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blog.kakaocdn.net/dn/qwX0o/btsHvXHoEJa/F5dZjpvZlN4dHY1oH5u1T0/img.jpg)
[나무편지] “회화나무와 느티나무 사이를 걸어보실 일입니다”의 그 나무
![](https://blog.kakaocdn.net/dn/CwHKV/btsHxf76YL5/DUbcKfFGrr75fClBV4UHTk/img.jpg)
★ 1,232번째 《나무편지》 ★
나희덕의 시 《해미읍성에 가시거든》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이 나무를 바라보는 마음이 이토록 애틋하지 않았을 겁니다. 해미읍성에서 간다 하더라도 아마 〈서산 해미읍성 회화나무〉만 한참 바라보고 그냥 돌아왔을 겁니다. 나희덕의 시를 알고난 뒤로는 이 나무 〈서산 해미읍성 느티나무〉를 스쳐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일은 없었지만, 혹시 회화나무만 보고 돌아섰다면 아마 아무것도 보지 않은 것처럼 허전한 마음이었을 게 뻔합니다. 그만큼 회화나무와 느티나무는 마음에 똑같은 크기로 남아있다는 이야기입니다.
![](https://blog.kakaocdn.net/dn/NFNBg/btsHu6rhthY/UTGNkKtX2pzghdHMCFisZk/img.jpg)
“처음에 나무를 ‘식물도감’이 아니라 ‘시집’으로 배웠다”고 자주 올린 말씀이 허수로이 끄집어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게 이런 겁니다. ‘서산 해미읍성’에서 널리 알려진 나무인 〈서산 해미읍성 회화나무〉는 이미 잘 알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표현이지만, 처음 이 회화나무를 찾아보았을 때에는 이 동네 사람들이 대개 ‘호야나무’라고 불렀던 나무이지요. ‘회화나무’의 발음이 쉽지 않아, 그렇게 변형해 표시했던 모양입니다. 천주교에서 이야기하는 병인박해 때에 교수대로 쓰이던 나무로 널리 알려진 나무이지요.
![](https://blog.kakaocdn.net/dn/oN9M0/btsHwASfXXG/zjI5VzJXt9pKIjdoJLGXm0/img.jpg)
예전에 펴낸 책에도 썼지만 해미읍성은 자주 찾는 곳이어서, 당연히 이 호야나무는 낯익은 나무였습니다. 호야나무, 즉 〈서산 해미읍성 회화나무〉에서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느티나무에는 따로 눈길을 주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다가 나희덕 시인의 시 《해미읍성에 가시거든》을 알게 됐습니다. 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해질 무렵 해미읍성에 가시거든/당신은 성문 밖에 말을 잠시 매어두고/고요히 걸어 들어가 두 그루 나무를 찾아보실 일입니다” 슬픈 운명의 회화나무 한 그루가 아니라, 시인은 분명 ‘두 그루 나무’를 찾아보라고 했습니다.
![](https://blog.kakaocdn.net/dn/TS0sW/btsHv6K1VuN/VJC0qLWFS1CnkLyEvqoLXK/img.jpg)
나희덕의 시는 “가시 돋힌 탱자울타리를 따라가면/먼저 저녁해를 받고 있는 회화나무가 보일 것입니다/아직 서 있으나 시커멓게 말라버린 그 나무에는/밧줄과 사슬의 흔적 깊이 남아 있고/수천의 비명이 크고 작은 옹이로 박혀 있을 것입니다”로 이어집니다. 시인은 “형틀의 운명을 타고난 그 회화나무,/어찌 그가 눈 멀고 귀 멀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라며 나무에 남은 한 많은 상처를 어루만지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시인이 이야기한 탱자나무는 없지만, 당연히 회화나무에 머무르게 되는 눈길을 이야기한 겁니다.
