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
박상훈 (1954 ~ )
나무들 사이마다 실로폰이 있다
비무장의 새들이 콕콕 쪼으면
죄없는 들판은 갈기를 세운다
비명처럼 외마디 線은
안보일 때까지 내질러져 있다
익숙한 오발의 총소리
나비 4㎞를 나는 솔개가 줍는다
저 길은 피양가는 길
두런두런 흰 옷까지 나부낄 듯 하다
아직도 황톳길은 손금처럼 진하다
빗장을 열면
북녀 北女의 머리냄새 풍겨올 것을
낮은 산 높은 산에 죄다 보초만 선다
근무중 이상 무
전 전선에선 똑같은 말만 하지만
노루들은
자꾸 집을 옮긴다.
시집 『우리들의 자판기』예진출판, 1990
몇 년 만에 그를 만났다. 같은 대학을 나오고, 같은 써클에서 활동했으며 졸업 후엔 결성 30년 동안 3권의 앤솔로지를 낸 현재진행형 동인회의 일원이기도 하다. 인사동 골목 ‘지리산’에서 만나자 마자 그가 내게 한 말 ‘ 아직도 시를 쓰는 사람이 있나?’ 이건 비아냥인가? 아니면 한탄인가? 등단과정을 마치고 우리는 물길 흘러가는대로 각자의 길을 걸어 그는 광고 카피라이터로 기획자로 입신을 했고, 나는 벼랑 끝에 잡을 것이 시 밖에 없었으니 시 대신 진땀과 한숨을 내뱉는 처지일 터..
문득 1976년인가 전방의 어느 비포장도로에서 그와 만났던 기억.. 통신선 매설 작업에 그는 중위 계급장을 달고 나는 말년 병장이 되어 만났던 기억...
「264△」는 서부전선 무명고지, 그가 소대장으로 북녘하늘을 바라보며 쓴 시이다. 분단의 비극을 이만큼 서정적인 풍경으로 뒤바꾸는 그의 섬세한 시심은 어디쯤 둥지를 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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