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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철수의 시로 보는 세상

새집 / 이동재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2. 6. 13. 18:01

새집

 

이동재

 

 

새 집에선 소리가 난다

모든 게 낯설어

벽과 벽

벽과 천정

가구와 가구

그리고 바닥이 만나는 부분에서

자기 자리를 잡느라 삐걱거리는 소리

밤새 수인사 하는 소리

 

새 집에선 냄새가 난다

미처 마르지 않은 나무

그 나무가 살던 숲과 공기

새들과 계곡의 물이끼

산짐승들의 발정 난 냄새와 진달래 철쭉

이름 모를 약초 냄새까지

채석장의 화약 냄새와

골재 트럭이 훑고 간 강바닥의 기름 냄새마저

 

이합과 집산 고통과 환희

이 모든 것의 접합 부분에선

밤새 소리가 난다

냄새가 난다

 

조용한 민주주의는 지구상에 존재한 적이 없다

 

귀촌한 곳에 터를 닦아 비바람 눈보라를 두 번이나 보내고, 한겨울 바람 피할 오두막 하나 세운지 반년이 넘은 우리 집도 “자기 자리를 잡느라 삐걱거리는 소리” 그치지 않습니다. 주변의 소리들이 잦아드는 밤이면 “벽과 벽 / 벽과 천정 / 가구와 가구 / 그리고 바닥이 만나”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밤새 수인사 하는 소리” 더 크게 들려오곤 합니다.

항시 새로운 집합체에서는 소리가 날 수 밖에 없지요. 새롭게 모이기까지 자라온 환경과 배경, 역사가 서로 달라 틀림없이 재고 맞추고 다듬었어도, 섞고 나누기를 수없이 반복하고 세웠어도 소리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 법입니다. “나무가 살던 숲과 공기 / 새들과 계곡의 물이끼 / 산짐승들의 발정 난 냄새와 진달래 철쭉 / 이름 모를 약초 냄새까지” 다 나누고서야 하나의 집으로 자리 잡는 것이니까요.

허나 그런 과정도 없이 소리가 나는 것을 꺼려 피해간다면 그 집은, 그 조직은 바람 한 번에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소리 없이 어물쩡 넘어가지 마세요. “이합과 집산 고통과 환희 / 이 모든 것의 접합 부분에선 / 밤새 소리가” 나는 법입니다. 조용한 민주주의는 지구상에 존재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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