’이라 불렀다. 승천은 도시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났다. 하늘을 오랫동안 올려다보고 있으면 누구든지 승천할 수 있었다. 수군거리거나 기도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사람들 사이에서 돌을 던지는 사람이 전 시대의 전쟁에서 살아남은 상이군인이란 소문이 떠돌았지만 진위를 알 수는 없었다. 다행히도 투척은 얼마 지나지 않아 끝났지만 그 이외에도 몇 차례 수상쩍은 사건들이 일어났다. 하지만 도시는 누군가의 지적대로 홰에 앉아서 꾸벅꾸벅 조는 병든 닭처럼 알 수 없는 무력감에 빠져 있었다. 사람들은 닭의 목을 내리치는 칼날처럼 이 모든 것을 한 방에 끝내 줄 누군가를 기다렸다. 전 세계 모든 테러리스트들이여, 이 도시로 오세요. 와서 이런저런 연습을 해보세요. 이미 거의 대부분의 도시인들이 수군거리거나 기도하고 있었기에 끝장날 준비는 완벽했다. 하지만 도시를 둘러싼 중요한 일련의 움직임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인간들의 동요와 상관없이 행성은 여전히 자전과 공전을 반복했다. 백 년을 주기로 돌아오는 혜성은 막 목성의 대적점을 지나고 있었다. 도시의 상공에는 여전히 방공기구들이 떠다녔고 땅속으로는 지하철이 거미줄처럼 뻗은 노선을 따라 순환운행을 계속했다. 방공호는 버려진 지 오래였고, 방공포대 역시 마찬가지였으나 간혹 그곳에 병사들의 그림자가 아직까지도 어른거릴 때가 있다고 사람들은 말하곤 했다.

 

   그들의 도시는 지금으로부터 백 년 전, 대륙의 유명한 풍수지리학자가 봉황이 알을 품은 형상이라 칭송했던 땅에 들어서 있었다. 봉황 운운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전부터 이 지역은 각종 새들의 아름다운 노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으로 유명했다. 한때 이 도시에는 전 세계의 진귀한 새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새들을 따라 새를 팔려는 사람, 새를 사려는 사람, 새 모이를 만드는 사람, 새장을 만드는 사람, 새를 조련하는 사람, 새점을 치는 사람, 새의 깃털과 부리를 다듬는 사람, 새를 박제하는 사람, 새피리를 부는 사람이 몰려들었다. 그 후 도시는 더 큰 번창을 위해 전쟁에 휘말렸지만 결국 퇴락하고 말았다. 사라진 병사들의 뒤를 따라 대륙을 휩쓸던 조류독감이 마지막으로 도시에 진군하자 텅 빈 새장 바닥에 쌓인 깃털처럼 도시의 영광은 몇몇 조형물만 남긴 채 허망하게 사라져 버렸다. 도시는 곧 여러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혔다.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만이 오직 도시를 기억했다. 도시는 알코올중독자 같은 행색으로 변해 갔고, 도시에 사는 사람들 중 일부는 도시를 따라 실제로 알코올중독자의 길을 걸었다. 다행인 것은 새장이 비고, 새는 날아갔지만 새롭게 닭 가공 공장이 들어서서 가동 중이라는 사실이었다. 덕분에 많은 도시인들이 실업자 신세를 면할 수 있었다.

   닭 가공 공장은 이내 도시의 상징이자 도시인들의 마지막 자존심으로 남았다. 닭 가공 공장에서는 언제나 닭 냄새가 났다. 그것은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공장이나 공장 근로자들 모두 자신의 몸에 밴 닭 냄새와 피 냄새로 인해 항상 만성두통에 시달렸다. 밤이 되어 근로자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전기 스위치마저 내려지면 어두워진 공장 곳곳에서 닭의 울음소리와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그때마다 공장은 자신의 몸에 박혀 있는 둥근 칼날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공장은 재개발을 알리는 표지판의 가호 아래, 자신의 몸을 허물어뜨려 저 평평하고 안락한 수평의 세계로 되돌아가는 꿈을 자주 꾸었다. 하지만 아침이 오고 노인이 전원 스위치를 올리면 공장은 다시 컨베이어 벨트를 움직이고 둥근 칼날을 회전시켜 가며 그날 치 닭의 목을 열심히 따고, 피를 빼내고, 깃털을 뽑고, 내장을 들어내고, 닭의 몸뚱이를 반으로 갈랐다. 노인은 언제나 공장에 제일 먼저 출근해서 문을 열고, 기계들의 가동 준비를 끝마쳤다. 그런 다음 공장 근로자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전까지 공장의 정문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 찬송가책을 펼쳐 놓고 불경을 흥얼거렸다. 출근하는 공장 근로자들은 노인을 보고도 모른 체하고 그냥 지나쳤다. 노인 역시 딱히 알은척을 하지 않았다. 직원들이 모두 출근하면 노인은 엉덩이를 탁탁 털며 일어난 뒤, 소리 나게 트림을 한 번 하고, 기지개를 켠 다음, 공장 안으로 터덕터덕 발걸음을 옮겼다. 공장으로 들어선 노인은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서서 자신의 이마쯤 되는 곳에 매달려 있는 갈고리에다가 그날의 첫 번째 닭을 거꾸로 집어 들어 두 다리를 건 다음 가슴에 성호를 긋곤 했다.

