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문화마을 소식들

한국문학의 세계화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0. 4. 28. 11:27

"문학 경쟁력 상실 자각해야" 평론가의 `작심 비판`

 

정과리 비평집 `한국적 서정`

"문학의 세계화 30년 외쳤어도

나오키·부커상 수상작만 읽어

폐쇄주의에 한국 독자들 외면"

매일경제 김유태 기자

입력 : 2020.04.15 17:31:08 수정 : 2020.04.15 21:57:09

정과리 교수

 

책장을 넘기다 멈칫하는 순간이야 제각각이겠지만 그런 순간은 대개 책 전체가 아니라 단 하나의 문장 때문에 온다. 정과리 문학평론가(62)의 신간 `한국적 서정이라는 환()을 좇아서`(문학과지성사 펴냄)는 첫 줄부터 타격감이 묵직하다. 서두에 인용된 프랑스 소설가 발자크의 문장을 옮기면 이렇다.

 

`여기서는 오늘날의 입법자가 아닌 미래의 입법자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작금은 아예 불가능하므로, 후일의 가능성을 도모하는 이번 비평집은 폐쇄적 울타리 속에 들어앉아 세계문학 주인공을 꿈꾸는 이 나라의 망상(妄想)을 제대로 겨냥한다.

 

 

 

종족적 관습, 우이독경의 냉투명(冷透明) 유리, 주자학적 정신환경이란 비수 같은 은유까지 찰지다. 연세대 외솔관 연구실에서 지난 10일 정과리 평론가를 만나 글의 이유를 캐물었다. "오늘날 문학 연구자들은 잘못된 관행에 침윤돼 있는데, 그분들에의 기대는 어려우니 미래를 상정했다고 답하겠습니다. 그러니 동시대가 아니라 `미래의 입법자`께 드리는 호소에 가까운 글이에요. 자신의 독자를 당대가 아니라 `50년 후()`로 예언한 스탕달을 떠올리기도 했고."

 

 

 

지난 2000, 충남대 불문과 교수였던 그가 연세대 국문과로 적()을 옮기던 시절로부터 서문은 열린다. 국문학계는 연구체계, 논문 선별기준, 지원제도가 온통 `한국문학장()` 내에서만 감지되는 종족에 가까웠다. 폐쇄주의와 수직주의에 스스로 감금된 꼴이었다.

 

"서양 이론에 그토록 기대면서 외국문학 전공자는 인용조차 하지 않고 학과 내부에서만 유통됩니다. 선대를 비판하면 또 문제가 심각해지죠. 익명으로 등에 칼을 꽂아 떫은맛을 보게도 만들고요. ()이 망했는데 `우리가 주자학`이라던 조선의 소중화(小中華) 의식을 환기합니다. 조선은 그래서 망했어요."

 

`한국문학의 세계화`30년째 진행형이다. 언론도 독자도 한강 맨부커상 수상이 그 결실이라 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좀 다르다.

 

"마르케스가 노벨상을 수상했을 때 네루다와 보르헤스도 호명돼 남미문학 전체가 조명 받았어요. 모옌의 노벨상 수상 때도 옌롄커까지 주목 받았고요. 우리가 `문학의 세계화`를 시작할 땐 모옌과 옌롄커를 앞섰다고 착각했는데, 지금 한국문학 어떻습니까. 지금 세계 독자는 `한국문학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아무런 이해도 없어요. 세계 독자에게 안테나조차 잡히지 않아요."

 

지역문학이 세계문학으로 인정받는다는 건 단발적 사건을 뛰어넘는 일이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1990년대부터 세계화가 진행되며 한국문학도 어떤 의미에선 세계문학이 됐습니다. 한국 독자는 세계문학과 한국문학을 공평하게 견주지 한국문학에 프리미엄을 주지 않습니다. 결과는 어떻습니까. 5만부, 10만부 팔던 작가가 4000부 팔립니다. 대중문학은 나오키상 수상작을 읽고 본격문학은 공쿠르·부커상 수상작을 읽으니까요. 한국문학의 `경쟁력 없음`을 학계, 문단이 자각해야 합니다."

