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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사람들 사이에서 피어난 봄꽃의 향연을 찾아 길 위에 오르며 …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3. 4. 17:52

[나무편지] 사람들 사이에서 피어난 봄꽃의 향연을 찾아 길 위에 오르며 …

  ★ 1,221번째 《나무편지》 ★

   삼월, 새 봄의 첫 편지입니다. ‘봄’이라는 절기가 달력의 숫자로 결정되는 건 아니지만, 아직 겨울 옷을 채 내려놓지 못한 이 즈음이라면 무엇에서라도 봄의 기미를 끌어당기고 싶은 게 긴 겨울을 보낸 사람의 성마름이지 싶습니다. 삼월의 일정표는 벌써 숨가쁘게 채워져 있습니다. 대학의 강의도 시작해야 하고, 봄꽃 마중도 떠나야 하며, 나무가 들려주는 생명 이야기를 기다리는 분들도 찾아뵈어야 합니다. 수두룩하게 들어찬 삼월 달력입니다. 봄이니까요. 삼월의 첫 월요일을 큰 설렘으로 맞이합니다.

   남녘에서는 매화의 개화 소식이 달려옵니다. 주말에는 광양 매화마을에서 매화잔치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지난 해와 다르지 않은 일정입니다. 완전히 방전된 채 그대로 내두었던 자동차 배터리를 새 배터리로 바꾸고 이 땅의 큰 나무를 찾아 길 위에 올라야 할 즈음입니다. 매화마을 매화의 순결한 유혹을 뿌리치긴 어렵겠지만, 어쩌면 번잡한 길을 피해 한적한 다른 길로 돌아들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길 위에 오른다면 만나야 할 나무들은 삼월의 일정표처럼 수두룩하니까요.

   지난 해 그때도 그랬습니다. 매화 향이 번져오는 광양 매화마을을 피해 아직은 꽃도 피어나지 않았을 이팝나무를 찾았습니다. 〈순천 평중리 이팝나무〉입니다. 순천 조계산 선암사를 찾으려면 거치게 되는 마을 어귀에 서 있는 큰 나무입니다. 요즘은 중부지방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나무가 이팝나무이지만, 예전에는 따뜻한 남부 지방에서만 자라던 나무여서 오래된 이팝나무는 남녘 마을에 있지요. 〈순천 평중리 이팝나무〉가 그 중의 하나입니다. 그 동안 만났던 숱한 나무 가운데에 개인적으로는 제일 좋아하는 이팝나무입니다.

   앞으로는 마을 앞논을 거느리고 뒤로는 오붓하게 펼쳐지는 사람살이를 지키고 서 있는 근사한 이팝나무입니다.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나무로 여겨진 이팝나무가 서 있어야 할 자리로서는 가장 알맞춤한 자리입니다. 들녘과 마을의 풍경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그림같은 풍경을 보여주는 나무가 〈순천 평중리 이팝나무〉 아닌가 싶습니다. 처음 이 이팝나무를 만나던 그때부터 이팝나무를 떠올리라치면 언제나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무이고, 그만큼 자주 찾아본 나무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탐매 관광지인 광양 다압면 매화마을에서 매화 큰 잔치가 벌어지는 이번 주말에는 하동 광양 순천 지역을 돌아볼 예정입니다. 사정이 참을 만하면 매화부터 찾아보겠지만, 길 위에서 허비해야 할 시간이 하염없이 길어진다면 그 지역의 다른 나무들을 더 많이 찾아보게 될 겁니다. 그래도 이 땅의 봄마중을 상징하는 매화 향한 설렘은 어쩔 수 없습니다.

   설렘 가라앉히고 오늘은 천리포 바닷가 숲의 작은 봄꽃들이 펼치는 봄의 전주곡을 맞이하러 떠납니다.

   오늘 《나무편지》의 사진은 매실나무 꽃 매화가 한창이던 지난 해 이맘 때 찾아본 〈순천 평중리 이팝나무〉입니다. 쌀쌀한 봄바람 맞으며 한적하게 한나절 동안 함께 했던 이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팝나무의 꽃 피기 전 풍경입니다.

   고맙습니다.

2024년 3월 4일 아침에 1,221번째 《나무편지》 올립니다.

  - 고규홍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