 

   어렸을 때 여자의 별명은 통닭이었다. 팔이며 다리에 무수히 오돌토돌 돋아난 돌기가 닭살처럼 보여서 붙은 별명이었다. 여자의 어머니는 밤마다 여자의 팔과 다리를 어루만지며 자장가를 불러 주었다. 여자는 어머니의 자장가보다는 달짝지근한 숨소리에 취해 잠이 들곤 했다. 자장가는 조금씩 달라졌지만 여자가 잠결에 마지막으로 듣는 말은 언제나 똑같았다. 이 모든 게 내 탓이다, 이 모든 게 네 탓이다, 아이야, 아이야, 울어 보렴. 그러면 여자는 혼몽해진 머리로 우는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잠이 들곤 했다. 자장가는 늘 여자의 어머니 몫이었다. 사실 모든 것이 여자의 어머니 몫이었다. 여자는 자신의 아버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여자는 자신의 어머니조차도 과연 아버지를 실제로 본 적이 있었을지 의심스러웠다. 여자의 어머니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린 뒤 말했다. 이제 네게 진실을 말할 때가 됐구나. 사실 너희 아버지는 하늘에서 내려온 금빛 닭이란다. 여자는 뜯고 있던 닭다리를 손에 쥔 채 멍하니 어머니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며칠 뒤 여자의 어머니는 종적도 없이 사라졌다. 여자는 어쩌면 자신의 어머니가 이 도시에서 승천한 첫 번째 사람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여자는 종종 빠른 속도로 하늘 위로 빨려 올라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렸다. 왠지 여자는 자신의 어머니가 마지막 순간에 미소를 지었을 것만 같았다. 여자는 그 모습이 무척이나 교활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이제 여자는 닭을 먹지 않았다. 대신 닭 가공 공장에서 일했다. 그리고 어머니를 잃은 여자는 찬송가책을 손에 쥔 채 불경을 흥얼거리는 노인과 둘도 없는 단짝이 되었다.

 

   여자와 남자가 해변으로 놀러간 것은 실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하루 종일 닭의 시체를 밀봉하느라 피곤했던 여자는 가끔씩 두 눈을 비벼 가며 바다를 바라보았다. 해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지점에 해상 벙커들이 수평선을 바라보며 띄엄띄엄 서 있었다. 여자와 남자, 아이들과 개 한 마리는 네 개의 굵은 콘크리트 기둥이 정사각형의 벙커를 떠받치며 바다 위에 우뚝 서 있는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일렬로 죽 늘어선 해상 벙커는 멀리서 보면 꽤나 볼 만한 장관이었으나 가까이에서 보면 안쓰러움을 자아냈다. 콘크리트 기둥 밑단에는 녹조류가 가득 달라붙어 있었고, 벙커를 오르기 위해 기둥에 박아 놓은 철제 사다리는 녹슬어 있었으며, 벙커는 군데군데 콘크리트가 떨어져 나가고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기도 했다. 전 시대에 있었던 거대한 전쟁에서 해상 벙커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적은 해상 벙커를 간단히 우회해서 어느 날 문득 동네 어귀에 들어선 귀향병처럼 어스름 새벽에 도시로 몰려들었다. 이틀간 도시를 점령한 병사들은 이십 년 치의 식량과 물자를 가지고서 북쪽 산맥을 향해 떠났다. 그 후 전쟁의 향방이 어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해상 벙커에서 근무를 서는 병사들을 볼 수 있었다고는 하지만 남자와 여자가 실제로 그들을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일렬로 서서, 심지어 개마저도 줄을 맞춰 얌전히 일렬로 서 있었다, 해상 벙커를 구경하던 아이들 중 하나가 바다로 뛰어가자 나머지 아이들도 기다렸다는 듯이, 심지어 개마저도, 바다를 향해 뛰어갔다. 그중 한 아이는 닭의 모가지를 손에 쥔 채였다. 아이에게 모가지를 잡힌 닭은 거칠게 날갯짓을 하며 몸을 비틀어댔으나 거기에 관심을 기울이는 아이들은 없었다. 몸부림치는 닭은 여기까지 오는 동안 아이들에게 꽤나 큰 즐거움을 주었다. 하지만 해변에 도착한 아이들은 금세 저 멀리 넘실거리는 바다에 온 정신을 빼앗겼다. 여자의 어깨에 기대어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던 남자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러자 여자는 조심스럽게 손으로 남자의 머리를 돌려 앞을 바라보게 했다. 저 멀리서 거대한 물레바퀴 같은 것이 불쑥 떠오르더니 해변으로 점점 다가왔다. 오래 전에 바다 속에 던져졌다가 그대로 버려진 팬잰드럼이었다.

 

   공장은 육중한 몸에도 불구하고 재게 움직였다. 공장 여기저기 지정된 곳에 자리를 잡고 기계처럼 서 있던 근로자들 역시 바쁘게 손을 놀렸다. 근로자들의 뼈가 일정한 각도로 움직이고 근육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동안 닭의 뼈가 잘리고 근육이 끊어져 나갔다. 공장은 그러한 모든 공정이 언제나 놀라웠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부리로 쪼아대고 깃털을 날리며 날갯짓하던 하나하나의 개별 생명체가 일정한 틀에 맞춰 찍어낸 벽돌처럼 모두 똑같은 모습을 한 채 비닐 포장지 안에 담겨 말쑥하고 과묵한 모습으로 세상을 향해 맨살을 드러냈다. 닭이 살아 있었다는 유일한 흔적은 공장 바닥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닭의 머리와 피, 내장 일부가 전부였다. 근로자들은 점심식사 전과 저녁 퇴근 전에 각각 한 차례씩 고무호스로 물을 뿌리고 바닥을 박박 문질러 가며 그나마 남은 닭의 생전 흔적들을 하수구로 쓸어 보냈다. 그때마다 노인은 찬송가책을 펼쳐 들고 불경을 흥얼거렸다.