 

문학과 문학연구의 제반 환경이 세계 독자에 최적화돼야 한다고 그는 본다.

 

"앙투안 베르만은 `낯선 것으로부터 오는 시련`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문학작품의 가치는 그것이 다른 나라 말로 번역될 만한가에 의해 결정된다.` 낯설지만 동시에 즐거워야 번역됩니다. 한국어의 방대한 유산을 어떻게 재창조해 세계의 문학 환경에 최적화될 것이냐의 생각과 동행하며 이 책을 썼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책장은 전통과 서구를 넘나든다. 가장 아끼는 책 한 권을 묻자 그의 스승 고() 김현 문학평론가의 역저 `한국문학의 위상`이 탁자에 놓였다. 마침 올해는 김현 평론가의 30주기다.

 

"김현 선생은 49세에 돌아가셨어요. 저는 나이 50세에 이르러 문학을 바라보는 눈이 이제 섰구나 하는데 선생은 그때 이미 많은 걸 알고 계셨습니다. 되풀이해 이 책을 읽다보면 선생은 참 돌아가셔서도 절 가르치시는구나 싶어져요."

 

스승 김현이 1970년 창간했지만 신군부가 폐간시킨 `문학과 지성`1988`문학과 사회`로 복간시킨 편집위원 6인 중 하나도 그였다. 문학 외길, 후회는 없을까.

 

"글쎄. 문학적 재능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은 사회과학을 원하셨고 저는 자연과학을 원했는데, 어긋남 사이에서 문학으로 귀결됐어요. 재능은 없었더라도 좋은 글 읽고 쓰려는 노력을 포기하진 않았으니 후회는 없습니다. 직업으로서의 교수 정년은 3년 남았어도 문학을 죽을 때까지 하게 될 텐데, 지금 만들고 있는 한국문학의 구도와 글쓰기에 대한 모색 속에서 끊임없이 진화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정과리 문학평론가 인터뷰 전문(全文)>

 

머리말을 대신하여 담으신 `국어국문학과로 적을 옮기고 나서`라는 다섯 쪽짜리 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학계와 문단 비판하시면서도 "오늘날의 입법자가 아닌 미래의 입법자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문구를 인용하셨습니다. `오늘`이 아니라 `미래`에의 당부일까요.

 

충남대 불어불문학과에서 20년 전 연세대 국어국문학과로 옮기면서, 일제 강점기 문학 연구를 다시 보게 됐으나 논리상 맞물리지 않는 부분이 다수라 느꼈다. 허점이 많았다. 이해해보려 했지만 전제부터 문제를 안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문학 곁에 있으면서 그런 부분까지 차마 버릴 수는 없다고 느꼈지만 정확하게는 좋은 연구자들이 문학 연구의 `층층`을 이루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한국문학에 관한 제대로 된 구도가 세워지길 바랐다. 젊은 세대들이 해야 할 일이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독자를 당대가 아니라 `50년 후의 독자`로 상정했던 스탕달을 떠올리며 쓴 말이기도 하다. 지금이 아니라 `미래의 입법자`께 드리는 호소에 가까운 글이라고 봐달라.

 

한국문학 연구의 폐쇄성을 지적하는 글로 읽었습니다.

