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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지리산 깊은 골을 지켜온 민족의 기상… 소나무 중의 소나무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5. 16. 13:32

[나무편지] 지리산 깊은 골을 지켜온 민족의 기상… 소나무 중의 소나무

  ★ 1,231번째 《나무편지》 ★

   민족의 영산 지리산 깊은 골에서 긴 세월 동안 민족의 기상을 지키며 서 있는 큰 소나무가 있습니다. 〈지리산 천년송〉이라는 이름으로 국가자연유산 천연기념물에 지정돼 있는 근사한 소나무입니다. 이 소나무 이야기는 지난 4월30일의 《경향신문》 칼럼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에 소개했기에 우리 《나무편지》에서 다시 중복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워낙 짧은 분량에 작은 사진 한 장으로 제한돼 있는 《경향신문》 칼럼에는 온전히 이 나무를 소개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 오늘의 《나무편지》에 여러 장의 사진과 함께 소개합니다. 《경향신문》 칼럼은 제 홈페이지 〈솔숲닷컴〉의 ‘COLUMN’ 게시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만 내용은 오늘 《나무편지》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리산 천년송〉은 2016년 4월에 EBS의 ‘다큐프라임’ 3부작 〈한반도 대서사시, 나무〉의 제1부에서 소개했던 나무입니다. 그 프로그램의 제3부는 《나무편지》 독자들께서 잘 아시는 《슈베르트와 나무》 였습니다. 1,2,3부로 진행한 이 프로그램은 1년에 걸쳐서 촬영해 방영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지리산 천년송〉이 중심인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의 소나무를 대표하는 큰 소나무로 소개한 나무여서 더 정이 가기도 합니다. 정성 들여 촬영한 덕에 이 나무가 포함된 영상이 장관이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고, 그해에 방송 관련 갖가지 수상을 거의 독차지한 프로그램이었어요. 영상으로 보였던 그만큼의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표현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오늘 《나무편지》에서는 지난 4월 말의 모습을 몇 장의 사진으로 보여드립니다.

   〈지리산 천년송〉이 서 있는 곳은 해발 800미터의 지리산 중턱, 뱀사골의 와운마을입니다. ‘구름도 누워 쉬어가는 마을’이어서 ‘와운(臥雲)’이라는 근사한 이름을 가진 마을입니다. 와운마을에 들어서려면 뱀사골 입구의 캠프장에서부터 약 4킬로미터 산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자동차로 진입하는 게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이 길은 마을 주민을 제외한 모든 자동차의 출입이 제한합니다. 짧지는 않아도 천천히 걷기에 좋은 오붓한 산길입니다. 산길 4킬로미터는 그리 짧은 거리가 아닙니다. 빠른 걸음으로도 한 시간은 넘게 걸리는 거리이지요.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수 있는 좁은 길이 걷기에 험하달 수는 없어도 오르락내리락해서 제법 숨이 가쁜 길입니다.

   산길을 훠이훠이 두 시간 가까이 걸어가면 와운마을이 나옵니다. 마을이라고는 하지만 고작해야 열다섯 가구, 모두 서른 명 남짓한 주민이 오순도순 살아가는 작은 마을입니다. 걸어 오르는 동안 이 깊은 산 속에 사람 사는 보금자리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먼저 드는 깊은 산골 마을이지요. 이 와운마을은 2015년에 지리산국립공원 구역에 자리잡은 마을 가운데에는 처음으로 ‘명품마을’에 지정된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아마도 지리산의 장엄한 풍광 안에 깃든 마을이 품은 사람살이의 향기가 남다른 때문이지 싶습니다.

   마을에 닿으면 마을 입구의 언덕 위에 자리잡은 큼지막한 식당 앞에서 ‘마을 안내판’보다 먼저 ‘지리산 천년송 안내판’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는 아직 〈지리산 천년송〉이 보이지 않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나무데크로 이어 만든 계단을 마주치게 되지요. 그 계단 길을 올라야 구름도 쉬어 넘는 마을 동산 마루 위에서 구름 위로 우뚝 솟은 우리의 〈지리산 천년송〉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마을 안쪽으로 더 들어가도 나무 곁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기는 합니다만, 굳이 아늑한 마을의 고요를 깨뜨리지 않으려면 이 자리에서 오르는 게 좋을 겁니다.

   계단을 한참 오르면 드디어 〈지리산 천년송〉의 우아한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 깊은 골짜기에 처음으로 사람의 보금자리를 일구던 때부터 이 자리를 지켜온 큰 나무입니다. 〈지리산 천년송〉이 지켜온 와운마을은 임진왜란이 발발한 430여 년 전에 영광정씨와 김녕김씨 일가가 전란을 피해 찾아와 일군 마을이라고 하는데, 그때 이미 이 자리에 큰 소나무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에 얼마나 크고 오래된 나무인지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면 〈지리산 천년송〉의 지금 나무나이는 대략 600년은 된 것으로 봐야 하지 싶네요.