   바야흐로 화창한 봄이었고, 햇살은 따뜻하고 포근했다. 고양이 몇 마리가 공장 마당을 어슬렁거렸고, 근로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거나 수다를 떨었다. 그들 중에는 노인과 여자도 섞여 있었다. 노인은 여자에게 이 도시의 유래와 전설, 그리고 자신들의 선조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얘야, 우리들의 조상은 모두 반인반조였단다. 그러다가 이 땅에 정착하고 나서 날개를 버리고 두 팔을 얻은 거야. 날개를 버린 대가는 혹독했지. 그러니까 전쟁이 언제 일어났느냐면……. 여자는 균열을 일으킨 시멘트 바닥 사이에 피어 있던 가녀린 들꽃 하나를 꺾었다. 노란 꽃은 너무나 작고 연약해 보였다. 여자는 꽃잎을 하나하나 떼어 바람에 날리며 노인의 말을 계속 경청했다. 노인의 이야기는 자장가처럼 끊어질 듯, 이어지며 단조롭게 들려왔다. 트럭에서 철장 채 내려지다가 탈출한 닭 한 마리가 공장 마당으로 뛰어들었다. 모여 있던 사람들은 마당에 들어서긴 했으나 갈피를 잡지 못해 이리저리 바쁘게 돌아다니는 닭을 바라보며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꽃씨가 날아왔다. 벌 한 마리가 여자의 귀 주위를 붕붕거리며 맴돌다가 어딘가로 멀리 가버렸다. 그러니까 전쟁이 끝나자 우리는 더 이상 할 게 없어진 거야……. 노인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닭은 여전히 공장 마당을 배회했다. 공장 안에서 종소리가 들리자 사람들이 하나 둘 소리가 난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들 중 한 명이 영문을 몰라 하며 두리번거리던 닭의 모가지를 잡았다. 다시 일할 시간이었다.

 

   사실 남자는 곧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삼계탕 국물을 바라보며 남자는 일을 나간 여자를 떠올렸다. 언젠가는 내려야 할 결정일수록 언제나 사람은 그 결정을 뒤로 미루려고 한다. 그렇게 뒤로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교수대 올가미냐 전기의자냐의 선택지만이 남게 되는 것이다. 물론 결정을 내리지 않고 도망치는 것도 한 가지 결정이었다. 하지만 그건 가장 나중을 위해 남겨 두어야만 했다. 남자는 자신의 잠정적인 결정이 충분히 현명하며 타당한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렇게 했는데도 기분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여자의 임신 소식은 그 정도의 납득으로는 기분 전환을 할 수 없는 성질의 문제였다. 남자는 드디어 숟가락을 들어 뚝배기 그릇에 담긴 닭의 배를 살살 갈랐다. 부풀어 오르는 여자의 배가 상상되었고, 언젠가 보았던 아이들과 개 한 마리와 바다와 중심에 화약통을 단 채 부딪칠 곳을 찾아 비틀거리며 두 바퀴를 굴리던 팬잰드럼이 생각났다. 아이들의 모습은 모두 구체적으로 떠올랐지만 역시나 성별은 알 수 없었다. 그들 모두가 이른바 ‘귀한 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도시에서는 성별을 지니지 않은 아이들이 태어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남자나 여자라면 으레 지니고 있어야 할 성적인 부분이 전혀 없었고, 성격 또한 남성도 여성도 아닌 중성적인 면모를 보였다. 처음에는 그런 아이들 모두가 버려졌다. 그러나 그런 아이들마저 태어나지 않게 되자 사람들은 버린 아이들을 하나 둘 다시 거두기 시작했고, 급기야 ‘귀한 아이들’이라 부르며 보호하게 되었다. 어쩌면 그들은 마지막 세대가 될지도 몰랐다. 인공수정을 비롯해서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도시에서는 신생아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아이를 갖고 싶었던 사람들은 점차 도시를 떠났고, 대신 아이를 갖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었다. 도시의 인구는 점점 늘어 갔다.