 

한국문학 연구자들은 그동안 비판을 수용하지 못했다. 선대를 비판적으로 인용하면 문제가 심각해졌다. 가령 이런 식이다. 해당 분야에 관한 비판적 언급이 담긴 논문이 어느 학술지에 제출됐다고 가정해보자. 학술지 편집위원은 제출된 논문과 관련된 연구자를 심사자로 위촉하므로, 이 논문에서 비판적으로 언급된 기존 연구자가 해당 논문의 심사자가 된다. 이때 제출된 논문을 보고 자신이 비판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논문심사서에 적힌 내용이 호평일 리 없다. 확인하는 순간에 보지도 않고 감정적으로 대응하기 마련이고, 심지어 상스러운 욕설에 가까운 심사서가 작성돼 논문 저자에게 도착하기도 했다. 가혹하고 심각하다 싶을 정도로 반발을 받게 되므로 허심탄회한 토론도 안 된다. 익명으로 이뤄지는 논문 게재심사가 대개 그랬다.

 

현재 세대가 아니라 후일의 세대를 위한 제언이라는 의미로 들립니다.

 

오늘날 문학 연구자들은 잘못된 관행에 침윤돼 있다. `그분들`에게 기대하긴 어려워진다. 여러 경로로 조금 사태를 개선해보려고 했으나, 익명 상태에서 이런 저런 공격이 들어오기도 했다. 교육대학원 수업을 꼭 하려 하는 편인데 교육대학원 수업에 들어가면 꼭 대학원생들에게 말한다. "여러분들은 사도(使徒)이므로, 잘못 알고 있으면 여러분이 가르치는 학생들도 잘못 알게 된다. 사명감을 갖고 문학을 진지하게 배울 필요가 있다." 후대에는 좀 나아질 거라는 기대를 품고 이 책을 썼다. 그런 기대가 전혀 없었다면 이 책을 쓰지도 않겠겠지.

 

에둘러 가지 않고 직접적으로 비유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나의 종족적 관습`, `우이독경의 냉투명 유리`, `주자학적 정신환경`, `전통의 온존과 확산` 등의 비유는 `작심`하고 쓰셨다는 느낌까지 받았습니다.

 

지금까지의 연구 풍토가 스승과 제자 간 유대에 의해 형성된 면이 많았다. 위에 `계신` 어떤 분이 얘기를 하고 반향을 일으키면 모두가 따라갔다. 그런 점에서 한국문학 연구가 `종족적 관습`을 이루고 있다고 봤다. 상호 부조 형식이 아니면 토론이 안 되고 원로에의 무조건적 존중과 찬송 형식의 서평들, 이건 거의 집단 무의식이다. `냉투명의 유리`라고 표현한 이유다. 외국문학 전공자 연구는 인용되지 않으며 국문과 내부에서`` 유통된다. 간혹 외국 이론을 인용하더라도 타 언어권 전공자 연구가 아니라 번역된 외국 서적을 인용하는 게 현실이다. 그것도 아니면 아예 외면하고, 앞서 언급했듯 익명의 심사과정에서 등에 칼을 꽂아 `떫은 맛`을 보게 만드는 풍토였다.

 

학계의 종족적 관습은 왜 깨지지 않을까요.

 

종족적 관습이 원형이 언제 어디에 있었는지를 살펴보면 조선 시대의 `소중화(小中華)`를 떠올리게 된다. 조선은 세계의 중심이 중국이라는 중화사상에 빗대 자신을 소중화로 여겼고, 심지어 명나라 멸망 이후로도 자신을 `작은 중화`로 착각했다. 편협한 예학을 중시했고 자신이 유교의 전부를 가지고 있다고, 조선이야말로 주체적인 사상의 처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조선은 그래서 망했다.

 

한국 문학 연구도 그러한 `주자학적 정신 환경`이 이어지고 있다. 미래의 입법자들이 자라나길 기대하는 이유다. 조금이라도 대중들에게 그런 인식을 심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대중 강연이나 오늘과 같은 인터뷰에도 적극 응하는 편이다. 나의 주장이 온당치 못하다면 나에 대한 비판도 공개적인 토론이길 바란다.

