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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중얼거리다

산다는 것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1. 8. 19. 22:22

 

산다는 것

 

 내가 사는 곳은 서울에서 가난하기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서울의 끝 동네이다. 벌써 30년이 넘게 인수봉에 눈 맞추고 도봉을 손짓하며 살고 있다. 인연이란 묘한 것이어서 우연치 않게 지역 문화원에서 시창작 강의를 하게 된 것도 6년이 넘어가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 일 년 열 두 달 연중무휴이다.

 

 알량한 몇 푼의 지식으로 나는 그곳에서 왕으로 군림한다. 수강생들을 향해 호통도 치고 푸념도 늘어 놓는다. 그곳은, 그 시간만큼은 세상을 내가 가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그곳의 수강생들은 대부분 자식들을 다 훌륭하게 키워내고 건강한 가정을 일군 가정주부이거나 평생을 열심히 살아오신 정년퇴직자들이시다.

 

 그들에게 나는 인생을 이야기하고 죽음에 대해서 훈계를 한다. 참으로 어줍잖은 행동임에도 그들은 아무 말이 없다. 잘못 생각하면 내가 훌륭한 인품과 학식을 가진 까닭이라고 자화자찬할 수 있다. 가끔은 그런 착각에 빠지기도 하지만 나는 그들의 묵언을 안다. 그 묵언의 의미를 안다. 그들은 나의 과장됨을 내치지 않고 그들의 반면교사로 나를, 나의 언사를, 행동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강의가 끝나고 될 수 있으면 그들과 함께 점심을 든다. 내 자리는 항상 상석, 무엇이든 내 앞으로 먼저 오게 되어 있다. 같은 종류의 음식을 들어도 음식점 주인은 고기 한 점, 생선 한 토막이라도 더 넣어 준다. 음식점 주인의 배려는 사실 수강생들의 특별 부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늘도 열 대여섯 명이 함께 식사를 했는데, 헤아려 보니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은 세 명에 불과했다. 오랜 공직생활을 영예롭게 마치신 분들, 학식과 경험이 출중하신 분들에게 스승의 칭호를 듣는 것은 정말 감격스런 일이다. 나는 그들에게서 겸손을 배운다. 무례하게 늙은이 취급을 하는가하면, 재주 없다고 타박하기 일쑤인 나에게 그들은 더 높고 그윽한 가르침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금요일 한나절은 꿈길처럼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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