   닭의 뱃속에는 찹쌀이 가득 담겨 있었다. 남자는 이 속에 원래 담겨 있어야 할 것들이 모두 어디로 갔을지 궁금했다. 비워지기 위해 뱃속에 담고 열심히 돌아다녔다니. 그런데 오랫동안 바다 속에 가라앉아 녹슬어가던 펜잰드럼은 왜 이제야 바다 속에서 기어 나와 알코올중독자가 비틀거리며 자기 집을 찾아가듯이 뒤뚱뒤뚱 해변을 향해 굴러온 것일까. 그때 남자와 여자는 팬잰드럼이 해변에 도착하기 전에 모두 안전한 곳까지 멀찍이 물러섰다. 아이들은 저마다 해상 벙커에 원숭이처럼 기어올라 해변을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팬잰드럼을 보고 꺅꺅거리며 손뼉을 치거나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거나 했다. 수건을 꼭 쥐듯이 그때까지 닭의 모가지를 놓지 않고 있던 아이도 웃으며 손뼉을 쳤다. 그러다가 그만 아이는 닭을 놓쳐버렸다. 비로소 아이의 손에서 벗어난 닭이 바다 위로 떨어졌다. 아이는 용케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죽은 닭을 보고서 또 한 번 웃음을 터트렸다. 하늘은 높고 푸르렀으며 바다는 맑고 깨끗했다. 먼 바다로부터 상쾌한 바닷바람이 해상 벙커를 지나 해변에까지 불어왔다. 원숭이 무리처럼 매달려 있던 아이들의 머리털이 바람에 흩날렸다. 남자와 여자의 옷자락은 바람을 머금고 가볍게 부풀어 올랐다. 남자는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 해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팬잰드럼의 사진을 찍었다. 팬잰드럼은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오래 전부터 공장은 여자의 몸에서 묘한 냄새가 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보통의 인간들은 알아차리지 못하는 미묘한 변화도 공장은 민감하게 감지했다. 냄새는 여자의 몸에서도 아주 깊숙하고 어두운 곳에서부터 풍겨 나왔다. 살 냄새와 피 냄새가 뒤섞인 그 냄새는 묘하게 공장을 자극했다. 공장은 여자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매일매일 놀라워하면서도 조금은 두려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작고 단순한 하나의 덩어리에 불과했던 것이 차츰차츰 복잡한 구조와 형체를 갖춰 가는 중이었다. 베고, 뽑고, 잘라내고, 세척하고, 포장하는 데 익숙했던 공장으로서는 시간을 들여 가며 무언가를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만들어 가는 과정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그것은 한때 새장을 만들던 시절에도 경험할 수 없었던, 지난한 시간이 요구되는 비능률적인 일이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뱃속에 다른 개체를 품고 있다는 사실 또한 믿기 힘들었다. 공장은 자신의 몸에 들어온 것이라면 무엇이든 최대한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해서 밖으로 내보냈다. 그것은 공장의 몸속에서 하루 스물네 시간 중 아홉 시간을 생활하는 근로자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노인은 오늘도 불경을 흥얼거리며 열심히 갈고리에다 닭을 거꾸로 매달았다. 여자는 노인에게서 얼마쯤 떨어진 곳에 서서 둥근 회전 칼날을 용케 피해 아직도 목이 달려 있는 불운한 닭들을 일일이 찾아내 숨통을 끊는 중이었다. 고무장화를 신은 여자의 발밑에는 칼날에 떨어져 나간 여남은 개의 닭 머리가 흩어져 있었다. 원래 여자는 포장반에 속해서 가공이 모두 끝난 닭에 랩을 씌우는 일을 했다. 하지만 그날은 닭의 머리를 쳐대던 중년 여자가 결근하는 바람에 대신 그 자리에 선 것이었다. 처음에 여자는 아직까지 살아서 날갯짓을 해대는 닭을 볼 때마다 자신이 그 움직임을 멈춰야 한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쳤다. 하지만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칼질을 하다 보니 이제는 기계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칼을 쥔 손목이 시큰거려 와서 그저 짜증스러울 뿐이었다.

 

   뽀얀 국물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있는 닭의 시체 앞에서 남자는 여전히 경건하게 앉아 있었다. 여자가 돌아오기 전에 얼른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여자가 그에게 처음 임신 소식을 전한 뒤로 벌써 네 번이나 달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그동안 여자의 몸에서는 묘하게도 닭백숙 냄새가 났다. 그 시기에 들어선 여자는 모두 그런 냄새가 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남자는 생각했다. 실상 남자는 여자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고, 그나마 잘못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남자만의 잘못이 아니었다. 이 행성에서 살아가는 거의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러했다. 결국 생각하기를 단념한 남자는 삼계탕을 반쯤 남기고는 옆에 놓인 삶은 달걀 하나를 집어 들더니 껍데기를 살살 벗기기 시작했다. 닭을 먹고 또 그 달걀을 먹는 게 과연 도덕적인 일인지 잠깐 의심이 들긴 했으나 이미 달걀 껍데기를 모두 벗긴 뒤였다. 다행히도 이 달걀은 무정란이란 생각이 들자 남자는 조금 마음이 편했다. 나는 지금 닭의 난자를 먹는다, 라고 남자는 말해보았다. 그러자 자신이 무척이나 징그럽게 생각되었다. 남자는 얼른 달걀을 입에 넣은 다음 오물거리며 창가로 걸어갔다. 여전히 화창하고 맑은 날씨였다. 나비 한 마리가 남자의 창가에 조용히 내려앉아 잠시 쉬었다가 날아갔다. 이웃집 옥상에 늘어선 크고 작은 화분들에는 각양각색의 꽃들이 피어 있었다. 빨랫줄에는 하얀 침대보가 미풍에 가볍게 들썩거리며 말라 가는 중이었다. 좀 더 먼 곳을 바라보자 닭 가공 공장의 굴뚝이 보였다. 쓸모없는 닭의 내장들을 모아 소각시키는 모양인지 굴뚝에서는 희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남자는 근로자들의 고무장화 주변에 피범벅이 되어 어지럽게 널려 있을 잘려 나간 닭의 머리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동시에 그들과 같이 일하고 있을 아버지를 생각했다. 아버지는 오래 전부터 그곳에서 돌아오려 하지 않았다.

   파란 하늘 위로 새하얀 구름과 방공기구 몇 개가 떠다녔다. 이웃집 옥상으로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가볍게 뛰어올라 어슬렁거렸다. 여자는 여전히 닭의 목을 따내고 있었다. 노인은 연신 갈고리에 닭을 거꾸로 매달았다. 남자는 밥상으로 돌아와서는 남은 삼계탕을 마저 먹었다. 모두에게 낮잠이 필요한 나른한 날이었으나 오직 남자만이 침대를 둘러싼 직사각형 철장의 옆문을 열고 들어가 몸을 뉘었다. 거대한 닭장이나 동물 우리를 연상시키는 이 볼품없는 물건은 전 시대 때 야간 공습에 대비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혹시라도 폭탄이 떨어져 천장이나 건물이 무너지더라도 철장 안의 사람은 안전할 수 있었다. 다만 철이 귀할 때 만들어진 물건이다 보니 높이가 낮아서 몸을 잔뜩 웅크리고 들어가서는 그대로 누워 자야만 했다. 허리를 세운 채 두 다리만 뻗는다든가 하는 사치는 전혀 기대할 수 없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공습의 공포에서 벗어난 대신 폐쇄 공포증을 앓아야만 했다. 이제는 이러한 철장이 모두 버려진 지 오래였지만 남자와 여자는 여전히 철장 속에서 밤마다 나란히 누워 잤다. 그럴 때마다 여자는 남자에게 말했다. 이렇게 누워 있으면 용서받는 기분이에요. 그런 다음 여자는 남자에게 아침마다 공장 마당에 내려지는 수많은 철창들과 그 속에 갇힌 닭에 대해서 이야기하곤 했다. 이야기가 끝나면 두 사람은 알을 품은 암탉과 다시 그 암탉을 품은 수탉처럼 서로 웅크리고 포옹한 채 잠이 들곤 했다.

