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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 칼럼

소년이 묻는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10. 22. 11:03


소년이 묻는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중앙일보
입력 2024.10.22 00:40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는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사진)를 읽는 일은 피에 젖은 텍스트를 업고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는 것과 같다. 『소년이 온다』를 한달음에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다지 길지 않은 이 장편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종종 쉬고, 자주 한숨을 쉬어야 한다. 『소년이 온다』는 한국 현대사가 낳은 구상도(九相圖)이기 때문이다. 구상도란, 인간의 시체가 어떻게 부패해가는지를 두 눈 똑똑히 뜨고 보라고 권하는 그림 장르다. 시체가 즐비했던 1980년 5월 광주를 다루는 『소년이 온다』 역시 불가피하게 시체에 대한 묘사를 담는다. “그녀는 십대 후반이나 이십대 초반의 자그마한 여자였는데, 썩어가면서 이제는 성인 남자만큼 몸피가 커졌다…너는 부패의 속도에 놀란다.”(11쪽)

현대사의 비극 5·18 정면 응시
공감 구하는 정서적 호소이자
사유를 촉발하는 지적인 질문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 귀결


생각의 공화국

전통적인 구상도가 인간은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는 보편적 사실을 전한다면, 『소년이 온다』의 독자는 죽지 않아도 되었을 인간이 죽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전한다. “여자의 이마부터 왼쪽 눈과 광대뼈와 턱, 맨살이 드러난 왼쪽 가슴과 옆구리에는 수차례 대검으로 그은 자상이 있다. 곤봉으로 맞은 듯한 오른쪽 두개골은 움푹 함몰돼 뇌수가 보인다. 눈에 띄는 그 상처들이 가장 먼저 썩었다. 타박상을 입은 상처의 피멍들이 뒤따라 부패했다.”(12쪽) 독자가 지켜봐야 하는 것은 죽지 말아야 했을 이들의 시체다. 그러니 힘겹지 않을 도리가 있는가.

한국 현대사의 구상도(九相圖)


이처럼 힘겨운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소년이 온다』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독재자의 폭정을 비판하고 민주화 과정의 피해자들을 옹호하려는 것일까. 책을 끝까지 읽은 이라면 거의 누구나 당시 가해자들에 대한 분노와 피해자들에 대한 슬픔에 휩싸이게 되지만, 『소년이 온다』는 단순히 피해자를 찬양하거나 위로하는 소설이 아니다. 찬양과 위로에 앞서, 『소년이 온다』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전하는 데 주력하고, 그렇게 전해진 목소리의 내용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그것은 공감을 구하는 정서적 호소일 뿐 아니라 사유를 촉발하는 지적인 질문이다.

최근 인터뷰에서 한강은 말했다. “어느 시기에든 골몰하는 질문이 있고, 그 질문을 진척시켜보는 방식으로 소설을 쓰게 됩니다.” 그렇다. 『소년이 온다』 역시 골몰하는 질문들로 가득 차 있다. 1980년 광주에서 벌어진 그 불가해한 상황을 두고, 작가는 묻고, 묻고, 또 묻는다. 거듭거듭 묻는다. “왜 나를 죽였지, 어떻게 죽였지.”(52) 이 질문은 반복된다.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58) 도대체 왜 그랬을까. 그들은 악마였나. 이 질문은 결국 인간에 대한 질문으로 귀결된다.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134)

잔인한 가해자는 무력한 피해자를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134)로 만들어버리고 싶어 한다. 잘난 척 하지 마라. 인권? 잘난 척 하지마라. 존엄? 잘난 척 하지마라. 너희는 결국 쓰레기다, 라고 말하고 싶어한다. 상대가 자신처럼 비천해지기를 바라는 이들은 상대를 서슴없이 고문한다. 싹싹 빌 때까지 고문한다. “살려주시오. 헐떡이며 남자가 외쳤다. 경련하던 남자의 발이 잠잠해질 때까지 그들은 멈추지 않고 곤봉을 내리쳤다.”(25) 왜 이토록 잔인해지는가. 그들은 누군가 존엄을 지키는 모습을 참지 못한다. 그들의 존엄을 통해 자신의 비열함이 드러나게 되니까. “너희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른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었는지, 우리가 깨닫게 해주겠다.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몸, 상처가 문드러지는 몸, 굶주린 짐승 같은 몸뚱아리들이 너희들이라는 걸, 우리가 증명해주겠다.”(119)

이러니 5·18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사람들은 도리 없이 묻게 된다.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134) 만약 여기서 멈추어 섰다면 『소년이 온다』는 인간의 어두운 면을 고발하는 작품이었을 것이다. 거기에 그쳤을 것이다. 인간의 잔악함을 고발하는 선언에 불과할 뿐, 인간의 심연을 탐구하는 질문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잔인한 가해자들만큼이나 선한 피해자들이 있었기에 한강은 멈추어 서지 않는다.

