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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 비운의 화가 묘사 졸라 소설 보고 ‘30년 우정’ 깼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1. 12. 23. 15:38

[문소영의 영감의 원천]

세잔, 비운의 화가 묘사 졸라 소설 보고 ‘30년 우정’ 깼다

중앙선데이

입력 2021.12.18 00:21

업데이트 2021.12.18 02:31

 

폴 세잔과 에밀 졸라

폴 세잔 ‘생트 빅투아르 산’ 1897, 미국 볼티모어 미술관(사진1). [사진 위키미디어 커먼스]

“어느 날 그(에밀 졸라)의 책 『작품』을 받았지. 그 책은 정말 충격이었어. 그가 날 속으로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게 됐거든. 한마디로 아주 나쁜 책인 데다가 다 틀린 얘기야.”

후기인상주의 화가 폴 세잔(1839~1906)이 후배 화가와 와인을 마시다가 울분을 터뜨리며 한 말이다. 사실주의 소설가 에밀 졸라(1840~1902)는 세잔의 30여 년 지기였다. 중학교 때 단짝이었고 성장해서도 서로의 예술과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을 나누던 절친이었다. 그랬던 그들의 우정이 1886년 졸라가 쓴 소설 한 권으로 박살이 난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전부터 서서히 금이 가고 있던 우정에 이 소설이 쐐기를 박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 후 세잔은 다시는 졸라를 보지 않았다.

대체 어떤 소설이기에? 『작품(L’oeuvre)』은 졸라의 야심 찬 ‘자연주의’소설 시리즈 ‘루공-마카르 총서’의 14번째 소설이다. 사실주의의 극단인 자연주의는 과학자의 보고서처럼 냉철하게 인간 군상을 묘사하는 것인데, 이 시리즈는 루공, 마카르라는 두 집안 사람들의 삶-주로 비루한 삶-을 통해 제2제정 시대(1852-70) 프랑스 사회를 자연주의적으로 보여준다.

영화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도 나와

그 중 『작품』은 클로드 랑티에라는 비운의 화가를 중심으로 프랑스 예술계를 묘사한 소설이다. 주인공 랑티에는 천재성과 혁명정신을 갖추었으나 끝내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스스로도 작품세계에 믿음과 만족을 얻지 못해 결국 그림 앞에서 목을 매 죽고 만다.

 

세잔은 주인공 랑티에가 바로 자신을 모델로 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참담함을 느꼈다. 그의 피해망상이었을까? 아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랑티에의 모델은 세잔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졸라 자신도 훗날 비망록에서 랑티에가 “극적으로 각색된 마네 또는 세잔, 굳이 말하면 세잔에 가까운 인물”이라고 밝혔다.

물론 졸라는 결코 세잔을 조롱하고자 이 소설을 쓴 게 아니었다. 그가 비망록에 쓴 대로 졸라 자신도 겪고 있는 예술가들의 창조의 어려움, “진실과의 투쟁의 연속이며, 늘 지고 마는 싸움”, 즉 세상의 진실 혹은 리얼리티를 표현하는 것의 어려움을 주인공의 비극을 통해 극단적으로 보여주고자 한 것이었다.

하지만 세잔은 그것을 쿨하게 받아들일 처지가 못 되었다. 실제로 세잔은 졸라의 소설이 나온 때인 40대 후반 나이까지 미술계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스스로도 작업에 확신을 갖지 못한 채 실험을 거듭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결국 패배자로 죽으라는 거야?’라고 세잔은 받아들였을 것이다. 반대로 졸라는 30대 후반에 쓴, ‘루공-마카르 총서’의 7번째 소설 『목로주점』이 물의를 일으키는 동시에 대박을 치면서 경제적으로도 풍족한 작가이자 진보 지식인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에밀 졸라는 명성을 얻으면서 불친절해졌고 은혜를 베풀듯이 나를 만나더군. 그만큼 나도 그를 보는 게 싫어졌지. 몇 년간 그를 찾아가지 않았어. 그런데 청천벽력처럼 그 책 『작품』을 받은 거야!”라고 세잔은 분노했다. 졸라가 변한 게 아니라, 사교성 제로에다가 걸핏하면 화를 내는 세잔에게 졸라가 마침내 지쳐서 정이 떨어졌다고 보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말이다.

영화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2015)에서 폴 세잔과 에밀 졸라. [사진 IMDb]

이런 세속적인 상황들도 있었지만, 세잔이 졸라의 소설을 계기로 그와 결별한 결정적인 이유는 ‘너는 끝내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구나’라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두 사람의 우정과 절교를 다룬 다니엘르 톰슨 감독의 영화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2015)은 오랜 친구조차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근원적인 잔잔한 슬픔을 인상주의 그림 같은 아름다운 영상에 잘 담았다.

이 영화를 보면, 그리고 졸라의 소설로 미루어보아도, 졸라는 친구 세잔이 천재성은 있지만 실패한 화가라고-단지 세간의 인정을 못 받는 게 아니라 미학적 성취를 이루지 못한 화가라고-생각했다. 그 생각은 틀렸다. 세잔은 미술사에 한 획을 그었고 훗날 피카소에게 “우리 모두의 아버지”라는 찬양을 들으며 20세기 모던아트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졸라가 미술에 안목이 없어서 세잔을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미술사에서 역시 중요한 거장인 에두아르 마네(1832-1883)가 ‘풀밭 위의 점심’과 ‘올랭피아’로 세상의 욕이란 욕은 다 먹고 있던 시절, 졸라는 일찌감치 이 그림들의 중요성을 알아보고 마네를 옹호하는 글을 신문에 기고했다.

