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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철수의 시로 보는 세상

허공 / 이덕규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2. 9. 19. 14:52

 

허공

 

이덕규

 

 

자라면서 기댈 곳이

허공밖에 없는 나무들은

믿는 구석이 오직 허공뿐인 나무들은

어느 한쪽으로 가만히 기운 나무들은

끝내 기운 쪽으로

쿵, 쓰러지고야 마는 나무들은

기억한다, 일생

기대 살던 당신의 그 든든한 어깨를

당신이 떠날까봐

조바심으로 오그라들던 그 뭉툭한 발가락을

 

 

 

나무의 허공이 더 커지는 순간

 

 

살면서 소위 ‘빽’이 없어 절망하고 삶을 내려놓았다는 소식을 가끔 듣습니다. 물론 객관적인 주장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기댈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것은 맥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너무나 많은 ‘빽’을 가지고 있어 권력이 된 자들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일이지요.

 

어쩌다 기댈 곳 하나 생겼는데 그마저 떠날 때 쿵 내려앉는 절망의 크기는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기댈 곳이 / 허공밖에 없는” 사람들은 “믿는 구석이 오직 허공뿐인” 사람들은 늘 “당신이 떠날까봐 / 조바심으로 오그라들던 그 뭉툭한 발가락”에 힘이 풀리는 순간이 지옥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나무가 잎들을 내려놓습니다. 기댈 곳이라고는 허공 밖에 없는 나무의 허공이 더 커지는 순간 입니다. 가을이 풍요의 계절이 아니라 한편으로는 공허하고 슬픔 계절임을 증명하는 일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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