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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풍요로운 숲, 편안한 산책길, 오래된 절집을 지켜온 큰 모과나무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5. 7. 13:09

[나무편지] 풍요로운 숲, 편안한 산책길, 오래된 절집을 지켜온 큰 모과나무

  ★ 1,230번째 《나무편지》 ★

   입하에 피어나서 ‘입하목’이라고 불리다가 ‘이팝나무’가 됐다는 설을 가진 이팝나무 꽃이 입하 못미처에 활짝 피어나더니 입하에는 외레 길 위에 다 떨어졌습니다. 눈 내린 겨울날처럼 하얀 이팝나무 꽃이 길 위에 수북이 깔렸습니다. 이팝나무 꽃 진 입하 뒤의 아침, 지난 《나무편지》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모과나무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모과나무는 흔히 볼 수 있지만, 그의 꽃을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여느 봄꽃 못잖게 예쁘고 좋은 꽃이지만 꽃 피어있는 시간이 다른 나무에 비해 짧은 때문입니다. 같은 장미과의 벚꽃을 비롯한 대부분의 봄꽃에 비해 꽃송이가 클 뿐 아니라, 분홍 빛의 꽃잎이 더 없이 고운 꽃이건만 놓칠 때가 많았습니다.

   모과나무 이야기 전해드리기에 앞서 이 달 중에 여는 천리포수목원 프로그램 일정부터 알려드리겠습니다. 지난 사월의 ‘목련축제’에 이어 오월에도 두 차례에 걸쳐 수목원의 봄나무와 봄꽃을 두루 살펴보는 프로그램입니다. 나무들을 더 살갑게 바라보기 위한 실내 강좌를 짧게 진행하고, 이 계절에 천리포수목원 숲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풀꽃과 나무를 함께 돌아보며 이야기 나누는 산책 프로그램입니다. 이달에는 11일(토)과 19일(일)에 진행합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예약하실 수 있습니다.

   https://bit.ly/3LEQccA <== 《고규홍과 함께하는 '나무들의 봄마중'》예약페이지

   이제 모과나무 이야기 다시 이어갑니다. 이 봄에는 작정하고 모과나무 꽃을 찾기로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모과나무로 여겨지는 몇 그루 가운데에 그 동안 뜸하게 만났던 나무를 선택했습니다. 오늘 《나무편지》에서 보여드리는 〈순창 강천사 모과나무〉가 그 나무입니다. 모과나무는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잘 자라는 나무이지만, 비교적 오래 된 나무가 많지 않습니다. 국가유산 천연기념물에 지정한 나무는 《나무편지》와 《나무강좌》에서 몇 차례 소개한 적 있는 〈청주 연제리 모과나무〉가 유일합니다.

   지방기념물로 지정된 모과나무는 모두 4그루 있습니다. 경남 창원 마산의 의림사라는 오래된 절집에 서 있는 〈창원 인곡리 모과나무〉, 역시 경남의 의령 충익사 경내에 서 있는 〈의령 충익사 모과나무〉, 그리고 2005년에 강원도기념물로 지정된 〈삼척 안의리 모과나무〉 그리고 오늘 전해드릴 〈순창 강천사 모과나무〉까지입니다. 물론 아직 국가유산으로 지정하지 않은 나무 가운데에도 이만큼 훌륭한 나무가 아주 없는 건 아닙니다. 워낙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이고, 꽃이나 나무 줄기가 아름다워 많은 사람들이 심어 키우는 나무인데다, 생육 조건이 까탈스럽지 않아 잘 자라기까지 해서, 좋은 모과나무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지요.

   모과나무는 중국에서 들여와 심어 키운 나무이지만,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 전국에서 심어 키워와서 우리 민족에게 친숙한 나무입니다. 분홍의 화사한 꽃은 물론이고, 꽃 지고 잎 진 뒤에 환히 드러나는 나무 줄기 껍질의 매끈한 아름다움까지 모두가 좋아하는 나무입니다. 이 나무의 열매인 모과는 사람을 세번 놀라게 한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맨 먼저 모과를 보고는 “어찌 이리 못생긴 과일이 있을까” 하며 놀라고, 다음으로 “이렇게 못 생긴 과일에서 이리 좋은 향기가 낼까” 하는 것에 놀라며, 향기에 취한 사람들이 이 과일을 먹으려 하지만, 먹을 수 없다는 것에 한번 더 놀란다는 거죠.

   〈순창 강천사 모과나무〉는 1998년에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된 큰 모과나무인데요. 나무높이 20미터, 가슴높이줄기둘레 3.1미터의 규모로, 순창 강천산의 절집 강천사 바로 앞을 흐르는 개울가 언덕 위에 서 있는 크고 아름다운 나무입니다. 나무높이 12미터, 가슴높이줄기둘레 3.3미터로 천연기념물에 지정된 〈청주 연제리 모과나무〉와 비교해 보아도 규모에서는 전혀 뒤지지 않습니다. 지방기념물로 지정된 다른 모과나무들과 비교해도 마찬가지로 규모에서만큼은 가장 큽니다. 규모가 크다는 것만으로 나무의 훌륭함을 단정할 수는 없지만, 〈순창 강천사 모과나무〉는 모과나무 특유의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돋보이는 나무이지요.

