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허물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0. 11. 20. 15:11

허물

 

옷의 역사를 생각해 본다

동물에서 사람이 되었던 날은

부끄러움을 알게 된 그 날

감추어야 할 곳을 알게 된 그 날

옷은 그로부터 넌지시 위계를 가리키는

헛된 위장의 무늬로

입고 벗는 털갈이의 또 다른 이름으로

진화하였다

 

우화의 아픈 껍질을 깨고

비로소 하늘을 갖는 나비를 꿈꾸며

나는 마음속의 부끄러움을 가렸던 옷을

벗고 또 벗었으나

그 옷은 나를 지켜주고 보듬어주었던

그 누구의 눈물과 한숨일 뿐

내 마음이 허물인 것을 알지 못하였다

 

가만히 내리는 빗소리

나를 대신하여 허물을 벗는 이의

아픈 발자국 소리로 사무쳐 오는 밤

나는 벌거숭이가 되어

옷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싶다

부끄러움을 감추지 않고

가장과 위선의 허물이 아니라

마음에 새겨지는 문신으로

나를 향해 먼 길을 오는 이의 기쁨으로

이름 짓고 싶다

 

다시올 2020년 가을호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담장 너머  (0) 2020.12.06
어떤 힘  (0) 2020.11.24
연리목을 바라보다  (0) 2020.11.18
면벽 面壁  (0) 2020.11.12
玉 다방  (0) 2020.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