   남자는 삼계탕을 다 비웠지만 여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달이 기울고, 다시 또 기울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양계장의 닭들은 계속 무정란을 낳았다. 닭 가공 공장에서는 어김없이 닭의 목을 치고, 털을 뽑고, 몸을 반으로 갈랐다. 그동안 남자는 몇 그릇의 삼계탕을 더 비웠다. 여전히 여자는 남자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임신을 했건만 여자의 배는 크게 부풀어 오르지 않았다. 여자는 이제 생리가 끊어진 지 오래되었건만 여전히 변함이 없는 자신의 배를 의아하다는 듯이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점점 더 불안했다. 얘야, 예정일이 언제냐? 여자는 노인의 물음에 항상 이렇게 답했다. 전 임신한 게 아니에요. 여자는 자신의 아이가 마지막이거나 혹은 처음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가능하면 자신의 아이가 대열의 중간에 서기 바랐다. 첫 줄이거나 마지막 줄은 언제나 위험한 일을 당하기 십상이었다. 노인은 말없이 여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무렵 공장은 자주 여자의 혼잣말을 들었다. 요란한 기계 소리를 들으며 일을 할 때나, 모두가 퇴근하기 시작한 해거름 정문을 나설 때나, 야근 잔업으로 충혈된 눈을 하고서 위태롭게 손을 놀릴 때에도 여자는 마음속으로 무수히 많은 혼잣말을 했다. 공장은 여자의 그런 말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열심히 들었다. 혼잣말이 그러하듯이 여자는 딱히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기에 여자는 더욱 혼잣말을 많이 하기 시작했다. 공장이 여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노인은 그런 공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꼬리잡기를 하는 식으로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공장은 여자에게, 노인은 공장에게 할 말이 하나 둘 생겨났다. 하지만 그들은 아쉽게도 같이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그것이 그들의 안된 점이었다. 공장은 이제 자주 녹물을 눈물처럼 흘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신경한 사람들은 공장의 설비가 노후한 탓이라며 혀를 찰 뿐이었다. 공장의 오작동도 갈수록 늘어났다. 제대로 닭의 목이 잘리지 않거나 털이 뽑히지 않는 일이 계속해서 생겨났다. 공장의 근로자들은 그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투덜거리며 드디어 낡은 공장이 미치기 시작한 모양이라고 말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수용소로 사용되던 시절부터 한평생을 공장에서 일한 노인은 한없는 슬픔을 느꼈다.

 

   노인을 제외한 나머지 남자 근로자들은 모두 새의 머리를 닮은 방독면을 쓴 채 소독 작업에 한창이었다. 예전에는 방독면의 부리에 해당하는 곳에 식초와 사프란 즙을 듬뿍 적신 헝겊 조각을 꼼꼼히 채워 넣어 사용했지만 지금은 여러 종류의 필터가 대신 들어가 있어 방독면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했다. 하지만 낮에 보면 우스꽝스럽고, 밤에 보면 섬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뿌연 DDT 연기 속에서 새의 머리를 닮은 방독면을 뒤집어쓰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정말이지 구름 속을 헤매는 반인반조들처럼 보였다. 그들은 등에 둥근 스테인리스 통을 맨 채로 기다란 막대기 같은 분사구를 여기저기 돌려 가며 살충제를 뿌렸다.

   남자들과 달리 공장의 여자 근로자들은 오늘이 휴일이나 다름없었다. 여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거나 뭔가를 나눠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노인은 그런 여자들을 멀리서 바라보거나 공장 안을 배회하는 반인반조들을 구경하며 시간을 때웠다. 그러면서 자신의 아들을 떠올렸다. 노인은 자신의 아들이 전쟁 후에 태어난 아이답게 형편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노인은 자신의 아들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아들이 지금 정확히 몇 살인지도 가물가물했다. 전쟁에 대한 기억 역시 선명하지 않았다. 노인은 자신이 그때 참전했는지, 하지 않았는지를 떠올리며 머리를 천천히 좌우로 번갈아 기울여 보았다. 그래도 전쟁과 관련된 기억은 안개 뒤로 숨어버린 것처럼 불분명했다. 전쟁 통에도 이 공장과 함께한 것은 분명했지만 자신이 무슨 일을 한 것인지는 일부분만 떠오를 뿐이었고, 그마저도 부정하고 싶은 기억들뿐이었다. 노인은 이 모든 모호함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 머릿속에 박혔다던 두 개의 총알 탓으로 돌렸다. 하얀 이를 드러내 보이며 미소와 함께 그 소식을 전하던 의사의 얼굴을 노인은 지금까지도 생생히 기억했다. 그것은 구원의 얼굴처럼 노인에게 다가왔다.