졸라에게는, 어릴 때부터의 우정을 나눈 건 세잔이었지만 미술가로서 더 좋은 건 마네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자연주의 소설을 쓰는 것처럼 마네는 인간과 사회를 관찰하고 묘사하는 면이 많았던 반면, 세잔은 사과와 산 같은 세상의 사물을 ‘진짜로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에 고뇌하며 몰두했기 때문이다.

‘아니, 그림 공부한 양반이 본 대로 그리는 게 대체 뭐가 어렵담?’이라고 우리는 생각할 수 있다. 풍경을 예로 들어보자. 우리는 고전주의적 그림, 즉 스냅사진처럼 고정된 한 앵글로 한 찰나에 포착한 이미지를 정교한 명암법과 원근법으로 재현한 그림, 그렇게 해서 2차원 화폭에 마치 3차원 공간이 있는 것처럼 재현한 그림을 보면 ‘잘 그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게 정말 우리가 ‘보는 것’일까?

이건 망막에 순간적으로 맺히는 상일 뿐이다. 우리는 책상 위 물건, 사람 얼굴, 풍경 등을 여러 각도에서 여러 시간에 걸쳐 본다. 또한 최종적으로 우리가 ‘보는 것’은 망막에 맺히는 상이 아니라 뇌를 거쳐서 오는 시각 정보로서, 거기에는 과거 감각의 기억, 판단, 감정 등이 개입되고 결합된다. 세잔은 이것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더구나 그 시절 사진이 나왔기 때문에 사진 같은 그림의 존재 가치는 없어지고, 대신 사진이 나타내지 못하는 우리 몸의 시각 체험을 보여줄 새로운 그림이 필요했다.

그것을 위해 세잔은 40대에 고향인 엑상프로방스로 돌아가 사과 정물화와 생트 빅투아르 산 풍경화를 끝없이 반복해서 그리면서 자기 세계를 찾았다. 현상학의 철학자로 유명한 모리스 메를로-퐁티(1908~1961)에 따르면 세잔은 정물화를 그릴 때 100번 다시 앉아서 그렸고 초상화를 그릴 때 모델을 150번 다시 앉혔다고 했다. 그렇게 그는 그의 눈이 ‘진짜로 보는 것’을 그려내려고 무진 애를 썼다

피카소 “세잔은 우리 모두의 아버지”

폴 세잔 ‘사과 바구니’ 1893년 경, 미국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사진2). [사진 위키아트]

 

그렇게 해서 나온 세잔의 ‘사과 바구니’ 그림(사진2)을 보자. 얼핏 평범한 정물화 같아도 잘 보면 기이하다. 테이블 왼쪽과 오른쪽의 선이 엇나가 있고, 와인병은 기울어져 있다. 뒤쪽의 접시 위 과자와 바구니 속 사과는 위에서 비스듬히 내려다본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 반면 앞쪽의 사과는 옆에서 본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여러 각도에서 여러 시간에 걸쳐 본 것을 대담하게 합쳐놓았기 때문이다.

세잔의 생트 빅투아르 산 연작(사진1)을 보아도, 그가 우리의 눈이 여러 앵글과 시간에 걸쳐 훑은 세계를 보여주고자 애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그림이 흔들리듯이 보이는 이유는 그가 고정된 시점이 아닌 여러 시점에 걸쳐 나타난 시각적, 감각적 체험을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과거 고전주의 화가들의 원근법과는 다른, 자신의 시지각으로 체험된 공간감과 입체감을 면 분할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원형적이고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기에 점점 더 추상의 형태로 나아가고 있다.

세잔이 50대에 이르자 드디어 그의 진가를 알아보는 후배 화가들과 아트 딜러들이 나타났다. 특히 세잔이 여러 앵글과 여러 시간에 걸쳐 훑은 세계를 재현하는 것을 이어받아 입체주의(Cubism)를 창시한 거장 피카소는 세잔을 “우리 모두의 아버지”라고 불렀다.

하지만 절친이었던 졸라는 세잔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고, 예민했던 세잔은 그런 졸라와 결별을 선언했다. 사람은 사람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오랜 벗이라도, 서로에게 애정과 존경의 마음이 있어도, 소설가와 화가 같이 상통하는 직업이라도, 게다가 어느 한 쪽이 질 낮은 속물이 아니라 둘 다 탁월한 재능과 고매한 목표가 있어도,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미묘한 파장의 차이로 서로 끝없이 엇나갈 수조차 있다. 그래서 인간 존재가 더 고독하고 슬픈 것이 아닌가 싶다.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symoon@joongang.co.kr, 미술전문기자. 서울대 경제학부 학·석사, 런던대 골드스미스컬리지 문화학 석사, 홍익대 예술학과 박사 과정 중. 저서로 『그림 속 경제학』(2014), 『명화독서』(2018), 『광대하고 게으르게』(2019)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