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도 부처도 한 뿌리" 톨스토이·간디도 반한 바하이교
입력 2021.11.18 00:31
미국 시카고의 북쪽 윌멧에는 바하이교 사원이 있다. 시카고의 명물이 된 이 사원의 기공식은 1912년에 있었다. 당시 10년 가까이 미완성 건축물이었다. 항상 공사 중인 이 건물을 보고 강철왕 앤드루 카네기가 비서에게 물었다. “저건 뭐 하는 건물이지? 왜 저렇게 더디게 올라가는 거야?” 사정을 알아본 비서가 보고했다. “바하이교 사원입니다. 전세계에 있는 종교의 경전을 낭독하는 곳입니다. 힌두교, 조로아스터교, 불교,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경전까지 말입니다. 낭독만 하고 해석은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해석을 하면 서로 싸우게 되니까요.”
미국 시카고 북쪽에 있는 바하이교 사원. 바하이교는 신자가 돼야만 헌금을 할 수 있다. 비신자의 헌금이 들어올 경우, 바하이교를 위해서 쓰지 않고 다른 곳에 기부한다. [중앙포토]
그 말을 들은 카네기가 답했다. “그것 참 좋은 생각이네. 그럼 내가 돈을 줄 테니까, 저 건물을 빨리 지으라고 하게.” 자초지종을 알아본 비서가 다시 보고했다. “회장님은 바하이(바하이교 신자)가 아니라서 헌금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바하이교는 그런 헌금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결국 시카고의 바하이 사원은 제1ㆍ2차 세계대전이 모두 끝나고서야 뒤늦게 완공이 됐다.
바하이교는 페르시아인 바하 올라(1817~92)가 1844년에 창시한 종교다. “지구는 한 국가, 인류는 한 가족, 모든 종교는 한 뿌리”를 표방하는 바하이교는 1921년 한국에 처음 전래했다. 올해가 바하이교 한국 전래 100주년이다. 11일 서울 을지로에서 바하이교 신자인 김영경(70) 박사를 만났다. 그는 한국인 종교학자 중에 이슬람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최초의 인물이다.
김영경 박사는 국내에서 이슬람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최초의 인물이다. 그가 안정적인 직장을 뒤로 하고 독일 유학을 떠난 이유도 바하이교를 더 알고 싶어서였다. 김상선 기자
이후 알렉산더 여사는 조선을 떠났다. 그녀와 펜팔을 주고받던 김창진이란 사람이 조선에서 처음으로 바하이교 신자가 됐다. 그의 묘비명에도 그렇게 적혀 있다. 1950년 한국전쟁이 터졌을 때 한국에 온 유엔군 미군 병사 중에도 바하이가 있었다. 그들을 통해 통역사와 하우스 보이 등 한국에도 바하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김영경 박사는 젊은 시절부터 "만약 부처님과 예수님이 직접 만난다면 서로 어떻게 대할까?"라는 물음을 품었다고 했다. 김상선 기자
김영경 박사는 바하이가 된 지 꼬박 40년이다. 대학생 때부터 궁금했다. “만약 부처님과 예수님이 뉴욕에서 만난다면 서로 어떻게 대할까. 자기만 진리라며 상대를 배척할까. 아니면 ‘브라더’라며 함께 의기투합할까.” 대학 졸업반 때 우연히 만난 고교 선배가 바하이였다. “종교가 한 뿌리야. 부처님과 예수님이 모두 한 뿌리에서 오신 분들이야. 모두 하느님으로부터 왔어”라는 선배의 말은 그에게 충격이었다.
김 박사는 독일 마르부르크 대학(유럽 최초의 개신교 대학)에서 바하이교의 뿌리인 이슬람학을 전공했다. 아랍어와 히브리어는 부전공이었다. 그는 “이슬람학을 연구하며 많은 걸 새롭게 느꼈다”고 말했다.
인도 뉴델리의 로터스 템플. 무려 1만 개의 대리석 조각으로 만든 연꽃 모양의 사원이다. [중앙포토]
바하이 세계 본부는 이스라엘 갈릴리 서쪽의 하이파에 있다. 오스만 제국이 바하 올라를 귀향 보낸 곳이다. 지금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바하 올라의 묘지도 그 근처인 아카에 있다. 또 인도의 뉴델리에는 바하이교 예배원인 로터스 템플이 있다. 연꽃 모양의 사원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연간 방문객이 400만 명에 달한다. 타지마할보다 연간 방문객 수가 더 많을 정도다.
레프 톨스토이는 바하이교에 대해 "가장 순수한 형태의 종교"라고 칭찬한 바 있다. [중앙포토]
백성호의 현문우답 다른 기사
세계적 문호인 톨스토이도 바하이를 무척 좋아했다. 김 박사는 “바하 올라와 동시대를 산 톨스토이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는 우주의 신비를 풀기 위해서 평생토록 연구한다. 그런데 그 열쇠를 터키의 한 수인(囚人)이 갖고 있다’고 썼다”고 말했다. 당시 박해를 당해 오스만 제국의 감옥에 갇혀 있던 바하 올라를 일컫는 말이었다. 톨스토이는 바하이교를 가리켜 “인류 역사상 가장 순수한 형태의 종교”라고도 평했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바하이 신앙은 인류의 위안”이라고 했다. 바하이교 역시 철저하게 비폭력을 지향한다.
김영경 박사는 "바하이교는 이슬람권 종교임에도 남녀평등의 정신이 강하다. 아울러 철저한 비폭력주의를 지향한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바하이교는 예배의 관점도 독특하다. 예배 의식이 따로 없다. 바하 올라는 “인류에게 봉사하는 정신으로 하는 일상의 노동이 곧 예배다”라고 말했다. 김 박사는 “각자의 일상에서 그런 정신으로 일을 한다면, 그게 바로 예배”라고 강조했다.
'문화평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巨富 기생, 양반 욕보인 농부… 18세기 조선은 격동의 시기” (0) | 2021.12.28 |
---|---|
세잔, 비운의 화가 묘사 졸라 소설 보고 ‘30년 우정’ 깼다 (0) | 2021.12.23 |
수도권에만 왕릉 40기…세계유산 명예냐, 주거권이냐 (0) | 2021.11.19 |
[1차 세계대전] 佛베르됭 전투 (0) | 2021.11.09 |
한국적 미감의 정체성을 구현하는 구성과 색감을 찾으려고 한 화가 하인두. (0) | 2021.1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