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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회화나무와 느티나무 사이를 걸어보실 일입니다”의 그 나무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5. 21. 12:46

[나무편지] “회화나무와 느티나무 사이를 걸어보실 일입니다”의 그 나무

  ★ 1,232번째 《나무편지》 ★

   나희덕의 시 《해미읍성에 가시거든》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이 나무를 바라보는 마음이 이토록 애틋하지 않았을 겁니다. 해미읍성에서 간다 하더라도 아마 〈서산 해미읍성 회화나무〉만 한참 바라보고 그냥 돌아왔을 겁니다. 나희덕의 시를 알고난 뒤로는 이 나무 〈서산 해미읍성 느티나무〉를 스쳐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일은 없었지만, 혹시 회화나무만 보고 돌아섰다면 아마 아무것도 보지 않은 것처럼 허전한 마음이었을 게 뻔합니다. 그만큼 회화나무와 느티나무는 마음에 똑같은 크기로 남아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처음에 나무를 ‘식물도감’이 아니라 ‘시집’으로 배웠다”고 자주 올린 말씀이 허수로이 끄집어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게 이런 겁니다. ‘서산 해미읍성’에서 널리 알려진 나무인 〈서산 해미읍성 회화나무〉는 이미 잘 알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표현이지만, 처음 이 회화나무를 찾아보았을 때에는 이 동네 사람들이 대개 ‘호야나무’라고 불렀던 나무이지요. ‘회화나무’의 발음이 쉽지 않아, 그렇게 변형해 표시했던 모양입니다. 천주교에서 이야기하는 병인박해 때에 교수대로 쓰이던 나무로 널리 알려진 나무이지요.

   예전에 펴낸 책에도 썼지만 해미읍성은 자주 찾는 곳이어서, 당연히 이 호야나무는 낯익은 나무였습니다. 호야나무, 즉 〈서산 해미읍성 회화나무〉에서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느티나무에는 따로 눈길을 주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다가 나희덕 시인의 시 《해미읍성에 가시거든》을 알게 됐습니다. 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해질 무렵 해미읍성에 가시거든/당신은 성문 밖에 말을 잠시 매어두고/고요히 걸어 들어가 두 그루 나무를 찾아보실 일입니다” 슬픈 운명의 회화나무 한 그루가 아니라, 시인은 분명 ‘두 그루 나무’를 찾아보라고 했습니다.

   나희덕의 시는 “가시 돋힌 탱자울타리를 따라가면/먼저 저녁해를 받고 있는 회화나무가 보일 것입니다/아직 서 있으나 시커멓게 말라버린 그 나무에는/밧줄과 사슬의 흔적 깊이 남아 있고/수천의 비명이 크고 작은 옹이로 박혀 있을 것입니다”로 이어집니다. 시인은 “형틀의 운명을 타고난 그 회화나무,/어찌 그가 눈 멀고 귀 멀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라며 나무에 남은 한 많은 상처를 어루만지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시인이 이야기한 탱자나무는 없지만, 당연히 회화나무에 머무르게 되는 눈길을 이야기한 겁니다.

   바로 뒤에서 시인은 “그러나”라고 씁니다. 그러니까 회화나무만 보고 돌아올 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거지요. “그러나 당신은 더 걸어가 또다른 나무를 만나보실 일입니다/옛 동헌 앞에 심어진 아름드리 느티나무,/그 드물게 넓고 서늘한 그늘 아래서 사람들은 회화나무를 잊은 듯 웃고 있을 것이고/당신은 말없이 앉아 나뭇잎만 헤아리다 일어서겠지요” 교수대의 운명을 띠고 슬프게 살아남은 회화나무와 함께 한 그루의 느티나무를 꼭 바라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옛 사람들의 권력과 부귀의 상징일 수 있는 동헌, 그 앞의 느티나무입니다. 오늘 《나무편지》에서 보여드리는 느티나무입니다.

   《해미읍성에 가시거든》이라는 제목으로 노래한 나희덕의 시는 “언젠가 해미읍성에 가시거든/회화나무와 느티나무 사이를 걸어보실 일입니다”라고 마무리합니다. 살아생전에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아온 사람들 곁에서 풍요로운 생김새로 서 있는 느티나무와 거기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한 많은 죽음을 부등켜 안고 제 본성대로 몸을 풀지 못해 앙상해진 회화나무. 그 사이를 걸어보라는 겁니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드리운 삶과 죽음의 스펙트럼을 찬찬히 느껴보라는 거지요.

   시를 알게 된 그때 다시 해미읍성을 찾아갔습니다.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느티나무와 회화나무 사이를 천천히 걸으면서 두 나무에, 그리고 나무와 나무 사이의 거리에 펼쳐지는 생명의 만화경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때 뒤로 해미읍성에 들르게 된다면 언제라도 느티나무를 빼놓지 않고 바라봅니다. 천리포수목원 가는 길에 잠시 머무를 수 있는 곳이 해미읍성이어서, 봄 여름 가을 겨울 가리지 않고 해미읍성은 자주 찾아가게 되는 곳입니다. 그때마다 느티나무와 회화나무 사이를 천천히 거닐며 삶과 죽음의 거리 생각하곤 합니다.

   얼마 전 아직 목련 꽃 피어나기 전인 삼월 중순의 일요일 아침에도 그랬습니다. 주말 아침 정체된 고속도로를 빠져나가 잠시 맑은 공기 들이쉴 생각으로 자동차를 세우고, 해미읍성에 들어섰습니다. 여느 때처럼 느티나무는 풍요로웠고, 회화나무는 앙상했습니다. 느티나무에서 시작해 회화나무까지를 몇 차례 오가며 우리 앞에 놓인 풍요와 빈곤, 삶과 죽음을 곰곰 생각했습니다.

   오늘 《나무편지》의 사진 가운데 위에서 다섯 장은 ‘풍요와 권세의 상징’으로 서 있는 〈서산 해미읍성 느티나무〉이고, 그 아래로 이어지는 석 장의 사진은 ‘형틀의 운명’으로 살아온 〈서산 해미읍성 회화나무〉입니다.

   고맙습니다.

2024년 5월 20일 아침에 1,232번째 《나무편지》 올립니다.

  - 고규홍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