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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생활난에 대하여 / 정병근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1. 9. 27. 13:33

공자의 생활난 / 김수영

꽃이 열매의 상부에 피었을 때
너는 줄넘기 작란(作亂)을 한다
.
나는 발산한 형상을 구하였으나
그것은 작전 같은 것이기에 어려웁다
.
국수 – 이태리어로는 마카로니라고
먹기 쉬운 것은 나의 반란성(叛亂性)일까
.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
사물과 사물의 생리와
사물의 수량과 한도와
사물의 우매와 사물의 명석성을
.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
.
-김수영, <공자의 생활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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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영 시인의 시 <공자의 생활난>은 그가 막 등단한 무렵(1945년)에 쓴 것이다. 난해하다는 이유로 평론가들 사이에 여러 해석을 불러오는데, 시의 앞에 나오는 두 문장이 그 핵심이다. “꽃이 열매의 상부에 피었을 때/ 너는 줄넘기 작란(作亂)을 한다// 나는 발산한 형상을 구하였으나/ 그것은 작전 같은 것이기에 어려웁다”에서 열매 위에 꽃이 피는 것은 형용모순이고, 줄넘기를 하는 ‘너’의 행동은 비인과적이다. ‘작전’은 또 무엇일까... 고도의 상징 알레고리가 작동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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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열매의 상부에 피었을 때
너는 줄넘기 작란(作亂)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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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를 해석하는 키포인트는 ‘공자’, ‘나’, ‘너’, ‘동무’를 규명하는 것일 터이다. 대개 ‘공자 = 너 = 동무’로 보는 이들이 많은 듯한데, 나의 생각은 다르다. 시적 화자인 ‘나’는 ‘공자’이고 시인 자신이며 인식 주체이다. 즉, 시인은 공자와 동일시 되어있다. ‘열매’는 욕망의 목적물(실용)을, ‘꽃’은 욕망의 절정(쾌락)을 가리키는 듯하다. 그러니까, '열매의 상부에 핀 꽃'은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관념의 꽃이다. 시인은 실용과 쾌락이라는 두 가지 가치를 놓고 갈등한다. ‘줄넘기’는 이 두 개의 가치를 넘나드는 관념 유희를 비유한 것으로 보인다. 이때의 ‘너’는 현란한 관념 논리를 펴는 사람 정도로 이해된다. 시인은 그런 ‘너(동무)’를 비판적으로 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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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발산한 형상을 구하였으나
그것은 작전 같은 것이기에 어려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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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산한 형상’은 표현된 현상 세계이고, 시인은 부지런히 그것을 좇았으나 마치 ‘작전’을 하는 듯 어렵고 부질없는 짓임을 깨닫는다. 뭔가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법하다. 이 무렵의 시인은 연극 운동을 하다가 처음 시인으로 데뷔하는 단계에 있었다. 정치적으로는 좌우 대립이 극심했고, 문학(예술) 또한 순수/참여 논쟁이 가열되고 있던 때였다. 춘추전국시대를 떠돌던 공자처럼 극심한 ‘생활난’을 겪고 있는 시인은 서양에서 수입된 예술지상주의나 유물론적 관념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을 멈추고, 실생활에 뿌리를 둔 자신만의 시를 써야겠다는 단독자적 자각을 했음직하다. 이는 “대지에 발을 디딘 초월 시”를 쓰겠다는 그의 산문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이런 반시대적 자각은 ‘전통 갱신과 현상 타파’라는 화두로 이어지면서 죽는 날까지 옹고한 시적 태도로 자리 잡는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시는 장차 시인으로서의 장도를 앞둔 ‘김수영 식 리얼리즘’을 다짐하는 출사표로 읽힌다. 시인으로 첫발을 내딛는 두려움도 있었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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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
사물과 사물의 생리와
사물의 수량과 한도와
사물의 우매와 사물의 명석성(明晳性)을
.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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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서 분석한 것을 토대로 이 시를 간략하게 재구성해보면 이런 정도가 되지 않을까? ‘열매 위에 꽃을 다는 식의 높고 현란한 언술로 시를 쓰는 시인 동무들아, 나는 너희들처럼 시를 쓰지는 않겠다. 내 주위를 감싸고 있는 모든 사물의 구체성을 정확하게 인식한 토대 위에서 나의 시를 펼치겠다. 이상적인 삶의 도를 추구하고 가르쳤지만 정작 자신은 생활난에 시달린 공자(군자)의 경우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관념으로 시(삶)를 쓰지는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