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264△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1. 7. 18. 16:56

 

264△

박상훈 (1954 ~ )

 

나무들 사이마다 실로폰이 있다

비무장의 새들이 콕콕 쪼으면

죄없는 들판은 갈기를 세운다

비명처럼 외마디 線은

안보일 때까지 내질러져 있다

익숙한 오발의 총소리

나비 4㎞를 나는 솔개가 줍는다

저 길은 피양가는 길

두런두런 흰 옷까지 나부낄 듯 하다

아직도 황톳길은 손금처럼 진하다

빗장을 열면

북녀 北女의 머리냄새 풍겨올 것을

낮은 산 높은 산에 죄다 보초만 선다

근무중 이상 무

전 전선에선 똑같은 말만 하지만

노루들은

자꾸 집을 옮긴다.

시집 『우리들의 자판기』예진출판, 1990

 

몇 년 만에 그를 만났다. 같은 대학을 나오고, 같은 써클에서 활동했으며 졸업 후엔 결성 30년 동안 3권의 앤솔로지를 낸 현재진행형 동인회의 일원이기도 하다. 인사동 골목 ‘지리산’에서 만나자 마자 그가 내게 한 말 ‘ 아직도 시를 쓰는 사람이 있나?’ 이건 비아냥인가? 아니면 한탄인가? 등단과정을 마치고 우리는 물길 흘러가는대로 각자의 길을 걸어 그는 광고 카피라이터로 기획자로 입신을 했고, 나는 벼랑 끝에 잡을 것이 시 밖에 없었으니 시 대신 진땀과 한숨을 내뱉는 처지일 터..

 

문득 1976년인가 전방의 어느 비포장도로에서 그와 만났던 기억.. 통신선 매설 작업에 그는 중위 계급장을 달고 나는 말년 병장이 되어 만났던 기억...

 

「264△」는 서부전선 무명고지, 그가 소대장으로 북녘하늘을 바라보며 쓴 시이다. 분단의 비극을 이만큼 서정적인 풍경으로 뒤바꾸는 그의 섬세한 시심은 어디쯤 둥지를 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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