 

항상 나만 옳다는 주장이 아니다. 그러나 문제가 심각하다. 대중문화를 제외하고난 우리의 문화나 학문이 위기인데 학계에는 그런 인지조차 돼 있지 않다. 아시아의 문화나 문학은 세계 독자들에게는 중국과 일본 정도만 인지될 뿐이지, 한국은 안테나조차 잡히지 않는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만, 최근 한국문학은 해외에서 여러 작품이 인정을 받고 있는 추세입니다. `채식주의자`의 맨부커상 수상 이후 `82년생 김지영`의 아시아 베스트셀러 현상, 김언수 작가의 `설계자들`도 독일에서 인정 받았습니다. 김혜순 시인의 그리핀 시문학상 수상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과이고,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도 일본 서점대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198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그의 문학은 마르케스만의 문학이 아니었다. 파블로 네루다와 보르헤스가 마르케스와 동시에 다시 주목을 받았고, 라틴 아메리카 문학 전체가 조명받았다. 단발적 효과가 아니라 라팀 문학은 하나의 트렌드가 될 정도였다. 중국 모옌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을 때에도 모옌만 조명받지 않았고 옌롄커까지 동시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어떤 지역문학이 세계문학으로 인정 받는다는 것은 단발적인 사건을 뛰어넘는 일이어야 한다.

 

한국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한국 작가들의 성취를 외면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김언수 작가의 소설은 아주 재미있는 사건 소설이며 보기 드문 성과다. 그러나 분명히 봐야 한다. 한강 작가 `채식주의자`는 한국의 문학이어서가 아니라 작품의 특수성으로 작품이 주목을 받은 것이고, 김혜순 시인-분명 훌륭한 시인이지만-의 작년 캐나다 그리핀 시문학상 수상도 세계 여성의 문제이기에 주목을 받은 것이지 `한국`과는 별 관련이 없다. 요약하자면, 현재 한국문학에 대한 세계 독자의 관심에는 한국문학이라는 특수성 관념이 배제돼 있다.

 

한국문학의 세계화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최근의 성과들은 작가 개인의 성과이지 한국문학 성과로 읽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일까요.

 

한국문학은 한국문학의 구도 내에서 세계 독자에게 이해 받아야 한다. 지금 세계 독자는 `한국문학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아무런 이해도 없다. 그렇다면 `한국문학`이란 타이틀이 꼭 필요한가, 라는 질문도 가능해지고 굳이 한국문학을 하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고 되물을 수도 있다. 누군가 내게 그렇게 질문한다면 사실 할 말은 없지만 한국인의 한국문학이라는 걸 아무도 포기하지 않고 있지 않은가.

 

이번 책에서 한국문학과 한국문학 연구의 `폐쇄주의`를 언급하셨습니다. 그 원인은 무엇이고, 여전히 한국문학이 세계적일 수 없는 까닭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김현 선생은 `한국문학은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가`라는 글에서 `핵자`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하나의 국면에서 다른 국면으로 넘어갈 때, 그 전국면에서 가장 중요시된 것이 확대·발전되어 다음의 국면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전국면에서는 이선(二線)에 머물러 있던 것이 확대·발전되어 다음 국면의 핵자를 이룬다는 사실이다"라는 문장이 그렇다.

 

이전 시기의 중추적인 요소인 제1핵자 이면에는 늘 주변부 요소였던 제2핵자가 존재하며, 그 시기의 제2핵자가 다음 시기의 중추적 요소인 제1핵자가 된다는 뜻이다. 전 시대의 중추 요소는 완전히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음 시대에 이르러 해체된다. 그리고 주변부 요소에 재배치되며 융합된다. 역사의 `단절`이면서 동시에 `감싸기`인 셈이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오늘날 세계문학에서 한국문학은 `3핵자`로도 존재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1990년대 이후 세계에, 특히 프랑스에 우리를 알리려 했다. 그러나 전혀 알려지지 않았고, 시장 자체가 자급자족이 되지 않는 데도 조급감이 앞서 유례 없을 정도로 지원제도만 발달했다. 그런 어떤 의존 이면에서, 또 프랑크푸르트와 파리에서 열리는 세계 도서전에 주빈국으로 초청 받는 등의 외형 이면에서 정작 작품 경쟁력은 점점 상실됐다.