   절집이 바로 앞에 있어서 절집 사람들이 풍치를 위해 심은 건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긴 한데, 나무와 관련한 기록이 없어 나무의 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혹시 처음에 풍치를 염두에 두고 심어 키웠다 하더라도 지금은 주변의 다른 나무들에 묻혀서 함께 자라는 바람에 경관적 가치가 탁월하다고 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지방기념물이나 천연기념물의 국가유산으로 지정된 다른 나무들은 대개 환경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한 조경용 나무입니다. 그런 ㅏ무들은 주변 환경을 거느리고 홀로 우뚝 서 있어서 나무가 돋보이는 상황이지만 〈순창 강천사 모과나무〉는 숲길의 계곡 길에서 다른 나무들과 뒤섞여 자라는 상태여서 얼핏 보아서는 그 아름다움을 놓치기 십상입니다.

   〈순창 강천사 모과나무〉의 멋을 제대로 느끼려면 가까이 다가서서 나무 줄기 아래 부분에서부터 차근차근 살펴보아야 합니다. 모과나무 특유의 줄기 껍질의 유려한 아름다움을 비롯해 단단한 줄기에서부터 자유분방하게 뻗어나온 나뭇가지의 펼침을 천천히 확인해야 비로소 나무에 담긴 깊은 멋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앞에서 비교한 여느 국가유산 모과나무에 비해 유난히 풍성하다 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모과나무 중 한 그루인 것은 분명합니다. 이 봄에 찾아가야 할 나무로 〈순창 강천사 모과나무〉를 정하고는 손꼽아 날을 기다린 건 그래서였습니다. 기왕이면 이번 답사에서 분홍 색 꽃이 활짝 피어난 모습을 볼 수 있으면 더 좋겠다는 바람까지 보태면서요.

   다른 일정이 있기도 했지만, 대략 4월 20일 전후라면 모과나무 꽃이 가장 좋을 때 아닐까 하고 날짜를 조정했습니다. ‘강천산 군립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잘 조성된 강천산 산책로 초입에서부터 걸어서 30분 정도, 약 2킬로미터를 걸어 오르는 동안 분홍 빛 모과나무 꽃 생각에 설렐 수밖에요. 산길 가장자리에서 만나게 되는 ‘병풍폭포’를 비롯한 근사한 풍경들을 젖혀놓고, 걸음을 재우쳐 드디어 〈순창 강천사 모과나무〉 앞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지난 번 《나무편지》에서 소개한 〈진안 은수사 청실배나무〉와 마찬가지로 한 주일 정도, 어쩌면 고작 사나흘 정도가 늦은 듯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발맘발맘 나무에 다가서서 나무 그늘에 내려앉은 모과나무 꽃잎을 헤아리다가 무성하게 돋아난 초록 잎사귀 사이에서 아직 남아있는 꽃 송이들을 찾아 보았습니다. 고개를 꺾고 한참을 돌아보니 다행히 아직 몇 송이의 꽃이 나뭇가지에 달려 있었습니다. 더러는 아직 꽃잎을 열지 않은 꽃송이도 있었고요. 나뭇잎 사이로 하나 둘 드러나는 꽃송이들을 더 소중하게 마음에 담았습니다. 간당간당 매달린 몇 송이의 모과나무 꽃에 눈을 맞추며 보낸 짧지 않은 시간은 안타까움과 설렘이 오가는 야릇한 시간이었습니다. 다시 또 언제 이 〈순창 강천사 모과나무〉의 꽃이 무성할 때에 찾아올지 알 수 없는 일이기에 더 그랬을 겁니다.

   한참 나무 곁에 머무르다가 나무가 서 있는 길 맞은 편의 아늑한 찻집에 들어가 차 한 잔을 앞에 놓고도 〈순창 강천사 모과나무〉에 담긴 그윽한 멋을 마음 깊은 곳에 차곡차곡 챙겨넣었습니다. 찻집에서 나오는 길에도 나무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진 꽃잎에서부터 나뭇가지에 남아있는 꽃잎들까지 다시 하나 둘 헤아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나무와 작별 인사를 나눈 뒤 돌아나오는 길에는 〈순창 강천산 군립공원〉의 아름다운 풍광들을 살펴 바라보았습니다. 〈순창 강천사 모과나무〉가 버티고 서 있는 순창 강천산 군립공원은 편안하고 아름다운 공원 숲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병풍폭포’에서부터 절집 ‘강천사’에 어우러진 산책로 풍광까지 걸음을 천천히 할수록 더 좋은 숲길입니다.

   좋은 숲, 아름다운 나무와 함께 한 봄날의 한나절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2024년 5월 7일 아침에 1,230번째 《나무편지》 올립니다.

  - 고규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