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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아직 목련과 함께 할 시간은 더 남아 있습니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4. 18. 13:19

[나무편지] 아직 목련과 함께 할 시간은 더 남아 있습니다.

  ★ 1,227번째 《나무편지》 ★

   사월 들어서면서부터 “목련 꽃 한창”이라고 호들갑만 떨고 이제야 목련 소식 전해드립니다. 우리의 봄을 더 아름답게 하는 목련 종류는 매우 많은 데다, 꽃 피는 순서에도 차이가 있어서 이 즈음에도 목련 꽃은 충분히 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한 때문이었습니다. 나무의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하루 이틀 미룬 게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그 사이에 천리포수목원에서 피어난 흰색 종류의 목련은 절정을 넘어섰습니다. 수목원 밖에서도 마찬가지이지요. 남부지방은 물론이고, 서울을 비롯한 중부 지방 도심의 백목련 종류는 이미 낙화까지 다 마친 듯합니다.

   하지만 지역을 조금만 달리하면 목련 꽃이 지금 한창인 곳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엊그제 학교 수업을 위해 다녀온 춘천 지역에는 벚꽃이 이제야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교정의 목련 꽃도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피어있었습니다. 물론 춘천은 비교적 봄이 가장 더디게 오는 고장 가운데 하나이긴 합니다. “우물우물 하는 사이”에 목련 꽃이 피어난 게 아니라, “어물어물 하는 사이에 목련 꽃이 다 떨어졌다”고 써야 맞겠습니다. 아직 봄꽃들, 진달래 개나리는 물론이고, 노루귀 깽깽이풀 소식도 전하지 못했는데 언제나 봄은 그리 정신 없이 화들짝 다가와 재빠르게 꼬리를 감춥니다.

   하지만 아직은 시간이 남았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천리포수목원에는 목련 종류가 무려 950종류가 있습니다. 이 많은 종류의 목련이 며칠 사이에 한꺼번에 다 피었다가 한꺼번에 다 지는 건 아닙니다. 순서가 있습니다.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건 흰색 종류의 목련, 뭉뚱그려 ‘백목련 종류’라고 할 수 있는 나무들입니다. 잎 나기 전에 먼저 소담한 크기의 꽃잎으로 피어나는 ‘백목련 종류’들은 그야말로 매화에 이어 우리가 다가온 봄을 실감할 수 있게 하는 대표적인 꽃이지 싶습니다.

   그리고 ‘백목련 종류’의 하얀 꽃잎이 부분부분 갈색으로 변색하고 마침내 꽃잎을 후드득 떨어뜨릴 즈음이면 붉은 색의 목련 꽃이 피어납니다. 붉은 색의 목련도 종류가 많아서 앞의 ‘백목련 종류’라고 부른 것처럼 이들을 ‘자목련 종류’라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이건 전반적인 흐름일 뿐입니다. 백목련 종류 가운데에는 자목련 종류보다 늦게 피어나는 것도 있고, 또 자목련 종류 가운데에도 백목련 종류와 함께 피어나는 게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흰색 종류가 붉은 색 종류보다 먼저 피는 건 확실합니다.

   아직 목련 종류를 다 이야기하려면 좀 더 있어야 합니다. 천천히 목련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백목련 종류’와 ‘자목련 종류’가 피어나는 시기에 함께 볼 수 있는 종류로 ‘별목련 종류’로 불러야 하는 목련이 있습니다. ‘별목련 종류’는 무엇보다 꽃 한송이에 달리는 꽃잎의 숫자입니다. 백목련이 아홉 장의 꽃잎(엄밀히 이야기하면 꽃잎 여섯 장과 꽃잎처럼 변한 꽃받침 석 장)으로 피어나고, 자목련이 여섯 장의 꽃잎으로 피어나는 것과 달리 ‘별목련 종류’는 꽃 한 송이에서 피어나는 꽃잎이 12장에서부터 40여 장에 이릅니다. 더 없이 화려한 꽃입니다. ‘별목련 종류’에도 흰색과 자색의 꽃이 있는데, 대략 백목련 종류와 자목련 종류가 피어날 때에 함께 피어납니다.

   그 다음에 천리포수목원이 심어 키우는 목련 종류 가운데 최고의 백미는 아마도 노란 색 꽃을 피우는 나무라고 해야 할 겁니다.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종류이기도 합니다. 이들을 한데 모아 ‘황목련 종류’라고 이야기합니다. 목련 종류 가운데에는 가장 나중에 꽃을 피웁니다. 이를테면 흰 색의 목련 종류가 한창이던 지난 주말에는 이 ‘황목련 종류’ 가운데에 활짝 피어난 종류가 아직 없었습니다. 꽃봉오리 껍질을 살짝 벗겨낸 정도에 그치거나 고작해야 노란 꽃잎을 드러낸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아마도 어제 오늘 쯤이 ‘황목련 종류’의 절정기 아니겠는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올 봄, 꽃들의 개화 시기는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혹시 보셨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얼마 전에 속초시의 공식 SNS에는 재미있는 포스터 하나가 올라왔는데요. 그 포스터의 큰 제목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였고 부제는 “하늘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였습니다. 영랑호 벚꽃축제를 예정했지만, 예정된 축제 기간에 꽃이 피지 않아 축제를 한 번 더 열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예년보다 많이 늦어진 벚꽃 개화 때문에 올봄에는 이같은 곤혹을 치른 지역이 많이 있었습니다. 천리포수목원의 목련도 마찬가지입니다. 황목련 종류의 개화 시기 예상도 틀릴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지난 주 상황에 비추어 예상한 것이니 확률은 비교적 높을 겁니다.

   백목련 자목련 시들어 떨어졌다 해도 아직 목련과 함께 할 시간은 남아있습니다. 혹시 목련 꽃 다 떨어졌다 해도 그렇습니다. 언제나 우리 곁에서 우리 사는 이 땅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 주느라 애쓰는 나무들을 고작 한해에 열흘 정도 피어나는 꽃 있을 때에만 좋아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꽃 시들어 떨어진 꽃잎 바라보며 다시 또 내년 이맘 때에 이 자리에서 피어날 새로운 꽃을 그리며 오래 그 곁에 머물러야 할 때가 지금입니다. 꽃잎 떨군 나무까지도 아껴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다듬어 보아야 합니다.

   천리포수목원의 목련 축제는 4월 21일까지 계속됩니다. 그 사이에는 제게 맡겨진 시간도 있습니다. 축제 기간이 아니라면 찾아가기 어려운 6개의 비공개구역 가운데에 특별히 목련이 아름다운 비공개구역을 함께 거닐며 목련의 깊은 속내를 이야기하는 시간입니다. 우리의 봄을 이토록 아름답게 한 목련을 한번 더 생각하고, 꽃 피고 지는 세월의 깊이를 오래 가슴 속에 남기려는 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제가 진행할 프로그램을 예약하시고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https://bit.ly/3LEQccA <== 《고규홍과 함께하는 '나무들의 봄마중'》예약페이지

   오늘 《나무편지》에 담은 사진은 모두 지난 주말에 천리포수목원에서 피어난 목련 종류들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