   지리산 명선봉에서 영원령으로 흘러내리는 능선 위에서 마을을 거느리고 서 있는 이 소나무는 누가 뭐라 해도 우리 민족이 오랫동안 민족문화의 상징으로 여겨온 우리 소나무의 대표급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크고 오래됐을 뿐 아니라, 능선 위에 우뚝 솟아오른 그 기품이 훌륭합니다. 특별할 것 없는 ‘와운마을’이 지리산 산골 마을 가운데 맨 처음으로 ‘명품마을’에 지정된 것도 〈지리산 천년송〉이 지켜온 풍광의 기품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이 나무를 〈지리산 천년송〉이라는 이름의 국가자연유산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건 지난 2000년이었습니다. 천연기념물 가운데에 소나무 종류가 많은 때문인지 〈지리산 천년송〉의 국가자연유산 지정은 그 가치에 비해 좀 늦은 편으로 생각됩니다. 아마도 이 나무를 실제로 현장에 와서 보는 분들이라면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워낙 발길이 닿기 쉽지 않은 깊은 산골에 서 있는 나무이다보니 뒤늦게 알려진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하여간 〈지리산 천년송〉은 민족의 영산 지리산을 지켜온 우리 문화의 상징인 소나무 가운데에 최고에 속하는 나무인 건 틀림없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지리산 천년송〉을 ‘할매송’이라 부릅니다. 그건 당연히 어디엔가 그와 연을 맺은 ‘할배송’이 있다는 이야기이겠지요. 맞습니다. ‘할매송’에서 이어지는 나무데크 계단 길을 대략 20미터 쯤 오르면 ‘할배송’이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 한 쌍의 소나무를 한 몸처럼 여기며 소중히 지켜왔습니다. ‘할배송’은 ‘할매송’에 비해 현저하게 작습니다. 나무높이도 가슴높이줄기둘레도 그렇습니다. ‘할매송’을 천연기념물에 지정할 때에도 ‘할배송’의 존재를 살폈겠지만, 두 나무를 함께 지정하기에는 차이가 커서 ‘할매송’만 〈지리산 천년송〉이라는 이름으로 지정했을 겁니다.

   짐작하셨겠지만 ‘할매송’의 고유명칭이 된 〈지리산 천년송〉의 ‘천년’이 실제 나무나이는 아닙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와운마을이 처음 형성되던 시기에 큰 나무였다는 증언을 바탕으로 대략 600년 정도로 보는 게 일반적인 짐작입니다. ‘천년송’의 ‘천년’은 우리 선조들이 늘 그래왔듯이 ‘긴 세월’을 상징하는 비유일 뿐입니다. 문화재청의 천연기념물 안내 내용에는 나무나이를 500년 정도로 표시했지만 600년이든 500년이든 과학적인 근거는 없습니다. 다만 “430년 전에도 이미 큰 나무였다”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돌아보면 그 즈음에 적어도 100년은 넘었지싶어 600년으로 짐작할 뿐입니다.

   〈지리산 천년송〉은 나무높이가 20미터나 되는데, 언덕 마루 가장자리에 홀로 우뚝 서 있어서 체감하기로는 그보다 더 높아 보입니다. 나무의 가슴높이줄기둘레는 4미터를 훨씬 넘으며 나뭇가지는 사방으로 18미터까지 펼쳤습니다. 이만큼의 크기로 지리산 골짜기로 불어닥치는 모진 바람과 거센 눈보라를 모두 이겨내며 살아왔다는 건 놀랍고 고마운 일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지금도 해마다 정월 초에 나무 앞에서 당산제를 치릅니다. 오래 전부터 지내온 이 당산제는 한번도 거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리산 천년송〉 앞 자리가 마땅치 않아 당산제 제단은 ‘할배송’ 앞의 평탄한 자리에 마련돼 있습니다. 규모는 할매송에 비해 훨씬 작지만, 마을 사람들에게는 ‘할매송’이나 ‘할배송’ 모두 똑같이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지켜주는 수호목인 겁니다. 아래의 사진이 ‘할배송’입니다.

   마을의 큰 나무에 ‘할매’ ‘할배’의 이름을 붙여 부르는 경우는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와운마을의 호칭은 좀 야릇합니다. 그 동안 제 답사 경험에 의하면 한 쌍의 나무 가운데에 덩치가 크거나 나무높이가 커서 우뚝 솟아오른 나무에 남성형, 즉 ‘할배’의 이름을 붙이고, 나무높이는 좀 작아도 품이 넓고 부드러운 나무에 여성형인 ‘할매’를 붙이는 게 대부분이었거든요. 이 마을에서는 그게 정반대였습니다. 그 이유를 알려주는 마을 사람은 없었습니다만, 남다른 지칭이어서 흥미롭습니다.

   까닭을 확적히는 알 수 없지만, 이 땅의 크고 아름다운 한 그루의 소나무를, 민족의 영산 지리산 뱀사골 중턱의 명품마을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일입니다.

   이제 곧 여름이 오려는 모양입니다. 한낮의 햇살이 제법 따갑습니다. 〈지리산 천년송〉이 그런 것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건강 잃지 마시고 평안한 나날 보내시기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2024년 5월 13일 아침에 1,231번째 《나무편지》 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