 

그와 동시에 대중적으로도 형편없이 밀리고 있다. 30년 지나서 지금 결산해보니 우리 성적은 너무 초라하다. 그때에는 우리 본격문학이 모옌, 옌롄커보다 훨씬 앞서 있다는 착각까지 하던 시절이었다. 결과는 어떤가. 문학과 문학연구가 저지대의 늪에서 헤매고 있다. `아아, 내가 30년 동안 헛수고를 했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폐쇄주의를 극복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작가들은 분명하게 보고 자각해야 한다. 또 작가뿐만 아니라 문학의 환경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세계의 문학 환경에 우리가 최적화될 필요가 있다. 세계인들의 어떤 언어와 다르면서도 호환될 수 있는 방식으로 한국의 언어가 개발돼야 한다. 프랑스 번역철학자 앙투안 베르만은 `낯선 것으로부터 오는 시련`에서 "한 문학작품의 가치는 그것이 다른 나라 말로 번역될 만 한가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했다.

 

낯선 것이면서 동시에 즐거워야 번역된다. 그게 호환성이다. 호환성을 어떻게 개발하느냐가 심각한 문제다.

 

한국어가 가지고 있는 방대한 유산이 있는데, 그 유산을 가지고 와서 재창조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번역의 용이성과도 관련이 있다. 조금 여기서 더 나아간다면 우리의 다음 다음 세대쯤 가면 자국어와 세계어를 동시에 쓰면서 호환성도 강해져야 자유롭게 오가야 한다. 그런 환경이 만들어져야 하고, 그 이전에 지반을 구축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

 

국문과 수업으로는 드물게, 올해 `동시대세계문학읽기`라는 수업을 진행중이십니다. 단지 여러 국가에 산재한 세계문학을 검토하는 게 목표가 아니라 세계문학 내에서의 한국문학 위치를 가늠하고 조망하고자 하신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문학의 공간과 시간을 확장하려는 노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글을 지키고자 했던 주시경, 최현배, 이희승, 김윤경 등의 선생에 의해 한글은 `확실한 매체`로 자리를 잡았다. 한글을 자기 삶의 장치로 사용한 게 4·19 세대였고 이후 1990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문학에는 세계화의 바람 불었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한국문학은 세계문학이 돼버렸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독자들은 세계문학과 한국문학을 `섞어서` 읽는다는 뜻이다. 한국문학과 세계문학을 공평하게 견주며, 결코 한국문학에 `프리미엄`을 주지 않는다.

 

프리미엄을 없앴더니 지금 한국문학은 어떻게 되었나. 독자부터 줄었다. 5만 부, 10만 부 팔던 작가가 4000부 팔린다. 한국문학 독자들이 떠났다. 대중문학은 일본 나오키상 수상작을 읽으면 되고 본격문학은 유럽 문학 수상작 사보면 되기 때문이다. 한국문학은 독자에게 경쟁력이 없다. 어떻게 경쟁력을 확보할 것인가를 살펴보고자 했고, 그래서 세계문학 속 한국문학을 순수하게 내용만 갖고 비교해보고자 했다. 번역된 상태에서의 기법의 문제, 주제를 어떻게 끌고갈 것인지와 또 플롯의 문제 등을 일일이 검토해야 세계문학 안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다고 봤다.

 

지금까지 세계문학과 한국 독자의 가까운 거리와 전혀 다른, 한국문학과 세계 독자의 거리에 대해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조금 주제를 바꾸어서 이번 책에 담긴 다른 내용에 대해 질문 드립니다. 눈여겨보게 된 문장을 꼽아본다면 다음 문장입니다. "나는 지금도 시가 생으로부터 솟아난다는 믿음을 버리지 못한다. 시적 정황을 미리 가정하는 시들로부터 큰 감흥을 얻지 못한다"고 쓰셨습니다.

