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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고단한 백성의 살림살이를 넉넉하게 지키기 위해 이룬 소나무 숲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3. 18. 17:00

[나무편지] 고단한 백성의 살림살이를 넉넉하게 지키기 위해 이룬 소나무 숲

  ★ 1,223번째 《나무편지》 ★

   경상남도 하동군은 매화축제가 열리는 전라남도 광양시에서 섬진강을 경계로 마주 바라보는 곳입니다. 섬진강 하류는 경남과 전남의 경계를 이루고, 하동군의 서쪽에 맞닿은 전남 지역의 북쪽은 구례군, 남쪽은 광양시인 겁니다. 지도를 보면 하동이 비교적 남북으로 길게 이어지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지난 주에는 광양 매화축제를 거쳐서 하동의 나무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오늘의 《나무편지》에서는 그날 교통 정체로 꼼짝을 못하는 바람에 하루 종일 머물렀던 하동의 아름다운 숲, 〈하동 송림〉을 보여드립니다.

   숲 전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하동 송림〉은 백성의 살림살이를 가장 먼저 살피고자 한 훌륭한 관리에 의해 이루어진 뜻 깊은 숲입니다. 소나무로 이루어진 이 숲은 섬진강변의 모래 사장과 맞닿아 있는데요. 큰 비가 내리면 섬진강의 물이 넘쳐서 마을로 밀려들었다고 합니다. 더구나 강의 하류인 이 지역에서는 바닷물이 밀물일 때의 피해는 매우 컸던 모양입니다. 이같은 백성들의 어려움을 잘 알았던 사람은 2백 여년 전에 하동 부사로 부임한 전천상(田天祥, 1705 ~ 1751)이라는 분이었습니다.

   전천상 부사는 《나무편지》에서 몇 차례 간략하게 소개한 적이 있는 정치인입니다. 예전에 하동의 관광 명소 가운데 하나인 ‘최참판댁’ 앞 골목에 서 있는 〈하동 평사리 위민정 푸조나무〉를 소개하면서, 마을의 당산나무이기도 한 이 큰 나무를 백성들이 고단한 몸과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정자라는 뜻에서 ‘위민정(慰民亭)’이라고 지었다는 말씀을 드린 적 있습니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백성을 위한다’는 식의 ‘위민(爲民)’이라 하지 않고 ‘위로한다’는 뜻의 ‘위(慰)’를 이름에 붙였다는 게 꽤 멋져 보일 뿐 아니라, 백성의 고단함을 먼저 생각한 때문이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동 송림〉도 그런 생각으로 지은 숲입니다.

   3백 여년 전인 조선시대의 숙종연간인 1705년에 충남 홍성에서 태어난 전천상은 열아홉살에 선전관(宣傳官)이라는 벼슬을 시작했고, 스물 한 살인 1726년에 무과에 합격한 인물입니다. 그는 비랑훈련첨정(備郞訓鍊僉正)으로 시작하여, 희천군수, 함안군수, 여주목사, 춘천대도호부사 등을 거쳐 1744년에 이곳 하동에 도호부사로 오게 됩니다. 무관으로서 그는 먼저 섬진강 하구에 출몰하는 외적을 물리치기 위한 군사기지를 정비했습니다. 그와 함께 백성의 살림살이를 살폈습니다. 그때 이 고을 사람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섬진강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인 걸 알았지요.

   전천상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강변에 나무를 심었습니다. 소나무 3천 그루가 그때 그가 심은 나무로 전해옵니다. 그 곳이 바로 오늘 《나무편지》에서 보여드리는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는 〈하동 송림〉입니다. 천연기념물 지정 이름은 〈하동 송림〉으로 돼 있지만, 이 숲은 오래 전부터 〈하동 섬진강 백사 청송〉이라고 불렀던 모양입니다. 섬진강변의 모래밭을 지키는 푸른 소나무라는 뜻이지요. 백성의 살림살이를 세밀히 살핀 그는 가는 곳마다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다고 전해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던 〈하동 평사리 위민정 푸조나무〉의 이름을 지은 것도 그때입니다.

   그가 하동 지역에 머물렀던 건 그리 오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동에 부임한 지 3년 째인 1746년에 정삼품인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승진되어 나주 지역으로 떠났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가 남긴 자취는 백성들의 마음에 깊이 새겨졌고, 그가 애써 일군 〈하동 섬진강 백사 청송〉은 그 뒤로도 잘 지켜졌고,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가 2005년에는 마침내 나라에서 부여하는 최고의 지위인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동 송림〉은 그렇게 훌륭한 선량의 자취가 남아있는 큰 숲으로 오래오래 우리 곁에 살아남게 된 것입니다.

   ‘광양 매화축제’가 한창이던 지난 주말, 〈하동 송림〉 앞 도로는 그야말로 주차장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로 꽉 막혀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에 극심한 교통 정체를 피해 마을 살림집들이 이어진 골목 안의 안전한 자리에 자동차를 세우고 숲을 찾아들었습니다. 〈하동 송림〉 바로 옆에 있는 하동도서관에서 마련한 프로그램이 시작되는 오후 시간까지 여유가 많았지만, 도로 사정을 봐서는 도저히 다른 곳에 다녀올 엄두가 나지 않아 온 종일 이 아름다운 솔숲 〈하동 송림〉에 머물렀습니다. 오히려 숲의 속살을 천천히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던 겁니다.

   2만 평방미터가 넘는 넓이에 넉넉하게 자리잡은 숲. 전천상 부사는 280년 전에 3천 그루를 심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약 750그루가 이 숲을 지키고 있습니다. 규모는 줄었지만 아마 우리 땅에서는 이만큼 넉넉한 소나무 숲을 흔히 보기 어려울 겁니다. 이 숲은 특히 관리 방식이 훌륭하다고 글과 이야기로 많이 전해드려왔어요. 숲을 절반으로 나눠 절반에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들어설 수 있게 하고, 다른 절반은 휴식년에 들어가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원칙은 이제 버리고 숲 전체를 모두 개방한 상태였습니다. 대신 숲을 관리하는 분들은 좀더 늘어난 듯합니다. 온 종일 숲 안에서 나무의 상태를 살피고 주변 청소에 열심인 분들을 계속 볼 수 있었기에 하는 이야기입니다.

   관리 방식은 바뀌었지만, 앞으로도 오래 이 숲을 지킬 수 있도록 더 세심하게 숲을 살피고, 또 주민들이 늘 나무들을 돌아보는 성의를 이어가시도록 기대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전천상 부사가 처음 숲을 조성할 때의 의미가 아니라 해도 〈하동 송림〉은 우리가 오래 지켜야 할 우리의 큰 자연유산입니다.

   고맙습니다.

2024년 3월 18일 아침에 1,223번째 《나무편지》 올립니다.

  - 고규홍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