   인간들이 저마다 노동과 수다와 회상으로 시간을 보내는 동안, 공장 역시 자신의 온몸을 가득 채우는 DDT를 바라보며 과거를 떠올렸다. 공장은 한때 집단 수용소로 사용된 적이 있었다. 그때 공장 구석에는 지금처럼 DDT와 비슷한 뿌연 연기가 매일같이 피어오르던 방이 하나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렬로 줄을 서서 그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넋을 잃은 표정으로 한 방에 가득 들어찬 삼층 침대 위에 차곡차곡 누워서 시간을 보냈다. 몇몇은 하릴없이 땅바닥만 바라보며 돌아다니다가 철조망 너머를 말없이 바라보기도 했다. 그렇게 공장에 갇혀 있던 사람들은 어느 날 새벽, 수많은 군용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후 공장은 지금의 닭 가공 공장으로 탈바꿈되었다.

   소독은 하루 종일 계속되었다. 공장의 남자들은 구름에 휩싸인 것처럼 소독약에 갇혀 공장 안으로, 안으로 계속해서 들어가는 바람에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여자들은 여전히 공장의 마당에서 삼삼오오 모여 앉아 수다를 떨거나 하늘을 바라보며 시간을 죽였다. 마당가에 서서 오랫동안 하늘을 올려다보던 여자 하나가 빠른 속도로 상공으로 솟구쳐 높이 빨려 올라갔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 공장의 낡은 담벼락 아래, 시멘트가 균열된 틈에서 피어난 노란 들꽃만이 저 멀리 사라져 가는 여자를 배웅했다.

 

   남자는 볏 모양을 한 자신의 성기를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과연 여자가 임신을 한 것이 사실일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어떻게 임신이 가능했을까. 성기 가장자리에 울긋불긋하게 돋아나서 축 늘어진 돌기들은 마치 시든 꽃잎처럼 보였다. 만약 여자가 아이를 낳는다면 그 아이는 이 도시의 마지막 아이가 되거나 새롭게 태어나는 첫 번째 아이가 될 터였다. 남자는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문득 남자는 자신에게 선택권이 과연 있는 것인지 되물었다. 이 문제에 있어 선택권을 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했다. 남자도, 여자도, 그리고 여자의 뱃속에 담긴 아이도. 아이가 태어나면 여자의 뱃속은 그만큼 텅 비어서 허해지지 않을까. 남자는 낮에 먹은 삼계탕을 떠올렸다. 마음을 정한 남자는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옷장 위에서 커다란 트렁크를 내렸다. 트렁크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남자는 문득 죽은 코끼리가 생각났다. 한때 여자는 남자에게 코끼리 이야기를 자주 했다. 도시로 전입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던 무렵의 일이었다. 어느 해 유난히도 혹독했고 자주 정전이 일어나던 겨울, 연료가 부족해서 차들이 멈춰서고 사람들은 추위에 떨어야 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동물원 우리의 문을 열고 코끼리를 밖으로 끌어냈다. 널찍한 귀를 펄럭거리던 아프리카코끼리였다. 조련사는 불쌍하다는 듯이 코끼리의 코를 매만졌다. 얼마 후 코끼리는 석탄이 가득 담긴 화차를 끌고 도시 여기저기를 누비기 시작했다. 그해 겨울이 끝날 무렵 도시에 마지막 눈이 내렸을 때 코끼리는 얼어 죽고 말았다. 사람들은 슬퍼하며 거대한 구덩이를 파서 코끼리의 시체를 묻었다. 봄이 오자 코끼리의 무덤 위로는 수많은 풀들이 자라났다. 아이들은 그 위에서 미끄럼을 타며 놀았다. 이야기를 끝내면서 여자는 언제나 이렇게 덧붙였다. 난 아직도 그 코끼리의 눈 밑에 얼어붙어 있던 눈물이 생각나요. 그때마다 남자는 말없이 여자의 두 손을 꼭 잡았다. 여자는 자신의 손을 빼내어 남자의 코를 어루만졌다. 당신 코가 코끼리처럼 길게 자랐으면 좋겠어.

 

   인적이 끊긴 공장은 고즈넉했다. 공장은 오늘도 죽은 닭의 날갯짓 소리와 냄새에 어지러움을 느꼈다. 예전에 인간들을 감금했을 때도 공장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멀리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공장은 소리가 나는 쪽을 예의주시했다.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여자였다. 공장은 여자의 뱃속에 담긴 생명체가 예전에 비해 더욱 커진 것을 느꼈다. 여자는 두 손으로 아랫배를 감싼 채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어쩌면 여자는 사라진 남자 근로자들을 찾아 공장 안을 배회하는지도 몰랐다. 살충제와 DDT를 뿌리던 그날, 남자들은 공장 안으로, 안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갔고 끝끝내 나오지 않았다. 뿌연 구름처럼 보이던 DDT 속을 헤매던 남자들이 모두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공장의 여자 근로자들과 노인, 나중에는 경찰들이 나서서 남자들을 찾았지만 어디에서도 그들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 집단 실종 사건은 한때 도시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공장은 남자들이 모두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고 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새의 머리를 닮은 방독면을 쓴 채 구름 속을 헤매는 중이었다. 그날 이후 공장은 잠정폐쇄되었다.

