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여
문철수
1퍼센트의 가능을
삶이라 하고
100퍼센트의 불가능을
죽음이라 한다
하여
완벽한 죽음은 있어도
완벽한 삶은 없다
그러니 그대여
희망은 인위적인 것이고 절망은 자연적인 것이다
동토에 온기가 돌고 숨죽였던 것들, 메말랐던 것들 틈에서 새싹이 고개를 내밀고 있습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 햇살이 그들을 비추고 생명 하나 없을 것 같던 대지가 어느새 활기를 되찾습니다.
언젠가 희망은 인위적인 것이고 절망은 자연적인 것이라고 말한 적 있습니다. 그러나 봄이 되면 도리어 희망은 자연적인 것일까라는 어리석은 의문에 대한 확실한 답을 얻습니다. 그것은 뿌리 내릴 수 없을 것 같은 아스팔트 틈새에서 싹을 틔우는 풀꽃 하나 때문이고, 기운이 빠질 때마다 어디선가 기적 같은 생명의 소식들이 전해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살아있다’라고 말 할 때 살아있다는 증거는 단 한 번이라도 맥박이 뛰고 있을 때 까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여 “1퍼센트의 가능을 / 삶이라 하고 / 100퍼센트의 불가능을 / 죽음이라 한다”는 것에 대하여 이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오늘 그대가 지쳐 쓰러졌더라도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하는 무슨 이유가 더 필요하겠습니까. 또 다시 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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