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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철수의 시로 보는 세상

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 / 복효근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2. 6. 3. 13:51

 

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

                                 복효근

 

 

건기가 닥쳐오자

풀밭을 찾아 수만 마리 누우떼가

강을 건너기 위해 강둑에 모여 섰다

 

강에는 굶주린 악어떼가

누우들이 물에 뛰어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나는 화면에서 보았다

발굽으로 강둑을 차던 몇 마리 누우가

저쪽 강둑이 아닌 악어를 향하여 강물에 몸을 잠그는 것을

 

악어가 강물을 피로 물들이며

누우를 찢어 포식하는 동안

누우떼는 강을 다 건넌다

 

누군가의 죽음에 빚진 목숨이여, 그래서

누우들은 초식의 수도승처럼 누워서 자지 않고

혀로는 거친 풀을 뜯는가

 

언젠가 다시 강을 건널 때

그중 몇 마리는 저쪽 강둑이 아닌

악어의 아가리 쪽으로 발을 옮길지도 모른다

 

우리는 누군가의 죽음에 빚진 목숨입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얘기를 어른들로부터 자주 들었었지요. 내 노력 없이 받아먹고 자라던 시기에는 모든 것이 거저 얻어지는 줄 알았지만 세상에 던져지고 나니 전쟁터가 따로 없습니다.

현대에 들어서도 대한민국은 6.25 전쟁으로 커다란 희생을 치렀으며. 제주 4.3사태를 겪었고,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위장한 군부의 유혈 쿠테타도 겪었으며, IMF라는 초유의 사태도 겪었습니다. 그 때마다 누군가는 앞장 서 희생 되었고 더러는 떠밀려 희생되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우리 모두는 악어의 입속으로 뛰어드는 몇 마리 누우의 희생으로 살아난 누우떼처럼 “누군가의 죽음에 빚진 목숨”인 것입니다. 매일매일 역사의 끄트머리에서 아웅다웅 사는 이 삶의 밑거름이 누군가의 희생의 결과 입니다. 건기가 찾아 와 “다시 강을 건널 때 / 그중 몇 마리는 저쪽 강둑이 아닌 / 악어의 아가리 쪽으로 발을 옮길지도 모”르며, 그것이 내가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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