   여자는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공장 안 여기저기를 배회했다. 공장은 여자의 몸에서 심각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눈치 챘다. 여자는 계속해서 배가 아파 오자 숫제 공장 바닥을 기다시피 하였다. 그러면서도 누군가를 불렀으나 그 목소리는 너무나 낮고 가녀렸다. 결국 여자는 주저앉아서 이를 악물었다. 공장은 쓰러지는 여자의 몸을 차가운 바닥으로 받았다. 너무도 아픈 나머지 여자는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그러다 컨베이어 벨트 아래로 굴러 들어가고 말았다. 거기서 여자는 거대한 태아처럼 웅크리고서는 비명을 질렀다. 공장은 여자에게서 이제 막 태어나려는 분신을 잘 거두리라 마음먹었다. 무언가를 길러 본 적이 없는 공장으로서는 여자의 아이가 자신이 지금까지 해온 무신경하면서도 의미 없고, 어떤 의미에서는 악하기까지 했던 행동의 보상이거나 혹은 속죄의 길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나긴 고통 끝에 여자가 낳은 것을 본 순간 공장은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여자가 낳은 것은 거대하고 길쭉한 타원형 알이었다. 알 속에 담긴 태아의 모습도 기이했다. 마치 절단기로 몸을 두 동강 낸 것처럼 머리도 몸도 팔도 다리도 모두 반쪽뿐이었다.

 

   그 무렵 노인은 공장 정문 옆에 마련된 숙직실에서 커다란 트렁크를 들고 찾아온 남자를 만나고 있었다. 남자는 노인 앞에 털썩 앉고 나서도 한동안 말이 없었다. 노인은 남자 옆에 놓인 트렁크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그러고 나서 다시 예의 반인반조의 조상님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서사시처럼 펼쳐지던 노인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기만 했다. 마침내 이야기를 끝낸 노인이 물었다. 그래서 어찌할 셈이냐? 남자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을 떠나려 합니다. 노인은 두 눈을 꼭 감고 생각에 잠겼다가 이윽고 말했다. 대체 어디로 가려고? 남자는 잘 모르겠다는 듯이 머리를 몇 차례 가로젓더니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노인은 불안한 눈빛으로 남자에게 물었다. 공장에서 사라진 남자들 이야기를 들었느냐? 남자는 의아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전 시대에 너무 많은 피를 흘렸다. 우리에겐 미래가 없어. 그래도 아직 기회는 있다. 너는 두 발을 땅에 붙이고 살아야만 해. 너의 손은 이제 더 이상 빈손이 아니다.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제가 쥔 것을 놓아버리면 언제든 저는 빈손입니다. 그러면 제 두 발도 가볍게 떠오르겠지요. 노인은 한동안 남자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다가 힘들게 입을 열었다. 총을 놓고서 우린 한때 무엇을 다시 쥐어야 할지 몰랐다. 이제야 쥐어야 할 것을 제대로 쥐게 됐는데 넌 또다시 빈손으로 돌아갈 테냐? 네가 쥔 것을 내게 넘겨선 안 된다. 남자는 묵묵부답이었다. 노인은 마침내 결심이 섰다는 듯이 단호한 눈빛으로 말했다. 나가자꾸나.

   밤하늘 아래에서 노인과 남자는 나란히 섰다. 가벼운 바람이 불었다. 공장 주변으로 풀냄새가 났고 벌레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하늘에는 몇 개의 별이 떠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아직도 별의 숫자는 예전에 비해서 많이 모자랐다. 언제나 저보다 공장 일이 우선이었죠. 남자는 노인을 바라보지 않은 채 앞만 바라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노인은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사실 남자는 노인에게 할 말이 별로 없었으므로 입을 다물었다. 반면 노인은 남자에게 할 말이 너무 많았기에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 둘은 꽤 오랫동안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며 나란히 서 있었다. 마침내 노인은 입을 열었다. 이제 너는 손에 쥔 것을 버리거나 계속 쥐고 있겠지. 만약 내가 너에게서 넘겨받지 않는다면……. 남자는 노인의 다음 말을 기다렸지만 더 이상 아무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든 남자는 고개를 돌려 노인이 서 있던 쪽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노인이 있던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남자는 고개를 돌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머리 위로는 몇 개의 별이 떠 있을 뿐이었다.

   공장 한구석에 알을 낳은 여자는 한동안 몸을 웅크린 채 움직일 줄을 몰랐다. 그 모습은 마치 탈피하고 버려 둔 인간 형상의 껍질 같았다. 공장은 여자가 정신 차리기를 바라며 연신 찬 기운을 여자의 몸속으로 흘려보냈다. 그렇게 공장으로부터 찬 기운을 한참이나 받은 뒤에야 여자는 겨우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자는 무릎걸음으로 컨베이어 벨트 아래에서 천천히 기어 나왔다. 힘겹게 겨우 밖으로 나온 여자는 벌러덩 대자로 누우며 혼잣말을 했다. 공장은 여자의 그 말이 자신을 향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낳은 알에게 한 것인지, 그도 아니면 둘 다에게 한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날이 밝아 왔다. 남자는 노인의 옆자리에서 오랫동안 선 채로 새날을 맞았다. 남자의 몸 여기저기에 내렸던 밤이슬이 떠오르는 아침 햇살에 서서히 말라 가기 시작했다. 문득 등 뒤에서 발소리를 들은 남자는 고개를 돌렸다. 여자가 한 팔로 아랫배를 감싼 채 걸어오고 있었다. 남자는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은 여자의 불안한 걸음걸이에도 말없이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인기척을 느낀 여자 역시 고개를 들어 남자를 쳐다보았다. 두 눈에는 놀란 표정이 가득했다. 여자는 잠시 망설이는 눈치였지만 이내 남자를 향해 다시 걸음을 옮겼다. 왜냐하면 남자가 서 있는 쪽이 동쪽이었기 때문이다. 간밤에 여러 일들이 일어났음에도 행성은 여전히 자신이 정한 질서에 따라 정확히 한 바퀴의 자전과 그만큼의 공전을 이어가고 있었다. 남자와 여자와 공장은 서로 말하지 않았으나 그러한 변함없고 한결같은 행성의 운행에 일말의 위안을 얻었다. 드디어 여자는 남자와 나란히 서서 햇볕을 받기 시작했다. 남자는 여자의 두 다리 사이로 가느다란 핏줄기가 흐르고 있음을 눈치 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자는 고개를 한없이 뒤로 젖혀서 하늘을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여자에게 건넬 말이 마땅치 않았던 남자는 묵묵히 땅만 바라보았다. 그러다 노인이 생각난 남자는 조심스럽게 여자의 한 손을 잡았다. 여자는 남자가 자신의 손을 잡은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러고도 한참을 하늘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오랫동안 여자는 하늘을 바라보았지만 빨려 올라가지 않았다. 여자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나, 알을 낳았어.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당신 알이 아니야. 남자는 여자의 옆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사타구니가 딱딱하게 굳어 가는 것을 느꼈다. 시든 꽃잎처럼 그곳이 이내 말라 비틀어져 떨어질 것만 같았다. 남자는 잡았던 여자의 손을 슬그머니 놓은 다음 여자를 따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날 팬잰드럼 말이야. 왜 바다 속에 잠겨 있다가 그제야 기어 나와서 해변을 돌아다녔는지 알 것 같아. 남자의 말에 여자는 묵묵히 눈을 깜박거렸다. 여자는 너무 오랫동안 올려다본 탓에 자신의 목이 아파 오는 것을 느끼며 덧붙였다. 그때도 당신은 아이를 똑바로 쳐다보길 싫어했어.