![](https://blog.kakaocdn.net/dn/KUmrw/btsHwstotrc/a8nkzVKaqf4Pz97YATJeH0/img.jpg)
바로 뒤에서 시인은 “그러나”라고 씁니다. 그러니까 회화나무만 보고 돌아올 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거지요. “그러나 당신은 더 걸어가 또다른 나무를 만나보실 일입니다/옛 동헌 앞에 심어진 아름드리 느티나무,/그 드물게 넓고 서늘한 그늘 아래서 사람들은 회화나무를 잊은 듯 웃고 있을 것이고/당신은 말없이 앉아 나뭇잎만 헤아리다 일어서겠지요” 교수대의 운명을 띠고 슬프게 살아남은 회화나무와 함께 한 그루의 느티나무를 꼭 바라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옛 사람들의 권력과 부귀의 상징일 수 있는 동헌, 그 앞의 느티나무입니다. 오늘 《나무편지》에서 보여드리는 느티나무입니다.
![](https://blog.kakaocdn.net/dn/cmfneJ/btsHu8WYJLw/nrhT0GbUXJdj3RfIM7KRh0/img.jpg)
《해미읍성에 가시거든》이라는 제목으로 노래한 나희덕의 시는 “언젠가 해미읍성에 가시거든/회화나무와 느티나무 사이를 걸어보실 일입니다”라고 마무리합니다. 살아생전에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아온 사람들 곁에서 풍요로운 생김새로 서 있는 느티나무와 거기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한 많은 죽음을 부등켜 안고 제 본성대로 몸을 풀지 못해 앙상해진 회화나무. 그 사이를 걸어보라는 겁니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드리운 삶과 죽음의 스펙트럼을 찬찬히 느껴보라는 거지요.
![](https://blog.kakaocdn.net/dn/ds4Q14/btsHvwwzOTW/Wy8NbktKaXXkjDM2f07HV1/img.jpg)
시를 알게 된 그때 다시 해미읍성을 찾아갔습니다.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느티나무와 회화나무 사이를 천천히 걸으면서 두 나무에, 그리고 나무와 나무 사이의 거리에 펼쳐지는 생명의 만화경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때 뒤로 해미읍성에 들르게 된다면 언제라도 느티나무를 빼놓지 않고 바라봅니다. 천리포수목원 가는 길에 잠시 머무를 수 있는 곳이 해미읍성이어서, 봄 여름 가을 겨울 가리지 않고 해미읍성은 자주 찾아가게 되는 곳입니다. 그때마다 느티나무와 회화나무 사이를 천천히 거닐며 삶과 죽음의 거리 생각하곤 합니다.
![](https://blog.kakaocdn.net/dn/MLGGT/btsHuLA78a0/5vSU7mFpLTW50zGZE0KP2k/img.jpg)
얼마 전 아직 목련 꽃 피어나기 전인 삼월 중순의 일요일 아침에도 그랬습니다. 주말 아침 정체된 고속도로를 빠져나가 잠시 맑은 공기 들이쉴 생각으로 자동차를 세우고, 해미읍성에 들어섰습니다. 여느 때처럼 느티나무는 풍요로웠고, 회화나무는 앙상했습니다. 느티나무에서 시작해 회화나무까지를 몇 차례 오가며 우리 앞에 놓인 풍요와 빈곤, 삶과 죽음을 곰곰 생각했습니다.
오늘 《나무편지》의 사진 가운데 위에서 다섯 장은 ‘풍요와 권세의 상징’으로 서 있는 〈서산 해미읍성 느티나무〉이고, 그 아래로 이어지는 석 장의 사진은 ‘형틀의 운명’으로 살아온 〈서산 해미읍성 회화나무〉입니다.
고맙습니다.
2024년 5월 20일 아침에 1,232번째 《나무편지》 올립니다.
- 고규홍 드림
'고규홍의 나무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름을 슬기롭게 맞기 위해 마음 깊이 담아두어야 할 봄꽃들 (0) | 2024.06.03 |
---|---|
하늘과 땅과 구름과 바람 그리고 사람과 나무와 시(詩)를 생각합니다 (0) | 2024.05.27 |
지리산 깊은 골을 지켜온 민족의 기상… 소나무 중의 소나무 (0) | 2024.05.16 |
풍요로운 숲, 편안한 산책길, 오래된 절집을 지켜온 큰 모과나무 (0) | 2024.05.07 |
내년 봄이면 설렘으로 궁금해 하게 될 새 친구를 소개합니다. (2) | 2024.04.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