 

모든 문학이 그렇지만, 삶에 대한 어떤 강렬한 느낌으로 출발해 삶을 얼마나 불을 지피느냐, 그와 함께 어떻게 동시에 삶을 바꾸느냐, 라는 바로 열정 때문에 인간은 문학을 한다. 우리의 삶을 가장 치열하게 살아내면서도 완전히 변화하는 방식으로 사는 것, 그것이 문학이 추구하는 바가 아닌가. 김수영 시인은 그래서 `혁명이 상대적 완전을 추구한다면 문학은 절대적 완전을 추구한다`고 봤다. 그런 게 없었다면 문학을 할 이유도 없었겠지. 문학이 아닌 다른 대부분 활동은 일시적인 효과, 소득, 성취, 명성, 지위를 노리지만 문학은 그런 게 아니다.

 

문학은 전면적인 쇄신이고, 그 순간만은 말 그대로 세계 전체와 호흡하는 그런 것이다. 어떤 문학도 그런 의미에서, 생으로부터 쏟아지지 않는 것이란 없다.

 

그러나 생과 무관하게 `문학은 이런 거야`라고 말하는, 기교에 대한 훈련이 너무 발달해 미리 시적 상황을 가정하는 문학을 너무 많이 봤고 지금도 많다. 요즘 시들은 엄청나게 비튼다. 언어를 몇 번 돌리면 이게 비유로서 사람들에게 충격을 줄 거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까지 있는데 그렇다면 언어를 이렇게 돌렸을 때 생에 충격을 주는 것까지 계산하느냐를 생각해보면, 그런 사람은 드물다. 감각적인 새로움을 주는 정도에서 그치는 사람들이 많다.

 

조금 가벼운 질문으로 건너가 볼까요. 오늘 늦은 오후, 연세대 외솔관 2층 연구실에서 인터뷰를 진행 중입니다. 이 방에서 가장 아끼는 책 한 권을 독자들께 소개해주신다면 어떤 책일까요.

 

사실 생에서 가장 아끼는 단 한 권의 책은 김현 선생의 1977년작 `한국문학의 위상`이다. 전집의 제1권이 여기 꽂혀 있지만 선생의 저자 사인본은 집에 보관돼 있다.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평론이 당선되고 연구실에 인사드리러 갔더니 `한국문학의 위상`에 서명을 해서 건네주셨다.

 

`문학평론가 김현`을 이해하는 핵심 관문이라고 생각하는 책이고, 나로서도 여전히 이해되지 못한 부분이 있다. 선생의 글은 되풀이해 읽을 때마다 배운다. 돌아가셔서도 나를 가르치시는구나, 이런 생각도 든다.

 

마침 올해 6월은 김현 선생의 30주기입니다. 김현 선생은 어떤 분이셨는지 독자들께 소회해주신다면.

 

저는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문학을 바라보는 눈이 이제서야 섰다고 막연히 느꼈다. 이번 책도 이제는 할 수 있겠구나, 싶어서 냈다. 구도가 잡히지 않으면 해볼 수 없는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런 나의 생각이 상당히 뒤늦게 온 것이다.

 

그런데, 2010년은 내가 문학을 한 지 30년쯤 지났던 때였고 그때 내 나이가 50세를 넘어서던 시점이었다. 김현 선생은 49세에 돌아가셨으니, 나는 그분이 돌아가신 나이가 지나서 그런 생각이 이르렀다. 선생은 이미 그때에 많은 걸 알고 계셨는데 나는 그 연령을 넘어서 알게 됐다. 물론 그것은 축복된 일이고 잘 된 일이라고 생각이 든다. 조금 더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어서다.