 

   공장은 자신이 언제 그곳에 들어섰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아주 오랫동안 공장은 한자리에서 시간을 보내며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내고 있었다. 처음에 공장은 새장을 만들었다. 그런 다음 전쟁이 터지자 공장은 수용소로 쓰였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닭 가공 공장으로 변했다. 세 가지 모두가 제각기 다른 일이었지만 공장으로서는 이 모든 일이 비슷비슷하게 느껴졌다. 도시에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언제나 계엄령이 내려져 있는 것 같았다. 전 시대에도 마찬가지였고, 미래에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고 공장은 생각했다. 인간들은 그저 묵묵히 시간을 보낸 뒤 북쪽 산맥을 향해 단체로 걸음을 옮기거나 제각기 하늘로 빨려 올라갈 뿐이었다. 다행히도 도시에서는 아이들이 여전히 태어나지 않았다. 백 년을 주기로 돌아오던 혜성은 화성의 올림포스 산 상공 위를 지나갔다. 도시의 방공기구들 중 몇 개는 드디어 헬륨 가스가 새어 나가 지상으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여남은 개는 도시의 상공 위를 둥둥 떠다녔다. 전력 사정이 나빠진 탓에 지하철은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방공호 위로는 풀이 자랐고, 방공포대에는 고양이들이 새끼를 낳았다.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 아래에 있던 알은 그 뒤로도 오랫동안 방치되었다. 공장은 여자가 낳은 이 기이한 알을 어찌해야 할지 몰랐고, 다른 사람들 역시 폐쇄된 공장을 오랫동안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공장의 몸은 차갑게 식어 갔고, 여자가 낳은 알 역시 딱딱하게 굳어 화석이 돼버렸다. 이제 알은 하나의 표본으로 박물관에 전시될 날만을 기다렸다. 그날 아침, 공장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서 있었던 남자와 여자는 이 같은 사실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사실 공장은 인간들을 볼 때마다 늘 불안했다. 새의 가슴만 한 인간의 좁은 발바닥은 금세라도 땅에서 떨어져 나가 높이 치솟아 오를 것만 같았다. 인간들은 온몸을 지면에 밀착시키거나 네 발로 단단히 땅을 움켜쥐는 대신 두 손을 얻었으나 항상 그 손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공장은 이제 오랜만에 얻은 죽음 같은 휴식 속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늘로 빨려 올라가는 도시의 인간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도시의 인간들 모두가 사라질지도 몰랐다. 공장은 문득 자신의 땅 밑에서 무수한 꿈틀거림이 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문장웹진 7월호》

 

 

 

 

 

   【창작 노트】

 

   우리에게 어떤 거대한 사건이 일어난다 해도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그와 상관없이 자신만의 질서를 계속해서 지켜나간다. 그 모습은 지나치게 무정해 보이고 또 우리를 낙담하게 만들 때가 많지만 또 때로는 그러한 모습에서 위안을 얻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고즈넉한 세기말 풍경을 그려보고 싶었다.

   또한 전쟁사에 관심이 많다 보니 과거에 벌어졌던 세계대전의 이미지가 많이 차용되었다. 사실 인간의 역사에서 전쟁이란 항목을 지워버린다면 얄팍한 소책자 정도만 겨우 남을 것이다. 태초에 인간에겐 머리보다 두 발과 두 손이 먼저 주어졌다는데 우리는 여전히 이 두 발과 두 손을 잘못 쓰는 것 같다. 구조적으로 볼 때 서 있는 인간은 꽤나 불안해 보인다. 쥐며느리만큼의 안정성도 없는 게 아닐까. (하지만 쥐며느리에게도 아쉬운 점이 하나 있으니 공벌레와 비슷하게 생겼으나 몸을 공처럼 둥글게 말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소설을 쓰다 막히면 자주 하늘을 올려다보고 싶었다. (실제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올려다보아 봤자 내 눈엔 천장만 가득 들어올 따름이었다.) 하지만 예전엔 가끔씩 푸른 하늘을 올려다본 것 같다. 그렇게 보고 있자면 정말이지 빨려 올라갈 것만 같았다. 앞으로 내가 또 그런다면 그때 누군가 내 손을 꼭 잡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불안하게나마 나는 계속 이 땅 위에 서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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