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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사라져가는 것들’의 하나인 시무나무가 이룬 싱그러운 마을 숲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2. 26. 15:56

[나무편지] ‘사라져가는 것들’의 하나인 시무나무가 이룬 싱그러운 마을 숲

  ★ 1,220번째 《나무편지》 ★

   지난 번에 이어 오늘 아침의 《나무편지》에서도 시무나무 이야기 보태겠습니다. 지난 번 《나무편지》에서 소개해드린 시무나무를 낯설어 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나무편지》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이라는 제목을 붙여서 마치 시무나무가 멸종 위기를 맞이하여 서서히 사라져가는 다시 보기 어려운 나무인 것처럼 쓴 때문에 더 그랬던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분명히 시무나무는 이십 리마다 한 그루씩 볼 수 있었던 예전에 비하면 필경 그 숫자가 적어진 건 분명합니다만, 그렇다고 멸종 위기 수준은 아닙니다.

   가까운 친연관계를 가지는 같은 느릅나무과의 느티나무에 비하면 분명히 적은 게 사실입니다. 더구나 오래 된 시무나무는 참 드뭅니다. 이를테면 산림청 지정 보호수의 사정을 살펴보면 2022년 말 통계에 따르면 전체 보호수가 총 12,908건입니다. 그 가운데 느티나무가 총 6,929건인데, 시무나무는 고작 30건에 지나지 않습니다. 물론 느티나무가 여느 나무 종류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나무이기는 하지만, 시무나무가 얼마나 적은지는 분명히 비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제가 나무 수를 ‘그루’로 표시하지 않고 ‘건’으로 표기한 건, 어떤 보호수는 여러 그루를 한데 묶어 한 건으로 지정한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루 수는 조금 늘어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여간 이 수치를 보고, 예전에 이십 리마다 한 그루씩 심었던 나무였음을 감안하면 필경 ‘사라져가는 것들’로 분류하는 것도 크게 무리는 아니지 싶습니다. 30건의 시무나무 보호수는 사는 곳도 거의 경상북도(대구광역시 포함 14건) 충청북도(6건)와 강원도(7건) 지역에 치중해 있습니다. 다른 지역으로는 경기도에 2건, 경상남도에 1건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전국적으로 보호수로 지정한 시무나무를 보기 어려운 지역도 적지 않다는 겁니다. 물론 나무들이 좋아하는 기후가 몇몇 지역에 집중돼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식물도감에는 시무나무가 함경도 지역을 뺀 우리나라 전 지역에서 잘 자란다고 돼 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일부 지역에만 집중돼 있는 겁니다.

   물론 보호수로 지정하지 않은 나무 가운데 몇 그루가 더 있는지는 조사된 바 없어서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보호수로 지정할 만큼 크고 오래된 나무는 없을지라도 필경 시무나무는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이제는 도시든 시골이든 자연 상태로 저절로 자란 나무보다 사람들이 새로 심어 키우는 나무가 더 많은 상황이잖아요. 그리고 시무나무에 대한 관심이 그리 높지 않았던 저간의 사정을 생각하면 그리 많으리라 예상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필경 어디엔가는 시무나무가 자연적이든 인공적이든 사람들의 관심 바깥에서라도 살아있지 않을까요, 아마도요.

   지난 번 《나무편지》에서 시무나무가 가장 많이 살아남아 있는 경상북도 지역 가운데에 상주에 살아있는 시무나무를 보여드려서, 오늘은 경상북도만큼 시무나무가 많이 있는 충청북도의 시무나무를 보여드리려 했는데, 찾아보니 지난 2021년 11월 22일치로 〈충주 원평리 시무나무〉를 보여드린 적이 있네요. 그 뒤로 홈페이지를 개편해서 지금은 찾아볼 수 없으시겠지만, 그래도 한번도 보여드린 적이 없는 시무나무 가운데에 좋은 나무를 찾다가 다시 경상북도 지역의 시무나무를 보여드리게 됐습니다. 바로 숲을 이루고 자란 〈청송 대전리 시무나무 숲〉입니다. 오늘 《나무편지》의 모든 사진이 바로 그 숲입니다.

   시무나무가 숲을 이룬 이 곳은 청송 부남면 대전리 나실마을입니다. 마을 주변의 산이 마치 새가 날아가는 모습을 했다고 해서 예전에는 나래실이라고 부르다가 지금의 나실마을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하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입니다. 마을 이름에 대해서는 다른 이야기도 전하는데요. 약 400년 전에 청송심씨의 선조가 이곳에 처음 보금자리를 틀고 마을을 개척할 때 산 좋고 물 맑은 비단결 같은 골짜기라 해서 나곡(羅谷)이라 했다는 설도 함께 전합니다. 청송심씨 세거지인 이 마을에서는 조선 시대에 세 명의 왕후와 네 명의 부마를 배출한 세도가문이었다고 합니다.

   이리보나 저리보나 아름다운 마을인 이 마을 어귀의 도로 양편으로 시무나무가 즐비하게 숲을 이뤘습니다. 청송 대전리 시무나무숲은 보호수로 지정한 시무나무를 포함해 느티나무 굴참나무 등 다양한 종류의 나무가 아름답게 어우러졌습니다. 마을 입구의 도로 양편으로 흐르는 개울가에 형성된 이 숲에서 산림청 보호수로 지정한 나무는 두 그루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보니, 두 그루의 시무나무가 아니라도 실제로 이 숲에서 자라는 20여 그루의 시무나무는 대략 나무의 나이에서부터 규모까지 엇비슷합니다. 굳이 두 그루만 보호수로 지정한 건 잘못이지 싶습니다.

   숲의 시무나무들은 모두 100년을 살짝 넘긴 것으로 보입니다. 보호수로 지정한 나무 가운데에는 나무 나이로 치면 가장 어린 축에 속하는 나무입니다. 하지만 시무나무는 지난 번과 오늘 앞에서도 계속 말씀드린 바와 같이 느릅나무과 시무나무속에 속하는 보기 드문 나무에 속한다는 데에 보호 가치가 있는 겁니다. 게다가 세계적으로는 1속 1종만 있는 희귀한 나무이기에 더 그렇지요. 숲의 나무들은 크기도 모두 비슷합니다. 나무 높이는 13~16미터쯤 되며, 줄기둘레는 1.5~2.5미터쯤 됩니다. 아직은 어리다 하더라도 충분히 보호해야 할 가치가 높은 최고의 숲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 참! 지난 《나무편지》에서 김병연의 시를 제목만 소개해드렸는데요. 여기에 “이십수하(二十樹下)”라는 제목의 시 전문을 보여드리면서 오늘의 나무 이야기 마무리하겠습니다. “二十樹下三十客 / 四十村中五十飯 / 人間豈有七十事 / 不如歸家三十食” 한글로 옮기자면 “스무나무 아래 서른(서러운) 나그네 / 마흔(망할) 집안에서 쉰(상한) 밥을 먹네 / 인간 세상에 어찌 일흔(이런) 일이 있으랴 / 차라리 집에 돌아가 서른(설익은) 밥 먹으리라.” 정도가 될 겁니다. 어느 마을의 시무나무 아래에서 푸대접을 받은 뒤에 화풀이로 한자의 음을 이용해 말장난을 한 걸로 보면 될 겁니다.

   고맙습니다.

2024년 2월 19일 아침에 1,219번째 《나무편지》 올립니다.

  - 고규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