 

사실 시간을 초월해 한국문학사의 어떤 페이지로든 떠나볼 수 있다면 어느 술자리에 가보고 싶으신지를 여쭙고자 했는데, 묻지 않아도 보고 싶은 분은 김현 선생님이시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내게 술을 가르쳐주신 분도 김현 선생이다. 자주 뵙던 술집? 이제는 많이 알려졌다시피 누가 뭐래도 `반포치킨`이지. 선생을 모시고 한 번만 그 술자리를 도모하고 싶다. 아직 생존해 계신 분으로는 정명환 선생이신데 기회가 닿으면 가르침을 받고 싶으나 이제 연로하셔서 술은 안 될 것 같다. 정명환 선생은 가장 정확하게 아시면서도 겸손하셨고 학생들 이해를 해주시면서 엄격하셨다.

 

고약한 질문이겠습니다만 현존하는 작가 가운데 가장 아끼는 시인, 작가를 꼽아본다면 누구일까요.

 

개인적으로는 모로코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레일라 슬리마니가 차세대 가장 주목 받는 작가가 되리라고 예측은 하고 있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돌아가신 분으로 확장한다면 호머처럼 영원히 남을 작가는 제임스 조이스, 마르셀 푸르스트다. 두 작가는 호머처럼 영원히 남을 것이다. 한국의 현존 작가로는, 아무래도 오해가 있을 수 있으니 오프 더 레코드를 요청하겠다(웃음).

 

40년 넘는 시간을 문학에 투신하는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불문과에 입학하시던 시점으로부터 40년 넘는 시간을 문학의 곁에 거주하셨는데, 무엇을 이루었고 또 무엇을 잃었다고 보시는지요.

 

글쎄, 문학적인 재능은 그렇게 없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문학보다 수리과학에 능하다(웃음). 어떻게 하다가 문학을 하게 됐느냐를 돌이켜 보면, 부모님은 자연과학 쪽은 생각도 않으셨고, 내가 사회과학 분야로 성공하길 바라셨다. 그런데 나는 자연과학이 취향이었다. 그러다 보니까 그 어긋남 사이에서 유일하게 눈길이 간 학문이 문학이었다. 부모님의 걱정 속에서 문학을 선택했지만 선택하면서 난 평생 문학에 삶을 바칠 거라고 각오했고,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서 다시 나를 살펴보니 문학적 재능은 부족했어도 좋은 글을 읽고자 또 쓰고자 노력하는 일을 포기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삶에서의 후회는 한 점도 없다. 정년이 3년 남았다. 사회적인 어떤 직업으로서의 문학활동을 안 할 수가 있겠지만 죽을 때까지 문학을 하게 되겠지. 지금 내가 만들고 있는 한국문학의 구도, 글쓰기에 대한 모색을 하면서 끊임없이 진화를 이루기를 기대하고 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어느 분을 만나든 인터뷰 때마다 드리는 질문입니다. 흔히들 골방이라고 표현합니다.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쓰고 있거나 읽고 있는 순간에 보게 되는 문인의 골방이랄까요. 선생님의 문학적 골방의 풍경이 궁금합니다. 누가 지나가고 무엇이 있으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내 골방은 홀로그램 설치장이다. 아주 좁은 공간인데 홀로그램을 통해 전 우주가 연결된다. 어디든지 갈 수 있다.

 

 

 

 

 

 

자코메티에 관해서 논문에서도 얘기한 바 있지만 김수영이 자코메티를 발견했을 때와 비슷하다. 자코메티는 1인 조각을 했지만 한 사람을 비례 있게 조각한 게 아니라 1인 조각으로 온 사람, 사람 전체를 생각하게 했다. 나의 골방도 마찬가지다. 우주로 통하는 홀로그램이다.

 

[김유태 기자 / 사진 = 한주형 기자]

 

 

'문화마을 소식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황석영 소설  (0) 2020.05.25
'단원풍속도첩'展  (0) 2020.05.18
김목경  (0) 2020.04.26
"문학 침체, 비평도 책임…비평이 살아야 문학도 산다"  (0) 2020.03.31
이문열  (0) 2020.03.27