단순한 선도, 단순한 악도 아닌 …
5·18의 시민들은 수동적인 피해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도 몰랐던 자신을 발견하는 체험을 한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114) “선생은 압니까,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116)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같은 인간의 탈을 썼기에, 이제 인간은 단순한 선도 아니고 단순한 악도 아닌, 그야말로 모순을 품은 질문이 된다. 인간은 실로 양면적이며 모순적이다. “특별히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다. 처음 자료를 접하며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연행할 목적도 아니면서 반복적으로 저질러진 살상들이었다…특별히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던 것처럼 특별히 소극적인 군인들이 있었다. 피 흘리는 사람을 업어다 병원 앞에 내려놓고 황급히 달아난 공수부대원이 있었다.”(206, 212) 어떤 특정한 경험이나 편견으로 인해 인간을 일방적으로 찬양하거나 증오하기는 쉽다. 그러나 모순으로 가득 찬 그 존재의 전모를 끌어안기는 쉽지 않다. 인간이란 저열하기도 하고 고귀하기도 한 존재, 아니 저열해질 수도 있고 고귀해질 수도 있는 존재. 그러니 물을 수밖에.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한강은 인터뷰에서 말했다. “저는 언제나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그리고 산다는 게 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자꾸 생각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인간의 저열함은 놀랍게도 생존의 욕망에서 온다. 살겠다는 의지에서 온다. 인간은 죽음이 두렵다. 그 바닥없고 어두컴컴한 구덩이가 두렵다. “입을 벌리고 몸에 구멍이 뚫린 채, 반투명한 창자를 쏟아내며 숨이 끊어지고 싶지 않았다.”(89) 그리하여 “쇠가 몸을 뚫으면 사람이 쓰러진다”(115)는 사실에 집착한다. 그래서 총칼을 피하고, 먹을 것을 입에 쑤셔 넣고, 자기 것을 챙기고, 자기 새끼를 감싸고, 재산증식에 골몰한다. 살아 있는 그 누구도 이 욕망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삶이란 실로 지긋지긋한 것이다. 그래서 말한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135)

생존을 넘어서게 하는 고귀한 힘

그러나 인간은 그저 생존에 연연하기만 하는 존재는 아니다. 인간은 한갓 생존을 넘어서려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렇게 넘어서게 하는 고귀한 힘을 한강은 양심 혹은 영혼이라고 부른다. 영혼이 고개를 들 때 “결국 그 앳된 학생들의 스크럼 속으로 걸어 들어갔을 것이다. 가능한 한 끝까지 그 속에서 버텼을 것이다. 혼자 살아남을 것을 가장 두려워했을 것이다.”(87) 그토록 생존에 연연하던 존재가 문득 혼자만 살아남을 것을 거부하게 되는 것이다. “나 자신을 지키는 일로 남은 인생을 흘려보내지 않았을 거란 말이야.”(162) 이 견결한 영혼이란 것은 동시에 너무나도 가냘픈 존재. 그래서 묻는다, “그건 무슨 유리 같은 건가”(130) 영혼은 유리 같은 것이기에 깨지기 쉽고, 깨지기 쉽기에 조심해서 다루어야 하는 것. 영혼이 깨지는 순간조차 그것은 영혼의 부재증명이 아니라 존재증명이다. 약하지만 투명한 무엇인가 기어이 존재했다는 증거. 인간이 짐승에 불과하지 않았다는 증거.

인간이 이토록 모순적인 존재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인간을 그저 악마로만 보거나 그저 천사로만 보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군중을 이루는 개개인의 도덕적 수준과 별개로 특정한 윤리적 파동이 현장에서 발생”(96)되는 법이기에, 인간의 집단적 삶의 형식과 배치에 대한 사회과학적 고민이 필요하다. 똑같은 사람도 그 형식과 배치에 따라 악마가 될 수도 천사가 될 수도 있기에. 그리고 그 어떤 사회적 배치 속에서도 “끈질긴 의심과 차가운 질문들 속에서 살아 나가야 한다”(96) 『소년이 온다』가 바로 그러한 인문학적 질문을 던진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인지 끝내 확실히 알 수는 없겠지만, 한강은 인간에게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믿음만큼은 포기하지 않는다.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이마에 들어와 박힐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다. 『소년이 온다』의 마지막 부분, 죽은 동호의 어린 시절을 엄마는 이렇게 회상한다. “여덟살 묵었을 때 네가 그랬는디. 난 여름은 싫지만 여름밤이 좋아.”(191) 그렇게 말한 동호에게 나는 이렇게 화답해본다. “난 인간은 싫지만, 인간의 영혼이 좋아.” 영혼은 밤처럼 서늘한 것이니까. 여름밤이 없으면 여름을 견딜 수 없고, 영혼이 없으면 인간을 견딜 수 없으니까.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859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